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강추위에 건강하신지요.
오랫만에 게시글로 인사 드립니다.
게시글의 제목과 같이 세 자루의 칼을 만들었습니다.
왕초보의 첫 작업이므로 시행착오와 그로 인한 수업료가 예상되는지라...
누구나 할 수 있고
가급적 재활용 가능한 것을 찾아서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 가능한
그런 칼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이곳 저곳에 있는 자작기를 살펴 작업에 참고할 점들을 찾아봤습니다.
유튜브에서 나이프 자작 동영상들을 검색해서 인터넷 강의를 삼았습니다.
인터넷 장터에서 필요한 자재와 공구를 최저가로 장만했습니다.
택배가 도착하는대로 야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조금씩 작업했습니다.
저와 같이 처음 시도하시는 분들을 위해 초보자의 경험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차원에서 경험의 공유를 위해! ㅎㅎ
대장간에서 쇳덩이를 두들겨 만들었다는 부엌칼을 하나 샀습니다.
누구의 눈에는 닭 모가지나 자르는 식칼이지만 제 눈에는 제법 그럴듯한 서바이벌 나이프로 보였거든요.
맘에 드는 외산 서바이벌 나이프의 이미지를 출력해서 칼날에 붙여보니 두 개는 만들 수 있겠더군요.
그라인더로 잘라내어 먼저 작은 녀석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핸드 그라인더로는 정교한 작업이 힘들지만 조심조심해가며 요렇게 잘라내었습니다.
두툼한 장갑과 보호안경, 마스크는 필수입니다. 쇳가루가 불똥을 튀며 날라다니고 먼지와 연기가 무척 납니다.
가급적 별도의 작업장이나 실외에서 하세요. 화장실에서 했다가 청소하느라 정말 고생했습니다.
옥션에서 산 줄을 이용해 다듬었는데 싸구려 줄인지 목공용이었는지 줄의 눈금이 다 갈려버렸습니다.
무쇠라 잘 갈릴줄 알았는데 두드려 단조하고 열처리 했는지 이 부엌칼 생각보다는 쇠가 단단합니다.
은근과 끈기로 갈아내기는 했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다음에 한다면 핸드 그라인더를 튼튼하게 고정해서 아래 방향으로 회전하게 해놓고 두 손으로 칼을 잡고 갈겠습니다.
전문공구가 없다면 그라인더의 확실한 절삭력을 활용하면서 세밀한 가공을 하기 위해서는 최선이 아닐까 싶어요.
드릴로 구멍을 내고 준비한 나무 판재를 겹쳐서 구멍낸 후 구리막대 토막을 잘라 끼웠습니다.
이때 주의사항은 끼울 막대와 구멍의 크기가 같아야하고 양쪽으로 2~3밀리미터 정도만 나오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긴것은 두들기니 넙적하게 퍼져서 갈아내도 모양이 예쁘지 않더군요.
요번엔 다른 녀석입니다. 접 부칠 때 사용하는 접목도 입니다.
칼날 부분은 단단한 쇠를 쓰고 나머지 부분은 좀 더 무른 쇠를 사용했더군요.
회칼처럼 날이 한 편으로만 난 녀석이라 오른손잡이용과 왼손잡이용이 따로 있습니다.
사서 포장을 뜯은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앞선 공정을 무려 몇 단계나 줄여주는 미덕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구매한 것이기도 합니다.
역시 드릴로 구멍을 냈습니다.
두 장의 판재를 겹치고 손잡이 영역을 연필로 표시한대로 줄톱으로 잘라냈습니다.
100%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이라 땀도 흘려야하고 힘도 듭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줍니다.
손잡이용 목재에 같은 방법으로 구멍을 내고 고정을 위해 구리막대를 박았습니다.
끼우기 전에 나무와 쇠붙이 간에 에폭시나 본드를 발라두어야 하고 사진과 같이 클램프로 마를때까지 고정했습니다.
바이스에 단단히 고정하고 줄로 나무 손잡이를 쇠붙이의 형상대로 둥그스름하게 열심히 갈아냅니다.
보통 제가 헬스장에서 흘리는 만큼의 땀을 갈면서 흘렸어요. 에고~
역시 마찬가지의 작업입니다.
그나마 줄톱으로 모양을 잡아 놓아서 먼저번 녀석보단 힘이 덜 드네요.
우선 직각으로 갈아내었더니 이런 모양이 나옵니다.
손에 쥐기 편하게 인체공학적으로(?) 모서리를 다듬으니 제법 모양이 나옵니다. ^^
이제 무언가 완성되어 간다는 기쁨을 맛본 순간이었지요.
세번째 녀석은 전에 캠핑중에 지인께 받은 스테인리스 식도의 플라스틱 손잡이를 잘라내고 크기를 줄여보려구요.
위험해 보이는 칼날의 길이를 대폭 줄이고 손잡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라인더로 갈아낸 다음입니다.
안쓰는 천 조각과 에폭시를 이용해서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한 번 해보고 다음번엔 청바지를 잘라서 우아하게 갈아내 보고 싶었거든요.
유튜브 동영상에서 본 에폭시와 달리 제가 구입한 에폭시는 너무 점도가 높아 거의 본드 수준이라
천을 겹쳐서 모양을 잡기도 어렵고 충분히 스며들지도 않는데다
나름 이쁘게 만들어 보겠다고 손잡이 앞부분엔 따로 세 줄을 감아 두었는데
두께가 맞지 않아 모양이 영 엉성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라인더와 줄로 모양을 만들어가며 갈아내보았지만...
이미 실패의 예감이 드는 순간입니다.
묽은 에폭시로 충분히 적셔지게 해야 한다는 것과 두께를 일정하게 하고 무겁게 눌러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이 또한 기쁜 일이지요.
이리하야~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저만의 나이프 세 개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공구와 인건비를 제외하면 "천하제일저렴!"이라 할만하지 않습니까?
'저 사람 뭐하나' 하던 사람들도 '오호 제법인데' 하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껄껄~
목재 손잡이 마무리 공정을 위해 팬에 식용유를 끓여놓고 통채로 담궜습니다.
요령을 알려주신 분은 끓인 기름에 하룻밤만 담가 놓으면 예쁜 갈색이 된다고 하셨지만
전 욕심이 나서 끓는 기름에 조금 튀겼습니다.
그 욕심이란 싸구려 목재를 흑단목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말입니다. 그 결과 손잡이가 진한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발생한 문제는 튀겨지며 목재의 크기가 약간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ㅠㅠ
쇠붙이와 크기가 딱 맞게 가공했는데 줄어드니 약간 멘붕이 왔습니다만...
눈금이 다 지워진 줄로 다시 갈아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만원의 행복"이 이런 것일까요?
1만원이 넘지 않는 자재를 이용해서 만들어 본 자작 나이프입니다.
툴을 이용만 했지 직접 만들어 본 것은 처음입니다. 놀라운 경험임이 분명합니다!
제법 그럴듯 하지요? ㅋ
이렇게 얼렁뚱땅 세 자루의 칼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주말과 야간에 짬을 내어 2주 걸렸구요. 사무실과 화장실에서 작업하고는 청소하느라 애 먹었습니다.
어제는 경비실에서 달려오기도 했구요. 지금도 다시 대청소 해야해서 동료들에게 미안합니다.
가장 공을 많이 들인 놈이라 정이 듬뿍 갑니다.
손이 크지 않은 제 손에도 작기만한 도구지만 저의 생존을 책임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부쉬크래프터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만
마음에 품은 뜻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생활하겠다는 의미와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무한경쟁의 산업사회와 끝없이 소비를 조장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항거하는 의미를 담아
저만의 도구, 소박한 도구, 추억이 담긴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재미를 붙였으니 긴긴 겨울밤 더 많은 칼을 갈아야겠네요.
시즌오프로 라이딩 못하는 아쉬움을 이렇게 달래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 정리 잘하시고 건강하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하늬님이기에 가능한 일인듯 싶습니다
어느누가 이렇게 이런 일을 직접....... ^^
가장 저렴한 나이프라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세상에서 가장 고급 나이프로 보여집니다
오늘또 하늬님으로 하여 좋은것을 하나 배우게 되는군요 나무를 기름에 튀기면 저렇게 이쁜색상이 나온다는것 ^^
아무튼 대단한 작업과정 그리고 그 결과물에 보는이도 매우 흡족스럽기만 합니다
긴 겨울에 내년의 캠핑을 준비하며 누구나 해보실 수 있는 일이라 소개해 보았습니다.
담배 몇 갑의 비용으로 두고두고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도구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겁니다. ^^*
오랜만에 들어 왔습니다.. 대단하신 분들 많으시네요...
나름 색다르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냥 사시지... ? ! .....
하긴 나도 저 기분 압니다.
다 아시면서... ㅎㅎㅎ
아파트에 살고 오피스텔에서 일하다보니 작업공간이 없어 고생입니다.
이럴땐 내촌님이 얼마나 부러운지...
멋지십니다
허접하지요 뭐~ ㅎㅎ
그나저나 오랫만인데 갤포스네 식구들이 보고 싶네요 ^^
지난번 모임대 말씀 하셨던 거군요?!
직접 칼 만드신다고...하셨던?
그땐 감이 안 잡혓었는데...사진을 보니 이해가!
솔직히 첫 칼은 '헉! 살벌한데?' 란 생각 들엇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저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상각이 들게 할 정도로 멋지네요!
집에서 만드신 건가요?!
대단하시고 & 넘 멋집니다!
DIY 잘하는 분 넘 멋짐! ^^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