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도, 연해주, 대마도 모두 대한민국 땅! 모두 찾자!!! |
---|
일본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부터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국제법위반을 했으며 마침내 1910년 경술년에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점 36년 동안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 들은 우리 국민을 죽이고 문화유산을 강탈하고 역사를 왜곡하고도 모자라 또 다시 우리나라 고유영토인 독도를 빼앗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 들은 우리나라 독도를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는 계획 하에 일본 중등교과서 학습지도 요령해설서에 독도에 대해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 들은 영유권 주장을 넘어 반환까지 요구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 들이 더 이상 제국주의 근성을 못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간도, 연해주, 대마도 찾기 운동을 범정부와 범국민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 땅은 우리나라 땅인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에 팔아넘긴 것이다.
이제 그 땅을 이번 기회에 찾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는데도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나라로 반드시 후회할 날이 몇 년 내로 올 것이라 믿는다.
간도, 연해주, 대마도 모두 대한민국 땅!!!
정부는 한·일 어업협정을 종료하고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어업협정(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독도를 중간수역에 둠으로써 논쟁이 시작됐다.
협정에 따르면 협정당사자 일방이 협정종료를 서면통보하면 기존 협정은 6개월 뒤 폐기된다.
6개월 이내에 재체결 않으면 중간수역개념이 사라지고 그 때부터 영해에 따라 배타적어업을 하면 되고 독도는 한국 배타적 경제수역에 있는 울릉도의 부속도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영유권이 인정된다고 한다.
해결방안 : 독도군인(해군) 주둔, 유인도화 아파트건립, 한·일어업협정 파기 후 재협상요구, 전세계홍보·잘못된(전세계) 홍보시정요구, 관광화·해상호텔 건립, 하이드레이트(고체연료) 개발, 해양연구소 건립, 일본 UN 안전보장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간도·연해주 반환요구, 대마도 찾기 운동 등등
※일본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했다.
1696년 에도 막부 중앙정부는 독도는 울릉도 가는 도 중에 있는 조선의 섬으로 출어를 금지했다.
또한 에도 막부가 만든 일본 지도에도 독도는 없다.
1870년 일본 메이지 정부가 독도를 조선의 부속이라고 단정하고 1877년 일본 정부의 최고 기관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이라는 지령문을 하달했다고 일본에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가 주장하고 있다
-중앙일보 2008년 7월 17일
※정상수 명지대 인문과학 연구소 연구교수는 4일 "국사편찬위원회가 복사한 독일 외교부 정치 문서보관소 소장 한국 관련 외교문서를 판독하는 과정에서 고종이 당시 베를린 주재 공사관이었던 민철훈에게 보낸 전보의 독일어 번역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전보의 우리 원본의 소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고종 황제는 이 전보에서 "일본 정부는 이토 히로부미 후작을 조선 통감으로 임명하도록 짐을 압박하고 있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넘겨받으려고 한다.
이것은 국제법적 관점에서 용납이 안 된다"며 "귀하(민철훈)는 촌각을 다퉈 이러한 급박한 위기에서 황실과 대한제국이 시급히 벗어나 독립이 보장되고 국제법이 상실되지 않도록 독일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제법상 조약 체결 직후 항의나 반대의사를 표시하면 조약의 무효가 성립된다는게 국제법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을사늑약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주장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2008년 4월 5일 윤완준 기자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명백한 우리의 영토다.
섬의 어디를 파 보든지 조선과 관련된 유물이 나온다.
곧 미점령군사령부(GHQ)에 반환요청을 하겠다."
대마도 영유권 주장 1948년 8월 18일, 9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이 두 차례나 천명했으나 일본의 반응이 없자 1949년 1월 6일 연두회견을 통해서 공식 선언을 함.
※대마도에 우리나라 역사, 유적이 많다.
백제 승려가 창건한 수선사, 면암 최익현선생 순국 기념비, 덕혜옹주 결혼 기념비(1931년 대마도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宗武志)백작과 강제혼인), 김성일 시비, 금전성[(金田城:가네타노키) 조선식 산성, 한식 산성이라고 불린다.]:일본으로 퇴각한 백제 유민들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예상하고 쌓은 성으로써 나·당연합군과 최전선에서 맞서는 백제결사대의 주둔처였다.
※1900년 일본의 독도 편입기도를 눈치챈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칙령 제 41호를 반포해서 울릉도와 독도를 관할하는 행정관을 파견했다.
폭력과 탐욕으로 강제 점거한 모든 영토로 부터 일본을 추방한다.
카이로선언의 명시(1943년)
※울릉도와 리앙쿠르 암은 일본영토가 아니다라고 규정한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고시(1946년)
※독도 역사 연표(자료 : 독도박물관)
-512년 : 신라 하슬라주 군주 이사부 우산국정벌. 독도, 한국사에 편입.
-1417년 : 울릉도·독도의 주민 거주 금지.
-1432년 : '세종실록' 지리지 편찬.
"울릉도와 독도는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
-1693년 : 안용복 1차 도일.
-1697년 : 대마도에서 "막부가 울릉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다"고 알림.
-1785년 : 일본 하야시 시헤이, '삼국통랍도설'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
-1875년 : 일본 육군 참모국 '조선전도' 작성. 독도를 조선영토 송도(松島)로 표기.
-1876년 : 일본 해군 '조선동해안도' 작성.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기. 일본 시마네현, 지도를 작성하면서 독도를 시마네현 지도에 포함시켜야 할지 여부 내무성에 문의. 일본 내무성, 독도는 조선 영토라고 결론.
-1877년 : 일본 국가 최고 기관인 태정관(太政官) "독도는 우리와 관계 없다"는 지령문 만들어 내무성에 보냄.
-1900년 : 대한제국, 울릉도 군수의 관할 지역으로 '석도(石島·독도)'를 포함시킴.
-1905년 : 일본 각의에서 "독도는 무인도로서 다케시마라고 칭하고 시마네현 관할 아래 둔다"고 일방적으로 결정.
-1945년 : 광복 뒤 독도는 한국령으로서 일본의 어로제한선 바깥 지역으로 구분됨.
-1946년 : 연합국 최고사령부, 독도를 한국 영토로 구분.
'맥아더 라인'을 통해 일본이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하지 말 것도 명시.
-1950년 : 연합국 '옛 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 작성. 독도는 대한민국의 주권에 이양할 것 합의.
-1952년 : 한국 정부, 독도 영유권 재천명.
-1954년 : 일본 정부, 독도문제 국제사법재판소에 위임 제의. 한국 정부 거부.
-1981년 : 울릉도 주민 최종덕씨, 최초로 독도에 주민등록 이전.
-1982년 : 독도 일대를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
-1987년 : 독도 최초의 주민 최종덕씨의 사위가 독도로 주민등록 이전.
-2003년 : 독도에 우편번호(799-805) 부여.
-2008년 : 일본 정부 '중학교 사회과목 새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기술 넣음.
※미국지명위원회(BGN)는 독도를 '리앙쿠르암'으로 사용한지 30년이 넘은 것으로 확인.
2007년 독도를 '주권미지정'으로 분류한 후 2008년 독도명기를 변경 한일분쟁지역으로 표기함.
※미국 지명위원회는 일본과 중국이 분쟁 중인 세나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일본 땅으로, 러시아와 일본이 분쟁 중인 쿠릴 열도 4개섬은 러시아 땅으로 계속 표기하면서 유독 독도만 '주권 미지정'으로 바꿨다.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오늘 독도 영유권 표기를 '주권 미지정지역'에서 '한국(South Korea)' 또는 '공해(Oceans)'로 원상회복했다.
표기를 바꾼 지 1주일만이다. 부
시 미국대통령이 신속한 조치에 의해서...
-2008년 7월 31일 목요일 매일신문
※사료로 본 '독도는 우리땅' ·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와 독도) 정벌.
신라영토에 복속시킴
·930년(고려 태조 13년) : 고려에 귀속돼 조공관계 유지
·1416년(조선 태종 16년) : 울릉도 쇄환정책(刷還政策·왜구 침입 등에 대비해 섬 주민을 본토로 불러들이는 정책) 실시
·1425년(세종 7년) :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 안무사'로 임명하고 울릉도 파견
·1693년(숙종 19년) : 동래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 근처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이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힐책하다가 일본으로 붙잡혀감.
1696년 안용복은 울릉도에 침입한 일본인들에게 "송도(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호통쳐 쫓아냄
·1697년(숙종 23년) : 3년마다 정기 순찰
·1900년(대한제국 광무 4년) : 칙령 제 41호로 울릉도와 죽도(울릉도 앞바다의 유인도), 석도(독도)를 울릉군수가 관할토록 함
·1905년 :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한다는 내용으로 시마네현 고시
·1946년 :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지령(SCAPIN) 제 677호에서 울릉도와 독도, 제주도, 거문도 등을 일본 땅에서 제외
-동아일보 2008년 8월 2일 토요일 황장석 기자
※청송군립야송미술관(관장 야송 이원좌 화백)은 9월 25일까지 '우리나라 아름다운 고(古)지도 전시회'를 연다.
1800년대 중반에 목판으로 제작된 '해좌전도'는 조선 팔도의 부·목·군·현을 비롯한 행정정보와 도로·산맥·군사시설 등을 자세히 담고 있으며, 울릉도 오른쪽에 '우산'이라는 이름으로 독도를 그리고 있는데다 그 아래 '대마도'도 조선땅으로 그려 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
|
첫댓글 아마, 박정희 대통령의 궁극적 목표도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굶주림의 극복-부강한 대한민국-통일- 고토 회복 ... 이후 정권은 제 밥그릇을 버리지 못하는 바람에 님의 뜻을 잇지 못했습니다. 근혜님은 알고 있죠. 부친의 염원을...
독도는 우리땅~!!!대마도도~간도도 우리땅~!!!!!
이글 퍼갑니다, ㅡ 대마도는 돌아 오라 ㅡ 카페를 만들어서 독도 문제 간도 문제를 다루고 싶어도 컴실력이 부족해서 마음 맞는 이들을 초대 하지도 아직 못하고 있답니다, 뜻을 함께 할수 있고 컴도 잘하는 이의 도움이 필요 합니다,
맞아요, 일본이나 중국의 주장데로라면 대마도 간도 다 우리땅이지요...그런넘들이 오히려 제랄을 떤다니까요...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