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실 접근커녕
"근거없음" "괴담" 사과나 배상 모르쇠
중국 전면금수로 수출길 막힌 가리비, 방어
한국에 몰려오면 물리칠 명분 없는 윤 정부
1923년의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 손에 학살당한 조선인 문제를 추적해 온 일본 시민단체 호센카 재단의 니시자키 마사오 이사가 조선인 학살 관련 사진을 들고 있다. 흑백사진 속의 검사가 가리키는 곳이 학살당한 조선인들을 집단매장한 도쿄 아라카와 강변이다. 2023.-06.21. AFP 연합뉴스
관동 대지진 100년, 안전한 사회가 됐나?
9월 1일 <아사히신문> 사설 제목이다. 1923년 9월 1일에 도쿄 등 관동지방을 덮친 대지진은 매그니튜드 8급(M8)으로, 피해액 기준으로 환산하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액의 3배가 훨씬 넘을 정도의 대형 지진이었다. 사망자는 10만 5천여명에 이르렀는데, 그 90%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유언비어 속에 학살당한 조선인 6661명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따위의 유언비어 속에 무고한 조선인 6661명(당시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조사 게재)도 그때 일본인들 손에 무참하게 희생당했다. 그들은 화재가 아닌 다른 이유로 희생당한 나머지 10% 사망자 속에 포함돼 있을까.
일본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관동 대지진 100주년 이틀 전인 지난 30일 기자회견에서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사실관계를 정부 차원에서 조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냈다.(<교도통신>)
9월 1일 가나가와 현 사가미하라에서 실시된 합동재난훈련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맨 왼쪽) 등이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열린 희생자들을 추도식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다. 2023.09.01. AP 연합뉴스
진상조사 한 적 없는 일본정부
일본정부는 지난 100년간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한 번도 조사를 벌인 적이 없으며, 사죄한 적도 없다. 마쓰노 관방장관이 대답한 대로 정부 조사를 한 적이 없으니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없고, 기록이 없으니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아주 편리하고도 사악한 순환논리의 세계다.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사한 적은 없지만 당시의 경찰기록이나 사망확인 문서들, 미디어 보도와 목격자들 증언 등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일본정부는 그런 것들을 조사해서 진상을 밝히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정부 조사 결과)이 발견될 리 없고.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정부가 뭐라 얘기할 수 없다는 관방장관의 얘기는 논리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조사기록 없으니 사죄도 배상도 없다는 뒤틀린 논법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 실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는 똑 같은 소리를 반복해 왔다. 1991년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으로 그런 식의 은폐가 통할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서둘러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위안소 설치와 어린 조선인 여성들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했다. 그게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 정부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이른바 ‘고노 담화문’이다.
그 뒤 우익 아베 신조가 정권을 잡은 뒤 ‘고노 담화문’ 발표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어 ‘계승’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형식뿐 내용은 사실상 다 뒤엎어 부정해 버렸다. 아베 신조는 위안부 동원에 ‘강제’는 없었다며 피해 할머니들을 이중 삼중으로 모욕했다. 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베 신조는 전쟁이 끝난 지 한참 뒤 몇몇 극우 작가들이 위안부 동원 현장 조사를 해봤는데 현지인들도 ‘강제’는 없었다고 하더라는 검증되지 않는 날조를 근거로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선언했다. 강제동원 사실을 보도한 <아사히신문> 기자를 결국 온갖 압박을 가한 끝에 직장에서 쫓아내고 신문사가 사과히게 만들었다. 기시다 후미오 정권의 역사인식과 윤리의식도 아베 신조의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관동 대지진 으로 파괴된 도쿄 시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촬영일자 불명의 자료사진. AP 연합뉴스
고이케 도쿄도 지사도 조선인 학살 모르쇠
2016년에 도쿄도 지사가 된 고이케 유리코는 취임 첫해에는 관동 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냈다. 그것은 극우 이시하라 신타로도 도쿄도 지사 시절에 추도문을 보낸 관행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보내지 않았고 100주년을 맞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고이케 지사는 추도식 실행위가 추도문을 요청했으나 지난 15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조선인 희생 사실을 입증할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마땅히 했어야 할 조사를 하지 않아서 생긴 기록의 공백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는 근거로 동원하는 치졸한 순환논법을 일본정부와 도쿄도는 아직도 애용하고 있다.
일제 패망 직후인 1945년 8월 24일 고향으로 향하던 조선인 징용 피해자들을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의 돌연한 폭침사고로 수천명이 수장당한 엄청난 사건의 결말도 비슷하다. 일본정부는 진상조사도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조사하지 않아 생긴 기록의 공백을 근거로 모든 것을 ‘근거 없음’ 또는 무죄로 돌렸을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1895 10월 8일 당시 조선 주재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 한성 수비대 미야모토 다케타로 등이 사무라이 후예들인 낭인들을 이끌고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 민 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의 결말 역시 비슷했다. 당시 일본정부는 서방국들의 시선을 의식해 학살 주모자들을 붙잡아 일본으로 압송한 뒤 재판에 회부했으나 슬그머니 모두 무죄로 방면했다. 자신들이 없애 놓고 증거가 없다고 했을 것이다.
람 이매뉴얼 주일본 미국대사(오른쪽 첫 번째)가 31일 일본 후쿠시마현 소마시를 방문해 현지 어부와 대화하고 있다. 이매뉴얼 대사는 이번 방문 목적에 대해 "일본이 체계적으로(methodically) 추구해온 절차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물리적 지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2023.08.31.로이터 연합뉴스
대지진 100년 뒤 밀려오는 핵오염수 파고
관동 대지진 100년, 일본사회는 그때보다 안전해졌는가?
그렇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의 하향곡선을 그려 온 일본사회는 2023년 8월 24일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강행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한층 더 어수선하고 불안해진 듯 보인다. 이미 7월부터 일본산 수산물 수입 통관절차를 대폭 강화해 수입을 규제하던 중국은 지난 24일부터 홍콩과 합치면 연간 1조 5천억원(지난해)에 이르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중국정부의 이런 강력한 맞대응 조치로 인해 일본의 어업 종사자들과 수산업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뒤숭숭하다. 일본정부도 이런 “예상 외의” 강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다.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지지한 미국의 주일 대사까지 후쿠시마산 수산물 시식회를 여는 등 응원에 나서야 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800억 엔짜리 기금 정도로 떼우려던 어민들과 수산물 유통·수출입업자들을 비롯한 해양 투기 피해자들의 ‘민심’ 달래기가 중국의 전면금수로 크게 흔들리자 기금 규모를 더 키우기로 했다. 돈으로 불안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까.
중국 수출길 막힌 가리비와 방어, 한국으로?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방사능 물질들의 해양 오염과 수산물에 대한 ‘풍평(소문)’ 피해를 겁내는 자국민들, 그리고 한국 중국 등 이웃나라와 태평양 연안 및 도서국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핵오염수의 해양 투기를 강행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과학적으로 안전하며 인체와 생태계에 대한 피해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 주장하면서 해양 투기를 정당화했다. 그들은 그것을 근거로 한국 시민사회와 야당, 중국정부의 해양 투기 비판과 반대를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적 발언’이나 '괴담'으로 매도한다.
예의 그 순환논법의 변형 복사판이다.
한국정부는 대다수가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것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무시한 채 ‘제3자 변제’안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예컨대 중국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금지로 중국으로의 판로가 막힌 일본산 가리비와 방어 대체 수출지로 한국을 지목하고 일본 수출업자들이 몰려 와도 그들을 물리칠 명분이 없다. 그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8월 31일 <아사히> 기사에 따르면, 나가사키 현의 양식 가공업자 ‘하시구치 수산’은 방어의 약 95%를 외국에 수출해 왔는데, 그 가운데 약 20%가 중국으로 갔다. 하시구치 수산의 하시구치 나오마사 사장은 중국의 전면금수로 “억(엔) 단위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했다.
<아사히>는 이에 따라 “중국으로의 수출이 막혀 미국과 한국의 바이어에게 평소보다 많은 양을 사 달라고 부탁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전했다. 11월부터 본격적인 출하 시즌이 시작되면 더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타사들도 물론 중국으로 수출길이 막히니까 판매처가 한 곳으로 집중되면 다 팔지 못하지나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다. 한국은 몰려 올 일본산 가리비와 방어를 받아들일까.
31일 일본 후쿠시마현 소마시의 한 시장에서 시민이 수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일본은 지난 24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개시했다. 2023.08.31. 로이터 연합뉴스
혼란에 빠진 전체 수산업계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금지 조치가 시작된 지 1주일, 일본에서는 “중국으로 수출한 수산물이 통관되지 못하고 환송돼 오고 있다” “가리비의 중국 수출길이 막혀 냉동고에 여유가 없어진 지역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홋카이도는 지난 29일 ‘홋카이도 수산물유통수출에 관한 연락협의회’를 설치했다. 홋카이도의 수산물 수출액은 2022년에 833억 엔으로, 그 중 중국 수출액이 532억 엔이었다. 특히 가리비 비중이 커서 전체 가리비 수출액은 618억 엔이었고, 그 가운데 중국 수출액이 448억 엔이었다.
“가리비 수확은 10월께부터 내년 초에 걸쳐 본격적으로 이뤄지는데, 이대로 가면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 이미 해양 투기 전부터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8월 30일 발표된 일본 무역통계에 따르면 7월 홋카이도에서 중국으로 간 수산물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줄어들었다. 최대 수출품인 가리비는 지난해 7월 52억 엔에서 올해 34억 엔으로 35% 줄었다. 해양 투기 전부터 실시된 중국 세관의 일본산 수산물 전수검사 때문이었다.
냉동 가리비를 주로 취급하는 도쿄지역의 한 수산물 전문상사 사장은 “최근 몇 년간 중국 수출이 호조여서 전망이 밝았다”며, 그 전망이 해양 투기로 완전히 망가졌다고 했다. 연간 매출이 수십억 엔 규모였는데 지난 7월 이후에는 지난해 대비 수억 엔이 줄었다. 중국 수출길이 막혀 버린 탓이다.
“가리비 수확은 계속되고 있어서 어딘가로 팔아야 한다. 매상의 절반을 차지했던 중국 수출이 멈춘 지금 많은 업자들이 국내 판매처를 찾고 있다. 국내의 공급량을 2배, 3배 늘리려면 값을 내릴 수밖에 없다.” 유럽이나 동남아시아로 판로를 새로 개척하려 하지만 “어느 쪽이나 일본산 가리비가 남아돌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값을 후려쳐서 깎으려 한다" 고 그는 말했다.
동업자 중에는 중국의 컨테이너 야적장까지 보냈으나 통관이 안 돼 다시 배에 싣고 일본으로 가져 온 회사도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그렇게 환송된 가리비 보관장소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며 “업계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 수는 수산업 종사자들의 5배
도쿄전력은 외국의 금수조치로 손해를 본 경우 보상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피해 업자들에게 도쿄전력 담당자가 찾아와 설명도 했다. 하지만 “10월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한다는데, 그러면 실제로 보상은 언제 이뤄지는지. 회사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홋카이도수산물하주협회 회장으로 아바시리 시에서 수산물 가공회사를 운영하는 네다 도시아키 사장은 “타격을 받는 건 수산업만이 아니다”고 했다.
예컨대 의료기관도 피해를 입게 된다. 일본에서는 잡은 연어를 중국에 1만톤 이상 보내 뼈를 발라내고 껍질을 벗겨 가공한 뒤 일본으로 다시 들여 와 병원이나 고령자 시설에 의료식으로 공급한다. 해양 투기와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전면금수로 의료기관과 관계자들, 수산가공무역의 냉동식품 등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네다 사장이 보기에 정부는 어업 종사자들에게만 후한 지원을 해 주는데, “유통가공업자, 트럭 운송회사, 보관하는 창고회사도 모두 곤란해진다. 그런 분야 종사자들은 1차 산업의 약 5배다”라며 “그런 현실에도 (정부가) 눈길을 주기 바란다”고 했다.
29일 한 여성이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일식집의 메뉴판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방류를 강하게 비판하며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2023.08.29. AFP 연합뉴스
중국 단체관광객 유치도 낙관 못해
일본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대책안 중에는 일본 내 가공시설의 신설을 지원하는 것도 들어 있다. 네다 사장은 “건설자재값이 폭등하고 기계값도 전기요금도 올라가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현실적인 대책인가”하고 의문을 포시했다.
일본 관광업계가 잔뜩 기대하고 있던 중국인 단체여행을 중국정부가 지난달 10일에 허용했으나, 핵오염수 해양 투기 전부터 신규 예약자가 줄고 있고 기존 예약 취소사태도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