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연제구 금용암
금용암(金蓉庵)은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2동 산 1396-2번지 금정봉(408.0m)
동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범어사의 말사(末寺)이다.
금용암의 창건은 조선 철종 때 점술가 여인이 초막을 짓고 살았다.
여인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길흉사를 잘 맞추면서 명성이 자자하였다.
여인은 공덕을 베풀며 살다가 불교에 귀의하여 이인덕행(李仁德行)이라는 보살명을 얻게 되었다.
1919년 10월 15일에는 해인사로 출가하여 비구니계를 수지하고, 대봉(大鳳)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대봉은 이곳에 인법당(仁法堂) 3칸을 지어 법당과 숙소, 그리고 공양소로 사용하면서
금용암(金蓉庵)이라 하였다.
당시 법당에 봉안하던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금박하여 염화전에 모셔져 있다.
담벽 아래의 비탈길에 1939년 5월 20일 세워진 대봉의 상반신이 선각(線刻)된 사적비가 있다.
금용암은 금정산맥의 끝자락인 금정봉 허리 부분의 협소한 지역에 일부 축대를 쌓아 지었기 때문에
절터가 그다지 넓지는 않다.
내부는 승방인 향적당(香積堂)과 음식을 준비하고 신도들의 식당으로 사용되는 원통료(圓通寮),
본당인 염화전, 칠성․산신․독성을 모시는 삼성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용(金蓉)은 ‘황금연꽃’을 뜻하며, 이름처럼 한여름을 전후하여 경내 곳곳에 피어나는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용(蓉)이란 부용(芙蓉)이니 곧 연꽃의 이칭이다.
금색 연꽃의 금(金)이란 황색의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금속이고 물러서
전성(展性)과 연성(延性)이 있으나 변하지 않아 귀금속 중에서도 가장 소중히 여긴다.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금강석은 무색의 탄소 결정으로 광물 중에서 가장 단단하여
금(金)과 함께 불교사상과 결합하여
금륜(金輪)이니 금강경(金剛經)이니 하는 용어들이 만들어 진 것과 같이 금용(金蓉)도 그러한 취지에서
이름 붙인 금색 연꽃이며 금용암이라 사명(寺名)이 붙여지게 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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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2동 소재 금용암
금용암은 예로부터 아들을 얻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영향으로 여느 사찰과 달리 삼성각 안에 세 여인을 그린 삼신제왕탱화가 걸려 있다.
염화전 앞마당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느티나무가 있다.
금정산과 백양산을 잇는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저 멀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금용암은 사직동 뒤쪽에서 초읍동 사이의 쇠미산의 작은 암자이지만
마치 불국 수미산 산속에 홀로 묻힌 듯 자연과 동화되어 있는 절이다(4-56).
속세의 흔적들을 멀리 둔 암자 입구의 300미터 송림길은 이 암자가 가지고 있는 값진 자연경관이며
암자에서 부처님의 화신이 되어 중생들을 품어 안으시고 수행자의 길을 가시는 청정한 스님들의
삶 또한 값진 인적 환경이 된다.
이 암자의 금당인 염화전(拈華殿)의 그 상징적 의미가 매우 인상적이다.
암자에 있는 탱화와 벽화는 향토 부산 출신 금어(金魚)들의 향취가 배어 있어
더욱 향토적인 사찰 멋이 풍긴다.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준 자손들이
밝고 건강하게 신행생활을 할 수 있도록
청정하고 영험있는 이 도량을 지금의 자연 환경 속에 길이 보존하였으면 한다.
금용암 입구의 무불성관 대선사의 탑비가 사찰 3문(三門)이 되어
오늘도 금용암의 청정도량을 지키는 것 같다.
① 금용암의 사명(寺名)과 금색 연꽃의 상징
암자(庵子)란 큰 절에 딸린 작은 절이거나, 스님이 속세와 떨어져 수행에만 몰두하는 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금용암이 암자격의 절이라고 스스로 낮추어 부르고 있어
그 곳에 주석하고 계신 스님들과 불자들의 그 하심(下心)의 자세가 금용암을 돋보이게 한다.
금용(金蓉)이란 금색 연꽃이란 뜻이다.
용(蓉)이란 부용(芙蓉)이니 곧 연꽃의 이칭(異稱)이다.
금색 연꽃의 금(金)이란 황색의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금속이고 물러서
전성(展性)과 연성(延性)이 있으나 변하지 않아 귀금속 중에서도 가장 소중히 여긴다.
다이야몬드라고 하는 금강석(金剛石)은 무색의 탄소 결정으로 광물 중에서 가장 단단하여
금(金)과 함께 불교사상과 결합하여 금륜(金輪)이니 금강경(金剛經)이니 하는 용어들이 만들어졌다.
금용(金蓉)도 그러한 취지에서 이름붙인 금색 연꽃이며 금용암이란 사명(寺名)이 된 것이다.
연꽃은 우리 중생들이 무명(無明) 세계에서 깨달음을 찾은 부처세계로의 어떤 전환을 상징하는
불교의 꽃이다.
연꽃이 뿌리를 내린 못(池)의 밑바닥은 온갖 먼지와 찌꺼기가 가라앉은 지저분한 곳이나
물을 통과하여 수면에 떠올라 핀 연꽃은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다.
일체중생유불성(一切衆生有佛性)이라고 모든 중생은 누구나 부처가 될 소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꽃이 뿌리를 내린 지저분하고 분간할 수 없는 밑바닥은 중생이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연꽃은
부처에 비유된다.
그러면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인가? 못의 물이다.
물은 식용이며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액체이다.
물은 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가 결합된 화합물(H2O)인데 우리 중생은 물없이 살 수 없다.
물속에 살아야 할 고기를 물밖으로 나오게 하면 바로 죽는 상황을 말한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연꽃을 피게 한 연못의 물은 불법(佛法)이다.
불법이란 부처님이 모진 고행의 경험과 우주 원리를 사유한 결과로 터득한 불교의 물이다.
우리 중생의 지저분한 탐진치(貪瞋癡)를 말끔히 씻어 줄 명약(名藥) 치료제이다.
이 명약의 효험이 나타나려면 금(金)을 두드려 엷게 펴기도 하고 길게 늘이기도 하듯이
고정된 형상에 변화를 주면서 상황에 대응하는 지혜로운 인간이 될 때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 정신이 실현될 것이다.
② 쇠미산 송림길 금용암 찾아가는 길
금용암은 연제구 거제2동 1396-2 쇠미산(釗尾山:일명 금용산) 중턱 숲속에 숨은 듯 자리잡고 있다.(4-57) 쇠미산의 쇠(釗)는 아이 이름을 지을 때 돌과 쇠같이 단단하라는 의미로 돌쇠(乭釗)라 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쇠미산에 쇠물이 많이 나왔다 하는데 정확하게 어떤 지역을 지칭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쇠미산 자락인 사직동에서 판석(板石) 넉장으로 형성된 석관 속에서
청동기, 철기시대의 무문토기와 석검(石劍)이 출토된 적이 있으므로 철을 제련하고
지배층의 무기를 제작하던 유적지가 이곳 산끝자락 어디에선가 발견될지도 알 수 없다.
금용암 근처의 작은 산봉을 금용산이라 한 것은 산봉 모양새가 연꽃 봉오리같이
약간의 원추형을 이룬 산세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연꽃 봉오리는 강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형상이니 마하사가 자리잡은
금련산(金蓮山)과 같은 뜻을 지닌 산이다.
금용암의 맞은 편, 사직동에서 초읍동으로 넘어가는 산복도로면의 금농(金農)이란 예식장에서
금용암을 품고 있는 산악을 보면 방해받지 않는 자연의 스카이라인과 검푸른 숲만을 조망할 수 있어
모처럼 도시 속의 완전한 자연을 음미하는 듯 하다.
(4-57)금용암 찾아가는 길
쇠미산은 해발 152.3m로 북쪽의 금정산맥의 금정봉이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봉이며
이 쇠미산봉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진 곳에 화지산이 솟아있다.
쇠미산 서쪽 산록에는 어린이 대공원이 있고 북동쪽에는 사직종합운동장의 육상보조경기장이 있다.
(4-57)의 약도를 보면 사직동에서 초읍으로 넘어가는 산복도로가 확장되어
사직동 쪽에서도 쉽게 금용암을 찾아갈 수 있다.
초읍 쪽이나 사직동 쪽에서 먼저 시립시민도서관을 목표지점으로 진행한 다음
사직동 쪽에서 진행한 차량은 시립시민도서관을 막 지나면서 우회전으로 꺾어야 한다.
꺾는 지점에 "금용암 600m"라는 작은 이정표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 도로확장 공사 중에는 보이지 않았다.
공사가 완료되면 다시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우회전으로 꺾어 좁은 길로 진행하여 백송통닭집 앞을 지나 대진 파레스 아파트 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금용암까지의 송림길 300m는 차량 보다 도보로 가면서
송림 그늘과 송림의 생기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 좋겠다(4-58).
이곳은 금용암을 도시 속의 자연 사찰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주위에 아무런 인가와 건물이 없어 호젓이 이 길을 갈 때 산수(山水)에 노니는 신선이 되는 기분이 든다.
이 송림길은 금용암에 주석하시는 청정한 스님들과 같이 금용암을 찾아가게 되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① 금용암의 창건인물 인덕행보살과 사적비
금용암은 조선왕조 말기 철종(재위1849∼1863) 무렵,
점술가 여인이 이 곳에 초막을 짓고 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분은 이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길흉사를 족집게로 뽑듯이 잘 알아 맞추어 명성이 자자했고
공덕을 베풀며 살았던 인물이다.
이 분은 거제동에 사는 강보현이란 사람이 감나무에서 떨어져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아침이면 강보현집에 가서 강보현을 업어와 이곳 초막에서 치료를 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었다가
저녁이면 다시 강보현을 업고 강보현집에 귀가시키는 일과 같은 공덕을 쌓으면서
불교에 귀의하게 되어 이인덕행(李仁德行) 보살명을 가지게 되었다.
인덕행보살은 드디어 1919년 10월15일 해인사에 출가하여 비구니계를 받고,
대봉(大鳳)스님이란 법명을 받게 되었다.
이 때 기와집 인법당(仁法堂) 3칸을 지어 법당, 숙소, 공양소로 사용하면서 금용암(金蓉庵)이라 하였다.
이때 법당에는 석조 지장보살좌상을 모셨던 것 같다.
지금도 이때의 지장보살을 금박하여 염화전에 봉안하고 있다.
비구니 대봉스님은 계속 이곳 금용암에 주석하면서
여러 재가불자들과 함께 정업도장을 발전시키다가 입적하셨다.
확실한 입적 년월일은 알 수 없지만 1939년 5월 20일자(字)가 새겨진 작은 비석이
금용암 담벽밑 옛 비탈길가에 하심(下心)의 자태로 서 있다.
낮은 비석상부에는 목과 손목에 염주를 걸고 승복을 입은 상반신의 대봉(인덕행 보살)스님의 모습이
선각되어 있다(4-59 ①②).
대봉(인덕행 보살)스님이 입적한 이후는 1964년 4월 범어사 덕윤스님이 금용암을 맡으실때까지
약 25년간 홍복수(洪福壽) 송문수(宋文殊)보살 등의 수행도량이 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내용과 관련이 있는 사적비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② 금용암의 주석스님
1964년 4월부터 금용암과 인연을 맺어 현재 금용암의 주지를 맡고 계시는 덕윤스님은
금용암을 사찰다운 면모로 일신시킨 스님이시다(4-60).
현재 염화전 자리에 있었던 옛 염화전도 덕윤스님이
1964년 4월∼1965년 10월에 김목수에게 공사를 맡겨 23평 법당을 세웠고
현재의 염화전은 옛 염화전을 헐고 1991년 5월 10일∼1992년 8월 15일까지
16개월간의 공사로 개건하게 되었다.
염화전 이외 삼성각, 원통료(圓通寮:공양실), 향적료(香積寮:스님거처공간)가 금용암의 전각이며
금용암 입구쪽에 성관무불(性觀無佛 1907년 9월 20 일∼1984년 2월 21일)스님의
사리탑과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성관무불스님은 속령78세 법령 64세에 입적하시고 종단장(宗團葬)으로 통도사 다비장에서
1984년 2월 25일에 다비하였다.
석종(石鍾)형식의 승탑(僧塔)이 제자승과 불자들에 의해 마련되어 금용암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금용암의 중생제도를 지원해주시는 듯 하다.
현재 금용암에 주석하시는 스님은
주지덕윤 (德潤)스님(1928년생 1998년 현재 법령 48년)과 월주(月舟)스님 (1923년생 법령 42년)스님
그리고 성해(性海)스님 (1931년생 현재 법령 4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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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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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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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주법당 염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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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염화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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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염화전내 지장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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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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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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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삼성각내 칠성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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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삼성각내 산신상과 산신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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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삼성각내 독성탱과 삼신제왕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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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삼성각에서 바라다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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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암 요사
금용암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북부산 톨게이트를 통해 백양터널을 지난 후 어린이대공원 또는 성지곡수원지 이정표를 찾아가면 된다. 어린이대공원 입구에 다다르면 입구 바로 옆길로 난 초읍동 주택가를 통과, 삼환 아파트 단지와 대진빌라 사잇길로 들어서면 바로 그곳에서부터 금용암으로 이르는 3백미터의 우거진 송림길에 접어들게 된다. 송림길을 지나면 금용암이 자리한다.
첫댓글 금륜(金輪)이니 금강경(金剛經)이니 하는 용어들이 만들어 진 것과 같이 금용(金蓉)도 그러한 취지에서
이름 붙인 금색 연꽃이며 금용암이라 사명(寺名)이 붙여지게 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