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신선·불교사상 아닌 東北亞인의 전통 샤머니즘 담았다 고대사 발굴특종 : 1,500년만에 드러난 百濟대향로의 숨은 眞實 (下)
■ 봉황·5악사·5기러기의 歌舞像은 백제 5부제와 ‘天音’사상 표현
■ 백제향로, 고구려 고분의 공간 구분은 시베리아 알타이계 샤머니즘과 동일
■ 산악도는 ‘天上의 산’ 상징, 수렵도는 페르시아 사산조의 영향
■ 부여·고구려·백제 왕의 사슴사냥 기록, 북방민족의 ‘우주사슴’ 신화와 흡사
■ 水蓮은 아침에 꽃잎 열고 해질 때 닫는 동이계의 ‘태양꽃’으로 光輝를 상징
백제대향로가 사비의 신궁(神宮)에 봉향된 향로라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제껏 삼국시대의 정신사를 불교나 도교 중심으로 보아온 우리로서는 우선 신궁이라는 말부터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와 도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이 땅에는 이미 전통신앙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들에게 불교와 도교는 어디까지나 외래종교였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백제대향로의 구성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산악도 위의 봉황과 좌대 격인 용을 수직선상에 배치한 것과, 봉황을 중심으로 한 5악사와 기러기의 가무상 그리고 연꽃과 용의 상징체계, 산악도의 수렵도 등은 백제인들의 독자적인 세계관과 사유체계를 흠씬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향로 본체에 대한 ‘탐험’을 시작해 보자.
백제대향로 본체의 구성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상징 요소가 있다. 향로 본체의 테두리에 장식된 류운문(流雲紋)이다. 향로의 뚜껑과 노신의 테두리에 장식된 이 ‘흐르는 구름’ 문양은 그 자체가 허공을 함축할 뿐 아니라 위쪽의 산악도와 아래쪽 연지의 수상생태계를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동안 학자들은 대부분 노신의 연꽃과 산악도에만 주목했을 뿐 연꽃과 산악도 사이의 테두리를 장식한 류운문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 류운문이야말로 백제대향로에 표현된 백제인들, 나아가 고대 동북아인들의 우주관·세계관·타계관 등을 이해하는 결정적 단서라고 보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흡사한 流雲紋
“월간중앙” 6월호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향로 본체에 류운문이 장식된 것은 북위향로에서 처음 나타난다. 윈강(雲剛)석굴 제10굴 굴문 천장에 장식된 향로의 테두리에서 볼 수 있듯 북위향로의 초기 류운문은 서역의 ‘∽’자를 반복한 형태로 되어 있다. 결국 북위인들의 류운문은 서역의 이 문양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북위인들보다 먼저 류운문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그들보다 훨씬 풍부한 사례와 쓰임새를 보여주는 것이 고구려의 고분벽화다. 실제로 고구려의덕흥리고분·감신총·수산리고분·안악1호분·덕화리고분·천왕지신총 등에는 천장벽과 사방 벽 사이의 도리에 류운문이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들 고구려 고분벽화에 장식된 류운문의 형태는 북위향로와 백제대향로의 류운문을 포괄하는 다양한 것들이어서 남북조시대의 류운문 장식에 관한 한 고구려가 그 중심에 서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북위향로나 백제대향로에 장식된 류운문의 기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구려 고분벽화에 사용된 류운문의 기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류운문의 공간구분의 예가 잘 드러나 있는 덕흥리고분을 보자.
덕흥리고분의 전실(前室) 남벽을 보면 양쪽 기둥 위 도리에 물결무늬 같은 류운문이 장식돼 있다. 이 도리를 경계로 위쪽 천장벽에는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를 비롯해 각종 성수(聖獸)와 별자리들이 그려져 있고 아래쪽에는 무덤 주인공의 생전 생활상이 묘사돼 있다. 도리를 경계로 한 이러한 대비는 동벽과 서벽에서도 확인된다. 동벽 도리 위쪽의 천장벽에는 산악을 배경으로 한 수렵도와 성수들 그리고 삼족오가 들어있는 태양과 별자리들이 표현돼 있고, 아래쪽에는 주인공의 생전의 행렬도가 묘사돼 있다.
또 서벽의 도리 위쪽 천장벽에는 천인(天人·仙人)과 인두조(人頭鳥), 두꺼비가 들어 있는 달과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아래쪽에는 무덤의 주인공에게 하례드리는, 그 유명한 13태수도가 그려져 있다.
종합해 보면 도리 위쪽에는 일월성신과 성수 등을 포함한 천상도(天象圖)가, 도리 아래쪽에는 13태수 하례도와 행렬도 등 무덤 주인공의 생전의 생활상이 묘사돼 있는 것이다. 도리를 경계로 위쪽과 아래쪽의 벽화 내용이 천상계와 지상의 세속적인 세계로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의 류운문이 갖고 있는 이러한 공간구분은 백제대향로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즉 류운문 테두리를 경계로 위쪽의 산악도에는 각종 성수와 기마수렵도 그리고 천인(또는 선인)들로 보이는 인물들과 봉황 등이 묘사되어 있고, 아래쪽의 노신에는 연지(蓮池)의 수상생태계를 배경으로 갖가지 날짐승과 물고기들 그리고 수중의 용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비록 고구려 고분의 세속의 공간이 백제대향로에서는 연지의 수상생태계로 바뀌었지만 류운문 테두리를 경계로 위 아래 공간이 나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양자간의 동일한 양식은 류운문의 경계뿐만이 아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도리와 백제대향로의 테두리 위에는 불꽃 형태의 박산문양이 공통적으로 장식되어 있다. 박산문양은 천공(天空)의 광명을 상징한 것이어서 류운문 도리와 테두리 위의 공간이 천상계의 신성한 영역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따라서 고구려 고문벽화와 백제대향로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대응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며, 고구려 고분의 도리에 장식된 류운문과 백제대향로의 테두리에 장식된 류운문의 기능 역시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백제대향로의 류운문 테두리 위쪽 산악도의 영역은 천상계를, 아래쪽 노신의 연꽃과 용 장식 부분은 지상의 연지(蓮池)를 중심으로 한 수상생태계를 나타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서정록
· 1956년 경기 평택 출생
· 서울대 철학과, 同 대학원 졸업
· 김지하 시인과 함께 ‘한살림 운동’활동
· 7월중 “백제금동대향로” 출간 예정
고구려 덕흥리고분의 동벽과 서벽 모사도. 도리의 류운문을 경계로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뉘어 있다.
丹靑은 불교 연꽃 아닌 ‘광휘의 연꽃’ 상징
백제대향로 본체의 구성과 관련해서 우선 노신에 나타난 연꽃과 연지의 수상생태계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필자는 이미 지난호에서 노신의 연꽃이 불교의 연화화생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고대 동이계의 ‘광휘의 연꽃’을 상징한 것이라고 해석했는데, 이와 관련해 특히 주목할 것이 있다.
전국시대 이래 고대 왕궁이나 신전 등 목조 건축물의 천장결구양식인 ‘조정’(藻井) 양식이 그것이다.
조정양식은 일반적으로 궁전이나 사당의 천장 중앙을 각종 마름이나 연꽃 등의 수련과(科) 수초(水草)와 원형, 방형 등 각종 기하학적 도형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기법을 말한다. 흔히 이를 천화판(天花板)이라고도 하는데, 조정이란 이름은 천장 중앙에 수초를 장식한 공간이 마치 우물에 둘러쳐진 네모꼴의 난간(井幹)을 닮았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그러면 고대인들이 이처럼 조정의 하늘연못에 수련과의 수초를 장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한나라때 장형(張衡)의 “남도부”(南都賦)에 등장하는 ‘순채·마름·가시연꽃·수련·연꽃 등 각종 수초는 광휘(華)를 머금고’(藻큕菱큕,芙蓉含華)란 구절은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수련과의 수초들은 일찍부터 ‘태양(맞이)꽃’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정에 등장하는 수련과의 수초들은 태양의 광휘를 상징한 꽃이라는 추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또 3세기말 장재(張載)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뒷받침된다.
‘연꽃을 (천장의) 둥근 연못과 방형의 정호(井戶) 중에 심는 것은 그 광휘를 위해서이다.’(種之於圓淵方井之中,以爲光輝)
따라서 조정에 수련과 수초를 장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지상의 연못에 대응하는 천상의 연못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수련과의 꽃들이 태양의 광명 또는 빛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정 양식은 한대(漢代) 이후 고분 천장의 장식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중국의 기남화상석 무덤의 천장에 장식된 연꽃과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장 중앙에 장식된 연꽃이 그러한 예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꽃은 천상도(天象圖)의 중앙에 장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둘레의 천장벽에 일월성신을 비롯한 천상계의 각종 동물과 사신도(四神圖)가 장식되어 있어 조정의 연꽃이 천상의 광명을 상징하는 하늘연꽃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고대의 조정에는 연꽃과 용이 함께 장식된 경우도 있는데, 한대의 동해 창리수고(東海昌梨水庫) 1호묘 전실에서 볼 수 있는 조정 장식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조정 양식이 나중에 궁전이나 사원의 단청(丹靑) 장식의 기원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단청이라고 하면 주로 5방색(五方色)을 기조로 한 장식문양을 지칭하지만, 본래 단청이란 이렇게 조정에 다양한 수련과의 수초를 장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수초문 단청은 천장중앙의 조정을 장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천장의 도리·처마·서까래 등에까지 시문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쓰인 “회남자” ‘본경훈’(本經訓)의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큰 가옥과 궁궐에 방과 문이 줄을 이었고, 도리·처마·서까래 등에 교목(喬木)의 가지·마름·연꽃(芙蓉) 등의 수초(水草)를 조각하고 새겨 오색(五色)이 서로 경쟁하게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전국시대에 이미 궁전이나 사당의 조정과 도리·처마·서까래와 그 끝 등에 교목의 가지나 각종 수련과의 수초들을 장식하는 단청기법이 널리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해 이것은 동아시아의 초기 단청기법이 불교미술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한편 백제의 유적 중에서도 조정의 광휘의 연꽃을 상징적으로 조형한 것이 등장한다. 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부여 능산리 벽화무덤이다. 6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는 이 무덤의 천장에는 일곱 송이의 하늘연꽃이 장식되어 있고, 그 사방 벽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이는 백제에도 고구려 고분벽화와 마찬가지로 천상도의 관념이 존재했던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그것뿐인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탁은잔 뚜껑 중앙에 그려진 광휘의 연꽃을 보자. 동탁은잔의 연꽃은 산악도 위의 천공에 장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궁전이나 고분 천장의 중앙에 장식된 연꽃과 같이 천상의 하늘연꽃을 표현한 것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상 - 천상계 초월의식 나타낸 蓮花圖의 물고기와 새
고대 동이인들은 지상의 연꽃이 천상의 하늘연꽃의 광명을 받아 지상을 환히 밝힌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동탁은잔의 잔에 장식된 연꽃(산악도 아래 지상의 연꽃)이 뚜껑 중앙의 하늘연꽃의 광명을 받아 지상을 환히 밝히는 광휘의 연꽃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필자는 백제대향로의 노신에 장식된 연꽃이 지상의 광휘의 연꽃을 상징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비록 백제대향로 산악도 위에는 하늘연꽃이 표현돼 있지 않지만 그 구성에서는 동탁은잔과 대응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향로의 노신에는 이 연꽃이 광휘의 연꽃임을 뒷받침해 주는 중요한 상징체계가 담겨 있다. 연꽃에 장식된 날짐승과 물고기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 박산향로의 노신에는 이와 같이 날짐승과 물고기가 장식된 전례가 없는 것으로 보아 백제대향로의 연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연꽃에 새와 물고기를 장식하는 것은 일종의 ‘연화도’(蓮花圖)에 해당하는 것으로, 연화도라면 우리의 민화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 된 것이다.
고대의 연화도로는 한대의 화상석(畵像石)에 묘사된 것들이 알려져 있다.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발굴된 화상석들 중 하나를 보면 호수에 연꽃과 연밥이 떠 있고 그 사이를 물고기와 새가 날아다니고 있으며, 그 한편에는 엽사(獵師)들이 새를 향해 활을 겨누는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 또 다른 화상석에는 연지(蓮池)에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연잎과 연밥 사이로 물고기와 새가 묘사되어 있다. 물론 이들 화상석 그림은 연화도 자체를 표현했다기보다 연지를 둘러싼 당시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연꽃과 함께 물고기와 새가 묘사됨으로써 연화도의 주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화도의 구성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고대 목조건축물의 조정이나 고분 천장의 하늘연못은 기본적으로 지상의 연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연화도의 주제는 하늘연못에 대해서도 똑같이 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해 주는 유물이 1980년, 산둥(山東)성 가상(嘉祥)현 송산(宋山)의 한대(漢代)고분에서 출토된 화상석이다. 사엽문(四葉文)이 중첩된 형태의 하늘연꽃 주위에 물고기와 인면조신(人面鳥神)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쓰촨성에서 발굴된 화상석도 그렇지만, 연화도에는 늘 새와 물고기가 함께 등장한다. 여기에는 모종의 신화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먼저 연화도에 나타난 새를 보자. 연화도에는 기러기나 오리·원앙 등이 주로 그려지는데, 원래는 기러기와 오리가 그려지다 후대에 서역 화조도(花鳥圖)의 영향을 받아 원앙이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기러기와 오리는 철따라 이동하는 대표적 겨울 철새로 꼽히며, 원앙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고대인들은 철새를 현실계를 넘어 타계, 즉 천상계로 이동하는 신성한 새로 여겼던 것이다. 이들은 이 세상과 타계, 또는 지상계와 천상계를 연결하는 전령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정은 연화도에 등장하는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고구려의 안악1호분과 덕흥리고분에는 천장벽에 날개가 달린 물고기(飛魚)가 그려져 있다. 이는 물론 천상계의 물고기를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물고기가 수중계에만 사는 동물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다. 게다가 물고기가 날개를 가졌다는 것은 이 물고기가 수중계와 천상계 사이를 왕래하는 신성한 물고기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고대인들은 연지에서 노니는 새와 물고기들이 철따라 지상의 연지와 천상의 연지 사이를 왕래한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고대인들은 연화도에 날짐승과 물짐승을 장식하여 이들이 천상의 신들에게 자신들의 기원이나 소원을 전해 주기를 빌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로써 백제대향로의 연꽃에 왜 새와 수중생물이 장식되었는가는 명확해졌다. 그들은 노신의 연지에 철따라 다른 계를 넘나드는 날짐승과 물고기들을 장식함으로써 노신의 연꽃이 천상의 하늘연꽃에 대응하는 지상의 광휘의 연꽃임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날짐승과 물고기들이 철따라 이동하자면 지상의 연지에 대응하는 다른 계(界)의 연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시 백제의 장인들은 동탁은잔과 달리 향로의 구성상 천상의 하늘연꽃을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와 같은 연화도를 생각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광휘의 연꽃의 이미지는 향로의 황금도금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향로의 황금빛이야말로 온 세상을 환히 밝히는 연꽃의 광휘를 가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타이 샤먼의 북과 비교되는 천상계 - 지하계 구분
그렇다면 연지에 대응해 류운문 위쪽으로 묘사된 산악도가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백제대향로의 산악도가 천상계의 산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산악도에 장식된 각종 동물과 기마수렵인물 그리고 신선풍의 인물들 역시 모두 천상계의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백제대향로와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이와 같은 공간구분은 한무제 이후 유교를 국교로 한 한족의 세계관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것은 백제대향로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공간구성이 그들과는 다른 전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시베리아 알타이 샤먼의 북에 등장하는 그림이다.
시베리아 샤먼의 북에는 그들의 우주관이나 신령관을 담은 그림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알타이 샤먼의 북에는 북방민족들의 우주관이 잘 묘사돼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들의 그림이 가로로 그어진 하나의 선을 경계로 위쪽의 천상계와 아래쪽의 지하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샤먼의 북의 가로선 위쪽에는 일반적으로 태양·달·별 등의 천체와 함께 샤먼의 나무로 알려진 자작나무·버드나무 가지, 그리고 기마수렵인 - 활을 들고 말(bura, pura)을 탄 인물로 샤먼 자신을 나타낸다 - 과 그의 보조신령인 사슴·순록·새 등이 묘사돼 있다. 이러한 공간구성과 천상계 신령들의 묘사는 공교롭게도 고구려 고분벽화의 공간구분이나 천상도의 내용과 아주 흡사하다.
다만,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천상계 - 지상계의 구분과 달리 샤먼의 북 그림에는 천상계 - 지하계 구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등장하지 않은 지하계는 일반적으로 불교나 기독교 유입 이후 주로 나타난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양자의 공간구분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이 점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공간구성에 대응하는 백제대향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백제대향로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공간구분과 신령의 표현은 알타이 샤먼의 우주관·신령관과 상당한 연속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밖에도 양자 사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일치점이 확인된다. 샤먼의 북의 천상계에 묘사되어 있는 기마수렵인물과 동물들이 백제대향로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상계에 표현된 수렵도의 내용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렵도가 천상계의 영역에 장식되어 있는 점이나 주인공이 말을 타고 활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백제대향로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상계에 등장하는 수렵도가 기본적으로 북방계 샤먼의 ‘상징적 수렵행위’(chasse rituelle/symbolique)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샤먼의 상징적 수렵행위란 샤먼이 일련의 의례(굿)에서 행하는 수렵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체로 다음 두 가지 목적과 관련돼 있다. 하나는 주민들의 식량원이 되는 ‘사냥감’(prise, game)을 공동체에 공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냥감이 계속 공급될 수 있도록 사냥감들의 왕성한 생명력 또는 생생력(生生力)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샤먼은 춤과 노래로써 발정기 때의 동물들의 행위를 묘사하는데, 로베르트 아마용(Roberte Hamayon)에 의하면 이러한 노래와 춤의 판토마임이 북방민족들의 공동체 성원들의 ‘놀이’로 발전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몽골의 나담축제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춤과 씨름 등의 ‘경기’(prises, games)라고 한다.
사산조 페르시아 수렵도의 영향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백제대향로의 산악도가 ‘삼산형’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삼산형 산형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고대 아시리아에서 발원해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남북조시대때 북위에 전해진 문양이다. 다만, 삼산형 산들로 이루어진 북위향로의 산악도에는 백제대향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수렵도가 없다. 이것은 북위향로의 산악도가 백제대향로 삼산형 산악 - 수렵도의 원형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사산조 페르시아에는 삼산형 산악을 배경으로 한 중요한 수렵도가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한 은화병(銀花甁)이 그것이다. 5~6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은화병의 표면에는 정형화된 삼산형 산들을 배경으로 각종 동식물과 수렵인물들이 장식되어 있어 한눈에 백제대향로 산악도의 조형(祖形)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 은화병 그림에는 사자·낙타·양·염소·사슴·큰 뿔사슴·소·말·표범 그리고 맹금류를 비롯한 각종 새들이 삼산형 산 속에 그려져 있고, 나무와 각종 식물들도 곳곳에 등장한다. 비록 기마인물은 아니지만 동물에 활시위를 겨누고 있는 인물이나 그물을 들고 동물한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인물, 또 돌팔매(또는 칼)로 동물을 잡으려는 인물들의 모습은 이 산악도가 그들의 수렵도를 묘사한 것임을 말해 준다.
이 은화병을 소장한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프루던스 하퍼(Prudence O. Harper)는 이 은화병 수렵도의 문화적 배경으로 두 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하나는 고대 페르시아인들의 이상향인 천상계의 ‘낙원’이고, 다른 하나는 ‘왕실 수렵공원’, 즉 왕의 금렵지(禁獵地)라는 것이다.
고대 이란에서는 일반적으로 낙원의 상징으로 ‘낙원의 포도밭’이 자주 등장한다. 예수의 포도밭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 포도밭은 고대 중동인들에게는 낙원의 상징으로 가장 자주 언급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포도밭의 풍요로움과 신들의 음료로 일컬어지는 포도주 때문이다. 천상의 포도밭을 표현한 또 다른 은화병을 보면 포도를 따는 사람들과 함께 새를 잡는 사람이나 여우, 새 등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 은화병의 맨 아래쪽을 보면 삼산형 산이 장식되어 있다. 삼산형 산은 사산조에서 일종의 신성공간, 곧 하늘과 맞닿아 있는 후카이리아(Hukairya) 산을 가리키는 상징문양으로 알려져 있다. 후카이리아산은 이란 서북부의 최고봉인 엘부르즈산의 정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자체가 낙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따라서 삼산형 산 위에 묘사된 포도밭과 마찬가지로 삼산형 산을 배경으로 한 은화병의 수렵도는 천상계 낙원의 수렵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고대 중동에는 일찍부터 왕의 수렵공원 또는 사냥터가 존재하였다. 아시리아의 한 부조에는 한쪽에 그물 울타리를 치고 뒤에서 동물들을 모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사산조 왕들도 금렵지를 소유했는데 이란 남서부를 가로지르는 자그로스 산록에 있는 타그 - 이 부스탄(Taq-i Bustan) 동굴에 그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타그이 부스탄 동굴은 크고 작은 두 개의 동굴로 돼 있는데 큰 동굴의 왼쪽 벽에 멧돼지수렵도가, 오른쪽 벽에는 사슴수렵도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멧돼지수렵도에는 중앙에 코끼리부대에 쫓기는 멧돼지 무리 중 한마리가 떨어져 나와 왕이 탄 배로 돌진해 오는 것을 왕이 활로 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 배에는 머리에 후광이 둘러진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가 활을 들고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왕이 탄 배 앞뒤에는 수공후를 연주하는 여성악대가 탄 작은 배들이 있고 상단에는 가창대가 탄 배가 있어 낙원의 분위기를 한껏 연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수렵도 역시 그들의 종교적 이상향인 천상계의 낙원을 배경으로 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결국 은화병의 수렵도는 천상계의 낙원 또는 후카이리아산(天山)에서의 수렵행위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은화병의 수렵도도 그렇지만 사산 왕들의 수렵장면을 묘사한 은쟁반에는 사슴·염소·영양·멧돼지·곰·사자·소 등 많은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 올레그 그라바르(Oleg Grabar)에 따르면 이 동물들은 모두 사산조 페르시아의 국교(國敎)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신령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사산 왕의 수렵도는 단순히 왕의 사냥을 그린 것이 아니라 천상계의 낙원에서 행해지는 왕의 ‘상징적 수렵행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것은 사산조의 왕들이 현실계의 왕인 동시에 우주의 동물신령들을 지배하는 ‘수렵왕’(hunter king)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실제로 사산조의 왕들은 자신들이 수렵왕임을 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수렵도가 새겨진 은쟁반을 만들어 외국의 사신이나 제후들에게 하사품으로 내려 이러한 은쟁반들이 대부분 국외에서 발굴되거나 발견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삼산형 산악도 - 수렵도와 관련된 이러한 문화적·사상적 배경은 백제의 장인들이 왜 대향로에 사산조 풍의 삼산형 산을 배경으로 수렵도를 시문했는지를 시사해 준다. 사산조형 산악도와 수렵도는 결국 백제의 왕이 현세의 왕이면서 동시에 우주의 동물신령들을 지배하는 수렵왕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백제의 왕들이 사산조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수렵왕이었느냐하는 것이다. 우선 사서(史書)에 기록된 백제 왕들의 수렵기사를 보자.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백제 왕들의 ‘순수’(巡狩)와 관련된 수렵기사가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순수(巡狩) 형태의 수렵은 사산조의 수렵왕이나 고대 중국의 왕들이 주로 왕실 수렵공원이나 금렵지(禁獵地)에서 수렵했던 것과 달리 백제의 왕들이 직접 왕도(王都) 근교의 산이나 변방을 다니면서 군사적·경제적 목적을 겸한 수렵행위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제 왕들의 사슴 수렵 記事의 의미
그런데 백제 왕들의 수렵기사 중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기사에 사냥감이 명시되는 경우 어김없이 사슴류에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점은 같은 부여계인 고구려의 왕들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백제와 고구려의 왕들은 왜 하필 사슴을 사냥 대상으로 삼았을까?
그 해답으로 우선 두 나라의 모국(母國)인 부여가 사슴 사냥으로 이름높았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부여의 사슴 사냥에 관해서는 ‘부여’(扶餘·pjujo)의 고대음이 사슴을 뜻하는 여진어 ‘buyo’와 같다는 지적이 있으며, 중국의 “신당서”‘발해전’에는 부여의 사슴을 최고로 쳤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부여에는 사슴 사냥의 오랜 전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슴 사냥을 중요시한 것은 비단 부여계인들만이 아니다. 이란의 은쟁반과 타크 - 이 부스탄의 동굴 부조에서도 보았듯 사산조의 수렵왕들 역시 사슴 사냥을 중요시했다. 또 북방민족들 역시 하나같이 사슴과 순록 사냥을 매우 신성시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따라서 백제·고구려의 왕들이 유독 사슴을 왕의 수렵동물로 간주한 데는 보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무르강(黑龍江) 상류 지역에 거주하는 에벵크족(Evenks) 사이에는 ‘우주사냥’(cosmic hunt)으로 알려진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신화가 전한다.
옛날 ‘우주사슴’(cosmic elk) 케글렌(Kheglen)이 천상의 숲(taiga·푸른 하늘)에서 나와 산정에 있는 태양을 보았다. 우주사슴은 태양에 다가가 뿔로 태양을 찔러 숲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자 지상계에는 어둠이 계속되었다. 그때 용감한 영웅 마인(Main)이 스키를 타고 천상계로 우주사슴을 뒤쫓아갔다. 그가 화살을 쏘아 우주사슴을 죽이고 태양을 되찾아오자 마침내 지상계에 낮이 돌아왔다. 그러나 우주사슴은 이내 다시 살아나 저녁이 되면 태양을 천상의 숲으로 가져갔고, 지상계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그러면 마인은 다시 날개 달린 스키를 타고 우주사슴을 쫓아가 한밤중에 태양을 다시 찾아왔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지상계에는 낮과 밤이 교차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우주사냥이 갖고 있는 의미와 관련해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시베리아의 에벵크족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봄의 사냥의식 ‘이케닙케’(ikenipke)가 그것이다. 이케닙케는 에벵크 말로 생명의 ‘재생’‘부활’과 ‘떠들썩한 술판’을 의미하는 말이다. 심 강가에 사는 에벵크족(Sym Evenk)의 이케닙케를 통해 우리는 앞의 우주사슴 사냥 이야기에 함축된 또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