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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향기속의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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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회원촬영 스크랩 자작일반사진 김제 금산사 <1>
공간(空間) 추천 0 조회 26 12.05.11 22: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2년 3월 윤달 삼사순레 김제 금산사를 찾아서.... 

 

 

모악산 금산사(일주문) : 
금산사 일주문은 1975년에 세워졌다.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그 비례감이 눈에 든다.

 

 

금산사 가는길

 

 

금산사 가는길

 

 

금산사 가는길

 

 

금강문 : 일주문을 지나 두번째 문이며, 양 옆칸에는 중앙 쪽으로 홍살을 세워 격리시키고,

그 안에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을 세웠다. 이 문을 통과함으로써 사찰 안에 들어오는 모든 악귀(惡鬼)가

제거되어 가람(伽藍)의 내부는 청정도량 (靑淨道場)이 된다는 것이다.

 

 

 

천왕문 : 일주문을 지나 3번째문이며,

절의 입구에 있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셔 놓은 문.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귀를 막기 위해 세운다.

 

 

 

보제루(普濟樓).

제루(普濟樓)는 누각(樓閣)으로 일주문(一柱門), 금강문(金剛門), 사천왕문(四天王門)에이어 네번째로

만나는 관문이다..  학술회의(學術會議)나, 미륵십선 수련회(彌勒十善 修練會), 설법회(說法會)등을 개최

(開催)하는 강당(講堂)으로 활용(活用)하고 있다.

 

 

성보박물관

 

 

 

보재루 좌측에 있는 부처님 상

 

 

대적광전(大寂光殿)

이 법당(法堂)은 수계(受戒), 설계(設戒), 설법(說法)등 사원(寺院)의 중요(重要)한 의식(儀式)을 집행

(執行)하는 곳이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본래(本來)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明殿)이였다. 대웅대광명전

(大雄大光明殿)으로 불리던 때에는 이곳에 법신비로자나불(法身毘盧자那佛), 보신노사나불(報身盧舍那佛),

화신석가모니불(化身釋迦牟尼佛)등 삼신불(三神佛)만을 봉안(奉安) 하였다고 한다.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년(年)때 경내(境內)의 모든 전각(殿閣)이 소실(消失)된 후(後) 인조(仁祖) 13년(年); 1635년(年) 에

이르러 도량(道揚)을 재건(再建) 하였는데, 대웅대광명(大雄大光明殿)전과 극락전(極樂殿), 약사전

(藥師殿)에 봉안(奉安)하고 있던 5여래(如來) 6보살(菩薩)을 다시 조상(造像)하여 모두 한자리에 봉안

(奉安)하고 현액(懸額)을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 바꾸었다. 1986년(年) 원인(原因)모를 화재(火災)로

법당(法堂)이 전소(全燒)되어 보물(寶物) 제(第) 476호(號) 지정(指定)이 해제(解除) 되었으나,
1990년(年)에 원래(元來)의 모습대로 복원(復元) 하였다.

 

 

미륵전(彌勒殿)    국보 제62호

미륵전(彌勒殿)은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봉안(奉安)하기 위하여 766년(年);

新羅 惠恭王(신라혜공왕) 2년(年)에 처음 건립(建立)한 법당(法堂)이다.
법당(法堂) 내에는 미륵불(彌勒佛), 법화림보살(法華林菩薩) 그리고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 등(等)

삼존상(三尊像)이 조상(造像)되어 있다. 미륵전(彌勒殿)은 정유재란(丁酉再亂)에 전소(全燒)되었으나

조선(朝鮮) 인조(仁祖) 13년(年); 1635년(年)에 수문대사(守文大師)가 한국(韓國) 유일의 삼층법당

(三層法堂)으로 재건(再建)한 것이다. 법당외부(法堂外部) 1층(層)과 2층(層)은 정면(正面) 5간(間) 측면

(側面) 4간(間)이고, 3층(層)은 정면(正面) 3간(間) 측면(側面) 2간(間)인 팔작(八作)지붕 다포 형식(多包

形式)이며, 법당(法堂) 내부(內部)는 층(層)이 따로 구분(區分) 되어 있지 않은 통층(通層)이다.
건물(建物) 중앙(中央)의 제일(第一) 높은 기둥은 하나가 아니라 몇 개(個)의 기둥을 연결(連結)하여 만든

것이다. 이러한 기둥양식은 목조탑(木造塔) 양식(樣式)에서 번안(飜案)된 구조(構造)이다.
오랜 풍우(風雨)를 지내는 동안 건물(建物)의 목재(木材)가 썩고 건물(建物)이 기울어 1988년(年) 부터

1993년(年)까지 5년(年) 간(間)에 걸쳐 문화재관리국(文化財管理局)의 주관(主管)으로 건물(建物)을 전면

해체보수(全面解體補修)하였으며 1999년(年)에 다시 번와공사(飜瓦工事)를 하였다.
법당내부(法堂內部) 지하(地下)에는 년대미상(年代未詳)의철재연화대( 鐵製蓮花臺)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

법당내부(法堂內部)에는 원래(元來) 철불(鐵佛)이 모셔져 있지 않았을까 추정(推定)하고 있다.
항간(巷間)에는 이 연화대(蓮花臺)가 솥으로 알려져 있으며, 솥을 만지는 모든 사람은 숫세(宿世)의 업장

(業障)을 소멸(消滅)하고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한다고 전(傳)해오고 있다. 미륵전(彌勒殿)의 터는 원래

(元來) 용(龍)이 살고 있던 연못이었으나 어떤 고승(高僧)의 가르침에 따라 참숯으로 연못을 메워 용(龍)을

쫓고 미륵전(彌勒殿)을 건립(建立)하였다고 한다.

 

 

대장전(大藏殿). 보물 제 827호

대장전(大藏殿)은 미륵전(彌勒殿)을 장엄(莊嚴)하는 정중(庭中) 목조탑(木造塔)으로 미륵전(彌勒殿)과 함께 일찍이 건립(建立) 되었다. 정유재란(丁酉再亂)에 소실(消失)된 후(後) 1635년 조선 인조 13년(朝鮮 仁祖

13年)년에 재건(再建) 되었으며,  1922년 미륵전(彌勒殿) 앞에서 현(現) 위치로 이전(移轉) 하였다.
현재(現在) 지붕위에 남아 있는 복발(覆鉢)과 보주(寶株)등은 조선 인조(朝鮮 仁祖) 이전(以前)의 목탑(木塔)

잔영(殘影)이며 법당(法堂) 안에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과 상수제자(常隨弟子)인 가섶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를 봉안(奉安)하고 있다.
건물(建物)은 비교적(比較的) 단조(單調)롭고 소규모(小規模)이지만 정중(庭中) 목탑(木塔)의 변형건물

(變形建物)로 주목(注目)되며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후불광배(後佛光背)의 조각(彫刻)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석등(石燈)    보물 제 828호

법당(法堂)앞을 밝히는 등(燈)불로 인등(引燈), 장명등(長明燈)이라고도 한다.
이 석등(石燈)은 화강암(花崗岩)으로 만든 높이 3.9m의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작품(作品)으로 1922年

대장전(大藏殿)을 이전(移轉)할때 현위치(現位置)로 옮겼다. 방형판석(方形板石)을 지대석(址臺?)으로

하대(下臺)는 원형(圓形)인데 복련(伏蓮)으로 장식(粧飾)하였다.
간석(竿石)은 팔각형(八角形)이며 각(各) 모서리마다 선(線)을 쳐서 우주(隅柱)인듯이 강조(强調)하였다.
상대(上臺)는 앙련(仰蓮)으로 장식(粧飾) 하였다.
화사석(花絲石)과 개석(蓋石)은 팔각형(八角形)이며 개석(蓋石) 정상(頂上)에는 원대(圓臺)를 두어 상륜

부(相輪部)를 받들게 하였다.

 

 

육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보물 제 27호

이 탑(塔)은 고려초(高麗初)의 석탑(石塔)으로 봉천원(奉天院) 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현재(現在)의 높이는

 2.18m이며 11층(層)  탑(塔)으로 우리나라의 탑(塔)이 대부분 화강암(花崗巖)으로 만든 방형탑(方形塔)인데

 비(比)해 이 탑은 점판암(粘板岩)의 육각다층석탑임(六角多層石塔)이 특색(特色)이다. 이색적(異色的)인

각층(各層)의 채감비례(體感比例)가 아름다우며 섬세(纖細)한 조각기법(彫刻技法)을 보여준다.
원래(元來) 이 탑(塔)에는 층(層)마다 탑신(塔身)이 있었으며 육각(六角)의 모서리마다 풍경(風磬)이 달려

장엄(莊嚴)스러웠으나, 지금은 가장위의 2개층(個層)의 탑신(塔身)과 11개층(個層)의 옥개석(屋蓋石)만

남아있다.

 

 

노주(露柱)      보물 제 22호

이 석조(石造) 건조물(建造物)은 그 용도(用途)는 유물(遺物)이나 그 형태(形態)가 방형(方形)의 연화대

(蓮花臺)처럼 조성(造成)된 특이(特異)한 석조물(石造物)임에 착안(着眼)하여 노주(露柱)라고 부르고 있다.

석조(石造) 건조물(建造物)의 구조(構造)는 상(上), 중(中), 하(下) 삼단(三壇)으로 구성(構成)되어 있는데,

각(各) 단(壇)마다 안상(眼象)과 화형문(花形紋) 그리고 귀기와 앙련(仰蓮), 복련(伏蓮) 등이 화려(華麗)하고

다양(多樣)하게 조각(彫刻)되어 있다. 특(特)히 상대석(上臺石)위에는 일반(一般) 석탑(石塔)의 상륜부

(相輪部)와 유사(類似)한 양식(樣式)이 조각(彫刻)되어 있는데, 상륜부(相輪部)가 원형(圓形)이며 보주

(寶珠)사이는 간주(竿株) 형식(形式)인 것이 매우 특이(特異)하다. 연봉형(蓮峯形)인 보주(寶珠)의 조상

(造像) 기법(技法)으로 보아 고려(高麗) 초기(初期)의 작품(作品)일 것으로 추정(推定)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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