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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거기 있어 산으로 간다
처음엔 기를 쓰고 올라갔다.
뭘 그렇게 꾸물거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를 쓰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쏜살같이 내려왔다.
처음엔 혼자서 산엘 갔다.
같이 나서주는 사람이 없어 맨몸으로 갔다.
바닥에서 산꼭대기까지 가도록 누구 하나 말동무가 돼주지 않았고
산마저도 대꾸조차 귀찮아했다. 붙잡지도 않았다.
처음엔 그게 무슨 운동이 되겠냐싶어
남들보다 먼저 하산하는 걸 자랑하고 다녔다.
그런대도 언제나 시무룩했다.
첫해를 그렇게 보냈다.
설악산 오색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려고 줄을 섰다.
산행과 다르게 누구 할 것 없이 줄을 선다는 걸 알았다.
차를 몰 때만 신호가 있고 순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산행에서도 순서가 있었고 줄이 있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말을 붙여봤다. 순순히 대꾸를 한다.
몇 년을 사귄 사이처럼 대해준다. 신기했다.
산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과 말동무가 되고나니
차츰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곤줄박이의 울음소리를 알았다.
풀벌레소리는 새벽에 더욱 청량하다는 것도 알았다.
계곡물소리에도 귀가 열리기 시작한다.
구릉과 계곡과 능선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다르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도 구분하지 못하고 산엘 쏘다녔다. 숙맥이었다.
기를 쓰고 올라가서 휭하니 내려오는 산행은 전문 산악인에게 부탁하자.
노랑나비 나풀대는 산길에서 오목눈이와 마주치면 말을 걸어보자.
노랗게 피어나는 산국의 냄새에 취해보고 아름드리 소나무에 기대며
친한 척도 해보자. 산에 사는 온갖 생명들을 불러 모아보자.
그들과 대화해보자.
산이 거기 있어 산으로 간다.
치악산 날머리에서 한 필 수
바다와 동백이 있는 팔영산
팔영산 ^^ 전남 고흥
임도입구 – 강산폭포 – 선녀봉 – 유영봉 – 두류봉
칠성봉 –적취봉 – 깃대봉 – 탑재 – 편백나무숲 -
능가사
팔영산은 바다가 있고 동백이 있고 편백나무 숲이 있고 거기다 여덟 개의 암벽을 타는 산이다. 아기자기하면서 선이 굵은 산으로 산행 내내 흥미를 유발한다. 계절을 가려가며 산행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팔영산은 봄과 가을산행이면 더 좋다.
선녀봉 능선으로 오르는 코스는 기암괴석이 즐비한 바위능선으로 보이는 건 낭떠러지고 막아서는 건 벼랑의 거친 구간이다. 그만큼 위험구간이 도사리고 있어서 오르는 산행은 허락되지만 하산은 철저히 막고 있다.
강산폭포를 지나 선녀봉으로 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만 다리가 후들거린다.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또 밧줄이 늘어져 있다. 한눈을 팔았다가는 경을 치고도 남는다. 선녀봉에서 왼쪽 암릉을 보면 암벽마다 허리를 굽히고 오르는 산꾼(?) 들인데 유영봉 정상에 오르면 능가사에서 올라오는 산객들과도 자연히 합세하게 된다.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는 서해바다를 향해 나란히 뻗어 있다. 1봉에 서면 2봉이 보이고 2봉에 서면 좌우로 1봉과 3봉이 보인다. 다시 아래를 보면 발아래 구름이 흘러간다.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암봉이 한 폭의 산수화다. 산신령은 안개와 구름을 몰고 나타난다더니 봉우리는 목만 겨우 내놓고 해무에 휩싸인다. 6봉인 두류봉이다. 정면으로 나로도가 있고, 남동쪽으로 해남의 두륜산, 남쪽으로 거금도와 조발도, 낭도가 서성이며, 서쪽으로 순천방향의 조계산이 있다. 가물가물 보이다 사라지고 다시 보이는 산이 지리산 천왕봉이라는데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팔영산은 봉우리가 여덟 개가 있어서 붙여졌는데 초입의 선녀봉과 마지막 깃대봉은 팔봉에 들지 않으니 엄밀히 따지면 팔영산은 열 개의 봉우리인 셈이다.
깃대봉 평탄 길을 걷는데 동백나무 숲이 끝나는 능선으로 잿빛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동백은 소사나무를 좋아하고 소사나무도 동백을 싫어하지 않는가보다 섬에 올 때마다 같은 생각이다. 편백나무 숲을 오래도록 걸을 수 있는 등산로는 너무도 상큼하다. 바닷바람이 편백나무 숲속을 헤집고 짙은 향기를 코끝까지 전해준다. 피톤치드가 발산된다고 하나같이 코끝을 벌름거리며 심호흡을 한다.
사계절 부드러운 잎사귀가 구릉을 뒤덮고 편백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평편한 논밭이 있고 대나무 숲 사이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팔영산 아래 능가사다.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힐 정도로 큰 절집이었으나 대부분 소실되어 절터의 흔적만 남아있고 지금은 대웅전(보물 제1307호)과 응진전 등의 건물만이 팔영산 자락을 지키고 있다. 마당이 시원해서 너무 좋은 능가사다. 목조사천왕문을 지나면 응진전을 바라보며 동백이 가득하다. 동백나무에도 동백꽃이고 절 마당에도 동백꽃이 질 줄을 모른다. 능가사 스님은 얼씬도 하지 않는데 그래도 동백은 붉고 곱다.
능가사 입구의 너른 마당으로 남도의 구수한 입담이 정겹다. 동네 아낙들이 좌판대를 놓고 봄을 팔고 있었다. 입 벌린 봄동에 봄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냉이가 바구니에 담겨있고 달래도 향이 짙다. 팔영산 자락에서 땄다는 두릅이 싱싱하다. 메 뿌리 같이 생긴 씀바귀도 아침나절에 캔 나물이란다.
"거시기하면 거시기 혀서 남는 게 없당게로"
매끌매끌 이어지다 끝에서 슬쩍 올리는 남도 특유의 말투가 걸쭉하다. 천 원에도 팔고 이천 원어치면 흥정 없이도 덤을 듬뿍 얹어준다. 능가사 지붕 너머로 여덟 개의 팔영산 암릉이 또렷하다.
녹동항에서 꽃낙지연포탕을 먹는다. 봄볕이 스며드는 3월이 제철로 금산 앞바다인 나로도, 초도, 거문도에서 잡히는 낙지가 가장 맛이 좋다.
몸에 두른 꽃무늬의 꼬들꼬들한 낙자를 안주로 고흥의 막걸리인 유자향주 한 잔 걸치면 남도의 저녁이 달곰삼삼하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팔영산은 제 1봉인 유영봉부터 마지막 깃대봉에 이르기까지 변
변한 그늘이 없다. 충분한 물과 간식을 준비하면 지치지 않는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한 계절에 오르는 울산바위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지는 뻔한 코스였다. 경주 아니면 설악산이었고
제주도는 그야말로 큰맘 먹고 갈 수 있는 여행지였다. 따지고 보면 신
혼여행지로 동남아로 떠난다는 게 그닥 오래 전의 얘기도 아니다. 경
주에서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는 것이고 설악산 신흥사와 계조암에
서 흔들바위를 흔들어보는 것이었고 느릿느릿한 배를 타고 제주에 도
착해서 용두암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일이 당시로서는 호사였
다.
대청봉을 수없이 오르고 공룡능선을 타면서도 산행코스가 너무 짧
다는 이유로 홀대를 해오던 울산바위를 찾았다. 신흥사 돌담을 끼고
한적한 전나무 숲을 들어서면 햇살은 마냥 간지럽다. 산까치 부부가
새집을 짓는 것을 보면 눈 쌓인 설악에도 봄은 오는가보다. 앞에도 연
인이요, 뒤에서 쫓아오는 이도 부부이니 계조암으로 오르는 산길이
이만하면 그만이다.
목탁과 어우러지는 불경소리가 산 아래로 내려선다. 계조암이 가깝
다는 신호다. 난 산행을 하면서 산사에서 불경소리를 들을 때마다 호
기심이 많은 편이다. 젊은 스님일까 나이가 넘치는 노스님일까를 시
작으로 출가한 이력까지도 궁금하니 전생에 불가와 어떤 연이라도
닿았나 싶을 때도 있다. 불필요한 호기심으로 발을 헛딛은 적도 있었
으니 말이다. 오늘은 젊은 스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생겨
서 준수한(?) 스님일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쓰잘데없지만.
흔들바위가 보이고 너럭바위 너머로 비전의 암굴인 계조암의 입구
가 보인다.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면 얼마나 북적일 계조암이련만
지금은 한유해서 좋다. 흔들바위 몇 번 흔들어본다. 혼자의 힘으로
는 끔쩍도 않겠지만 흔들린다는 생각을 하니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이렇게 사는 건데 싶다. 어차피 되돌아 올 길이니 무거운 배
낭을 잠시 보관하겠다니까 젊은 스님이 그라마 하면서 사탕을 한오
큼 집어준다. 석굴 입구에서 약수를 마시고는 막아선 바위를 돌아
울산바위로 향했다.
금강송이 하늘로 치솟은 언덕을 오르면 아슬아슬한 쳘계단을 지
난다. 학창시절에는 이 철계단도 없었기에 계조암에서 그저 올려다
볼 뿐이었는데 이렇게 정상까지 올라왔다.
왼쪽으로는 금강산의 초입인 신성봉이요, 화암사가 고성의 끝자
락에 있다. 터널을 빠져나온 미시령의 내리막길이 대명콘도를 앞을
쏜살같이 지난다. 그리고는 속초의 아바이 마을 너머로 동해의 바
다가 밀려온다. 대포항 끄트머리 망망대해 동해의 파도소리를 듣는
다. 다닥다닥 섬들이 기웃거리는 남해나 서해의 풍광에 감격해 고
개를 끄덕일 때가 있었지만 동해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제외하곤
변변한 섬은 없다. 그러나 울산바위에서 내려다보는 동해의 여백
도 참 좋다.
뒤를 돌아보면 눈 쌓인 대청봉이 웅장하고 끝청과 중청봉 아래 황
철봉이다. 설악의 영봉가운데 제일의 봉이 울산봉이라 했으니 언
제까지일 진 모르지만 다리 절뚝이지 않고 산행할 수 있기를 소원
해 보자.
2017. 2. 15 글쓴이 한 필 수
소양강변의 봄 트레킹
누군가가 고교시절의 인연이 가장 오래 기억되고 반가운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런가보다. 갑자기 치악산을 가자는 기별이 와도 따
라나서고 멀리 해남의 달마산도 주저없이 내려간다.
지난 6일부터 16일까지 열하루 동안 남해에서 서해로 섬산행을 다
녀왔다. 여수의 외딴 섬이라는 백야도를 건너고 하의도 꽃섬에서는
나이 지긋한 이장과 밤을 새우며 농주를 마셨다. 군산의 선유도 작
은 포구에서 잠을 자고 대각산엘 올랐다. 서천의 갯마을 양지녘에
서 종일토록 냉이를 캤다. 풋풋한 봄내음을 맡으며 다듬는데 또 하
루를 보냈다.
난생처음 바닷가에서 조개와 게를 잡았다. 물때를 맞춰 뻘에 나가
면 조개와 홍합이 지천인데 죽간맛이라는 귀한 조개는 단 두 개만
을 수확했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아낙을 만나 3 만원어치를 샀다.
여행에서까지 돈을 아끼면 재미는 반감된다. 서천장에서 야채를
사고는 죽깐맛 샤브샤브를 먹었다. 엄청 춥던 눈 오는 날에 서천의
희리산 정상을 올랐다. 마지막 날에는 속초의 대포항에서 생선회
를 먹고 설악산 울산바위를 올라 겨울 산행을 만끽하고 집으로
왔다.
기석으로부터 전화다. 주말에 소양강 트레킹을 하잔다. 일요일에
계방산 산행이 잡혀있으니 거절도 할 수 있겠으나 이미 좋다고 대
답한다.
서울 친구인 재진과 병철, 관섭은 전철을 이용하고 원주 친구인
기석과 관영 그리고 나는 직행버스로 춘천까지 내달렸다.
공지천에서 송암스포츠타운까지 의암호 강둑을 걸었다. 점심때
가 되자 춘천에서 일기와 승균이 차를 몰고 나왔다. 팔도를 섭렵
한 식도락가는 역시 재진이다. 그와는 언제 어디에서 밥을 먹든
맛에 관해서는 절대 실수가 없다. 소양강댐 인근에서 닭갈비를
시켰는데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그 안에 닭고기와 양배추 그리
고 고구마를 넣고 익히는 닭갈비가 아니라 숯불로 지글지글 구
워먹는 닭갈비다. 처음 맛본다.
소양강댐에서 공지천 스카이워크 소양강처녀상까지 트레킹을
했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내려온다. 친구야, 대접을 받아서 입
바른 소리가 아니라 고교친구가 제일이라더라.
2017. 2. 18 글쓴이 한 필 수
금오도 100리 비렁길
봄엔 남녘이 궁금하다. 봄엔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싶다.
봄볕 먼저 드는 금오도 비렁길을 걸어보자.
신분증을 확인하고 배에 몸을 실었다.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승선 절차가 까다롭다.
태화도가 앞을 막았을 뿐이지 금오도는 30분 거리다.
산중턱에 집 하나와 갯바위를 앞마당으로 둔 빨간 지붕의 또 하나의 집이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여천항에 접안하자 한걸음으로 내렸다.
함구미에서 시작되는 용머리 해안은 시야가 트인 수달피비렁이다.
언덕마다 방풍밭이다. 아름드리 해송이 작은 포구를 지키는 직포삼거리부터는 매봉전망대로
향하는 3코스 비렁길이다.
비렁길에는 여기저기 쓸데없이 데크를 깔지 않아서 너무 좋다. 황토흙 여유있는 오솔길이고 바다를 보고 가는 바위능선길이다.
동백꽃 파다하게 핀 언덕이 끝나면 소사나무 계곡이고 돌담을 지나면 매봉전망대가 절경인데
동박새 울음소리 청아한 한낮이다.
금오도의 해안 트래킹 전구간 가운데 굳이 콕 집어 좋다고 할 수 있는 구간은 3코스의 매봉전망대와 사다리통전망대다.
절벽 아래에는 감성돔을 낚으려는 강태공의 모습이 한갓지다.
해마다 겨울이 깊어지면 난 남녘의 섬을 그리워한다.
동백이 피는 계절만 되면 몸살을 앓는 이유를 봄이 이슥해서 알았다.
동백은 어떤 꽃인가? 겨울에 피는 꽃이지만 봄을 언질하는 꽃이다.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꽃대를 올리는 너도바람꽃도
동백이 피고 난 후에 꽃을 피우고, 눈속의 복수초도 동백에 눈치를 보며 피고, 민망한 꽃대의
처녀치마도 동백이 핀 보름 지나서 피는 꽃이다.
한겨울 모진 설움을 안고 피는 꽃이지만 설렘이 가득한 꽃이 동백이다.
온 세상이 냉랭한 절기에 선혈처럼 뜨거운 심장이 있으니 동백이다.
동백은 왜 이토록 붉은 색으로 꽃을 피울까?
동백은 화려한 색채를 지녔으나 향기가 없는 꽃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곤충에 의한 충매화(蟲媒花)로 또는 바람에 의한 풍매화(風媒花)로 수정이 이루어 자는데 반해
동백은 동박새가 동백꽃을 드나들면서 꽃가루받이를 하는 이른바 조매화(鳥媒花) 꽃이다.
화려한 원색을 좋아하는 동박새로 하여금 자신을 빨리 알아 채고 찾아달라는 고육책이리라.
생존 본능의 몸부림이 처절한 꽃이 동백이다.
나무 끝에서 한 번 피고, 땅바닥에 떨어지며 또 한 번 피는 꽃.
핏빛 강렬한 꽃으로 피어선 아쉬움으로 몸살을 앓는 꽃이지만 미련일랑 접어두는 꽃, 꽃봉오리째 뚝 떨어진다.
그러기에 동백은 낙화(落化)가 아닌 절화(切化)의 꽃이다.
금오도 벼랑으로 동백이 절반쯤 피거든
온 세상이 잠을 청할 때 부산을 떠는 꽃이 있다. 동백이다.
한겨울 모진 설움을 안고 피는 꽃이지만 설렘이 가득한 꽃이 동백이다.
온 세상이 냉랭한 절기에 선혈처럼 뜨거운 심장이 있으니 동백이다.
동백은 왜 이토록 붉은 색으로 꽃을 피울까?
동백은 화려한 색채를 지녔으나 향기가 없는 꽃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곤충에 의한 충매화(蟲媒花)로 또는 바람에 의한 풍매화(風媒花)로 수정이 이루어 자는데 반해
동백은 동박새가 동백꽃을 드나들면서 꽃가루받이를 하는 이른바 조매화(鳥媒花) 꽃이다.
화려한 원색을 좋아하는 동박새로 하여금 자신을 빨리 알아 채고 찾아달라는 고육책이리라.
생존 본능의 몸부림이 처절한 꽃이 동백이다.
나무 끝에서 한 번 피고, 땅바닥에 떨어지며 또 한 번 피는 꽃.
핏빛 강렬한 꽃으로 피어선 아쉬움으로 몸살을 앓는 꽃이지만 미련일랑 접어두는 꽃, 꽃봉오리째 뚝 떨어진다.
그러기에 동백은 낙화(落化)가 아닌 절화(切化)의 꽃이다.
비렁길을 국어사전에서 찾을라치면 아예 검색되지 않는다.
제주 올레길이 제주에서만 제주 방언인 것처럼 비렁길 역시 벼랑을 일컫는 여수
지방의 사투리다.
간지럽다 로망 안달 애절한 마음 방풍나물
오늘날 금오도 비렁길이 섬으로서의 빼어난 선경으로 대접을 받기까지는
금오도 섬사람들의 성화가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여느 섬들은 다리를 놔달라고 성화였으나 이곳 금오도는 개발이 늦어져도 좋으니
제발 이대로 두라는 성화로 지금과 같은 비경을 간직할 수 있었으리라.
금오도 사람들의 판단이 옳았다.
2006년의 일이다.
봄을 부르는 꽃이라면 당연히 동백일 것이다.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꽃대를 올리는 너도바람꽃도
동백이 피고 난 후에 꽃을 피우고 눈속의 복수초도 동백에 눈치를 보며 피는 꽃이다.
해송숲 사이로 햇발이 간지럽거든 앞섶 단추 하나 풀어보자.
금오도 비렁길에서 단추를 푼다
봄엔 남녘이 궁금하다. 봄날엔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싶다. 해마다 겨
울이 깊어지면 남녘의 섬을 그리워한다. 동백이 피는 계절만 되면 너 때
문에 몸살을 앓고 밤낮으로 안달을 한다. 봄볕 먼저 드는 금오도 비렁
길을 걸어보자. 신분증을 확인하고 배에 몸을 실었다. 세월호 사고의 여
파로 승선 절차가 까다롭다. 화태도에 물살 한 번 일면 금오도까지는 25
분 거리다. 산중턱에 집 하나와 갯바위를 앞마당으로 둔 또 하나의 집이
보이는 섬을 지난다.외롭지 않으리라. 온종일 턱 괴고 금오도를 오가는
여객선을 볼 것이니.
여천항에 접안하자 한걸음으로 내렸다. 함구미에서 시작되는 용머리
해안은 시야가 트인 수달피비렁이다. 언덕마다 방풍 밭이다. 아름드리
해송이 작은 포구를 지키는 직포삼거리부터는 매봉전망대로 향하는
3코스 비렁길이다. 황토 흙 여유있는 오솔길이고, 발아래 바다가 보이
는 바위능선길인데 쓸데없이 데크를 깔지 않아서 너무 좋다. 동백꽃 파
다하게 핀 언덕이 끝나면 소사나무 계곡이고, 돌담을 지나면 동박새 울
음소리 청아한 아침나절이다. 금오도의 해안 트래킹 전 구간이 다 절경
이지만 굳이 콕 집어 좋다고 할 수 있는 구간을 들라면 3코스의 매봉전
망대와 4코스 사다리통전망대가 선경의 정점이라 하겠다. 왼쪽으로 연
도의 필봉산이 조망되고 고흥의 외나로도가 선명하다. 기암절벽의 갯바
위에는 여지없이 강태공이 한갓지게 앉아 있다. 감성돔 역시 절경을 찾
아 다니는 것을 잘 아는 강태공들이다.
오늘날 금오도 비렁길이 섬으로서의 빼어난 선경으로 대접을 받기까
지는 금오도 섬사람들의 성화가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탐방객은 기억
하자. 여느 섬들은 다리를 놔달라고 성화였으나 개발이 늦어져도 좋으
니 제발 이대로 두라는 금오도 사람들의 성화로 지금과 같은 비경을 간
직할 수 있었다. 금오도 사람들의 판단이 옳았다. 2006년도의 일이다.
비렁길을 국어사전에서 찾을라치면 아예 검색되지 않는다. 제주 올
레길이 제주도의 골목길을 이르는 방언인 것처럼 비렁길 역시 벼랑을
일컫는 여수 지방의 사투리다. 지심도만큼은 덜할지 몰라도, 오동도
동백섬만큼은 덜할지 몰라도 금오도도 천지가 동백 숲이다.
동백은 어떤 꽃인가? 겨울에 피는 꽃이지만 봄을 언질하는 꽃이다.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꽃대를 올리는 너도바람꽃도 동백이 피고 난
후에야 꽃을 피우고, 눈 속의 복수초도 동백에 눈치를 보며 샛노란 색
깔로 봄을 알리는데, 처녀치마도 동백이 핀 열사나흘 지나 꽃이 핀다.
한겨울 모진 설움을 안고 피는 꽃이지만 설렘으로 가득한 꽃이다. 온
세상이 냉랭한 절기에 선혈처럼 뜨거운 심장으로 피는 꽃이 동백이다.
동백은 왜 이토록 붉은 색으로 꽃을 피울까? 동백은 화려한 색채를
지녔으나 향기가 없는 꽃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곤충에 의해서, 혹은
바람의 영향으로 수정을 하는데 반해 동백은 동박새가 동백꽃을 뻔질
나게 드나들어야만 꽃가루받이를 하는 이른바 조매화(鳥媒花)의 꽃이
다. 만일 동백이 흰 꽃이거나 노란색의 꽃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향기
도 없는 동백꽃을 동박새라고 거들떠보기나 했었을까 말이다. 이보
다 더 생존본능의 몸부림이 간절한 꽃이 또 있으랴? 동백은 절정의
순간에도 미련을 두지 않는 꽃이다. 나무 끝에서 한 번 피고, 땅바닥
에 떨어지며 또 한 번 피는 꽃. 핏빛 강렬한 꽃으로 피어선 아쉬움으
로 몸살을 앓다가 꽃봉오리째 땅으로 발등으로 뚝 떨어지는 꽃이다.
그러기에 동백은 낙화(落化)가 아닌 절화(切化)의 꽃이다.
비렁길을 국어사전에서 찾을라치면 아예 검색되지 않는다. 제주 올
레길이 제주 방언인 것처럼 비렁길 역시 벼랑을 일컫는 여수지방에서
쓰는 사투리다.
해솔 우거진 벼랑에서 넋이 나가고, 대숲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 동백
꽃 붉은 담을 돌아 나올 적에 또 한 번 넋을 잃었다. 작은 포구에서 입
가심도 못하고 반은 걷고 반은 뛰면서 가까스로 여천여객선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무한정 기다려주는 막배가 아니란 걸 잘 알기 때
문이다.
얼마전 화재를 입은 여수수산시장이 검은 생채기가 아물지 않은 상
태로 을씨년스러웠다. 길 하나 건너에 마련된 임시어판장에서 깎지않
고 생선회를 떴다. 해송숲 사이로 햇발이 간지럽거든 앞섶 단추 하나
풀어보자. 금오도 비렁길로 동백꽃 조랑조랑 매달리면 단추 하나 더
풀어보자.
2017. 3. 4 글쓴이 한 필 수
공룡능선 11시간
설악동 소공원 - 비선대 - 진대봉 - 금강문 - 마등령
나한봉 - 1,275봉 - 신선봉 - 무너미고개 - 희운각 대피소
양폭 - 천불동계곡 - 귀면암 -비선대
공룡능선으로 향하는 발소리가 설악의 새벽을 깨운다. 비선대를 등지고 금강
굴 방향으로 암릉을 오르는데 금강송의 솔향이 그윽하다. 까마득한 절벽을 타
고 능선에 오르면 하얀 운해가 천불동계곡을 덮는다. 이제 산행의 시작인데 숨
이 거칠어지고 땀이 흥건하다. 벌써 체력이 고갈된 것은 아닐텐데 공룡능선을
타야한다는 긴장감 때문이리라. 설악 공룡은 일단 시작하면 종주 하지 않고는
달리 탈출로가 마땅치 않다. 한 번 구릉을 깊게 타다 다시 올라서는 금강문에
서 대청봉을 바라본다.
화강암 너덜지대를 지나면 키 작은 측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등령 삼거리다. 이른 아침 백담사를 출발해 오세암을
거친 산객들이 군데군데 둘러앉아 행동식을 나누고 있었다. 딱히 안면이 없
다한들 산에서 만나는 이는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조건없이 반갑다. 나한봉쯤
왔으니 공룡의 꼬리를 밟고 있을 뿐이다. 하늘로 치솟은 봉우리가 도열하고
그 아래로 산안개가 흐른다.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백두대간
의 등뼈인 셈이다. 어디 시선을 한군데 둘 수 없을 지경이다.
용아장성을 휘감던 구름이 범봉 아래로 흐르고 1,275봉에서 신선봉으로 운
해가 일렁인다. 황홀하다. 1,275봉에 이르러서는 내설악 외설악 할 것 없이
무수한 암봉의 기기묘묘한 자태에 눈을 홀리게 만든다. 보이는 암봉마다 공
룡의 몸통이고 공룡의 등뼈다. 무너미고개에서 뒤를 돌아보 면 신선봉, 범봉
용아장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리를 바꾸고 있다. 1,275봉에 시선
을 두면 나한봉이 구름에 가려고, 다시 신선봉이 나타나고, 또 한눈을 팔면
1,275봉은 구름에 다시 가려지니 한 폭의 담채를 그리고 있었다.
수없이 공룡능선을 타고도 설악의 비경에 감흥하지 못했다는 사람을 본다.
산을 오를 때는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요동을 치며 구름을 부르고 비가 쏟
아지는 악천후를 만나는 게 고지대의 특성이 아니던가? 등산로만 보고 엉금
엉금 기어 내려오는 날이 부지기수였음을 기억한다. 열 번을 오르고도 한라
산의 백록담을 못봤다는 이도 있으니. 그래서 설악공룡은 선택받은 자만이
설악의 비경을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이 그날인가 싶다.
공룡능선의 선경을 함축한 말이다. "공룡능선을 오르지 않고는 더 이상 설
악을 말하지 말라" 고 말이다.
한참동안 1,275봉 8부 능선을 감싸고 군무를 펼친다.무명옷을 차려입은 열
두 선녀가 날아오를 것 같다.6개 암봉에서 안개가 모두 걷히는 데는 족히 10
여분이나 기다려야 했다.누가 아는가, 무한정 기다리면 하얀 날개옷 걸친 신
선봉 선녀와 눈인사할지도. 천당폭포를 내려서는데 밀잠자리 떼가 양폭을
거쳐 천불동 계곡 아래까지 배웅을 한다.소공원 풀숲에서 때까치 한 마리 날
개짓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설악동 - 비선대 - 금강굴 - 세존봉 - 금강문 - 마등령삼거리 - 나한
봉 - 1275봉 - 무너미고개 - 천당폭포 - 양폭 - 천불동계곡 - 비선대
- 설악동 19. 1킬로미터)
비내리는 내장산
전북 정읍
탐방안내소 -일주문 - 백련암 -서래봉 - 불출봉 - 망해봉 -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 -내장사 - 동구리
논둑에도 밭둑에도 감나무 한 구루씩 서 있다.
가을 빛 말랑말랑하게 홍시가 되지만 누구도 그냥 쳐다볼 뿐 따려들지 않는다.
너댓새 폭설이 내리는 절기가 되면 이 과실은 산까치와 청솔모와 다람쥐가 주인이 될 것이 분명하고
가끔은 멧돼지도 바닥에 떨어진 홍시를 먹는다.
내장사 일주문을 들어선다. 가을 빛으로 익어가는 단풍을 만나는데 절집
돌계단까지 108그루의 단풍나무란다.
덩치 큰 모과나무가 나오면 백련암 오르는 길이고 서래봉 능선으로 가는 길이다.
더 깊숙히 계곡을 지나면 작은 산을 만든 비자나무 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내장산 천지가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데 비자나무는 청일점 푸른 빛으로 존재감을 들어낸다.
바닷가인 제주도 구좌읍 평대리에만 있는줄 일았던 비자나무가 이곳에서도 정붙여 살고 있었다.
너덜겅을 지날 때는 더딘 걸음으로 사쁜히 가라고 했다. 이 돌길을 소리 나지 않게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귀한 자식도 얻는다는 전설 때문이다.
백련암에서 서래봉을 올려다 본다. 대웅전 뒤란으로 대숲이 있고 능선을 타고 단풍이 갑절로 타는데
서래봉의 잿빛 암봉이 하늘에 걸려있다. 황홀하다. 산행 초입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가파른 계단에서 땀 깨나 흘려야 서래봉 암봉에 설 수 있다. 서래봉 정상이다.
내장사의 아늑한 경내가 가장 멋지게 조망되는 봉우리로 뒤를 돌아보면 정읍 시가지가 보인다.
망해봉을 지나 연지봉으로 간다. 내장사가 가장 멋지게 조망되는 곳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단풍의 가을 산이다.
내장산 하면 단풍이 떠오르고 내장산 단풍 하면 앙증맞도록 자잔한 단풍이 우아하고
이 자잔한 단풍이 물들 때에는 산 전체가 노란 기운으로 채워진다.
어느 계곡, 어느 구릉, 어느 능선이라고 단풍으로 치장하지 않은 산이 없지다지만
내장사를 둘러싼 경내 주변의 단풍이야말로 운치가 삼삼하다. 감동이다.
내장산의 단풍은 설악 흘림골 단풍처럼 진홍빛의 강렬한 느낌이 아니고 연분홍에 노랑 물감을 섞은 듯한
온화한 색깔이다. 다정한 색이다. 설악의 단풍잎이 길게 뻗어있다면 내장산의 단풍은 오밀조밀 자잘한 단풍이다.
그러기에 내장산 단풍은 가을녘의 단풍도 좋지만 봄볕이 간지러운 절기에 애기 손처럼 오목조목 커가는 모습도 매력적이다.
단풍이 어디 가을만의 세상이더냐?
연자봉에서 하산을 할까 싶지만 능선 하나 더 넘어야겠다.
가을 햇살 넉넉한 구릉에 등을 대고 누웠다.
서어나뭇잎 방그레 떨어지고 상수리나뭇잎 갈지자 제멋대로 가슴위로 내려 앉는다.
물푸레나무, 붉은병꽃나무, 소나무 마른잎이 한꺼번에 떨어진다.
지난 여름, 상현달 떠오르던 내 생일날 밤에 보슬비가 이렇게 내렸었다.
하얀 박꽃위에 내렸었다.
서래봉을 시작으로 불출봉을 거쳐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신선봉, 연자봉, 장군봉에 이르기까지
8봉을 종주하고 내자사 경내로 간다. 그럼에도 내장산 단풍이 아쉽거든 시적시적
일주문까지 걸어보라.
일주문에 주련이 기다린다.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 천겁의 과거도 얫 일이 아니며
만세의 미래 또한 지금이라. 내장사 일주문 좌우에 걸린 주련의 문구로 나옹화상의 서왕가의 한 대목이다.
일주문을 나서는데 가을비가 내린다. 내일은 양지쪽에 쪼그리고 앉아 목화솜 이불을 말려야겠다.
달뜨는 달이산
옥계폭포
봄햇살로 찰랑이는 옥계연못을 따라 봄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볔에 내려 앉은 아침이슬이 바짓가랑이에 옮겨붙는 것 조차 싫지 않은 것은 묶은 대궁
마디마디에서 채이기 때문입니다.
산모통이를 꺽어돌면 맞은편 정면으로 세찬 물기둥을 만들며 쏟아져 내리는 옥계폭포가
장관을 이룹니다.
월이산 정상과 범바위 계곡에서 합수된 개울이 기암절벽아래 큼직한 소(沼)를 이룹니다.
휘청이는 버들개지에 오래 머물 수 없던 물새 한 마리가 호수를 가로 질러 물수제비를
이루고 부리부터 밭톱까지 검은 물까마귀가 물속 깊이 자맥질하며 거무튀튀했던 겨울의
그을음을 헹구고 있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지고 앞산의 진달래가 망울을 터지는 소리에 한참을 머무르던 봄
물이 화들짝 놀라 아래로 아래로 옥계폭포를 만듭니다.
옥계폭포는 보기드문 음陰폭瀑입니다.
꼭대기에서 물기둥을 만들던 폭포가 여인의 어깨선을 거쳐 돌출된 가슴을 지나 허리춤
에서는 수줍게 바위속에 숨듯이 물줄기를 가리다가 여인의 허벅지에서는 다시 물줄기를
토해냅니다.
폭포를 중심으로 깎아지른 벼랑으로 진달래가 피어났으니 이 또한 볼만합니다.
엣날부터 손이 귀했던 여인들이 한양에서 달려와 소원을 빌고 발가벗은 몸을 폭포에 맡
겼다는 전설을 담고있는 음폭입니다.
참꽃
달이산 정상을 오르는 산행길이 완만한 것 같으면서도 비탈이 심했습니다.
계곡에도 능선에도 봄꽃이 다투어 피는 소소한 산입니다.
햇살드는 양지녘으로 노오란 양지꽃이 자잘하게 피어나고 벼랑끝 바위틈새로 제비꽃이
떼지어 꽃을 피웁니다.
비석없는 무덤가로 할미꽃이 등굽은 채 자주색꽃을 피워냈습니다.
이제 막 꽃망울로 기지개하는 산벚꽃이 골바람을 타고 진달래향과 섞여 은근한 향취로
무딘 코를 애무합니다.
길섶에 핀 꽃이 양지꽃이라고 일러 주었더니 어느 님은 꽃이름이 한국스럽다고 말합
니다.
왜 이뿐이겠습니까 ?
이슥한 밤을 밝힐 것 같은 초롱꽃, 담벼락과 봇도랑 언저리에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애
기똥풀꽃, 작은 누이의 입술같은 높은산의 앵초꽃, 흰밥풀 같아서 붙여진 며느리밥풀
꽃 모두 한국스러운 꽃말입니다.
우리 산야에 나무는 또 어떻습니까 ?
여울 가장자리에 물버들이 자랍니다.
수수꽃다리 옆에 팥배나무가 서 있고, 쪽동백, 물박달, 모간주나무도 소박하고, 함박꽃
나무도 초여름이면 산개울을 하얗게 덮을 것입니다.
이름만 예쁜 것이 아니라 묶은 대궁에서 터질 듯 연녹색의 여린 이파리를 보면 너무도
장합니다.
어린시절에는 진달래를 참꽃으로 알아 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게 참꽃이기에 그 연분홍 꽃잎을 배가 아리도록 따 먹
었습니다.
옥계폭포에서 쓴소리
그 옛날 박연이 이 옥계폭포 아래서 구성진 가락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폭포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망쳐 버렸
습니다.
있는 그대로 폭포를 올려다 보면 그만인 것을 물기둥 폭포가 떨어지는 턱 밑에 대리석
잘라 물고임을 만들고 구름다리를 시늉 낸 흉칙스런 경망스러운 구조물이 빼어난 경
관을 가로 막았습니다.
폭포를 더 잘 보이게 하겠다는 소견이었겠으나 산을 모르고 자연의 이치에 경박한 공
무원의 좁은 생각 같아 더 황당합니다.
꼭 전망대를 설치 하려면 아랫녘 20 여 미터쯤 내려서 설치했어도 그만인 것을, 몇 년
혹은 몇 십년 후에는 필경 이 구조물은 철거 되고야 말 것입니다.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은 밋밋한 구릉에 나무데크를 깔아 경관을 망친 명산이 어디 한
두 곳입니까 ?
어떤 날은 배낭에 스피커를 넣고 급한 트로트 가요를 틀어대는 이상한 사람도 봅니다.
계절따라 다른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으며 자박자박 흘러 내리는 산
개울물 소리는 또 어디서 들으려는지 그리고 뭉실대는 산안개는 산만해서 볼 수 있을
까 걱정입니다.
진분홍 진달래꽃잎에 슬쩍 옷깃이 스쳤을 뿐인데 뺨이 붉어지고 가슴이 울렁거립
니다.
진달래꽃밭에 드러 누워 흥얼댑니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
2013. 4. 13 달뜨는 달이산아
바람과 설국의 계방산
강원 홍천, 평창
운두령 – 쉼터 – 전망대 – 정상 – 주목군락
옹달샘 – 이승복생가 – 오토캠핑장 - 주차장
기록으로만 따지자면 계방산만큼 유명세를 치르는 산도 드물 것 같다. 높이만으로도 1,577m이니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설악산(1,708m), 덕유산(1,614) 다음으로 정상의 높이가 다섯 번째에 드는 산이다. 1,087m의 운두령까지 포장도로가 연결되어 함백산 다음으로 고지대에 도로가 올라온 산이요, 명산순위가 60위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겨울이 되면 7위까지 치솟는 요술을 부리는 산이 계방산이다. 바람이 거칠고 눈이 펑펑 쏟아져야만 산객이 더 뜨거운 사랑을 쏟아 붙는 겨울의 산이다. 그래서 바람을 만나고 눈꽃을 보려 설국의 계방산으로 간다.
가파른 나무계단은 겨우내 쌓인 눈으로 미끄러웠다. 스패츠를 조이고 아이젠을 신었다. 비탈이 심한 능선으로 설한풍 휘몰아친다.기로 우수가 지났지만 기세가 야멸차다. 원래 오는 겨울보다 돌아서는 겨울이 더 춥다더니 날씨 한 번 고약하다. 안부에서도 쉬고 1,496전망대에서도 넉넉히 지체하면서 여벌옷을 껴입고 행동식도 자주 먹어 둔다. 빼꼼히 내민 두 볼이 시리고 눈동자가 뻐근하다. 눈보라가 치면 반대방향으로 바람을 막아선다. 눈물에 콧물까지 흘리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닌 것 같지만 어디 나뿐이랴.
옛날부터 홍천 내면이라는 동네는 오지 중의 오지의 깊은 운둔의 산이었다. 이렇게 깊은 오지가 6,25 전란 시에는 격전지로 유명하여 아직도 금속탐지기로 박격포탄을 수습하고 있다. 기억하는가? 1968년의 울진, 삼척지역의 무장공비가 출몰한 지역이 계방산 자락이었고 반공 방첩의 포스터가 난무하던 시절에 이승복 어린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영동고속도로 속사 나들목이 생겨 우리와 가까워진 산이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첩첩산중의 오지였다. 계수나무 향기가 난다고 해서 계방산이라고 알고 있으나 실은 계수나무는 자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거운 눈을 꼭 껴안은 주목이 비탈에 서있다. 정상이 코앞이다. 남은 기력을 쏟아 부어보자. 먼저 길을 터놓은 산객 이 있어 러셀의 없이 진행할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올해는 겨울가뭄이라 그렇지 보통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의 계방산이 아니더냐?
누가 쌓은 돌탑인 자그마한 돌무더기가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정상에서 사방을 본다. 설악의 골격이 멀리 펼쳐지고 가칠봉 옆으로 오대산의 비로봉은 가깝게 다가오고 호룡봉이 턱밑이다. 들머리부터 속사 입구까지 맨땅을 밟아볼 수가 없는 그야말로 심설산행의 묘미가 그만이다. 하산 길 군데군데서 만나는 주목은 서있는 자태만으로도 기골이 장대하고 늠름하다. 이승복 생가 터에 다다르자 날씨는 더 꾸물거린다.
낙엽송 마른 가지를 흔드는 겨울바람이 아직은 춥다. 누군가 말했다. 겨우 내내 눈밭을 돌아치면 삼년은 감기 걸리지 않을 거라고. 그렇다. 그 말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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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의 추억을 착칵 착칵 늘
많이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17년 정유년에도 건강하게 뵙기를 바랍니다.
어깨에 저고리를 걸치셨네요
고생많으셨구요~ 사진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