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낙엽은 가을의 유서이자 봄의 약정서 글, 사진 이 원규
하동군 화개면의 녹차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화상봉수의 녹차꽃들이 피어 있다. 지난해의 꽃에서 1년 만에 열매가 익어가는 동시에 올해의 새 꽃을 피우는 녹차나무. 그 열매와 꽃들의 이마 위에도 기꺼이 별들은 찾아오고, 올해의 마지막 구절초 꽃들과 소나무에게도 안개는 찾아온다.
가을빛 환한 오솔길.
청명청명 늦가을밤 홀로 산정에 올랐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임도로 오르는 길, 별비 맞으러 가는 길은 마치 이 세상에 없는 길 같았다. 한심한 작태의 세상으로 내려가기 싫었다. 밤이슬과 별비를 맞으며 몇 시간 동안 북극성 쪽을 바라보았다.
이른 새벽 집에 돌아와 사진 정리를 하며 정새난슬의 신곡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을 들었다. ‘음유시인’ 가수 정태춘-박은옥씨 부부의 외동딸인 그녀가 얼마 전에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면서 발표한 EP 앨범 5곡 중 대표곡인 셈이다. 클랩함 정션은 영국의 어느 기차역 이름이라고 한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 오던 정새난슬이 마침내 대를 이어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어머니 박은옥의 목소리와 아버지 정태춘의 천재적인 재능이 짙게 묻어난다.“몽환적이고 마술적”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아기가 되었다’, ‘김쏘쿨’, ‘엄지 검지로’, ‘쉿’도 자꾸 리플레이로 듣게 된다.
이혼 등의 큰 아픔을 겪은 뒤 한층 더 성숙해진 정새난슬, 그림뿐만이 아니라 노래와 글 등 전방위 아티스트인 그녀의 새로운 도전에 별비가 쏟아져 내릴 것이다.돌이켜보니 지난 가을 내내 문학 강연과 시노래 콘서트 등으로 전국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광양-부산-김해-울산-통영-하동-전주-서천-수원-서울-구례-진주-사천 등 1주일에 세 번 이상의 행사가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울산 주전리의 가을 새벽바다.
성찰의 시간은 가을이 주는 교훈이자 선물먼 길 돌아와 보니 어느새 섬진강변 마을의 은행나무 잎들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모처럼 환한 오솔길을 걸었다. 날마다 섬진강 너머 한 모퉁이를 환하게 밝히는 은행나무, 먼 곳에서 차안인 듯 바라만보다가 찾아갔다.
흐리고 바람 부는 날의 늦가을 오후, 그 나무 아래서 수많은 나를 만났다.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다중촬영 기법으로 나를 찍었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타이머를 누른 뒤 산책하는 나의 모습을 7장의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은행나무 아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뭇 다른 표정의 얼굴과 몸짓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됐다. 일곱 개의 얼굴 중에서 진실면은 어느 것일까. 이 모든 얼굴들이 모여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일까. 세상 바깥으로만 화살을 쏘다가 오래도록 내 안의 나를, 내 안의 과녁을 바라보는 저녁이었다.
예전에 쓴 ‘지리산 가을편지’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늦가을의 노란 은행나무 잎은 그대로 수천 년 동안 누군가에게 배달된, 그러나 아직 읽지 않은 엽서요, 나뭇가지는 집배원의 손이며, 몸통은 그대로 우체국입니다. 이 나무들의 우체국은 아직 활자화되지 않은 수많은 사연들을 나이테 사이사이에 숨겨두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읽어 내는 깊은 눈이 필요할 뿐입니다.’그렇다. 은행나무를 제대로 읽는 것도 어렵지만, 내가 나를 읽는 것 또한 참으로 난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성찰의 시간이야말로 가을이 주는 교훈과 선물이 아니겠는가.어느새 늦가을비가 내리고 낙엽들이 지면서 겨울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 이 가을에 지리산을 찾아온 손님들 중에서 잊지 못할 두 사람이 있다.
‘그리운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 선생과 기타리스트 김광석 선생이다.달 밝은 지리산 칠불사 아래 ‘시인의 정원’에서 전국의 예인들이 모여 한판 잔치를 벌였다. 이 집의 주인장인 오래된 친구 권행연의 주선으로 원로시인 이생진 선생과 가수 현승엽 형님 등 춤꾼과 소리꾼과 연주자와 시인 등 100여 명 이상이 먼 길을 달려왔다.출연진만 따져도 30여 명 넘었는데 모두 무료 출연이었다.
무려 1,000만 원도 넘을 개런티 대신 하룻밤 펜션 전체를 열어놓고 십시일반으로 술과 안주상을 차린 것이다.무대그림으로 빨간 우산이 그려져 있고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라는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공연과 잔치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낭송의 최고수인 이생진 선생과 현승엽 형님의 멋진 무대, 그리고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광석 선생의 연주를 일천한 실력의 동영상으로 담아봤다. ‘봄날은 간다’를 기타 연주로 듣는 가을밤, 대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가을밤의 이생진 선생은 올해 87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시낭송 프로의 자세를 보여 주었다. 어쩌면 우리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인지도 모른다. 시를 노래하는 가수 현승엽 형과의 무대는 언제나 호흡이 척척 잘 맞는다. 기타리스트 김광석 선생과 더불어 가을밤의 백미가 아닐 수 없었다.
언제 지리산에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이생진 선생, 매화가 필 때마다 섬진강으로 찾아오던 박완서 선생처럼 어느 날 문득 다시 못 보게 될지도 몰라 그의 모습도 동영상으로 담아봤다.무대에 서면 언제나 자꾸 움츠리게 되는 그야말로 소심한 소시인인 나와는 격이 달랐다.
제대로 자신의 시를 외지도 못 한 채 술 한 잔 마신 김에 대충 얼버무리고 내려오는 게 그 무슨 미덕이라도 되는 듯 살아 왔다. ‘나서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날들을 반성했다. 내 나이 칠십까지는 못 살더라도 이따금 무대에서 서툰 ‘끼’라도 발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나대고 나서는 것도 꼴불견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가을에 조금은 더 낭만적이고 싶었다.
대봉감 홍시가 속살을 환하게 드러내고 있다.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가을 최고 진객어느새 섬진강에 독수리들이 돌아왔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무렵에 가장 눈길을 끄는 나무는 감나무다. 은행나무도 좋고 붉나무며 단풍나무도 눈길을 끌지만, 주렁주렁 주황빛 알전구들을 환하게 켠 감나무야말로 가을 최고의 진객이 아닐 수 없다.
녹차밭 감나무 위로 별비가 쏟아진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밤마다 찾아갔다.
사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감나무를 찾아다녔다. 감나무에 내리는 별비를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감으로 유명한 청도와 산청과 상주를 둘러보고, 내 고향 문경과 단양을 지나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나무의 방향이나 밤 마을의 가로등 불빛 등을 고려해 보니 별비 내리는 장면의 감나무와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화개면 녹차 밭에 서 있는 감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 집에서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수형도 좋고 몸통이 반쯤 빌 정도로 고목 티가 나는 이 감나무가 녹차 밭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재래종인 고종시인 것 같은데, 어릴 때는 오종감이라 부른 것도 같다. 주인장이 너무 바빠서였을까, 대봉감처럼 큰돈이 되지 않아서였을까. 아직 감을 따지 않은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밤마다 녹차 밭의 이 감나무를 찾아갔다. 문제는 달빛이었다. 달빛이 별빛을 가리고 있으니 때를 기다려야 했다. 보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하나 마음을 놓고 있다가 새벽에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달이 지는 새벽 5시면 별빛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모터사이클 시동을 걸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기회는 단 한 번, 실패하면 곧바로 여명이 시작될 것이다.감도를 높여 시험 샷을 해본 뒤 복잡한 수학공식이라도 풀듯 감도와 셔터스피드를 계산해 찍었다. 예상은 비교적 적중했다. 조금 서두르는 바람에 화이트밸런스 K값이 정확하지 않은 데다 먼 하늘이 밝아오면서 별빛이 조금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단 한 번의 찬스가 헛되지 않았다.하지만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해 보니 많이 아쉬웠다.
감잎이 좀 더 떨어지고 별빛이 초로초롱 되살아나는 밤을 기다릴 일만 남았다. 날이 흐리거나 달빛이 너무 강해 번번이 실패하다가 마침내 열흘 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그 사이 감잎은 거의 다 떨어지고 주황빛 감들만 알알이 등불을 켜고 있었다.
별비 한 줄기에 붉은 감 하나, 별비 한 줄기에 홍시 하나, 감과 별의 내통 혹은 통정의 밤이었다. 별과 감들이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 사진을 자세히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누구라도 이 감나무처럼 700초 이상 움직이지 않고, 두 눈썹에 안개가 맺히도록 돌장승처럼 가만히 서있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온몸을 감싸며 내리는 별비를 찍어 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아침마다
우리 집 마당의 대봉감나무는 물까치와 개똥지빠귀들의 방문으로 소란스럽다. 홍시를 찾아오는 것이다. 이 붉은 홍시를 보면 까치밥에서 ‘조선의 마음’을 읽은 김남주 시인이 자꾸 생각났다. 만 49세에 요절한 시인, 언제나 선생보다 형님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던, 언제나 환한 웃음의 문단 맏형이었다. 해남의 생가 근처에도 홍시가 많이 열렸을 것이다.예로부터 조선시대의 임금님께 바치는 진상품 중에서 감으로는 하동군 악양면의 대봉감 홍시, 그리고 산청군의 곶감이 제일이라 했다.
사실 ‘조선의 마음’과 진상품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이 가을의 가장 아름다운 색감은 아무래도 홍시의 선홍빛일 것이다.올해는 우리 집 마당에도 대봉감이 꽤 많이 열렸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바라보기만 해도 대견스럽고 흐뭇했다. 지난해엔 해거리(격년결과)로 홍시 하나 먹을 수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물까치 등 새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은근히 서운했는데, 감나무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위) 산정의 나의 애마 모터사이클과 별미. (아래) 안개와 구절초.
나무가 해거리를 하는 이유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한다. 해거리 없이 해마다 진력을 쏟아 부으면 기력과 자생력이 쇠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2년에 한 번은 열매를 과감히 포기하고 재충전의 날들을 가진다는 것이다. 홍시를 먹으며, 감나무를 보며 깊이 되새겨볼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생도, 사람 관계도 모두 원근, 정중동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마당의 낙엽들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다시 예전에 쓴 ‘지리산 가을편지’를 떠올렸다.‘이른 아침 마당을 쓸다가 문득 낙엽 하나 주워 들고 바라봅니다. 핏기 없는 얼굴, 왠지 자꾸 손이 떨립니다. 누군가 밤새 눈물을 삼키며 써놓은 유서인 것만 같아서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해독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삶이 문득 두 손을 놓았을까요, 죽음이 덥석 두 손을 잡았을까요.
지리산행복학교 종강식. 늦가을밤 130여 명이 모여 한마당 잔치를 벌였다.
마당 가득 수많은 낙엽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편지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성스레 책갈피에 끼우며, 나는 또 밤을 새워 답장을 쓰겠지요.
하지만 날마다 신문을 펼치면 생활고에 지친 어머니가 어린 아이와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카드빚에 몰린 청춘들이 범죄를 꿈꾸거나 문신 새기듯 유서를 쓰고, 아무 대책도 없이 무서리가 내립니다.이 아침에 나는 소지를 올리듯 한 잎 한 잎 낙엽을 태웁니다.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괴로워하거나 노하지 마라’를 되뇌며, 자주 눈빛이 흔들리는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여여하시지요? 고개를 들어 잎 다 떨구고 단식의 겨울 수행을 준비하는 감나무를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낙엽은 가을의 유서가 아니라 봄의 약정서 같은 것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봄날 또한 서서히 돌아오고 있어이 늦가을의 손님으로 문단의 후배인 김주대 시인과 창원의 예비 신랑신부가 찾아왔다.
전국 도처의 가을행사 참가로 강행군의 날들을 보내다가 모처럼 쉬는 날, 이들과 함께 흐린 날의 구재봉에 올랐다. 저무는 섬진강 위로 창원에서 온 예비 신랑신부도 날아오르고, 김주대 시인도 남도 그림여행의 여독을 풀며 점프를 했다.
고알피엠 여사도 나도 섬진강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하산하자마자 허리띠 풀고 킬킬거리며 히히덕거리며 밤새 막걸리를 마셨다. 김주대 시인은 이른 아침에 다시 길을 나서고, 나 또한 이 기운을 품고 충청도와 경기도를 다녀왔다.그리고 지난 11월 14일과 15일, 1박2일 동안 지리산행복학교 전체 수업이 있었다.
구례문화원장인 우두성 선생이 운영하는 구례둘레길 게스트하우스에서 는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130명 정도 참가했다. 지난 1년 동안의 수업을 마무리하며 한마당 잔치를 벌였다. 다시 흔쾌히 찾아온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광석 선생의 연주가 저기압의 지리산 깊숙이 스며드는 밤이었다.그렇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게 돌아가더라도 낙엽은 ‘가을의 유서’인 동시에 ‘봄의 약정서’가 아니겠는가. 어느새 겨울 문턱을 넘어 봄날 또한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
겨울밤에 쓴 편지 이원규
눈 쌓여 길이 사라지면
너 향한 새로운 발자국 하나
뚜렷이 새기는 줄 너 그렇게 알거라
기나긴 광산촌의 겨울밤
뼈만 허옇게 남아 그리움이 되는
겨울 강변 갈꽃들의 몸짓으로도
문득 자지러지는 별들의 비명으로도
끝내 이르지 못할
기막힌 겨울 편지를 쓰노니
너는 아느냐
마지막 반을 버리기 위해
오늘도 일찍 솟아오른 저 반달의 사연을
네 편지를 읽는 겨울밤
여기 산간지방엔 둥둥 소북을 울리며
송이송이 함박눈이 내리고
푸른잠 푸른꿈을 꾸는 청보리들의 아우성과
탱자나무 가시에 걸린 비비새의 깃털 하나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겨울밤
백화산을 넘어온 낯선 바람이
밤늦도록 불빛 새나가는 내 유일한 출구
다락방 유리창을 기웃거리는데
너는 아느냐
마저 남은 반을 찾기 위해
새벽에도 지지 않는 저 반달의 뜻을
창문이 흔들리며 네 잠을 깨우든지
바람이 문득 네 젖가슴을 스치면
그것은 겨울하늘 겨울밤도 울릴 수 있는
내 한숨인 줄 알거라
이윽고 멀리 새벽닭이 울거든
광산촌 하내리의 겨울밤
내 뜰에도 새벽이 가까운 줄 알고
달빛에 눈빛 더욱 빛나는 밤이면
나도 네 생각에 잠 못 드는 줄
너 그렇게 알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