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찬송 22:22~26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열방의 경배 22:27~31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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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시편 기자는 주님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주님을 경외하라고 명하며, 모든 나라의 주재이신 하나님 앞에 모든 족속이 예배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후손은 주님을 섬기며 대대에 주님을 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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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9~31 열방의 주재이신 하나님
다윗이 처해있는 고난이 예수님이 십자가의 돌아가실 때와 같은
영상으로 머리에 그려지는 시가 시편 22편이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도 인용하셨던 말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6, 막15:34) 외치던 말씀과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4)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15)
악한 무리가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16)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17)
십자가 현장의 바로 그 모습을 비디오로 보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깊은 탄식 가운데 있었던 다윗은 극적인 반전을 보인다.
내가 주를 찬송하리이다(22) 작심하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내 모든 뼈가 어그러지는 것 같은 고난가운데 있더라도
오늘 다윗이 선포하는 것과 같이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22) 선포한다.
환난중에서라도 이런 결심이 나의 삶에도 있게 하옵소서.
혼자만 이런 결심을 하고 선포를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동지들을 규합해서 함께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자고 격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23)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23)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23)
왜 이렇게 찬송과 영광을 돌리수가 있는가?
하나님이 결코 외면하신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움 당하는 자의 어려움을 외면하거나 싫어하지 아니시며(24)
그 얼굴을 저에게 숨기지 아니하시고(24)
부르짖을 때에 귀를 기울인다.(24) 할렐루야.
너무 너무 좋으신 하나님의 성품들이다.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싫어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얼굴을 숨기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기도 할 때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이심에 찬양을 드린다.
그러므로 내가 많은 군중 앞에 서서 주를 찬양하겠습니다.(25)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26)라고 선포하고 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1) 하던
탄식이 살아지고 찬송을 선언하고 선포하자 겉잡을 수 없이 확대 된다.
자신의 처지에서 탄식했던 것이 어느 사이에 열방으로 나아가고 있다.
온 세상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그에게 돌아올 것이며
모든 민족들이 그를 경배하리라.(27)
여호와는 왕이시므로 그분이 모든 민족을 다스리신다.(28)
세상의 모든 부유하고 넉넉한 모든 자들도 그 분을 경배할 것이요.(29)
자기 영혼을 살릴수 없으니 흙으로 돌아갈 모든 사람이 주 앞에 절하리라.(29)
자기 자신을 바라보던 다윗이 눈이 열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에
온 세상과 모든 민족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무릎꿇고 경배하며 절하는 이상을 본 것이다.
영적인 영안이 밝아지면 이렇게 되는 구나. 아멘.
그러므로 자자손손 후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30)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도 주께서 이 모든 것을 행하셨다.(31)라고 선포한다.
그렇다.
내 삶속에 주께서 행하지 않는 일은 없으리라.
아버지
다윗이 고난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는 것 처럼
나의 삶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주의 이름을 선포하고 찬송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눈을 열어 주셔서 고난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성품을 보게 하시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셔서
온 세상과 열방을 보게 하옵소서.
이 모든 것이 주가 행하셨음을 간증하며
찬송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주님
아프카니스탄에서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희생이 선교의 씨앗이 되게 하셔서
복음의 열매들이 있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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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가운데서 경험하는 구원(22:19~26)
고난 너머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을 찬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시편 기자는 극한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해 절규하듯 도움을 호소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칼’(헤레브)과 죽일 듯 달려드는 ‘개’(켈레브)가 이를 위해 상징어로 쓰였습니다(20절).
시편 기자가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라고 호소하고 곧이어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유한한 세상 너머에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이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상황만 보던
시선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옮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곤고한 약자와 정직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십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의 은혜를 찬양할 것입니다.
- 묵상 질문: 21절에서 시편 기자의 기도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고난의 상황에서 어떤 기도를 드리나요?
미래에 맛볼 승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지금 드려 보세요.
공동체의 경배(22:27~31)
구원의 경험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경배로 나아가게 합니다. 극한 고난을 겪으며 응답과 구원을 고백했던
시편 기자의 개인적 경험이 확장됩니다. ‘땅의 모든 끝’과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예배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대대에’
주님과 그분의 능력을 전할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공간적 차원뿐 아니라
시간적 차원에서도 후대로 이어집니다.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개인의 감사와 경배를 넘어 열방과
후대에 자신의 경험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열방에 전할 복음이고,
후손 대대에 전할 복음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이를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시편 기자의 구원 경험이 어떻게 확산되나요? 이는 복음 전파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 적용 질문: 이웃에게, 또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주님을 전하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고난과 슬픔에 빠져서 주님이 일하심을 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제 마음과 눈을 돌이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그럴 때 더불어 나아갈 지체를 붙여 주시고 구원의 지경이 넓어질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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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4,26절 곤고한 자의 고통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고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한 시도 떠난 적 없으시고, 내 고통을 누구보다 아파하고 계셨습니다.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고, 그분의 계획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 뜻을 이루기 가장 적절한 때에 주님은 구원을 보이실 것입니다.
27-31절 온 땅 모든 족속이 예배할 주(主)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을 넘어 온 땅에 미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온 땅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배할 날을 내다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고, 유력한 자와 무명한 자, 진토에 내려간 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까지도 모두 그 나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의 사명은 아직 복음을 듣지 않은 나라와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전하고, 그 나라와 주의 공의로운 통치를 다음세대에게 계승하는 것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2-24절 시인의 탄식이 탄성으로, 수치가 자랑으로 변주됩니다. 하나님이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그를 싫어 버리지도 않으신 까닭입니다(참조. 1절). 그는 자신의 고난을 조롱하던 자들 앞에서 주의 구원을 간증하기로 결심합니다. 회중 앞에 선 그의 몸이 하나님이 그를 돌보신 증거입니다. 그는 회중을 향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고 외칩니다. 오늘 회중 앞에서 선포할 나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25,26절 시인은 회중 앞에서 서원을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서원을 갚는 것은 구원의 은총을 회중과 함께 감사하며 그 축복을 함께 누리는 일입니다. 이로써 시인의 구원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기쁨으로 승화됩니다. 시인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공동체를 돌보시고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실 것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일상에서 경험한 은총을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 기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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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 중에도 찬송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22~24절).
다윗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받으며, 심지어는 벌레 취급까지 받으며 절망적인 상황을 보내고 있습니다. 밤낮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듣지도 그리고 돕지도 않으시는 것 같은 현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미리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모든 회중과 함께 찬송할 것을 선포(22절)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찬송하라...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영광을 돌리라...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경외하라..’(23절)... 하나님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경외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면하지도 않으시고,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 응답(24절,새번역)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오랜 침묵은 내 자신이 겪고 있는 환난과 고난에 대해 수수방관만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역사들을 만들어 낼 계획을 품고 계시는 과정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그분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며,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합니다. 지금 당장 응답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 이유가 됩니다. 안나라는 여인은 결혼 한지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무려 84년 동안 홀로 성전을 지키며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그녀에게 기다림은 또 다른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로 주어진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찬송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내 자신을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기 때문입니다(25~26절).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서원을 갚겠다고 선언(25절)합니다. ‘...겸손한 자..’는 ‘가난한 자’를 뜻합니다.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함께 먹고 배부르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찾는 자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의 마음은 영원히 살 것(26절)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내 자신으로 하여금 찬송을 하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찬송이 믿음을 나타내는 언어라면 믿음은 승리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내 자신이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비천한 처지에 있을지라도 영정 부유함을 누릴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건져 내어 주셔서 견고한 반석위에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만이 나의 삶에 온전한 만족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자리에서 힘들고 어려울수록 나를 건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고난 중에도 찬송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의 삶을 건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의 주재시기 때문입니다(27~31절).
다윗은 하나님이 열방의 주재이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역이 하나도 없을 것이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님을 예배하는 자로 나아오게 될 것(27절)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28절)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열방을 통치하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족과 열방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윗은 부유한 자나 진토 속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비천한 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할 것(29절)이라고 선포합니다. 구원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당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30절)... 즉, 다음 세대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일어나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즉 구원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구원의 역사는 계속해서 진행되어져 갈 것입니다. 나의 시선을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환경에만 고정시키지 말고, 현재의 시간을 넘어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은 교회와 나를 성장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봅니다. 눈을 들어 세상에 물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눈을 들어 모든 열방과 족속들을 바라봅니다. 고난 중에도 찬송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의 삶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의 삶을 역전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구원의 은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돌보시고, 건지시고, 주재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시 22:22~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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