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추락하던 한국영화가 와신상담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작년 한 해를 조용히 보냈던 중견 감독들이 대거 신작을 계획하고 있고, 전례가 없던 모험적 시도도 눈에 띈다. 만주 웨스턴 활극과 경성 로맨스, 중년의 부부와 시각 장애인의 사랑, 루저 스키 대표팀의 스포츠 영화 등 다양성이 만개할 2008년. 부활을 작정한 한국영화 24편을 소개한다. 프로젝트가 확정됐더라도 올해 안에 크랭크 인이 어렵거나 개봉 자체가 불투명한 영화는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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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살거나 달리거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감독 김지운 | 출연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 제작 영화사그림, 바른손영화사업본부 | 개봉 여름
세 놈이 있다. 어째 좀 ‘이상한 놈’과 알고 보니 ‘좋은 놈’, 시종일관 ‘나쁜 놈’. 그들은 한패가 아니다. 다만 한데 얽힐 뿐이다. ‘이상한 놈’은 만주 벌판을 오토바이로 가로지르는 열차털이범 윤태구(송강호). 만주 한복판에 파묻어도 살아 돌아올 잡초 같은 놈이다. ‘좋은 놈’은 돈 되는 건 뭐든 사냥한다는 냉철한 현상범 사냥꾼 박도원(정우성). 겉보기엔 돈만 따지지만 독립군과 관련도 있는, 알고 보니 근사한 놈이다. ‘나쁜 놈’은 냉혹한 마적단 두목이자 살인청부업자 박창이(이병헌).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살벌한 놈이다. 무법천지 만주 벌판에서 각자의 생존방식을 터득한 이들이 운명처럼 맞부딪치는 영화가 ‘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다. 알려졌다시피 제목은 마카로니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에서 따왔다. 레오네의 영화와 달리 ‘추한 놈’(The Ugly)을 ‘이상한 놈’으로 바꾸고,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만주 벌판에서 주인공들이 서로를 쫓고 쫓는 액션 오락 활극으로 태어나고 있다.
세 놈을 연기하는 ‘환상의 트리플’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의 액션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송강호는 오토바이의 한계를 뛰어넘은 아크로바틱한 액션과 현란한 말발을, 이병헌은 단도를 이용한 섬뜩한 칼 솜씨를, 정우성은 달리는 말 위에서 라이플과 샷건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총 실력을 선사한다. “말 못 타면 바보”로 불리던 중국 로케 현장에서 기존의 한국 영화와는 종류가 다른, 대륙 액션 활극의 쾌감이 만들어졌다는 소문에 벌써부터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이 쏟아진다. 100억 원 가량의 대규모 순제작비, 화려한 캐스팅, 현란한 액션으로 무장한 <놈놈놈>의 성공 여부에 2008년 한국 영화의 사활이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건 이상한 지도에서 비롯됐다. 열차털이범 태구가 우연히 훔친 정체불명의 지도 한 장. 그걸 찾으라는 임무를 맡은 창이가 열차를 덮치고, 창이를 뒤쫓던 현상금 사냥꾼 도원도 열차에 오르면서 세 남자의 대추격전이 펼쳐진다. 지도의 비밀을 풀어가는 동안 세 남자의 과거도 밝혀지고, 인간과 자연을 상대로 악다구니를 써가며 생존해가는 사내들의 야망이 스크린을 뒤덮는다. 어허, 큰일 낼 놈들. 장르가 뒤섞인 스펙터클한 활극을 담아내는 이모개 촬영감독의 카메라, 시대를 종잡을 수 없게 이국적인 조화성 미술감독의 프로덕션 디자인,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할 달파란과 장영규의 음악이 그 뒤를 따른다. 모두 마음은 고향에 있어도 몸은 대륙을 달리는 사내들을 사수하는 배경이 된다.
2007년 여름 석 달간 영상 40도의 끓는 더위를 자랑하는 고비사막 접경 지역 중국 둔황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촬영한 후 지난 10월 귀국한 제작진은 11월부터 전북 정읍에서 막바지 촬영을 하며 해를 넘겼다. 오는 1월 말 스탭들과 배우들을 극한으로 몰고 갔던 촬영을 마감하는 <놈놈놈>, 잘만 된다면 <인디아나 존스>와 <스타워즈> 시리즈가 결합한 듯한 동방 최고의 모험담을 펄펄 끓는 여름 만날 수 있다. 드넓은 벌판, 삭막한 황야에 부는 한줄기 돌개바람 사이로 놈들의 기운이 몰려온다. (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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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한 경성의 쾌락청춘들 <모던보이> 감독 정지우 | 출연 박해일, 김혜수, 이한 | 제작 KnJ엔터테인먼트 | 개봉 4월
정지우 감독은 장편 데뷔작 <해피엔드>(1999) 전부터 신문물과 향락이 흘러넘치는 컬러풀한 경성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던 2000년, 1937년 경성의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다룬 이지형의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의 광고를 본 후 바로 판권 구입을 결정했다. 원작을 읽기 전까지 시대 재현이 관심이었지만, 읽고 나선 캐릭터에 매료되었다. 시대의 공기와 무관하게 개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주인공의 모습이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서기관 이해명(박해일)은 맘에 드는 신여성을 만나 낭만적인 로맨스나 즐겼으면 하는 것이 바람인 청춘. 그런 해명에게 꿈같은 여인이 찾아온다. 친구 신스케(이한)와 놀러 간 비밀구락부에서 댄서 조난실(김혜수)을 보고 첫눈에 필이 꽂힌 것이다. 난실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해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녀는 돌연 자취를 감춘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녀를 찾아 나선 해명은 난실이 이름도, 직업도 여럿이란 사실에 혼란에 휩싸인다.
소품영화에서 여성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던 정지우의 전작들에 비해 <모던보이>는 여러모로 의외인 영화다. 77억 원의 만만치 않은 예산이 들어간 이 영화에서 “흥행에 재미를 못 봤던 <사랑니>(2005) 때의 태도는 지양하고 있다”는 게 정지우 감독의 설명이다. 희대의 캐릭터 이해명을 중심에 놓고 사건 위주의 빠른 이야기 전개를 통해 시대극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작품을 만들려 했다는 것. 대중의 눈높이에 최대한 다가선 <모던보이>는 가장 대중적인 정지우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성을 소재로 한 작품이 줄줄이 이어지게 될 2008년 원작에 캐릭터를 강화한 건 시대 재현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감독의 강한 의지 표명이다. ‘아줌마 파마’와 건들거리는 표정의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박해일, 감춰둔 춤과 노래 실력을 십분 뽐내는 김혜수의 연기가 목하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허남웅 기자)
정지우 감독 인터뷰
원작소설의 판권을 구입한 것이 2000년인데 벌써 7년이 흘렀다. 바로 하고 싶었지만, 규모가 너무 큰데다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아 먼저 사이즈가 작은 <사랑니>를 하게 됐다.
<해피엔드> <사랑니>와 달리 남자 주인공이 전면에 나선다. 처음부터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려고 작정했다. 여자처럼 남자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매혹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기본은 다르지 않다.
박해일 캐스팅이 가장 눈에 띈다. 이해명은 기질적으로 박해일과 비슷한 면이 있다. 캐스팅 소식이 전해질 즈음 일부 모니터링한 사람들이 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정말 가관인 캐릭터가 만들어졌는데, 박해일의 연기 폭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모던보이>가 보여주는 경성은 어떤 모습일까? 전형적인 시대 고증도 있는 반면, 다소 만화적인 설정도 있다. 시대 재현에만 중점을 뒀다면 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왜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다. <모던보이>는 시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캐릭터가 더 중요하다. 극중 인물을 옛날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영화는 존재가치가 떨어진다. 지금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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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으로 소박한 영웅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감독 정윤철 | 출연 황정민, 전지현 | 제작 CJ엔터테인먼트 | 개봉 1월 31일
세상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게 많다. 하물며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이런 의문에 온몸으로 대드는 영화가 있다. <말아톤>(2005) <좋지 아니한가>(2007)의 정윤철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이하 <슈퍼맨>).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사소한 기적을 믿는 영화다. <말아톤>의 초원이가 그랬듯, <좋지 아니한가>의 황당한 패밀리가 그랬듯, <슈퍼맨> 역시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며 서로의 진심을 깨닫는다.
3년째 신파 휴먼 다큐를 찍어온 PD 송수정(전지현)은 밀린 월급 대신 회사 카메라를 챙겨 나왔다가 날치기를 당한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하와이언 셔츠의 사나이. 도둑을 쫓아 카메라를 찾아준 그는 악당이 머릿속에 박아 넣은 크립토나이트 조각 때문에 지금은 초능력을 쓸 수 없다는 자칭 슈퍼맨. 정의를 수호한다는데, 하는 일이 소박하시다. 여고생 괴롭히는 바바리맨 혼내주기,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은행에 들어가 에어컨 끄기, 횡단보도 건너가는 할머니 도와주기, 물구나무서서 태양으로부터 지구 밀어내기. 흠… 어디가 슈퍼맨인가, 딱 봐도 미친놈이지. 인간이 싫고 미친 인간은 더 싫은 송수정은 그저 시청률 대박감이다 싶어 그를 카메라에 담지만, 슈퍼맨 머릿속에 박힌 ‘물건’을 발견하면서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이 남자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SF가 아니라 휴먼 드라마인 <슈퍼맨>은 유일한 작가의 소설 <어느날 갑자기>에 수록된 동명 단편을 영화화했다. “아이들의 유머로 어른도 넘어뜨리겠다”는 정윤철 감독은 “인간극장이라는 한국적인 소재와 슈퍼맨이라는 세계적인 소재를 결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려” 한다. 행복한 전체 관람을 위해 “구정 설 연휴에 맞춰 반드시 납품하겠다”고 장담한 정 감독이 초인적인 의지로 배우와 스탭들을 닦달해가며 두 달 만에 촬영을 끝냈으니, 이 또한 불가능을 가능케 한 것. 한국 영화에서 만날 수 없었던 캐릭터라 출연을 결심했다는 황정민, 범아시아 프로젝트를 뒤로하고 골초에 원형 탈모를 지닌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 ‘쌩얼’을 마다 않은 전지현, 두 사람의 호흡으로 슈퍼맨의 희한한 활약이 완성됐다. 동정 없는 세상에 참견하는 크레이지 슈퍼맨의 행보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고민 좀 될 것이다. (김혜선 기자)
정윤철 감독 인터뷰
슈퍼맨이 지구를 돌듯 엄청난 속도로 촬영을 끝냈다. 미쳤지.(웃음) 이제 편집 다 끝나고 사운드 작업만 남았다.
완성돼가는 영화를 보니, 기분이 어떤가? 구정 때 보기 딱 좋을 것 같다.(웃음) 어제 초등학교 3학년 4명한테 보여줬는데, 반응이 좋았다.(웃음)
소시민 슈퍼맨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뭔가? 작은 것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거. 현재를 바꾸면 미래도 바꿀 수 있다. 슈퍼맨은 결국 머릿속에 박힌 크립토나이트를 빼고 잃어버린 초능력을 되찾는데, 그건 우리 모두 슈퍼맨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심플하고 간단하지만 교감이 되는 얘기다.
어디서 본 듯한 얘기이기도 한데.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다르다. 착한 영화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한다. 완성되어가는 걸 봐선 건전한 메시지를 기분 나쁘지 않게 전할 것 같다.
판타지 요소도 많던데? 누추한 공간에서 판타지를 꿈꾼다는 게 인간의 삶을 가꾸는 거다. 단, 그 공간이 도피처가 아닌 현실의 자극제, 휴식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치하지 않게 보이려고 노력 중이다.
<말아톤>의 조승우, <좋지 아니한가>의 김혜수처럼 배우의 다른 면모를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다. 이번엔 어떤가? 슈퍼맨이라는 어려운 역을 황정민이 정말 잘해줬다. 전지현도 황정민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줘 놀랐다. 그녀의 20대에 방점을 찍는 연기가 될 거다.
존 윌리엄스의 <슈퍼맨> 테마 음악은 쓰나? 비싸서 못 쓴다.(웃음) <라만차의 기사>에 나오는 ‘임파서블 드림’은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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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아이러니의 용광로 <라듸오 데이즈> 감독 하기호 | 출연 류승범, 김사랑, 황보라, 이종혁, 김뢰하, 오정세, 고아성 | 제작 싸이더스FNH | 개봉 1월 31일
1930년대 경성은 2008년 한국 영화가 찾은 신천지다. <라듸오 데이즈>는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한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갖은 해프닝을 다룬다. 한량 PD 로이드(류승범)의 유일한 관심사는 재즈가수 마리(김사랑)의 사랑을 얻는 것이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니 그녀가 출연하는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을 제작키로 한 것. 마리 외에 기생 명월(황보라), 아나운서 만철(오정세), 작가 노봉알(김뢰하), 효과음 담당 K(이종혁), 애드리브의 귀재 순덕(고아성)이 모이지만, 첫 회부터 미스 캐스팅에 실수연발로 방송사고 직전까지 간다.
<라듸오 데이즈>는 일제치하라는 시대의 외피만 빌려 현 세대를 풍자하는 캐릭터 코미디다. 퇴폐적이고 쾌락을 쫓던 당대 분위기가 지금과 다를 바 없다는 판단에서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통해 시대와 인간을 비꼬고 있다. 방송국을 무대로 7명의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지만,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가 될 수 있도록 디테일을 구성했다. PPL을 비롯한 영화 산업에 대한 풍자에서 배다른 남매의 사랑을 우려먹는 한국 드라마의 행태를 꼬집기까지, 캐릭터들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웃음을 유발한다.
하기호 감독은 “출연배우 모두가 주인공처럼 보이도록 각기 다른 캐릭터를 부여했다”고 말한다. 우디 앨런 작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의 풍자를 참고자료로 삼고, 캐릭터 구성은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를 연상시키는 <라듸오 데이즈>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색다른 경성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허남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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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을 쫓는 차악의 드라마 <추격자> 감독 나홍진 | 출연 김윤석, 하정우 | 제작 (주)영화사 비단길 | 개봉 2월 14일
보도방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김윤석)가 실종된 여자를 찾기 위해 희대의 살인마 영민(하정우)을 뒤쫓는 이야기. 얼핏 정의감으로 무장한 형사의 범인 추적기가 연상되지 않나? 그러나 영민의 연쇄살인이 작은 구성요소에 불과하듯, <추격자>는 죄책감이나 책임감 같은 감정과는 무관한 나쁜 남자 중호가 최악의 인간 영민을 쫓는 이야기다. 자신이 관리하던 여자들이 실종되고 이 과정에서 피 칠갑을 한 영민과 우연히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 게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추격자>는 <완벽한 도미 요리>로 2005년 미장센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상에서 벌어지는 30여 시간을 통해 해가 중천에 뜬 이튿날에 일어나게 될 중호의 작은 변화와 묵직한 드라마에 치중한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영민을 쫓을 수밖에 없는 중호의 상황은 살인의 동기를 파헤치면서 이를 동정하도록 하는 사회적 풍토를 정면으로 부인하며 영민에게 어떠한 연민의 자리도 마련해주지 않는다. 실재하는 연쇄살인범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추출하여 완성한 인물 영민은 절대악의 화신으로 묘사되고, 이를 쫓는 거친 남자 중호로부터는 사회 시스템의 불합리한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추격자>는 한국영화에 빈발하는 반전강박증과 무관하고 전형적인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 촬영 당시 “김윤석과 하정우가 맞닥뜨려 연기하는 것만으로 촬영장의 공기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 나홍진 감독의 설명처럼 폭발할 듯 넘치는 두 남자의 에너지가 올곧이 담길 것이다. (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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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한 루저들, 날다 <국가대표> 감독 김용화 | 출연 미정 | 제작사 KM컬쳐 | 개봉 미정
김용화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루저들은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다. <오! 브라더스>(2003)에서는 조로증을 앓는 소년이 난데없이 사채업자의 행동대장이 되고, <미녀는 괴로워>(2006)에서는 소심한 뚱녀가 미녀의 육체를 입는다. 세 번째 영화 <국가대표>에서는 대한민국 20대 루저들이 국가대표의 옷을 입는다.
배경은 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온 도시를 리모델링 중인 이곳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미개척 분야인 스키 점프가 없으므로 자격 미달이라는 것. 전문가도 선수도 하나 없는 스키 점프 국가대표팀을 급조해 만들긴 했는데, 코치며 선수들 면면이 참 가관이다. 어린이 스키 교실 강사가 코치, 엄마 찾기 위해 한국에 온 해외 입양아, 바람둥이 생활에 지친 나이트 ‘삐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철없는 고깃집 총각, 군 면제를 목표로 병든 할머니와 동생에 치여 사는 4차원 정신세계를 지닌 청년까지. 그들의 태극마크, 가리고만 싶다.
<국가대표>는 개인적 욕심으로 비인기 종목인 스키 점프에 투신하는 청년들의 좌충우돌에 초점을 맞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몸으로 부딪히며 바닥부터 일궈내는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해 김용화 감독은 “<미스 리틀 선샤인>(2006)처럼 아주 조금,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 이뤄낸 성장”을 그려낼 예정이다.
“첫째도 구조, 둘째도 구조”를 외치는 김용화 감독의 지휘로 4명의 작가들이 달라붙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여겨볼 것은 스키 점프 장면이다. 스키 점프 대회의 시각적 스펙터클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김용화 감독과 스탭들은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스키 점프 빅4 대회를 참관해 꼼꼼히 분석할 계획이다. “스포츠 자체가 캐릭터”가 될 정도로 스키 점프 대회 비중도 상당하다. 스키 점프로 하늘을 나는 루저들의 장엄한 이야기가 기대된다. (송순진 기자)
김용화 감독 인터뷰
시작이 궁금하다. 제안을 받았는데 실화이다. 무주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고 투자를 엄청 했는데, 국내 스키 점프 시설이 전무하고 변변한 팀마저 없다는 지적을 받고 국가대표팀이 급조되었다. 여기에 <제리 맥과이어>(1996) <미스 리틀 선샤인> <쿨 러닝>(1993)이 섞이면 재미있는 스포츠 영화가 나올 것 같다.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루저들이다. 그런 설정이 좋다. 필사적인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생모를 찾아서 복수하고 싶은 입양아, 인생의 구심점이 여자인 놈, 평생을 아버지한테서 벗어나지 못하는 놈, 구질구질한 생활과 매달리는 동생한테서 떨어지고 싶은 놈. 그런 애들이 난다. 여기에 비인기 분야에서 고생하는 선수들의 비애와 좌절이 녹아들어간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결국 자기 자신을 대표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국가대표가 뭔가. 우리 자신이 바로 국가대표다, 그런 얘기. 경기에서 처참하게 깨지지만 조금이나마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는 성찰을 보여주려 한다. 극장 문을 나가며 힘이 난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게 목표다.
스키 점프 장면은 어떻게 찍을 건가? 뭘 잘 알아야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자료 조사를 위해 독일, 오스트리아에 대회 보러 간다. 촬영은 국내에서 한다. 대표 선수들이 자격 검증 대회와 올림픽 대회에 두 번 출전하는데, 무주에 지어진 스키 점프대와 내년 10월 완공하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를 염두에 두고 있다. 국내 스키장 시설도 해외 못지않다. 제작비는 60억 원 이상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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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암살 프로젝트 <26년>(가제) 감독 이해영 | 출연 미정 | 제작 청어람 | 개봉 하반기
전직 대통령 암살, 이런 파격적 소재가 또 있을까. 5·18 광주민주항쟁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비밀조직을 만들고 사건의 주범인 전직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한다는 강풀 원작만화 <26년>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논란의 만화 <26년>이 영화화된다.
<천하장사 마돈나>(2006)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이해영 감독이 <26년>을 스크린에 살려낼 주인공이다. 영화 <26년>(가제)은 원작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되 각색을 거쳐 재탄생한다. 원작 <26년>의 얘기는 이렇다. 계엄군으로 광주에 들어가 원치 않는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던 대기업 회장 김갑세는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후, 죽기 전 광주의 고통을 짊어진 사람들을 모아 전직 대통령을 암살하는 작전을 계획한다. 함께 참여하는 이는 김 회장의 아들 주안과 국가대표 사격선수 미진, 광주의 조직폭력배 진배, 흉상 조각가 치영 등. 미진과 진배, 치영은 계엄군의 총탄에 부모 중 한 명을 잃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채감과 고통 속에 살다가 김 회장의 암살 작전에 뛰어든다.
여자 사격선수 미진과 깡패 진배에 무게가 실린 영화 <26년>은 인물의 개인사를 플래시백으로 설명하는 원작의 설정을 최소화하고 암살 작전 자체에 집중한다. 이해영 감독은 “절절한 사연과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다수의 인물을 어떻게 정리하고 축약하느냐가 <26년>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암살 작전을 다루는 만큼 장르적으로는 액션에 방점이 찍힌다. 후반부 긴장감 넘치는 작전에 상영시간 대부분이 할애된다. 이해영 감독은 “광주를 잊어버린 세대와 외면했던 역사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겠다”고 말한다. 1980년 이후 망각의 세월 속에 스러져간 광주의 오늘이 영화 <26년>을 통해 되살아난다. (송순진 기자)
이해영 감독 인터뷰
원작과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인물의 비중이다. 원작에서는 암살 작전을 주도하는 계엄군 출신의 재벌 회장 김갑세가 중심인물이다. 때문에 광주를 직접 겪었던 사람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다. 나는 그 아랫세대 사람의 관점으로 다가간다. 당사자가 아니라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 지금의 나처럼 딱 아랫세대라서 얘기를 듣고 자랐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광주민주항쟁을 그릴 것이다.
핵심은 뭔가? 광주를 좀 더 개인화시킨다. 광주민주항쟁을 역사적 맥락에서 관념적으로 푸는 게 아니라 각 개개인별로 얼마만큼 큰 아픔을 주었던 사건인지 보여주고, 열흘간의 항쟁으로 끝난 게 아니라 그 후 몇십 년간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현재를 보여준다. 개개인의 분노가 모였을 때 만들어지는 역사적인 흐름은 그대로일 것이다.
광주를 그린 기존 영화들과 어떻게 다른가? <화려한 휴가>(2007)는 재현에 목적을 뒀다. 불온세대로 분류되었던 이야기, 입소문으로 회자된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재현되는 데서 오는 시각적 파급효과가 컸다. 강풀 원작에도 1980년의 재현에 비중이 있지만, 영화 <26년>에서는 비중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초반 프롤로그에 10분이 안 되는 짧지만 센 이미지로 들어가는데 재현이 목적은 아니다. 금남로 시위 장면처럼 광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제외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실존 인물은 어떻게 다룰 생각인가? 전직 대통령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영화 속 조연일 뿐이다. 그래서 묘사하는 데 두렵지 않다.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인데. 혹 실존 인물의 암살을 선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두렵다. 원작은 만화라는 특성상 다소 선동적인 뉘앙스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영화는 다르다. 영화 <26년>은 무능하게 아무 일도 하지 못했고 모른 척했고 망각했던 세대의 자책으로 보였으면 싶다. 개인에 대한 분노나 미움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무능한 역사는 이제껏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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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제왕: 강철중의 귀환 <강철중: 공공의 적 1-1> 감독 강우석 | 출연 설경구, 정재영, 이문식, 유해진 | 제작 KnJ엔터테인먼트 | 개봉 여름
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에 빛나는 특채 형사. 이 형아한테 맞은 애들이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 반이라는 열혈형사 강철중이 검사 딱지 떼고 분연히 돌아온다. <공공의 적> 1편(2002)에서 5년 뒤를 그리게 될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은 ‘1-1’이라는 부가설명이 의미하는 것처럼 1편에서 모티프를 빌려온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설경구를 통해 창조된 강철중 캐릭터의 연장선상에서 강철중의 무대포 정신을 가일층 확대할 예정이다.
<강철중>의 ‘공공의 적’은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고까운 엘리트가 아닌 조폭 두목이다. 정재영의 아우라가 한껏 담기게 될 이 악당 캐릭터를 통해 영화적으로 미화되었던 조폭은 의로운 형사 강철중의 심판을 받는다. <공공의 적>을 기점으로 확실하게 주연급으로 도약했던 이문식과 유해진의 합류도 <강철중>의 기대치를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시마이”를 외쳤던 용만이 유해진과 억울할 정도로 얻어터졌던 고리대금업자 안수 이문식이 다시금 등장해 기억을 환기한다. 미워할 수 없는 두 조연 배우는 강철중의 조력자로서 조직폭력배 소탕을 한몫 거들면서 1편 못지않은 농밀한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강철중>의 또 하나의 특징은 스타일이 확실한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 자연히 장진식 유머와 화법이 시나리오에 짙게 배어 있다. 연출을 맡은 강우석 감독은 “장진 스타일을 강우석화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유쾌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과 강우석, 서로 다른 두 개의 행성이 부딪혀 생길 웃음의 시너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지만 정의감 넘치고, 폭력적이지만 보통 사람들의 따뜻한 정서를 잃지 않는 반영웅 형사 강철중의 귀환은 2000년대 한국 영화에서 나온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의 컴백이며 제대로 웃기는 코미디 시리즈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강상준 기자)
강우석 감독 인터뷰
<공공의 적 3>가 아니라 <강철중>이다. 1편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 외에 <공공의 적 2>(2005)의 공과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도 알고 싶다. <공공의 적> 시리즈는 ‘공공의 적’이라는 처단 대상을 설정하고 그를 집요하게 쫓으며 화두를 던졌다. 그래서 1편은 형사가, 2편은 검사가 등장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항상 걸렸던 점이 1편의 강철중이라는 캐릭터였다. 2편을 통해 그 캐릭터가 없어지는 게 아쉬웠고, 그래서 그 강철중의 속편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재밌는 영화를 찍고 싶어 자신 있게 선택했다.
<공공의 적> 시리즈의 악역은 항상 엘리트였다. 이번 <강철중>의 악역은 조폭이다. 한국 영화 속에서 조폭은 식상한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이유는 조폭을 너무들 멋지게 그리는 것 때문에. 정말 조폭이 그렇게 멋진 사람들인지,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나 불행이 관객들을 눈물 흘리게 할 이유가 있는지, 관객들이 정말로 눈물 흘려줄 만한 사람들인가라는 측면에서 그들을 진짜 적으로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장진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맡긴 이유가 있을 텐데. 실제로 장진 감독이 처음부터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애초엔 1편의 작가에게 맡기려 했었고 또 다른 작가들도 섭외했는데 거의 대부분 손을 들었다. 장진 감독 없었으면 이번 작품 못 들어갔을 거 같은데? 난 못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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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킹한 조선 스펙터클 <신기전> 감독 김유진 | 출연 정재영, 한은정, 허준호 | 제작 KnJ엔터테인먼트 | 개봉 상반기
3년 전, 김유진 감독과 <약속>(1998) <와일드 카드>(2003)를 함께 했던 파트너 이만희 작가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박사를 찾아갔다. 채 박사는 세종 30년(1448)에 만들어진 세계 최고의 다연장로켓화포였던 조선의 전쟁무기 ‘신기전’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인물.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보다 30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미사일과 기술력’에 대해 채 박사는 침을 튀기며 흥분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은 곧 영화 <신기전>에 착수했다.
<신기전>은 로켓포 신기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어낸 이야기이다. 보부상의 우두머리 설주(정재영)는 언뜻 여색만 밝히는 한량으로 보이지만 깊은 무예의 소유자다. 그는 가까운 사이인 내금위장 창강(허준호)의 부탁을 받아 미모의 여성 과학자 홍리(한은정)를 돌보게 된다. 화포 발명가의 딸 홍리는 신기전 개발을 저지하려는 명나라에 대항하는 당찬 인물. 홍리와 애틋한 관계가 된 설주는 조선과 신기전, 그리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전쟁 속으로 돌진한다.
“아마도 <괴물>(2006) 빼고 CG가 가장 많은 한국 영화일 것”이란 김유진 감독의 예상은 100억 원에 달한다는 <신기전>의 스케일을 가늠케 한다. 7개월간 119회 차로 진행된 촬영은 지난달 끝났다. 김유진 감독은 후반부 하이라이트인 신기전 발사 장면이 “굉장한 쇼크가 될 것”이라 단언한다. 500년 전의 전쟁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요즘 미사일과 다를 바 없는 신기전의 파괴력을 보여줄 이 장면은 한국 영화 스펙터클의 새로운 경지가 되리라는 장담이다. 조선과 명 무사들의 대결 장면에서는 조선 고유의 검술도 맘껏 뽐낸다.
하지만 어떤 장르건 ‘사람 이야기’를 중심에 둔 김유진 감독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중량감 넘치는 개성파 배우 정재영과 허준호, 드라마 <서울 1945>(2006)부터 진일보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한은정이 신기전을 만들고 지켜낸 주역들. 중견 감독들의 신작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던 지난해의 부진을 씻고 2008년 한국 영화 흥행의 견인차가 될 후보작 중 하나다. (유지영 기자)
김유진 감독 인터뷰
신기전이라는 소재를 택한 이유는? 전 국민 누가 봐도 흐뭇할 만한 영화를 찾다가 발견했다. 할리우드에는 미국의 우월성을 자랑하는 영화가 넘치지 않나. 우리도 그런 영화를 가질 수 있다.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던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신기전을 만드는 방식이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다. 근데 조선시대의 수학 방정식이 디테일하게 써 있지 않다. 과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정확한 재현은 어려웠다. 겉핥기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밖의 역사적인 사항들은 사실에 근거한 건가? 신기전 빼고는 다 거짓말이다.(웃음) 영화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세종 30년을 전후로 여러 시대적 사실들을 믹스해서 만든 허구다.
<와일드 카드> 이후 5년 만의 신작인데다 블록버스터라 부담이 됐을 법하다. 아무래도 전작들과 소재와 스케일 자체가 다르니까. 하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목표 면에선 다를 게 없다. 감동과 드라마틱한 구조를 적절히 안배하고 그 안에 수많은 잔재미들을 첨가했다. 유쾌, 상쾌, 통쾌한 영화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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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먼 여행 <밤과 낮> 감독 홍상수 | 출연 김영호, 박은혜, 황수정 | 제작 영화사 봄 | 개봉 상반기
홍상수 감독이 또 여행을 갔다. 강원도로, 생활이 발견되는 춘천과 경주로, 종로의 극장통으로, 해변으로 그렇게 돌아다니더니 이번엔 정말 바다를 넘었다. 홍상수 영화에서 가장 먼 여행지, 프랑스 파리로.
홍상수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밤과 낮>은 주인공인 국선 화가 성남(김영호)이 우연히 어떤 사건에 말려들고 잠시 파리로 도피했다가 몇몇 여인들을 만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가장 스케일 큰 생활의 발견, 가장 먼 곳으로부터 귀환하는 홍상수의 낯선 여행기랄까. 늘 영화감독을 업으로 삼던 그의 주인공은 붓을 든 화가가 됐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눈 안에 담는다. ‘밤과 낮’이라는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대구가 주는 강한 형식미를 추구하고 때론 그걸 파괴하길 즐기던 홍상수의 세계 속에서 밤과 낮의 대비는 유난히 눈에 띈다. 파리에 있는 성남의 낮이 서울에 있는 그의 아내의 밤이 될 때, 그들의 밤과 낮이 새로운 하루를 만들어낼 때, 홍상수의 여행은 예전과 같고도 다른 실체를 갖는다. 더 유쾌하고 유연해졌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의외의 캐스팅’의 고수답게 홍상수 감독에겐 이번에도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했다. 정보석, 김상경, 유지태로 이어진 홍상수의 페르소나 성남 역은 <유령> <돌려차기>의 김영호가, 그가 파리에서 만나는 젊은 화가로는 드라마 <대장금> <이산>의 박은혜, 서울에 있는 성남의 아내 역에는 드라마 <허준>의 황수정이 출연한다. 중견 배우 기주봉도 얼굴을 내밀고,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선균도 파리에서 깜짝 출연한다. 성남이 꾸는 꿈과 엔딩 신을 빼고 80%를 파리에서 촬영한 <밤과 낮>은 홍상수가 HD로 찍는 첫 장편이기도 하다. 밤과 낮이 얽힌 사연, 심히 궁금해진다. (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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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열다섯 번째 꿈 <비몽> 감독 김기덕 | 출연 오다기리 죠, 이나영 | 제작 김기덕필름, 스폰지 | 개봉 상반기
‘두 사람은 한 사람이다.’ 김기덕 감독의 열다섯 번째 영화 <비몽>을 관통하는 명제다. ‘슬픈 꿈’이라는 뜻의 제목이 알려주듯, 꿈과 현실의 관계는 반복되는 김기덕의 테마. 이번에는 타자와의 동상이몽이 아니라 한 사람의 비몽이라는 점에 관심이 쏠린다. 전작 <숨>(2007)을 “소통의 불가능성, 나와 한국 사회의 어려운 관계”라고 정의했던 김기덕은 <비몽>을 통해 사랑과 증오라는 소통의 방식이 결국 자신의 본성에 속한 것임을 보여주려 한다. 내 안의 부처를 찾는 불가의 가르침마냥.
<비몽>은 꿈이 현실이라 믿는 남자(오다기리 죠)와 몽유병에 시달리는 여자(이나영)의 사랑 이야기다. 필방을 운영하는 남자는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꾼다. 생생한 꿈에 붙들려 사고 장소를 찾아간 남자는 실제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몽유병을 앓는 의상 디자이너 여자가 꿈에 취해 사고를 낸 것. 여자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 하고, 남자는 자신이 범인이라 믿는다. 이후 남자의 꿈을 실행에 옮기는 건 여자다.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 두 한일 스타의 조합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한마디 대사도 없었던 <숨>의 장첸과 달리 오다기리 죠는 상당량의 대사를 소화할 예정. 오다기리 죠는 일어로 말하고 이나영은 한국어로 대꾸하지만, 둘은 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일어에는 자막이 달린다. <비몽>의 송명철 PD는 “예산이 6~7억 원 정도지만 꿈 장면에 CG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작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 귀띔한다. 1월 한 달간 서울에서 단숨에 촬영을 마칠 <비몽>은 매끈한 세공술에 관심을 두지 않던 김기덕 감독의 작지만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유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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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하루를 선사합니다 <멋진 하루> 감독 이윤기 | 출연 전도연 | 제작 영화사 봄, 스폰지 | 개봉 하반기
다이라 아즈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는 한 평범한 여자가 옛 남자친구를 찾아가면서 겪게 되는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멋진 하루’라는 제목처럼 일상적인 틀에서 벗어나고픈 보통 사람들의 작은 소망을 대변하는 영화는 옛 남자친구와의 내키지 않는 하루간 여정에도 싱그러운 기운을 심으려 한다.
남자와 어울려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여자의 자잘한 모험은 못내 지겨웠던 일상 속에서도 희망을 떠올릴 수 있는 기분 좋은 이야기로 변한다. 이로 인한 여자의 심리변화 역시 밝고 따사로운 기운을 품고 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멋진 하루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밀양>으로 2007년 한국영화계를 휘어잡은 전도연의 차기작 <멋진 하루>는 원작소설이 건네는 따뜻하고 충만한 느낌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다. 이윤기 감독은 짧은 원작소설을 읽고 난 뒤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분 좋은 여운을 느꼈다”고 전한다. 강요받지 않은 마음 따뜻한 영화란 바로 이런 식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멋진 하루>를 구상했다고.
하루 동안 서울 이곳저곳을 헤집게 될 옛 연인이란 녀석은 오랜만에 만나도 얄밉고 귀찮기만 하다. 하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해도 세상을 밝게 물들일 것 같은 동화 속 이미지를 풀풀 풍기는 이 남자. 알고 보니 귀찮다고 손사래를 치고 난 후에도 왠지 한 번 더 보고 싶은 묘한 매력 때문에 여자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고야 마는 그런 멋진 녀석이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밝고 희망적인 기운으로 나아가는 여자의 심리변화는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밝고 정감 어린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조금씩 물이 스미듯 느끼게 되는 사랑의 감정, 이 기분 좋은 만족감이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미소를 안겨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상준 기자)
이윤기 감독 인터뷰
여주인공으로 전도연을 캐스팅했다. 총명한 느낌의 배우를 원했다. 그런 배우는 여럿 있지만 전도연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본적으로 배우가 주는 신뢰도도 높았고. 작품 초기 단계에 주저 없이 원작을 보냈는데 사실상 거절의 답을 받았다. 이후 시나리오 작업을 끝낸 후 다시 보여줬는데 그때 수락을 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호했던 원작의 느낌과는 달리 시나리오에는 보다 명확한 그림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촬영 장소가 전부 서울이라고. 서울 전역을 다 뒤졌다. 영화적으로 재미있게 보여질 만한 장소를 많이 찾으려 했다. 63빌딩 같은 구체적인 서울의 느낌이 아니라, 여기도 서울이었나 싶은 장소들을 물색했다. 일상적이고 세부적이지만 실제 서울과는 다른 모호한 느낌을 찾기 위해 시내를 이 잡듯 뒤졌다.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본질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상 속에서 많이 느끼는 정. 이것이 사랑과 연관되는 중심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라고 해서 정통 멜로에서 볼 수 있는 격렬한 감정이 담겨 있는 그런 전형적인 사랑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훨씬 더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여성들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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