|
달빛에도 가시가 있다
이홍사
정말 믿어버릴까요?
달빛에 가시가 있다는 말.
똘배할배 말씀대로.
그래요. 그날은 달빛에 돋은 가시에 찔렸나 봐요. 영혼이 가시에 얼마나 찔렸는지 맑은 정신이 아니었겠죠.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똘배할배도 아시겠지만, 저는 아닌 건 분명히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말투나 감정이 더 짙어졌고요.
오늘 제가 말은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닙니까?
구업을 짓는다는 기분이 드네요. 술이 깨면 또 후회할 거고, 나아가서 참회할 게 분명한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말을 계속하게 되네요. 어쩌면 돈이나 자식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불쑥 뱉는 말이라 했어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기어이 해야겠습니다.
소주를 한 병 더 시킬까요?
이 집 돼지국밥이 맛있다는 거, 구미 사람들은 다 알지요. 얼큰하게 고춧가루를 더 풀어서 드셔요.
똘배할배요.
저는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는 똘배할배라는 말이 더 정감이 가요. 똘배할배라 불러도 실례가 아니지요. 오히려 옛날 기분이 살아나 더 정감있게 들릴지도 모르죠. 그때 우리가 삼십 대 시절이었는데 누가 이렇게 적확한 별명을 붙였는지, 돌배할배, 저는 돌배할배보다 억양을 강하게, 똘배할배가 더 익숙합니다. 면전에서 이렇게 부르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되지만 우리가 벌써 사십년지기인데 그런 걸 따지면 거리만 멀어질 거 아닙니까.
잠깐만요. 메시지부터 확인을 좀 하고,
아, 부고네요
이런 메시지를 받았을 때 참 난감합니다.
이런 부고를 왜 날리는지.
장모님 죽었다고 보내는 문자, 이거 난감하지요. 첫째 마누라 장모인지 이혼하고 다시 만난 둘째 마누라 장모인지도 애매하고, 중학을 졸업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중학 동기인데, 장가갔다는 소식도 못 들었는데, 죽은 그 장모에게는 몇 번째 사위인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왔네요.
하? 이럴 땐 어떻게 하죠?
아, 물론 이 친구가 보낸 게 아니라 동기회 총무가 보낸 겁니다. 코로나 이후에 문화가 너무 많이 달라졌죠. 청첩이고 부고고 다 계좌번호를 넣으니, 이거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놔라, 등치는 의미에서 연락하는 거 같기도 하고.
장모님이라, 언제부터 우리가 남의 장모님 문상을 다녔나요? 받으면 좀 황당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런 메시지는 무시하고 냉큼 지우는 게 좋겠지요.
할배께서 그렇게 하라면, 그럽시다. 당장 지우겠습니다.
그날 왜 기분이 상했느냐, 하면 보험 때문이었습니다. 자동차 보험. 그렇죠.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당했거든요.
추돌사고가 일어난 건 한참 전이었어요.
추돌사고라기보다는 후진하다가 살짝 묻은 거죠. 물론 일방과실입니다. 제 과실이 100%입니다. 마트 주차장에 서 있는 차를 내가 후진하다가 건드렸으니 그 차로서는 억울하기야 했겠죠. 예, 물론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어요. 그 차 주인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거든요. 그날 제가 살짝 들떠있었어요.
선산, 산소에 가려던 참이었거든요.
아버지 산소에 가려고 마트에서 정종을 사서 나오던 길이었어요. 정종은 큰 걸로 한 병을 샀는데, 제가 외국에 있는 동안 아버지 기일이 지나갔거든요, 형님 혼자서 제사를 모셨는데, 그게 맘에 걸려 귀국하고 바로 서둘러 찾는 길이었어요. 물론 아내도 동행했지요. 아내는 차에 타고 있었는데 그 정도 미미한 사고였으니 아내는 차에서 느끼지도 못했고 내가 내려서 뒷차를 살펴도 아내는 조수석에서 내려보지도 않을 정도로 미미한 추돌이었어요.
별 게 아니라 그냥 가려다가 그 차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죠. 그냥 갔다가 나중에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마음은 바쁘지만, 그 차에 붙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어요.
젊은 아주머니가 받았는데 지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되어서 미안한데 잠깐 올라오라고 했어요. 금세 올라왔더군요. 대여섯 살짜리 아이를 하나 데리고 올라왔는데, 알아서 고치고 청구하시라고 명함을 건넸죠. 그 여자, 자기는 차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남편에게 연락한다며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라구요.
남편이라는 작자가 받지 않았나 봐요.
회의 중일지 모른다며, 나중에 전화가 오면 이야기하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살짝 받았어요. 흰 차였는데 까진 게 성냥개비 끝만큼이었어요. 그러라고 하고 나오다가, 뭔가 찜찜해서 그 차량 번호판하고 까진 부분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죠. 대수롭지 않아 아내가 차에서 내리지도 않을 정도였다니깐요.
그 자리에서 벗어나자 추돌사고라고 할 것도 없는 일은 망각의 갈피로 사라졌어요. 워낙, 미미한 일이라 잠시 잊고 있었죠.
선산에 가서 아버지 산소 앞에서 아내와 진설하고 첫 잔을 치는데 전화가 왔더라구요. 낯선 번호를 보고서야 그걸 기억하고 그 여자의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상은 적중했어요.
대뜸, 긴말, 할 것 없으니 보험으로 처리해 달라고 하더군요.
차라리 사정하는 것보다는 그게 속이 편하죠. 그러겠다고 하고선 보험 담당을 연락해서 핸드폰 사진에 있는 차량번호를 일러주고, 사진을 보내주며 사고 경위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죠. 내심 보험에서 처리하고 나서 내가 그 금액을 보험사로 보내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면 보험 적용률이 올라가지 않거든요.
똘배할배도 아시다시피, 제가 자동차 보험 들어가는 게 그 차 하나겠어요?
중장비 임대업으로 먹고사는 놈이니 자동차 보험 들어가는 게 열 대도 넘죠. 한 대가 사고 나서 요율이 올라가면 열 대가 넘는 중장비, 내 이름으로 된 차는 전부가 덩달아 보험료가 뛴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죠.
적은 금액은 보험사에서 먼저 처리해주면 제가 나중에 현금으로 배상해서 요율을 올리지 않는 게 제 경우에는 덕이거든요.
골치 아프고 껄끄러운 일만 보험사에 시키는 거, 간단한 논리죠.
저는 보험을 단골로 넣는 곳이 있습니다. 한군데 넣어야 보험 관리를 해주거든요. 차가 많으니 제가 거래하는 보험 대리점은 제 카드 번호와 보험 만기 날짜를 다 알고 있어요. 보험 들어가는 차가 열 대면 거의 매달 보험을 연결해야 하는데, 한군데 거래하면 그게 수월하죠. 관리를 다 해주니까요.
거의 이십 년이 넘게 단골로 거래하는 대리점은 부부가 같이하는 대리점인데, 남자가 먼저 시작했죠. 자동차 보험만 전문으로 하는데 어지간히 벌었어요. 남자가 먼저 A 자동차 보험, 설계사를 하다 재미가 있으니, 아내 이름으로 B 보험 대리점을 따낸 거죠. 지금은 남자는 거의 일을 안 한답니다. 김천 저쪽 변두리에 심심풀이로 사과 농사를 짓고 여자가 누구의 보험이 들어오면 A냐, B냐 두 군데 보험 견적을 빼서, 비교 견적을 고객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그 비교 견적을 받아보는 고객은, 아, 정말 싼 데 넣어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 고정고객을 많이 거느리는 거죠. 아마도 그 영업점에 제가 제일 크고, 우량 고객일걸요. 제 이름으로 들어가는 게 열 건이 넘으니,
아마 그렇지 싶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러니, 제 보험을 다 기억하고 있겠죠. 그쪽으로 연락해서 보험 적부 시키라고 하고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보험회사에서 처리결과에 대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더라구요. 그걸 보고서야 아차, 내가 사고처리를 위탁했었지, 기억을 떠올렸죠.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보험회사에서 보상해준 금액이 삼백만 원이 넘는 겁니다. 이게 뭐야? 화들짝 놀랐죠. 아무리 생각해도 삼백이 들어갈 사고가 아니었거든요, 성냥개비 끝만큼 까졌는데, 삼백이 넘는다? 말이나 됩니까?
당장 메시지를 날린 보상 담당에게 전화했죠. 어떻게 된 거냐, 물었더니 피해자 요구대로 범퍼를 교체하고 수리하는 동안, 렌트카 사용료와 견인비에 그렇게 들었다고 조목조목 일러주더군요.
그 정도 금액이면 제가 뒤에 현금으로 처리할 수가 없을뿐더러, 요율이 올라 다음에 내야 하는 보험료가 엄청나게 오르거든요, 일단 돈보다 약이 오르더라구요. 그래서 전화기를 뒤지니, 피해자, 보험으로 처리해달라던 그 자식의 전화번호를 찾았죠. 통화기록에 그 번호가 있더라구요. 그 사고에서 보험처리비가 삼백이 넘게 나왔더라 어떻게 된 거냐? 물었더니, 아우디, 그 차가 외제 아우디였어요. 대구의 아우디 서비스센터에 연락했더니, 차를 견인해서 보내라, 그래서 견인해서 보냈고, 그곳에서 범퍼를 교체해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그러라고 했으며, 차를 수리하는 동안 렌트카를 이들 사용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보험회사에서 다 물어주는데, 딸랑 그 금액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 자기는 천오백도 보험으로 처리해 준 적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아, 이 자식의 말을 들으니 더 화가 나더라구요.
보험 그거 공짜 아닙니다.
손해라는 말을 앞세우지만, 보험회사 절대로 손해 안 봐요. 저 차가 사고가 났는데 아무 상관이 없는 똘배할배 차가 보험료가 오릅니다? 그거 모르셨죠? 보험회사가 그해 손익을 계산해서 다음 해 보험료를 책정합니다. 그 회사에 가입된 전체 차량을 대상으로 평균치를 계산하는 방식이죠. 그렇게 하면서 사고를 낸 차량은 요율을 더 올려버리는 겁니다. 손해보험이라 말을 그렇게 하지만 절대 손해 안 보죠. 똘배할배요. 보험회사가 손해를 보면 경향 각지 도시마다 가장 비싼 땅, 중심지에 사옥을 어떻게 다 가지고 있겠어요? 어느 도시를 가나 눈여겨보면 가장 비싸다 싶은 요지에 들어선 건물은 다 보험회사 소유 사옥입니다.
그러면서 불량물건은 보험을 안 받아 준답니다.
똘배할배는 모르시겠지만, 불량물건이라는 게 있어요. 보험회사에서 불량물건은 공동 가입으로 받아 주는 경우도 있어요, 차 한 대가 사고 시에 보험회사 두 개가 공동 보상한다는 조건으로 받아 주는 거죠. 그걸 두고 보험회사들은 불량물건이라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물건이 크레인, 건설 현장에 쓰는 크레인 아시죠? 크레인은 사고가 나면 대형입니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 회피하는 기종이고 그다음이 25톤 이상의 덤프트럭, 이것도 보험사가 손해가 나는 기종, 저도 25.5톤 덤프트럭이 한 대 있는데 보험료가 만만찮아요, 승용차 대여섯 대 값의 보험료를 내죠. 그러면서 해마다 보험회사를 교체해야 합니다. 보험 안 넣으면 안 되나?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건설기계는 종합보험이 의무가입입니다. 승용차야 책임보험만 넣고 사고 안 내면 그만인데, 건설기계는 달라요. 종합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검사도 되지 않을 뿐더러 중간에 날짜 계산을 잘못해서 보험 미가입 기간이 생기면 전산이 알려줘서 당장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오죠,
똘배할배야 첨 듣는 얘기겠지만,
25 톤 덤프트럭 중에서 사고를 몇 번 냈던 차는 보험료가 일 년에 천만 원이 넘는 차도 있어요. 계산하면 한 달에 백만 원도 넘는 보험료를 내고 장사가 되겠습니까? 당장 팔아야죠, 그렇게 팔면 그 보험료는 차를 따라갑니다. 그래서 그런 차를 사면 말소시키고 다시 등록해 번호판을 바꾸는 거죠. 결국 요율은 번호를 따라가는 셈인데, 그렇게 하면 신규 차량으로 잡혀 보험료가 최초의 100%에서 계산되는 겁니다. 어떤 놈은 차는 좋은데 보험료가 너무 올랐다, 그러면 말소하고 제 마누라 이름으로 이전해서 재등록하는 놈도 있답니다. 그런 병폐를 보험사에서 만들어내는 셈이죠.
아무튼, 그날 약이 지독히도 올랐어요.
그런데, 그 화를 엉뚱한 데다 풀어버린 겁니다.
그 보험금으로 인해 약이 잔뜩 올라 있는데 형곡동 사는 선배가 전화가 왔더라구요, 한잔하자고. 형곡동으로 오라는 것이었어요. 그 중앙시장에 보살감투 맛있게 하는 집에 전화를 넣어 삶아놓으라 했다는 겁니다.
저는 저녁에 술 마시러 나가면 절대 차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버스를 타고 나가죠. 자주 탈 버릇하니까, 이제는 아주 구미의 버스 노선을 꿰고 있죠. 어디를 가면 몇 번을 타야 한다, 어디서 환승을 하면 빈자리가 있을 것이다. 다 알죠. 차를 가지고 나가면 주차도 그렇고, 들어올 때 내 기름때면서 대리 운전비를 물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대리운전 그거 한번 부르면 그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문자 메시지, 그거 감당 안 되거든요. 시내버스 타고 나갔다가 시내버스 타고 들어오면 젤 심보가 편하죠. 시내버스가 마땅찮으면 그때 가서 택시를 타구요. 차를 가져나가면 선택의 폭이 좁다는 얘기죠. 버스, 그거 카드를 찍으면 환승을 해도 한 번 요금으로 끝나거든요,
좌우간 그래서 버스를 탔는데, 시내까지는 잘 나왔어요. 금오산 네거리에서 형곡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는데, 버스가 조금 복잡했어요. 아주 복잡한 건 아니고 서너 사람이 서 있을 정도였는데 버스 바로 내리는 문 앞에, 시내버스 앞에는 한 명씩 앉는 의자고 뒤로 가면 둘이 앉는 의자잖아요. 둘이 앉는 의자 첫 자리에 한 놈이 앉았는데, 의자에 커다란 짐을 얹어 둔 거 있죠. 그냥 쇼핑백이 아니고, 천막 재질로 만든 커다란 쇼핑백이었어요. 그게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더라구요. 그 옆에 새마을 모자를 쓴 오십대쯤으로 보이는 후줄근한 사내가 앉아 있었고요. 내가 바로 옆에 서 있는데, 이 작자가 보따리를 치울 생각을 하지 않고 창밖으로 눈길을 주고 있더라구요. 그 작자한테 물었죠.
이 보따리 선생님 것입니까?
그런데 왜요?
왜요.가 뭐야 인마! 보따리 치워! 너 차비 두 번 냈어? 사람이 서 있는데, 왜요가 뭐야, 인마!
대번에 욕을 하며 세게 나갔죠. 그러니, 이 작자가 보따리를 제 무릎 위에 얹더라구요. 기차나 비행기에서는 그래도 되죠. 제 돈으로 좌석 하나를 더 사서 그렇게 제 짐을 놓아두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러나 시내버스에서는 그러면 안 되죠. 그날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와요. 옆에 앉기는 했는데 먼저 욕을 했으니 까딱하다가는 맞아 죽기 십상이죠. 그래서 가면서 이 작자가 다른 생각을 못 하도록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욕을 한 거죠.
아이구 씨!
확, 때려버릴라
한 세 정류장을 갔나, 고개를 처박고 있던 이 작자가 보따리를 들고 내리더라구요. 보험에서 약이 올랐는데, 엉뚱하게 어리숙한 그 작자가 뒤집어쓴 거죠. 내려서 생각하니 얼마나 우습던지. 그런데 머릿속에 있던 말이 왜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튀어나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구요.
화풀이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어요.
그 선배와 보살감투를 안주로 술을 마시는 내내 보험회사의 악랄한 수익 방법과 보험 사기에 대해 들먹였죠. 그 선배는 보험사의 생리를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시더라구요.
그 선배와 자리를 파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기어이 일을 냈죠.
도저히 그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버스에서 욕을 호되게 얻어먹은 엉뚱한 그 작자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감정이 혼란스러웠죠.
갔던 방법과 역순으로 금오산 네거리에서 내려 갈아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 보험 대리점에 전화했죠. 그냥은 도저히 못 넘어가겠더라구요. 여자에게 한 게 아니라, 남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 거죠. 오랜만에 한 전화이지만, 단박에 누군지 알죠. 그 양반 밥줄인데 단박에 기억 못 하겠어요?
아이구, 사장님!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전화를 다 주시고,
단박에 이렇게 나오겠죠. 그때부터 속에 든 걸 다 토해냈죠.
그 양반이야 그 미미한 사고를 알 턱이 없었죠. 물론 그 대리점을 통해서 보상과에 연락을 했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마누라가 했으니 당연히 모르겠죠.
전화의 요지는,
당신들은 뭐하고 있느냐?
보상과 직원들 저렇게 태만한데, 본사에 투서라도 넣어라, 보상과 직원이 누구 편이냐? 내가 피해자일 때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고, 가해자일 경우에는 한 푼이라도 깎아서 내게 이득이 되어야 할 거 아니냐,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를 대신해서 싸우라고 보험 넣은 거 아니야? 사고 접수받고 피해자에게 전화해서 어느 정비공장으로 들어갈 거냐, 알아서 고쳐라, 공장에 전화해서 수리비가 얼마 나왔냐, 렌트카에 전화해서 며칠 썼느냐, 금액 파악해서 결재 올리는 게 보상 담당 업무인가요?
공장에 가서 이 정도면 보험이라도 규정상 범퍼를 교체해 줄 수 없다! 이런 미미한 사고는 렌트카를 이틀밖에는 쓸 수가 없다!
나를 대신해서 이렇게 싸워야 할 거 아니야?
할배요,
늦게 가니까 막 반말이 나오더라구요. 웃기죠. 그 양반? 그 양반, 내가 뭘 원하는지 알죠. 찍, 소리도 안 하고 가만히 들어주는 겁니다.
우리 얼마 동안 거래했냐? 장비 열 대가 넘으니, 일 년에 보험료, 이천만 원 잡고 삼십 년이면 육억이 아니냐? 내 계산이 잘못되었나? 육억 중에서 당신 수수료가 얼마였나? 나로 인해 얼마를 벌었냐?
말로 막 쑤셔버린 거죠.
얼마나 흥분했으면 그동안 봉곡동으로 가는 버스가 두 대나 지나갔는데 그걸 타지 못했다니까요.
거룩한 대물 담당 귀하, 이렇게 써서 투서라도 넣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왜 이렇게 울분을 토해야 해? 보상 담당, 야 이 새끼야! 누구 맘대로 그렇게 물어줘! 나를 대신해서 싸우란 말이야. 그렇게 후하게 물어주고 내게 돈을 달라는 얘기 아니야?
이야기의 본질은 바로 그거였어요.
보험회사 손해 안 봅니다. 공짜 없습니다. 고장 나면 보내주는 보험회사 견인차? 그걸 왜 공짜라고 생각해요? 그거 누가 내도 돈 다 냅니다. 이용할 당시에 돈을 안 낸다는 것뿐이지, 그걸 빙자해서 다른 구석에서 보험료를 얼마나 뜯어가는지 몰라요.
그렇게 퍼붓고 나니 속이 좀 풀리더라구요.
글쎄요? 금액으로 따지면 삼백 이상 치 퍼부었겠죠. 성질 다 배렸죠.
똘배할배요.
절대 양보하고 주눅 들어 살 게 아니에요.
세상은 욕을 하니 평정되더라구요. 거친 입에서 세상이 다스려지더라구요.
웃기잖아요, 이 새끼 확, 하니 세상이 평정됩디다. 웃기죠.
나이 칠십 밑자리 깔아놓고, 이제, 세상에 나를 맞추겠다, 그 생각을 버리고 세상아, 네가 이제는 내 눈높이에 맞추어라. 여태 너에게 맞춘다고 내 생각의 허리까지 잘랐잖아, 그래요. 정말 허리 잘렸다니까요. 신화를 창조한다, 불가능은 없다, 사력을 다 했었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잘랐던 말들입니다. 전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나 이젠, 네가 내 눈높이에 맞춰! 바꾸었죠. 이런 배짱으로 나가야죠.
내가 상대나 세상을 이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예?
많이 변했다구요?
그렇죠. 많이 변했죠.
똘배할배 만나 지가 얼추 삼십오 년이 넘었어요. 똘배할배가 지켜봤잖아요. 제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참말로 징합이다. 그동안 얼마나 부딪혔겠어요? 저 지금 모서리가 없습니다. 쓰다듬으면 두루뭉술하죠. 돌아보니 어디서, 어느 길에 부딪혀 떨어져 나갔는지 모서리가 조금씩 사라지고 두루뭉술해진 나를 볼 수가 있었어요. 밤에 자다가 쓰다듬어도 두루뭉술하다니까요.
웃을 일이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그랬는데, 보험, 대리점 사장에게 퍼붓고 싹 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희대의 사건은 또 있죠.
역사는 그렇게 창출되는 겁니다.
이건 생각하면, 어떤 마음인지, 도대체 어떤 심리로 내지른 말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날, 술기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말짱한 정신이고,
아, 예 알겠어요.
뜸 들이지 않고 바로 쏠게요.
무슨 얘기인가 하면, 그 보험 대리점 사장에게 퍼붓고 들어가 깔끔하게 잤지요. 나야 깔끔하게 잤지만, 그 양반은 절대 깔끔하게 못 잤을 겁니다. 얼마나 심한 소리를 했는가 하면, 이제 당신한테 보험 넣지 않겠다. 만기가 도래하는 것마다 다른 보험회사 조회해서 가장 낮은 보험료가 책정되는 곳으로 돌리겠다. 당신 보험회사, 그래, 유명메이커라는 거 안다. 그러나 필요 없다. 나는 내 입장에 서서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그럼 보험사가 필요한 거다.
그 양반 잠이 오겠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
아니지요. 할배요. 그 양반한테 연락이 온 게 아니고, 그 양반이야, 고객님 처분만 기다리겠습니다, 이러겠죠.
사건은 전혀 엉뚱한 데서 터졌다니까요.
그다음 날은 아마 금요일이었을 겁니다. 초등학교와 중학을 같이 다닌 친구 중에서 이 구미에 남아서 제 자리를 구축한 동기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고향이 바로 간 건너니, 다른 타지로 못 나가고 남았다고 할 수가 있겠죠. 그 동기들이 거의 서른 명이 가깝습니다. 그 동기들 모임이 있던 날이었어요.
모임은 아포에 있는 홍천뚝배기, 거기가 동기 중의 한 놈이 운영하는 식당이고 그 친구가 그 계의 회장을 계속 맡고 있기에 총무라는 친구가 회장을 맡아 고생하는 데 대한 보답으로 가끔 그 집에서 모임을 갖기도 하는데, 회원 중에서, 식당을 하는 한 친구는 형곡동에서 소고기 전문점을 하니 그 식당은 너무 비싸서 어쩌다 가끔 하는 형편이고, 그 식당에서 하면 친구 아내가 서비스로 준다고 하지만 모이는 돈보다, 그날 지출이 항상 웃돌죠.
그래서 그 식당에 모였는데, 아포! 교통 사정이 열악하지만, 차를 가져가지 않기로 맘 먹었어요. 그래야 다른 놈 눈치 안 보고 적당하게 편한 맘으로 마실 수가 있죠. 버스 그거 타보면 별거 아니에요. 십 분 기다린다 생각하면 엄청나게 편하죠. 한 잔 마시고 조마조마한 맘으로 운전할 필요가 없어요. 아포라면 당연히 대리운전이 없죠.
아무튼, 버스로 가서 마시고 놀면서 적당한 시간에 일어섰죠. 그 동기 중에서 몇몇은 늦게까지, 그래요. 환갑이 넘어도 배울 게 있다니깐요, 그 동기들한테 배운 건, 고스톱이라도 심심풀이는 없다는 거죠. 심심풀이라 했는데 늦게 가면 전부 눈에 돈독이 묻어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 모임에 가면 적당히 마시고 알아서 일어서는 겁니다. 어쩌다 상갓집에 가서도 절대 판에 안 끼이죠. 몇 푼 따면 부담스럽고, 잃으면 약 오르는데 그걸 왜 해요?
암튼, 적당히 마시고 눈치껏 일어섰지요.
별로 기다리지 않아 버스를 탔는데, 그 시간에 김천에서 내려오는 버스야 다 그렇겠지만, 손님은 고작 서너 명, 저는 봉곡동 입구에서 내려야 하니까, 거리야 좀 있지만, 겨우 서너 정류장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멀리 들어갈 것도 없고 내리는 문이 가까운 곳에 앉았죠. 그런데 버스 안의 분위기를 보고 좀 이상한 겁니다. 예, 그때 술에 취한 정도는 아니었어요. 기준이 좋을 정도였죠.
그런데 그 좋은 기분을 고약하게 하는 말들이 뒤에서 막 들려오고 있었죠.
이게 뭐야?
저는 이, 이 게 뭐야? 라는 말을 하면 꼭 미얀마 말이 생각납니다
애라 발래?
미얀마 사람들이 아주 난처한 경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닿으면 자신에게 묻는 말이죠.
돌아보니 어떤 영감탱이가, 아주머니에게 치근덕거리고 있는 겁니다. 아, 성적으로 치근덕거리는 게 아니라. 아주머니의 정서를 흔들고 있었죠.
버스 중간쯤, 좌석에 앉은 아줌마에게 다가가 옆에 서서 큼직한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우리 며느리인데, 국정원에 근무하고, 이게 우리 아들인데 국정원에 있고, 분위기를 보니 모르는 사람인데, 영감탱이가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말을 걸며 그 아주머니의 옆에 다가간 모양인데, 그 나이가 좀 있는 아주머니는 싫은 표정이었지만, 마땅히 그걸 보아야 하는 것처럼 마지못해 수긍하며, 아니에요. 그 영감탱이 그 아주머니를 상대로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버스에 있는 사람, 기사를 포함해서 모두 다 들으라고 국정원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를 큰소리로 떠벌리는 거였죠.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한 마디,
좀 앉아라 이 새끼야!
차갑고 또렷하게 버스 안에 울려 퍼진 모진 한 마디, 버스 안을 평정하기에 충분했죠. 누구였겠어요? 바로 저였죠. 좀 앉아서 조용히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말이 되어 바로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거죠.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쿡, 터집니다.
그렇게 한 마디가 날아갔으니, 버스 안은 금세 긴장감이 확 끼치며, 잠시 조용하다가, 그 영감탱이가 뭐여? 하면 다가오는 겁니다.
뭐? 나한테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들이 국정원에,
그러면서 아주머니에게 보여주고 있었던 큼직한 사진을 내 눈앞으로 펼치는데, 그걸 제가 왜 봐요?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손으로 사진을 탁, 치니 사진이 좌석 아래 발치에 떨어졌죠. 그 영감탱이한테 그 사진이 얼마나 중했는지 그걸 주우려고 몸을 구부리는데 제가 구둣발로 꽉 밟았죠. 사진을 발로 밟고 있으니, 그 영감탱이 쪼그려 앉아 다리를 붙들고 사진을 빼내려고 애쓰는 그 모습, 아직도 눈에 생생합니다.
억지로 사진을 빼내 손바닥으로 사진을 닦는 영감탱이한테 한마디 했죠.
아들과 며느리가 국정원씩이나 있는 놈이 지랄한다고 버스를 타? 자가용 타고 다녀 이 새끼야?
이미 엎질러진 물, 거기서 약하게 나가면 정말 맞아죽습니다.
뭐? 이 새끼? 너 몇 살이야? 이 새끼야?
그 나이에 누구에게 이 새끼라는 말을 들어봤겠어요? 분했겠죠.
몇 살? 안 가르쳐 줘 이 새끼야, 처먹을 만큼 처먹었어.
그렇게 난리를 부렸으니, 버스 기사를 비롯해 서너 명이 되는 승객들 다 알고 있었죠. 돌아가는 사정을.
아포에서 내려오는 쭉 곧은 길 밤이었으니 버스가 전속력으로 달려 금세, 봉곡동 입구죠. 잠시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내가 내리려고 벨을 누르고 일어섰죠. 그런데 이 영감탱이, 분이 안 풀렸는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삿대질을 하며, 우리 아들이 국정원에 있는데 조사하면 너 누군지 다 알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 조사해 이 새끼야!
냉소와 함께,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아주 또렸하게 뱉어냈죠. 그때 버스가 멈추어 섰어요. 봉곡동 입구, 주유소 앞에 선 겁니다. 신호는 받아야 하겠죠. 신호에 걸려서 섰는데 신호를 건너면 십 미터도 안 가서 바로 버스 정류소거든요. 버스 기사가 내리는 문을 열어버린 겁니다. 물론 내릴 사람은 저 혼자였지요.
버스 기사야 말을 안 했지만, 신호 받으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니 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여기에 그만 내려라, 이 말이었겠죠.
너 이 새끼 내려!
버스 문이 열렸겠다, 내가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려고 하니 뒤로 몸을 빼더라구요. 그런 영감탱이한테 한 마딜 했죠.
너? 여기 내려서 좀 맞고 갈래? 아니면 앉아서 주둥이 닫고 조용히 갈래?
그렇게 선택권을 주었더니 악을 쓰듯 뭐라고 하는데 듣지 않고 유유히 내려버렸죠.
그 영감탱이 나이요?
저보다 너덧 살은 많겠죠, 육십 대 후반으로 보였으니, 국정원 다니는 아들이 있다고 쳐요, 그걸 사진을 들고 다니며 버스 안에서 자랑할 일인가요?
저한테 호되게 당했죠. 그 영감탱이, 체면을 수습한다고 무슨 소릴 하며 갔을지 대충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돌배할배요.
이 과정에서, 제가 맘 편히 집에 갔겠어요? 아니죠.
주유소 앞을 지나,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해서, 다리를 건너고 집까지 가는 동안, 달빛에 엄청나게 찔렸거든요.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니 바로 달이 중천에 떠 있었어요. 그렇게 찔러대는 달빛,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저는 달빛에 가시가 있다는 걸 첨 알았죠.
돌배할배요,
우리가 구미 산문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글 쓴다고 설치고 다닌 지 삼십오 년이 넘었네요. 지금은 해체되어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문학의 불모지에 뿌리를 내린 선각자들이잖아요. 우리가 동인지를 세 권 냈나요? 참 까마득합니다. 그때 우리가 이날 이 순대국밥 집에서 마주 앉아 이 막걸리를 놓고 지난 이야기를 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어요? 정말 이렇게 만났으니 많이 들떴죠.
돌배할배 외손자가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고 하셨죠?
이젠 그 아이들 세대예요.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돌배할배, 내가 덤으로 얹힌 이 세상에 맞추려고 하지 마시고 세상이 내게 맞추라고 요구하세요.
나는 그런 배짱으로 살 겁니다.
세상아, 네가 내게 맞춰라.
아, 그래요. 막걸리, 쭉 들이킵시다. 똘배할배! 권주가라도 한 소절 해버려요. 그게 분위기를 살릴 거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