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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5] I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묵상 I 루카 9,1-6
그때에 1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보내시며, 3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려라.” 6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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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및 복음 묵상] : 가난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 <독서 : 에즈 9,5-9 / 복음 : 루카 9,1-6>
이 시대의 십자가와 함께 살아오신 노老사제의 푸념이다. “나는 싸워서 이겨본 적이 없다. 늘 지는 쪽을 선택했다.” 제자의 사명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데 있으니 그 노老사제는 할 바를 다 하셨다. 그 나라를 건설하는 일은 주님 소관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바를 다 했으면 더 이상 초조해하지 마라. 나머지는 주님 몫이다. 좋은 결과가 안 보인다고 실패한 삶이라고 단정하지 마라. 주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이는 교회 사명에도 적용된다. 세상은 성공할 만한 곳에 투자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다. 도시 빈민과 농민, 노동자와 이 사회의 을乙들, 비정규직, 청소년, 노인, 이주민들은 성공을 바라보기 힘들다. 그래도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공의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열매가 없어도 결코 실패가 아니다. 그들을 향한 노력 자체가 세상을 거스르는 표징이기에 이미 성공이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가난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을 굶기실 리가 없다. 가난은 하느님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표가 된다. 나를 세상에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지하면서 오늘도 가난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말씀자료 : 정제천 신부] |
[다해] 연중 제25주간 수요일(19-09-25) I 묵상기도방(사이버기도실) |
시작기도 : ▷
저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주님 앞에 선 저는 그저 작고 연약한
인간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저의 연약함마저 사랑하시고
돌보아주시는 주님께 저를 맡깁니다.
메마른 광야 한가운데에서도 제가
당신의 사랑을 잊지 않고 찾게 하시고,
그곳에 당신 말씀으로 생명을 꽃피우게 하소서. |
오늘의 기도지향 :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생명이신 주님, 당신이 주신 생명을 돌보는 거룩한 직종에 봉사하고 있는 모든 의료인들이 참된 윤리의식을 가지고 사랑으로 환자들을 돌보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으로 당신께 의탁하며 생명을 돌볼 수 있는 은총을 베푸소서.
오늘의 복음 : [다해]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루카 9,1-6
그때에 1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보내시며, 3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려라.” 6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었다.
영적독서 :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 것
가장 보잘것없는 일을 충실하게 하십시오.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뜻인 위대한 일을 위해서 말입니다. 나는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빛나는 행위를 추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뒤 나머지는 하느님 손에 맡겨드리고 노력의 대가에 대한 모든 욕심을 말끔히 내던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라는 선물, 곧 당신이 하는 행위마다 쏟아 넣은 사랑의 정도입니다. 최선을 다했다면 어떤 실패에 대해서도 상심하지 마십시오. 성공했다고 자랑하지 말고 모든 영광을 마음 깊이 감사하며 하느님께 돌리십시오. 당신이 실망한다면 그것은 자만의 표시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의견에 애태우지 마십시오. 겸손하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김문태 |「세 신학생 이야기」중에서> |
[다해] 연중 제25주간 수요일(2019-09-25) | 말씀 묵상방 [Lectio Divina & Comtemplation] * 독서 : 에즈 9,5-9 / 복음 : 루카 9,1-6 * |
에즈라는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참회의 기도를 바치며, 예언자들이 알려 준 "남은 자들"의 귀환에 감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려고 제자들을 사도로 파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파견하시면서 활동 지침을 주셨는데, 그것은 돈에서 안전을 찾지 말고 하느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활동 지침은 가난이 오히려 참된 자유를 보장해 준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복음). |
<말씀묵상-1> : † 복음선포 어제와 오늘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하늘나라의 선포, 병자치유, 구마의 활동을 위해 12제자를 파견하신 내용과 그들에게 분부하신 여장규칙을 전해주고 있다. 12제자 파견과 여장규칙에 대해서는 공관복음 모두가 전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마태 10,5-10; 마르 6,7-13) 마태오는 따로 편집한 파견설교(10장)를 위한 서두에 배치하였다.
마르코와 루가의 대목을 비교하여보면 한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마르코는 전교여행 중에 지팡이와 신발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루가는 이를 금하고 있다. 루가는 마르코의 원전을 옮겨 쓰면서 의도적으로 "지팡이" 휴대를 금하고 있으며, 신발 이야기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루가나 마르코가 똑같이 휴대를 금하고 있는 식량자루, 빵, 돈은 어떤 것인가? 이들은 선교자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지팡이는 선교자의 생명과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집을 떠날 땐 통상 지팡이를 휴대하였는데, 이는 맹수나 뱀, 강도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던 것이었고, 신발은 돌길과 거친 길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마르코는 지팡이 휴대를 허용하는데 왜 루가는 이를 금하고 있을까? 루가는 선교여행시 선교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하느님의 보살핌과 안배에 의탁하라는 것이다.
지금껏 제자들은 예수님의 동반자였고, 그분의 증인들이었다. 이제는 그들도 예수님처럼 세상에 파견된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세상에 나아갈 것을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맡기셨고,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그 밖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보살펴 주실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자들은 실제로 길을 떠나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며 이르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고쳐 주었던 것이다.(6절)
그러나 모든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후일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드신 후 베드로의 3번 배반을 예고하시고는 "내가 너희를 보낼 때 돈주머니나 식량자루나 신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족한 것이라도 있었느냐?"(루가 22,35) 하시며 사도들을 질책하신다. 물론 제자들은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루가 22,36)고 대답하지만 그들 중에 하나는 이를 어겼던 것이다.
오늘날의 선교상황은 그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현대가 매스미디어와 정보화 세계에 살고 있는 만큼 온갖 것을 동원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시대로 변했다. 배낭을 매고 온갖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선교길에 오르는 우리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갖가지 홍보매체와 문명의 이기(利器)를 사용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교회도 권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님이 있는 그대로를 요구하신 "가난한 예수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말씀자료 : 박상대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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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2> : † 파견사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가르치신 후 하느님나라 복음선포를 하도록 파견하시면서 훈시하신 내용입니다. 이 파견사화는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에 한군데씩, 오늘 루가 복음에 두 군 데 등 네 차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훈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로 '더러운 영을 제어하는 권능'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신비스런 힘을 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 안에 혼란이 있다는 것을 '더러운 영' 혹은 '악령'이라는 표현했습니다. 그 당시는 신체적, 정신적 질병과 사회적 관계의 모든 혼란은 이 '더러운 영'의 조화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나쁜 힘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도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선포는 그런 혼란의 해악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둘씩 보내는 것은 유다교의 영향을 받아 초대교회에서도 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준비는 꼭 필요한 것 외에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팡이는 맹수와 강도들을 물리치는 데 필요하고, 신발 또한 필요한데 다른 복음에서는 지팡이와 신발조차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속옷을 두벌 껴입는 것은 그 당시 부자들이 하는 것이므로 금하십니다. 필수불가결한 것,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일체 가지고 가지 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니라는 말씀입니다.
넷째로 "일단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날 때까지 머물러 있으시오" 라는 말씀은 초기 교회가 가정 교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신자들 중 넓은 가옥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 집을 공동체 집회 장소로 제공하였습니다. 이런 집을 중심으로 지역 교회가 발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집 하나가 집회 장소로 정해졌으면, 그 집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다섯째로 먼지를 터는 것은 절교를 뜻하는 상징적 행동으로 먼지는 종말 심판 때에 불리한 증거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름을 바르는 치유법은 그 당시 널리 유행한 치유법으로 초대교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훈시는 대부분의 제대로 된 종교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중요한 영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지 않지만 불교에서는 스님들이 탁발 그릇을 들고 다니며 오직 남이 베푸는 적선에 의해서만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탁발 그릇을 티벳에서는 '떨어지는 것을 받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룽세라고 한답니다. 이런 의미에서 꼭 필요한 것 외에 가져가지 말라는 이 가르침의 중요한 이상은 소박함과 겸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피정이나 연수갈때 혹은 여행을 갈때도 얼마나 가져가는 것이 많은지, 평소에 우리의 행동중에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심리는 불안해서, 그리고 의지하기 위해서랍니다. 가방안에 온갖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꼭 필요한 것과, 좋아하는 것이나 가지고 싶은 것을 구별 못해서 갈등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또한 생활용품이나 그릇이나 장롱속에 옷이 그렇게 많아도, 늘 입을게 없다고, 불평하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좋다는 운동기구나 무슨 테이프는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이 생기면 또 구입하고 또다시 후회하면서 늘 욕구불만에 허우적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것을 뭘 산다든지 뭘 먹는다든지 하는 것으로 메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래의 자신을 피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것과 좋아하여 가지고 싶은 것과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꼭 물어봅니다. 처음에는 꼭 필요한 것 같은 것도 계속해서 정말 꼭 필요한가? 라고 자꾸 물어보다 보면 내게 정말 꼭 필요한 것은 그냥 생기거나 아니면 그 필요성이 사라집디다. 사람들은 제 보고 핸드폰을 사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데, 귀할때는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필요 없었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 오히려 제가 필요없게 되어 사지 않고 있습니다.
요즈음 가을 바람이 참으로 상쾌합니다. 하느님께서 공짜로 주시는 이 상쾌한 바람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면 그 어떤 것을 가져다주어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상쾌한 바람과 함께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을되시길 빕니다..........◆
[말씀자료 : 김만수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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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