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처음 40년은 본문이고, 나머지 30년은 주석이다. -쇼펜하우어
1. 그는 29세에 죽었다. 40세에 ‘샤오미’ 묘지에 묻혔다.
딱 여기까지, 레이쥔 칭찬은 여기까지만. 혹시 자신이 황금만능주의자, 출세지상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분들, 또는 성공처세술의 스킬만을 알고 싶은 분들은 더 이상 이 글을 읽는 것은 시간과 정력 낭비가 아닐까 싶다.
22세 대기업 입사 후 현재까지 레이쥔의 삶의 궤적을 단 1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29세 대기업 총재, 37세 거액 챙겨 사직, 40세 샤오미 창립, 46세 현재 중국 갑부서열 제6위”
‘정면교사’로서의 레이쥔은 29세에 죽었다. 37세에 관에 들어갔다. 40세에 장례식을 치르고 ‘샤오미’라는 묘지에 묻혀있다. 레이쥔은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가 전도된 이 풍진 세상에 우상으로 숭배되고 있다. 그러나 후세, 필자는 레이쥔이 ‘반면교사’로 인구에 회자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 세상에 아직 진실과 정의가 살아있다면.
그는 모교 우한대 컴퓨터학과 전 과정을 2년 만에 이수하고, 부교(父校, 필자의 조어) 우한전자상가에서 IT실무를 익혔다. 대학 3학년 때 2개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4학년 때 원품을 베낀 복제품을 시판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 어린 나이인지라 귀엽게도 봐줄만한 그 맹랑한 카피켓은 ‘레이잡스’라는 예명까지 얻었다. 공안국에서 당한 일생 최초 최악의 치욕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선천적 눌변을 후천적 달변가로 바꿔버렸다. 30회 연속투고 좌절에도 불구하고 무제한 무차별 투고전략을 감행해 21세에 IT전문 칼럼니스트까지 되었다. 22세 당시 중국 1T업계 최고기업 진산에 입사하여 29세에 진산의 총재로 등극했다.
이러한 불요불굴의 청년 레이쥔의 성공신화는 실의와 좌절에 빠진 우리나라 청년층에 분발의 계기가 될 것 같아 약간의 볼터치를 하며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했다. 비록 성취욕 도착증 환자 및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이코패스 성향도 보였지만, 그야말로 “하면 된다”, “천재란 노력하는 것이다” 의 본을 보인 부분은 박수쳐서 떠나보낼 만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29세에 기업가의 반열에 들어선 이후 레이쥔의 삶의 궤적을 톺아보면 전편에서 보냈던 찬사의 박수를 거두어들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 비판의 매스를 꺼내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
2. 먹고 튀어라(Eat and Run)?
필자는 잘 알려진 것, 많이 논의되어온 것보다는 새로운 것과 적게 논의되어 온 것과 잊힌 것을 사랑한다. 기실 샤오미와 레이쥔은 식상한 주제이다. 온갖 샤오미 제품들과 샤오미와 레이쥔 예찬기사들이 국내에 연일 쏟아져 나오는 덕분에 샤오미 모르는 국민들이 거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필자는 전기 작가는 물론, 졸부들의 자서전 대필 작가도 아니다. 중국법을 핵심으로 하는 종합인문사회과학인 중국학 학도로서, 검 대신 필을 든 문협으로서 “기쁘다 샤오미 오셨네” 류의 그 느글느글 합창단의 일원이 될 의향은 추호도 없다.
따라서 귀하고 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비록 거칠지만 자기 뇌로, 자기 머리로 샤오미 레이쥔을 해부 분석하고 나름의 관점으로 까칠하게 한 소리하고자 한다. 원래 찬5 반5 균형적 시각이 좋지만, 워낙 ‘찬미하세 샤오미’ 한 쪽으로만 쏠려있는 탓에 찬2 반8 비중의 다소 의도적이며 강도 높은 비판적 고찰을 하고자 한다. 혹시 거슬리거나 지나치다고 느껴지더라도 “아 이런 시각도, 목소리도 있겠구나” 하며 너그럽게 혜량하기 바란다. 지면관계상 몇 가지만 골라 짚어 보겠다.
한번 승자는 영원한 승자인가? 과정은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좋은 건가? 일단 부와 권력을 차지한 자는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든지 모두 성공한 사람이고 본받아야 할 롤 모델인가? 결단코 ‘아니다.’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알 바 아니고 오직 자신의 부와 지위 차지를 생의 목표로 삼은 자는 그가 그 목표를 달성한 날까지만 산 목숨이다. 즉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진정한 ‘정면교사’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우리나라 삼성전자 격이었던 진산이 내리막길로 접어든 변곡점은 레이쥔이 총수로 등극한 1999년부터였다. 전편에서 말했듯 그의 재임기간 내내 진산에는 MS와의 해적판관련 소송 등 각종 구설수, 관재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왕년의 중국 초일류회사는 한때 임금을 몇 달 째 체불하는 등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려야 했다.
그런데도 레이쥔은 항상 “울던 날이 웃던 날부터 훨씬 많았던, 고통의 연속 진산 16년간이었다”라며 투덜대고 있다. 진산의 실제적 지배주 스통과 렌샹의 지나친 간섭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를 다른 각도로 본다면, 만일 그 두 지배기업이 레이쥔의 훔치기, 베끼기, 불법과 합법의 담장 위의 곡예사 같은 경영행태를 방관했더라면 진산은 망해도 한참 전에 망했을 지도 모른다.
압권은 37세 생일(2007년 12월 16일)에 했던 그의 이임사. 레이쥔은 천문학적인 거액을 먹고 튀면서(Eat and Run?) “진산이라는 염전에다 화초를 심으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미우나 고우나 16년간 몸 담았던 회사에 원망과 저주의 침을 뱉고 떠난 것이다.(주1)
남들은 한창 취직 걱정을 할 나이 29세에 총수를 맡아 8년간이나 이끌어왔던 대기업인데, 어떻게 저런 식의 악담을 퍼붓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구구절절 교언영색의 변명은 늘어놓지 말라, 중국의 실정법과 상관습에 비추어 볼 때 합법적이었다는 해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순전히 제 한 몸 제 일만 생각하는 에고이스트여, 은혜를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자여, 그런 그대의 복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과 그대의 관찰자, 필자는 서로 부끄럽다.
3. 시진핑은 왜 레이쥔만 빼놓고 다닐까?
부자와 훌륭한 지위에 있는 관리치고 에고이스트 아닌 자는 없다. -톨스토이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9월 미국 국빈방문에 150명의 역대 최대 경제사절단을 이끌면서 경제외교에 집중했다. 그런데 알리바바의 마윈, 바이두의 리엔홍, 턴센트의 마화텅, 렌샹의 양위안칭 등 IT업계 총수들을 포함한 방미경제사절단 명단에 샤오미의 레이쥔은 없었다. 지난해 10월에 이어진 시 주석의 영국국빈방문시 수행한 149명의 방영경제사절단 명단에도 레이쥔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 주석은 왜 레이쥔만 빼놓고 다닐까?
알리바바의 마윈은 물론, 우리나라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중국의 주요기업가는 드물다. 그런데 왜 샤오미의 레이쥔만 ‘샤오미 예찬가’가 울려 퍼지는 우리나라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을까? 최근 몇 년 간 레이쥔의 해외방문기록이라고는 작년 4월 기업설명회 명목의 인도방문이 전부다. 집권이후 북한에만 콕 박혀있는 김정은 버금가는 수준이다. 설마 머리속에 98개의 새머리를 가진 99두조 레이쥔이 고소공포증에 걸린 것은 아닐 터, 도대체 왜 그런 건가? 그 답은 아래 중국의 대표적 여성기업가 동밍주의 ‘레이쥔은 사기꾼’의 발언으로 대신하겠다(데일리안, '중국거상열전 동밍주2’ 참조). 2014년 12월 20일 중국기업총수 송년포럼에서의 세계최대의 에어컨제조업체 GREE 동밍주 총재는 말의 핵폭탄을 터뜨렸다.
“나는 레이쥔의 샤오미가 해외로 진출하길 희망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지 공항과 세관에서 입국이 거부당하고 반입이 금지당할 거요. 레이쥔은 다른 사람의 특허를 훔쳤어요. 도둑질한 기업을 위대한 기업이라 부를 수 있어요? 나 같으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 같은데.”
그 다음날, 중국의 거의 모든 언론매체는 “동밍주, ‘샤오미는 사기꾼이라고 공개비판” 해드라인으로, 대서특필로, 중국천하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명예훼손죄, 모욕죄로 고발한다고 난리법석이었을 터인데 레이쥔은 찍소리도 없다. 반면 동밍주를 경탄하고 숭앙하는 사람들이 수가 비난하는 사람들의 수를 압도하고 있다. 그래서 레이쥔이 해외방문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화요일, 29일 밤 필자는 명동 D중국음식점에서 주한중국대사관 대리대사(대사는 본국휴가중)를 비롯한 외교관 수십 명과 송년회를 함께했다. 동석한 6명의 중국외교관들(30대 3명, 40대 2명, 50대 1명)과 산둥배갈 ‘옌타이구냥’을 홀짝이며 담소를 나눴다. 이야기 끝에, 샤오미에 대해서 집중 탐문한 결과, ‘샤오미는 한중 양국 모두에게 부끄러운 존재’, ‘그런 복제고양이들 때문에 우리는 G2가 못돼’. ‘마윈이 정통무림의 방주라면 레이쥔은 무림을 분탕질하는 사파두목’. ‘당정 공직자들은 그와의 접촉을 근절’, ‘조만간 시 주석이 손을 볼 것 같아’ 등등 외교적 수사의 곡사포 일절 없는 직사포 폭격 일색이었다. 의외였다.
우리는 파장 무렵 "샤오미가 망해야, 중-한FTA가 산다!" , "샤오미가 망해야 한-중 두 나라가 산다!" 라는 자극적 구호를 통쾌하게 외치며 잔을 비웠다.
현재 레이쥔은 중국의 반독점법, 특허법, 상표법, 디자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위반 혐의로 피소된 상태이다. 즉 국제지식재산권법 등 국제규범은 차치하고, 레이쥔은 각종 중국 국내법 위반으로 복수의 당사자로부터 제소당한 피고소인 신분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제아무리 가성비가 좋다한들 불법복제품에 지나지 않는 샤오미는 설상가상으로 오너리스크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샤오미와 레이쥔, 겉으로는 화려하고 매우 융성한 듯하나, 모래위에 집을 지어 놓은 것과 같이 불안하다.
4. 참을 수 없는 ‘뢰비어천가’의 역겨움
레이쥔은 내가 친아들 다음으로 아끼는 사람이다. -글로벌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샤오미”, “대륙의 실수가 아닌 대륙의 실력”, “값싸고 질 좋은 가성비의 지존 샤오미”, “샤오미 자회사, 즈미(ZMI) 국내 첫 신제품 발표회에 억대 경품 팡팡”, “이렇게 좋을 수가, 홍미3노트, 어머 이건 꼭 사야 돼”, “이걸 ‘샤오미 현상’이라고 하는데 앞으로도 ‘현상’은 계속 될 것 같아.”
“기쁘다 샤오미 오셨네” 인가, ‘샤오미늬우스’인가, 국내 온오프라인 매체 다수의 보도는 마치 샤오미의 홈페이지나 기업설명회를 그대로 옮겨온 광고기사 같다. 참을 수 없는 ‘뇌(雷)비어천가’의 느끼함이여! (갑자기 시원한 동치미가 먹고 싶다) 더구나 중국의 지식재산권침해에 예리한 비판의 칼끝을 거침없이 들이대던 서방언론들은 불법복제품 샤오미에 대해서는 본체만체 한다. 아주 가끔씩 “샤오미의 부끄러움 없는 애플 카피가 삼성보다 심각하다” 애꿎은 삼성을 씹어대는 뚱딴지같은 소리뿐이다.
“뭐 샤오미가 애플을 모방한다고? 애플을 뒤엎어 버리겠다.”
스티븐잡스가 무덤에서 분을 참지 못하고 나올 카피켓 레이쥔의 적반하장도 유분수 망언이다. 그런데도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가 샤오미 제품의 디자인에 대해서 ‘도둑질’이라고 비난했다는 단신 기사가 전부다.
이런 샤오미에 대한 서방의 뭉뚝한 언론보도 태도는 샤오미 매출액 비중의 97%가 아직 중국 내수에 머물러 있고 “뛰어보았자 벼룩이지” 샤오미라는 벼룩이 자국에 창궐한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으로 관찰된다. 그런데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대목이 하나 있다. “레이쥔은 내가 친아들 다음으로 아끼는 사람이다.” 글로벌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의 공개비호이다. 세계저명인사는 물론 중국정재계 인사들도 언급을 꺼리는 레이쥔인데, 유독 머독만이 그를 옹호하는 이유는 뭔가.
머독의 제3대 아내(재임기간 1999~2013, 슬하에 2명 자녀)를 역임했던 웬디 덩이 중국계였기 때문일까. 레이쥔이 비도덕적인 악덕 자본가로 악명 높은 머독 자신의 분신 같아서 나온 발언이 아닐까. 필자는 후자에 베팅한다. 머독은 뉴스도 ‘쇼’로 보고 대중을 ‘보스’로 떠받든다. 따라서 대중의 욕망은 아무리 천박하더라도 충족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이 부분 레이쥔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가짜는 나쁘고 짝퉁은 더욱 나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가짜’ 보다 ‘짝퉁’이라는 용어를 즐겨 쓰고 있다. 짝퉁은 진품에 가까운 가짜 명품을 일컫는다. 짝퉁은 우리의 관념 속에 어느새 가짜의 영역보다는 진짜의 영역에 근접한 ‘준(準)진짜’로 승격되어 있다. 동시에 짝퉁에 대한 경계감, 저항감, 죄의식도 희석되어 있다.
짝퉁은 가짜를 유명상품으로 오인하게끔 외관상 진품에 가깝게 모방하거나 위변조한, 이른바 ‘지능형가짜’이다. 형사범중 지능범은 형벌이 감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질이 안 좋은 범죄에 속하여 가중처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지능형가짜, 짝퉁은 더욱 더 엄단하여야 하고 차제에 가짜를 미화하는 출처불명의 유행어를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듯 삼성 LG는 진짜고 샤오미는 가짜다.
레이쥔 샤오미 CEO. 샤오미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처. 5. 나는 네가 지난 엔젤시절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네치아 상인'의 샤일록은 악의 상징으로, 고리대금업자는 피눈물도 없는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도스토프예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인 전당포 노파 알료나도 역시 악의 표본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의 인민정부는 인민의 피를 빨아먹던 무수한 황색 피부의 ‘샤일록과 알료나’들을 박멸했다. 악랄하고 음습한 구사회 상징의 하나로 그들은 역사의 오물종말처리장에 오랫동안 처박혀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초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그들은 하나 둘씩 몸을 털고 일어나 하수구로 거슬러 올라갔다. 90년대 ‘샤일록과 알료나’들은 천안문 광장에 이르는 맨홀 뚜껑 바로 밑에까지 다다라 그곳에서 암약하며 화려한 부활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21세기 지금 중국에는 ‘그림자금융, 천사투자’ 등 각종이름의 고리대의 광풍이 불고 있다.
진산을 퇴직하며 약 2조원의 개인재산을 챙긴 무직자(?), 37세의 레이쥔은 한동안 유유자적, 무위도식하는 천사가 되었다. 진산을 퇴직한 다음날, 2007년 12월 17일부터 샤오미를 설립등기한 2010년 4월 16일까지, 정확히 2년 4개월간 레이쥔의 직업은 천사투자가, 즉 엔젤투자가로 알려졌다. 웬일이지, 레이쥔이 앤젤투자가? 과연 레이쥔이 유망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앤젤투자가라는 이름의 큰손이 되었을까? 앤젤투자가는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으나 자금력을 갖추기 어려운 창업초기 기업에 투자하고 경영자문도 하면서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후, 투자이익을 회수하는 개인투자자를 말한다. 자금이 부족한 창업자 입장에서는 이름 그대로 천사같은 투자자인데.
'베네치아의 상인'이나 '죄와 벌' 등의 고전문학에서의 단골악역, 왕년의 고리대금업자들은 현대금융 자본주의사회에서 앤젤투자가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앤젤에는 투자라는 이름만 빌려 고리대금업을 영위하는 ‘블랙앤젤’도 적지 않다. 블랙앤젤은 앤젤투자를 빙자해 자금이 급한 벤처기업들에 기업들에 돈을 빌려준 뒤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이나 다름없다. 블랙이나 화이트나 관계없이 엔젤투자가는 자신이 투자했다는 이유로 창업가의 경영 독립성을 훼손하는 개연성이 상존한다. 그렇다면 레이쥔은 화이트앤젤일까, 블랙앤젤일까?
레이쥔은 엔젤투자 사업동안 인터넷패션브랜드인 판커(Vancle), 중견 브랜드 신발회사. 르타오(Letao), 인터넷금융사 라카라(lakala ), 웹브라우저의 UC, 상품수출입대행 사이트 둬웬왕( iasmall ),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커니우(yx.keniu.com) 등 모두 17개사에 투자하여 이들 기업들의 실제지배주주가 되었다.(주2)
이들 17개 기업군들의 총자산은 2000억 위안에 달했다. 샤오미 창업을 하기 전이라 샤오미 계열사라고도 하지 않고 ‘레이쥔계 기업’들로 불렸다. 비록 2년여 기간이지만 생존하는 자연인 이름을 딴 기업군체의 명칭은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예가 드문 일이리라. 하여간 그는 일찌감치 레이쥔계라는 이름으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에 이어 중국 4대 IT자본그룹이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덩치 크고 무거운 앤젤이 있는가. 레이쥔을 단순히 앤젤투자가로 부르기에는 너무 거대하지 않은가. GE를 이끄는 젝웰치나, 트랜스월드항공 회장 칼 아이칸이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를 엔젤투자가로 부르지 않는다. 즉, 레이쥔은 화이트앤젤 < 블랙앤젤 < 기업사냥꾼이었다.
레이쥔은 비상장 기업은 인수방식으로, 상장기업은 주식매집방식으로 기업을 약탈하는 기업사냥꾼이었다. 비상장 기업은 50% 이상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상장기업은 강제적 기업매수대상이 되는 기업의 주식을 매집하여 지배주주가 되었다. 그의 기업사냥의 대상이 되는 기업이 발행한 주식총수의 5%를 매집한 후 경영권 인수의사를 타진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수집해나갔다.
그가 화이트앤젤이었든, 블랙앤젤이었든, 기업사냥꾼이었든 무슨 상관이랴, 레이쥔의 언행에서 명색이 과거 사회주의계획경제체제 중국의 제1의 공공의 적, 금융자본가로서의 한번쯤은 느껴보았음직한 사회의식, 역사의식, 공동체의식 등을 고민한 흔적마저 찾을 수 없다.
“돈벌이로는 이때가 젤 쉬었어요.” 화이트앤젤+블랙앤젤+기업사냥꾼=레이쥔에게는 늦가을 길가의 은행잎 쓸어 담기보다 쉬운 ‘돈 쓸어 담기’였다. “더욱 크게 먹기 위해서 2년 4개월이나 참느라고 너무 혼났어요.”
6. 레이쥔, 형은 네가 급사할까봐 걱정이야
“어이, 베끼기 마왕 레이쥔! 법의 한계를 더욱 어겨야 사법당국으로부터 주목을 받겠지. 법의 울타리를 무제한으로 벗어나야 철창신세를 지겠지, 성공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지 레이쥔? 그러나 그런 길은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냐. 그러니 레이쥔, 또 알바들을 동원하여 파리떼처럼 징징거리며 악플 달 생각은 말아, 하여튼 형아는 네가 급사할까봐 걱정이야."-중국 인터넷 매체, 텅신왕 2013.7.31. 기사 일부
이렇게 MEIZU 창업자 황장(1975~)은 샤오미의 보급형 스마트폰 홍미1호가 처음 출시되자 자사 홈페이지에 레이쥔을 무차별 공격했다. 이에 대해 레이쥔은 홍미3호가 나온 현재까지 꿀 먹은 벙어리이다. 현재 메이주 황장은 샤오미 레이쥔의 천적이지만 둘은 진산에 한 솥밥을 먹고 있었던 동료였다. 샤오미 창립 전후, 황장은 레이쥔이 투자자의 신분으로서 메이주의 상업기밀을 도둑질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는 필자가 접한 샤오미 레이쥔 관련 국내외 모든 온오프라인 기사 중에 가장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이다. “기쁘다 샤오미 오셨네!” 연중무휴의 ‘뇌비어천가’ ‘샤오미늬우스’에 매스꺼워 혼났는데, 동치미국 한 사발 들이킨 것처럼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런데 샤오미 창립전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2010년 4월 16일 ‘베이징 샤오미과기유한공사’가 베이징 공상국에 설립등기를 마쳤다. 샤오미 14명의 설립 등기 이사 중 절반은 진산에서, 절반은 MS에서 왔다. 진산출신의 이사는 지상의 고객과의 스킨쉽 마케팅을 전개하는 지상전을, MS 출신 이사는 하늘의 인터넷 제공권을 장악하는 공중전을 담당하기로 했다.
레이쥔은 왜 진산 퇴직, 2년 4개월 만에 샤오미 설립 등기를 했을까? 이에 대해 거의 모든 온오프라인자료는 인재를 중시하는 레이쥔이 인재영입에 삼고초려 못지않은 정성을 들였고 어쩌고저쩌고 ‘뇌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영악함의 지존, 99두조 레이쥔의 당시 행적을 표적 수사하듯 샅샅이 훑어보았다. 드디어 단서가 하나 잡혔다.
2008년부터 시행된 노동계약법 제23조와 제24조에 의하면 상업비밀을 보유한 고급기술, 고급관리자 기타 비밀유지의무자들은 전 고용자의 제품과 동일한 제품을 생산, 영위하거나 또는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경쟁관계가 있는 기타 고용자에 취직하거나, 자신이 개업하여 동일제품을 생산경영하거나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최대 2년간 제한한다.
IT사업의 성패관건은 전문고급인력자원의 확보이다. 지식재산 절취의 달인 레이쥔은 고급인재 유인의 대가였다. 또한 무릇 사기꾼이 그러하듯 그는 관련 법률법령에 달통했다. 그는 고지식한 국유기업 스통과 정품위주의 민영기업 렌샹의 지배를 받는 진산에서는 애플의 아이폰 베끼기를 할 수 없음을 알았다.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2007년부터 그는 딴 살림 차리기를 결심했다. 아이폰 복제품 제조 판매 회사 설립의 주도면밀한 계략을 꾸몄다.
레이쥔은 진산을 상장시켜 챙긴 거액으로 한편으로는 앤젤투자라는 예쁜 이름의 ‘기업사냥’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인재영입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경쟁업종 인재 빼돌리기’ 를 하면서 경쟁업종 재취업 제한기한 2년이 넘기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추론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7. 고객은 왕이 아니다. 친구이자 개발자이다.
가짜는 나쁘다. 그러나 가짜는 가짜의 진실이 있다. 샤오미의 레이쥔에게 배울 게 딱 한 가지만 든다면 고객개념에 대한 일대혁신과 그 실천이다. 즉 최상의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기업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전례 없는 비즈니스이다.
고객은 누구더냐? 1949년 공산 중국이후 “인민을 위해 서비스하자”라거나 서구의 “소비자를 왕처럼 모시자” 의 구호는 사실 중국문화와 걸맞지 않는 것이다. 중국 상인의 지존, 닝보상인들은 예로부터 고객들을 옷과 먹을 것을 주는 부모, 즉, ‘의식부모(衣食父母)’로 불렀다. 오직 고객만이 나의 상술과 돈 버는 오페라에 감동하여 상품과 서비스를 사간다. 고객의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나의 의식주를 영위할 수 있으니 고객은 나를 길러주는 부모나 매 한 가지이다. 친부모는 나를 낳고 길러주셨지만, 내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고, 아내를 맞게 하고 가업을 일으켜 세우도록 한 사람은 고객들이다. 그래서 고객들을 친부모처럼 공경하고 모셔야 한다.
확실히 “고객은 왕이다” 보다 “고객은 부모이다” 가 훨씬 살갑고 차원 높은 고객관리전략이다. 그러나 고객이 어떻게 왕이 되고 부모가 되는가? “고객을 왕, 또는 부모로 여기자”는 고객을 대상으로 보았지 주체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샤오미는 “고객은 친구이자 개발자”라는 고객 개념 자체에 대한 일대혁신을 감행하여 고객을 주체로 하는, ‘소비자 = 생산자, 고객=개발자’의 획기적인 발상의 마케팅전략등식을 창출해내었다.
샤오미 5대 경영원칙은 ①혁신, ②집중, ③극치, ④쾌속, ⑤마우스2마우스(입에서 입으로, 구전)으로 곧 샤오미 마케팅전략원칙과 동의어이다. 샤오미의 발화점은 마케팅이다. 레이쥔 이하 샤오미 전체 임직원이 가장 중시하는 일은 고객으로부터 온 문자에 대한 회신이다. 매일 평균 1시간 이상을 할애하여 진지하고 친절한 회신을 보낸다. 고객에 대한 회신의 양과 질은 모든 임직원의 인사고과평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샤오미 카페에 매일 평균 고객의 게시글 약 12만 건 중 약 8천 건을 정선하여 분야별로 분류, 전문직원이 회신을 담당한다. 매우 중요한 게시글은 레이쥔을 포함한 8명의 샤오미 최고수뇌부가 직접 피드백한다. 고객들이 자신의 게시글이 어느 전문직원에 의하여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끔 서비스 전과정에 실시간 실명제를 실시한다. 2016년 1월 3일 현재 샤오미의 누적답신건수는 총 4946여 만 건이다(샤오미 홈페이지 참조).
8. 제품은 복제품이지만, 고객은 창조하는 고객, 창객
노키아는 왜 몰락했을까? 레이쥔은 다년간 중국 휴대폰 점유율 제1위를 차지했던 노키아 몰락의 제1원인을 고객관리 소홀을 꼽고 있다. 노키아의 팬들은 노키아 글로벌부총재에게 제품개선에 관한 문자를 보낸 것을 비롯해 수십 차례 건의를 했으나 그때마다 “고견을 연구 검토 하겠다”는 상투성 답신만 받았을 뿐 실제로 아무런 개선이 이루어지 않았다.
샤오미 성공신화의 핵심은 고객을 감히 개발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샤오미 고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레이쥔은 샤오미 고객을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일원으로 샤오미의 연구개발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샤오미 웹사이트에는 이용자들의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이용자의 개발자화’라는 마케팅전략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제품연구와 개발과정 뿐만 아니다. 샤오미 제품이 공식적으로 시판되기 전부터 샤오미는 샤오미팬덤(광팬) 100명을 미리 선발하여 먼저 사용하게 한다. 샤오미의 마케팅은 100%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샤오미는 사용자의 불만이나 건의를 바로 수용하여 그것을 상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하는 속도를 광속화한다. 연구 개발, 테스트, 발표, 마케팅에 이르는 전과정에 걸쳐 고객의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것은 고객을 영원한 샤오미 팬으로 만들기 위한 99두조 레이쥔 특유의 계략이다. 샤오미 고객은 몸으로 샤오미를 느끼고 샤오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나가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샤오미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샤오미와의 깊은 관계를 맺게 만든다.
스타와 아이돌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별처럼 하늘에서 빛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스타와는 달리 아이돌은 TV나 매체에서 자주 접해 친근한 느낌이다. 아이돌은 완벽한 것보다는 살가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샤오미는 아이돌을 추종하는 중국 신세대의 팬덤(광팬)문화를 읽어내며 이를 경영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1500만 명의 일반 팬을 거느린 샤오미의 2016년 1월 3일 현재 팬덤의 수는 약 332만명이다(샤오미 홈페이지 참조). 레이쥔의 샤오미 제품 발표 키노트 영상 속에는 팬덤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레이쥔은 매년 봄이면 팬클럽축제를 연다. 이때 샤오미 제품을 더 싸게 내놓는다. 레이쥔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사이를 넘어 팬과 아이돌과의 관계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너무 극도로 좋아하는 경지에 이르면 이해 타산적 관계에서 공동운명체적 관계로 진화한다. 고객과 상품의 관계는 마치 팬과 아이돌과의 관계로 승화한다. 이러한 레이쥔의 소비자중심 마케팅 전략은 마오쩌둥의 군중노선 전략과 많이 닮았다. 군중노선이란 원래 지도층의 모든 정책과 실천은 군중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동시에 군중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략이다. 즉 마오쩌둥의 것은 정치전략이고, 레이쥔의 것은 마케팅전략이란 것 외에는 군중의 구성원이 다를 뿐이다.
마오쩌둥의 군중은 노동자 농민 중심의 무산계급자인데 반하여 레이쥔의 군중(고객)은 샤오미팬을 중심으로 하는 광범위한 소비자라는 점이 다르다. 팬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샤오미의 소비자 중심 노선은 마케팅 전략의 극단이다. 비록 샤오미의 제품은 복제품이나, 샤오미 고객만큼은 ‘창조하는 고객, 창객(創客)’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9. 데쟈뷰, 시작은 창대했고 끝은 미약했던 원조짝퉁의 추억.
오늘날의 레이쥔을 만든 것은 기업가로서 철저히 이윤추구.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념. 어쩌면 양날의 칼처럼 그것 때문에 한방에 훅 갈수도 있다. 실도 중요하나 명분 없는 실은 한번 타격받으면 훅갈수 있다. 그게 이치다. -gara**** 샤오미와 레이쥔(1)기사 네이버 댓글에서 발췌
스마일곡선이론에 따르면 스마일곡선 상단의 양끝은 연구개발과 마케팅이고 중간의 휘어진 부분은 제품생산부문이다. 밝은 기업은 인력과 재원을 마케팅과 연구개발 양끝 부분에 집중 투입하는 기업이다. 어두운 기업은 마케팅과 연구개발에는 소홀하고 제품생산에만 전념하는 기업이다.
2015년 12월 말 현재 샤오미 전체 사원은 약 2만 명으로 그 중 1만 5천명은 고객과의 마우스투마우스식 서비스를 담당한다. 약 4천명은 (복제품)연구개발 전담부서에 포진하고 있다. 현재 샤오미가 밝은 기업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은 혁신적인 마케팅전략으로 부실한 연구개발 부분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오미가 앞으로도 계속 독창적 창의적 제품개발에 힘쓰지 않고 베끼기 훔치기 복제품생산에만 열중한다면 망할 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전망한다(스마일곡선이론으로 본 샤오미의 미래 참조).
메뚜기도 한철, 짝퉁도 한철이다. 지금 샤오미에는 대학생시절 레이쥔을 일약 백만장자로 만들었던 원조짝퉁의 데쟈뷰(기시감: 지금 일어나는 일을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는 것 같이 느끼는 것)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샤오미는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월등한 ‘짝퉁의 짝퉁, 짝퉁의 후손’들의 일대 반격을 받고 있다. 카운터펀치를 연방으로 맞은 것처럼 매출증가세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샤오미가 여전히 다른 회사의 제품을 마음대로 갖다 쓰면서 경쟁회사의 짝퉁 제품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보이는 것은 자기모순의 극한이다. 샤오미 F1,F2, F3,..F∞ 들이 일제히 외친다.
“샤오미, 너나 잘 하세요.”
9. 농업을 말하고 공업을 쳐라, 중국의 FTA전략 제1호 ‘성농격공’
법조인, 남의 재산을 뺏기 위해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은어를 주고받는 자들-톨스토이
2013년 3월 레이쥔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대표(국회의원)로 당선되었다. 그는 당선취임사에서 5년 내에 「회사법」(1992년 제정, 2013년 제4차 개정, 총 218개조,중국 민영회사에 대한 기본법)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레이쥔은 2015년 3월 창업환경에 관한 회사법 개정안을 제의한 바 있다. 중국의 전인대 대표에는 레이쥔 말고도 900여명의 국유기업과 민영기업의 기업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를 우리나라에서 배양된 의식구조의 잣대로 본다면 정경결탁, 정경유착 수준을 넘은 ‘정경일체’ 수준이다. 그러나 운용의 묘를 살리면 이러한 중국식 ‘정경일체’가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G2시대 진정한 주인공 기업가들의 의견과 제안이 직접 입법에 반영되는 체제이다.
ⓒ강효백 여기서 한국 유일의 중국법학과 전임교수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은 한중 양국의 회사법이다. 어쩌면 이제까지의 '중국기업가열전'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이지만 지면관계상 최대한 간략하고 쉽게 말하겠다.
흔히들 회사법이라 해서 중국내 모든 기업, 중국의 국유기업, 민영회사 뿐만 아니라 외국기업, 외자기업에도 적용되는 법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심각한 착각이고 위험한 오해다.(주3) 중국에 진출중인 삼성, 현대차 등 수 만 개의 한국기업과 세계500대 기업을 비롯한 외자기업들에 최우선 적용되는 법은 합자, 합작, 독자기업법 등 외자기업법 (‘삼자기업법’으로도 부르는 이 3법들은 최근 「외국투자법」으로 통합추진 중)이다.
한마디로 외자기업법은 중국의 외자기업에 적용되는 법이고 회사법은 중국의 내자기업에 적용되는 법이다. 또한 외자기업법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제정한 기본법률로서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제정한 일반법인 회사법보다 상위법이자 특별법이다. 따라서 중국에 이미 진출한, 혹은 진출을 하려는 우리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한 법은 중국 외자기업법과 그 하위법령들이다. 중국 내자기업에 적용되는 회사법은 참고할만한 법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회사법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만 덧붙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재작년 10월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개선에 관한 법률)시행 이후 단말기 비용부담이 대폭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가성비 좋은 샤오미 등 중국복제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스마트폰 보급이 80%가 넘는 시점에서 누구나 동일한 가격에 살수 있다던 단통법 시행으로, 득보다 실이 많은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샤오미가 던지는 추파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의 무거움’이다.
2016년 한중 FTA시대 원년에 중국산 저가 농산물 수입만 근심하고 샤오미같은 중국산 잉여공산품의 국내 반입급증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지? ‘동쪽을 말하고 서쪽을 쳐라’ 성동격서 전략을 버전업한 21세기 중국의 FTA계략 제1호, “농업을 말하고 공업을 쳐라”의 ‘성농격공((聲農擊工)’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산품 애용운동, 중국복제품 불매운동 등 글로벌 시대착오적 캠페인이나 공허한 의식개혁을 주구장창 부르짖는 것보다는 단통법 재조정 등 정책을 구체적으로 강력하게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다.
10. 우리나라만 없는 기업의 헌법, '회사법' 제정 시급하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
불후의 명대사를 남긴 ‘이수일과 심순애’의 무성영화시절에나 걸 맞는 법의 영역 및 체계가 하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참 이상하다. 중국은 상법도 없는 나라인데, 글로벌500대 기업 중 100여개가 중국기업이라니.”
2014년 말 ‘땅콩회항’ 사건으로 재벌의 규범의식이 회자될 무렵 필자가 참석한 학회에서 한 저명한 상법교수의 탄식이다.
“중국에 상법은 없어도 주로 중국 민영회사를 적용 대상으로 한 ‘회사법’을 비롯해 국유기업, 외자기업, 사영기업, 합자기업, 향진기업, 집체기업, 조합기업, 1인기업 등 기업의 소유 구조 유형별 맞춤형 기업법이 무려 12개나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필자는 속으로 반문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 국가 시대, 실제 사업에서는 헌법보다 더 중요한, 기업의 헌법인 회사법과 관련한 세계 각국의 입법 상황은 어떠할까. 주요 20개국(G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유럽연합(EU)과 EU 회원국 28개국, 나아가 유엔 회원국 193개국의 입법례를 전수 분석하듯 조사해보았다.
우리나라처럼 회사법 없이 상법만 있고, 상법의 일부에 회사법을 더부살이시키고 있는 입법례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고생이 많구나, 한국 기업들. 회사법도 없는 나라에서 글로벌 500대 기업이 18개나 나오다니.”
상과대학은 가고 없어도 상법은 유구하다. 아직도 회사법을 상법 안에 욱여넣어 두는 법체계는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 등을 비롯한 기업가들을 상인으로 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 중국 EU 등 이른바 ‘G3’는 물론 영국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영연방국가들은 애초부터 상법 없이 개별 회사법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각 주에 가장 다양하고 선진적인 회사법들을 갖고 있다. EU도 2006년 신회사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는 상법 제정시에 회사법을 상법의 부문법으로 더부살이시키다가 개별법으로 독립시켰다. 일본은 1899년 독일 상법을 모방해 제정한 상법 속에 회사법을 뒀으나, 2005년 더 이상 토끼굴처럼 옹색한 상법 속에 코끼리처럼 방대한 회사법을 욱여넣을 수 없다면서 독립 회사법을 제정하고 기존 상법의 회사 관련 규정을 전부 삭제해버렸다.
우리나라는 일본 상법을 모델로 삼아 1962년 상법을 제정한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쳐 2011년 대폭 개정 했다. 그런데 2005년 이후 일본은 회사법을 독립법으로 제정하면서 그 체계와 내용을 대대적으로 혁신해왔지만 우리나라는 옛 일본식 상법 체계를 그대로 답습하며 상법 제3편에 회사법을 반백년이 넘도록 사글세 내놓듯 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유독 19세기 낡고 노쇠한 상거래 법체계에 21세기 새 기업, 새 산업, 새 시장 창출을 보장하는 회사법을 품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은 날로 변하는데 낡은 법제를 그대로 둔다면 국가는 쇠망하고 사회는 타락하고 국민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입법가들은 당리당략과 이권 추구 삼매경에서 깨어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며 현실에 기반을 두고 미래를 여는 ‘회사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2016년 원숭이해를 우리기업들에게 손오공의 여의봉과 근두운을 부여해주는, 기업들의 헌법인 회사법 제정으로 시작해봄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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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레이쥔은 2013년 샤오미로 벌어들인 거액의 자산을 투입하여 진산을 샤오미 산하 계열사로 만들어 버렸다. 2015년 말 현재 진산 총주식의 26.9%를 차지하고 있는 레이쥔은 진산의 이사장이자 실제 지배주주이다.
2)2015년 말 현재 이들 17개 기업은 샤오미 산하 주요 4대 계열사(진산소프트웨어, 치타모바일, 환지우시대, 쉰레이)와 더불어 레이쥔의 지배하에 있다.
3)강효백, 「중국경제법(1) 기업법」, 율곡출판사, 2015. 311면 참조
글/강효백 경희대 중국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