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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차에 관하여>
1. 발효차의 연원
중국의 경우, 당대와 송대에는 주로 쪄서 만든 덩이차(團茶;단차)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그 당시에 쓰여진 다서(茶書)인 육우의 <다경>이나 휘종의 <대관다론>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덩이차는 건조 과정이나 보관 운송 도중에 발효가 진행되기 쉽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일단(一端)은 변방지역인 중국의 운남산(産) 보이차에 남아있습니다.
송말과 원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잎차(散茶;산차)는, 명대에 이르러 솥에서 덖어 익히는
방식으로의 발전으로, 덖음잎녹차가 확립됩니다. 이는 장원의 <다록>이나 초의의 <동다송>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대에 정립된 솥에서 덖어 익히는 제법은 차잎 발효의 세밀한 통제를 가능케 하였습니다.
차잎의 발효에 대한 세밀한 통제는, 불발효차인 녹차는 더욱 녹차답게 하고, 각종 발효차가
만들어지는 단초(端初)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16,7세기부터 복건과 광동 등의 중국 남부에서는
오룡차(청차)와 홍차 등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신라인들과 고려인들이 당시에 성행하던 당나라의 덩이차와 송나라의 연고차(硏膏茶)를
들여오거나 만들어서 마신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차는 중국차의 본류와 그 발전의
궤를 같이해 왔습니다. 이는 덩이차의 유습이 남아있는 중국의 서남부 일부지역(운남의 보이차 등)
이나 쪄서 익히는 제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과는 다른 점입니다.
이제 솥에서 덖어 만든 잎 녹차만이 우리의 정통차라는 편협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초의선사가 <다신전>과 <동다송>을 쓸 당시에도 우리나라에는 덩이차와 잎차, 찐차와 덖음차,
발효차와 녹차가 병존(竝存)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차의 명맥(命脈)은 민간의 발효차에 의하여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민족 분단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차 산업과 문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하였을 때에도,
하동화개지역에서는 작설차가 우리차의 전통을 이었고, 사천, 해남, 강진, 구례 등지에도
그 지역 특유의 발효차가 남아 있었습니다.
2. 차잎의 발효와 발효차의 특징
차잎의 발효는, 후발효차인 황차와 흑차를 제외하고는,
차잎의 산화효소(酸化酵素; polyphenoloxidase 등)에 의해 일어납니다.
발효가 진행되면, 차의 주성분인 카데킨은 산화중합(酸化重合)되면서 그 성질이 바뀝니다.
또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나 유기산으로 분해되고, 단당류나 휘발성 물질(Volatile constituents;
소량의 물질이나 차의 향을 주도함)도 바뀌거나 새로 생겨납니다. 그리고 엽록소(Chlorophyll)나
카로티노이드(Carotenoids) 등의 색소물질도 분해되고 차황질(茶黃質; theaflavins)과
차홍질(茶紅質; thearubigins) 등도 생겨납니다.
발효차는 위와 같은 발효 과정을 통하여 완성차와 찻물의 색이 달라지고, 독특한 발효향과
나름의 풍미를 가지게 됩니다.
발효차는 녹차에 비하여 카데킨과 비타민C 등의 양은 줄지만, 카데킨과 카페인의 수렴성과
자극성이 적고 향미가 부드러워 좀 진하게 마시거나 여러 잔을 마셔도 거북하지 않습니다.
특히, 위장이 약한 사람이나 카페인 내성이 약한 사람에게 녹차에 비하여 부담이 적습니다.
차잎의 발효는 온도와 습도 등의 조건과 차 만드는 이의 조작에 따라 예민하고 급속하게
반응하므로, 신중하고 정확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상발효(異常醱酵)가
일어나서 역겨운 향미(香味)를 띠거나 밋밋하면서 달기만 한 발효차가 만들어 진다.
앞서 얘기한대로, 발효차는 발효 방식에 따라 크게 홍차(紅茶), 청차(靑茶), 백차(白茶),
황차(黃茶), 흑차(黑茶) 등으로 나누어진다. 발효의 방식과 정도가 다르고 또한 그것들이
뒤섞여 있는, 각양각색 수많은 발효차의 모든 공정을 모두 다루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라,
아래에서는 ‘발효차 만들기의 기본공정’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1) 숨죽이기
차의 신선엽은 숨죽이기를 통하여 수분이 증발하게 되어 세포막의 투과성(透過性)이 높아진다.
이 때 차잎의 주성분인 폴리페놀 등에 있는 산화효소의 활성도 함께 높아진다.
숨죽이기의 방식에는 ‘햇볕쬐기’와 ‘실내 숨죽이기’가 있는데, 앞의 공정에서는
햇볕의 세기와 시간, 뒤의 공정에서는 온도와 습도와 통풍 등을 잘 맞추어야 한다. 차잎의 광택이
사라지고 오그라들기 시작할 때 냄새를 맡아보아서, 풋냄새가 없어지고 꽃향기가 진동하면 그
만 그친다.
시들리기의 정도가 약하면 풋내가 나게 되고 원하는 발효차의 향미를 얻을 수 없으며,
그 정도가 너무 강하면 끝부분이 마르거나 향미의 손실을 가져와서 완성차의 성상(成狀)과
향미(香味)를 그르치게 된다.
(2) 시들리기(전(前)발효)
‘숨죽이기’를 거쳐서 발효차가 될 준비를 갖춘 차잎은, 익히기 전에, ‘식히기와
부비기(흔들기, 뒤집기)’를 통하여 앞서 말한 화학작용이 촉진시킨다.
이때의 ‘식히기’는, ‘차잎 익히기’의 다음에 하는 뜨거워진 차잎을 뒤집거나 바람을 쐬어 식히는
공정과는 달리, 실내에 얇게 널어놓는 공정이다. 이 때 통풍이 잘 안되거나 두껍게 쌓아서 널면
이상발효(異常醱酵)가 일어나게 된다.
‘부비기’란? 바닥에서 ‘비비는’ 것과는 달리, 차잎을 가슴 앞에서 두 손으로 감싸쥔 채
마찰시키는 것으로, 세포 간의 투과를 촉진시키는 작업이다. 이 때, 힘을 너무 주어 차잎이
다치는 것은 피한다.
(3) 덖기
발효차는 솥에서 덖어 익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차잎을 쪄서 익히면 수분을 머금게 되어
이어지는 공정이 순조롭지 않다.
차잎은 덖기를 통하여 산화효소가 실활(失活)되어 향미가 고정된다. 그리고 조직이
연화(軟化)되어 이어지는 비비기를 잘 할 수 있게 된다.
녹차는 차잎을 덖는 솥의 열도가 200도씨인 반면, 발효차는 그보다 낮은 열도인 150도씨안팎이
알맞다.
(4) 비비기
차잎은 비비기를 통하여 조직이 깨어지고, 모양이 갖추어진다. 그래서 쉽게 우러나게 되고,
저장과 운송이 용이해진다.
그리고, 비비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말리기가 순조롭게 되지 않아서, 이상한 향미가 섞이게
되고 저장성도 떨어지게 된다.
발효차는 녹차에 비하여 약하게 오래 비벼야 하며, 경우에 따라 두 번 이상 비빌 수도 있다.
(5) 띄우기(후(後)발효)
청차의 경우에는 띄우기를 하지 않고 바로 말리기를 한다. 그러나 황차나 흑차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보장되는 실내에서 띄우기를 한다.
‘띄우기’를 할 때에는 온도와 습도를 세심하게 조절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발효정도를
잘 살펴야 한다.
(6) 말리기
발효차의 말리기는 ‘온돌방 말리기’와 ‘솥 덖음 말리기’를 병행한다.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청차나 백차는 ‘솥 덖음’이, 황차와 홍차는 ‘온돌방’이 더 잘 어울렸다.
(7) 저장
발효차의 저장는 녹차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수분 함유율을 5%이하로 말린 완성차는
밀봉하여 건랭(乾冷)한 장소에 보관한다. 대바구니나 독에 보관하기도 하는데, 권할 일이 아니다.
몇 년씩 해를 넘겨 묵혀도 보았는데, 일 년에 한번씩은 ‘다시 덖기’를 해 주는 것이 좋았다.
위와 같이 발효차의 기본공정을 살펴보았다. 발효차 만들기에 있어서, 찻잎의 특성이나 만들기
원하는 차종(茶種)에 따라, 어떤 공정은 강조하여야 하고 어떤 공정은 약하게 실행하거나
생략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경(輕)발효 청차를 만들 때에는 ‘띄우기’가 필요 없고,
강(强)발효 홍차(紅茶)의 경우에는 ‘시들리기’를 생략하는 대신에 ‘비비기’와 ‘띄우기’를
강조하여야 한다.
발효차든 녹차든 좋은 차를 만드려면, ‘좋은 차나무를 잘 기르고, 차잎을 제대로 따서,
정성을 다하여 치밀(緻密)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다(造茶)의 기본원칙(基本原則)에
충실하여야 한다.
게다가 발효차는 찻잎이 가지고 있는 산화효소의 작용을 유도하고 제어하며 만들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찻잎은 중국의 그것보다 성분이 충실하여 발효가
급속하게 진행된다. 때문에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발효차를 만드는 이들 가운데 ‘띄우기’만을 무슨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어, 봉지에 싸거나 천을 덮어 ‘띄우기(?)’를 하는데, 피해야 할 일이다.
대홍포(大紅袍; 중(中)발효 청차. 최고의 무이암차), 안계철관음(安溪 鐵觀音; 복건성 안계현에서
나는 중(中)발효 반구형(半球形) 청차), 봉황수선(鳳凰水仙; 광동성 조안현에서 나는
중(重)발효 청차), 대만포종(臺灣包種; 대만의 경(輕)발효 청차. 문산포종, 동정오룡,
고산오룡 등이 있음), 대만오룡(臺灣烏龍; 중(重)발효 청차. 팽풍차, 백호오룡, 동방미인 등으로도
부름), ...
이상은 대략 손꼽은 중국의 이름난 청차(오룡차)들입니다. 물론, 그 밖에도 이름난 발효차들이
많고, 이름난 녹차는 헤아리기조차 힘듭니다. 이는 각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특색있는 차나무의
수종(樹種)과 제다법을 발전시켜 온 결과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토종 차나무의 품성과 토양 기후 등의 환경조건들은 중국이나 다른 외국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차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이 때에,
아직 거르고 다듬지 못한 비과학적인 옛 것만을 신봉하거나 외국의 것이라면 맹목적으로
추종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2004.10. 紫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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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다론(黃茶論)>
<해제> 이 글은 중국의 육대다류(六大茶類) 가운데 황차(黃茶)에 대하여 쓴 것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의 황차란 불발효차인 녹차(Green-tea)와 강발효차인 홍차(Black-tea) 사이에 있
는, 국제적으로는 오룡차(Oolong-tea)로 통칭되기도 하는, 모든 부분(반)발효차를 말합니다.
육대다류법에서는 차의 종류를 녹차, 백차, 청차, 황차, 흑차, 홍차등의 여섯 가지로 나누는
데, 불발효차인 녹차와 강발효차인 홍차를 뺀 백차, 청차, 황차, 흑차는 모두 부분(반)발효차
에 들어갑니다. 이러한 분류법은 발효의 유무나 정도, 방식에 따른 것인데, 사실 불발효차인
녹차와 후발효(곰팡이균 발효를 한 차로 보이차가 가장 유명함)차인 흑차를 제외한 나머지
발효차들은 그 제법이나 만든 차의 향미가 서로 뒤섞여 있어 뚜렷히 가려내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차(茶)의 범주 안에 커피, 코코아, 인삼탕, 쌍화탕…등을 포함시키는 이
가 많습니다.인삼탕이나 쌍화탕은 동의약(東醫藥:중국의 의학인 한방 또는 중의학에 대비되는
우리의 전통의학인 동의학의 약)의 약재 가운데, 한가지나 여러 가지를 다려서 만든 마실거리입니다.
그리고 커피나 코코아는 제 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마시는 방법도 차와는 사뭇 다릅니다.
모름지기 차란 차나무의 새잎으로 만든 마실거리를 망라해서 부르는 이름이며, 그 마시는 방법도
다른 음료와는 달리 주로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잎으로 만들어 우려내어 마시는 마실거리인 차를 바르게 알고 있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전통차가 오직 녹차 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 범위를
더욱 좁혀서 일본에서 들여온 증제차(쪄서 만든차)에 대비되는 부초차(가마솥덖음차)만이
우리의 전통차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과연 가마솥 덖음 녹차만이 우리의 전통차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녹차와 더불어 많은 종류의 발효차를 만들어 마셨습니다.그리고 솥에서
덖는 방식으로만 차잎을 익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명대 이전에는 주로 쪄서 만든 덩이차가 만들어 졌습니다. 덩이차는 건조를 하
거나 보관, 운송중에 발효가 진행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마시는 방법도 찧고 갈아서 다려내
어 마시게 됩니다. 그 일단(一端)은 오늘날 중국의 운남산(産) 보이차에 남아있고, 티벳, 서
장, 몽고지역의 음다풍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송대에 들어 만들어지기 시작한 잎차(덩이차와 구별되는)는 명대에 이르러 덖어 만든 잎차
로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송대에 차를 전래받은 일본의 경우에는, 쪄서 만든 잎차가
그 나라의 주종을 이루는 차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차의 시조인 염제 신농이 우리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제쳐놓고라도, 우리차는 중국으로
부터 전래된 것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우리의 생활과 함께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신라의 견당사 김대렴이 중국에서 차씨를 들여와 왕명에 따라 지리산 산록에 심은 것이 우
리 차의 시발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통일신라 이전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엄연히
남아있고, 가야사에 실여있는 차에 대한 기록과 이제까지 남아있는 차 유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차의 중국으로부터의 전래설은 사대주의와 봉건성을 벗어나지 못한 주장일뿐입니다.
우리선조들은 선사시대부터 차를 가까이 하였으며 특히 고려의 차문화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후 쇠퇴하기 시작한 우리의 차산업과 차문화는 현대에 들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쇠락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해방이후 커피로 대표되는 외래 음료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차는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80년대에 들어서 겨우 재생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우리의 차산업은 일본의 증제차에 영향
을 받은 제주도와 영암, 강진의 「설록차」와 보성지역의 「보성차」, 그리고 초의부초차에
뿌리를 둔 하동의 화개지역을 중심으로 한 「하동차」로 나뉘어 발전하였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차산업과 차문화는 눈부시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음다 인
구의 수효나 음다량의 기준으로 보면 아직도 차 후진국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차산업이 녹차(제법에 따라 증제차와 부초차로 나뉨)를 중심으로 편향되게 발전한 원
인은, 우리차 재생의 초창기에 그 기반이 취약했으므로 몇몇 유력한 다인들에 의해 주도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우리의 차잎은 발효차의 제조에 적합치 않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차의 명맥은 민간의 황차에 의하여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해남강진 지역의 정다
산차나 화개지역의 작설차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급체나 감기를 다스리는 상비약이었습니
다. 뿐만아니라 구례, 사천 등지에도 그 지역 특유의 발효차가 있었습니다. 저는 해마다 겨
울이 오면 부뚜막이나 온돌에서 시들리고 띄워서 만든 「잭쌀」(작설의 화개지역 사투리)의
다향이 화로불 위로 피어나던 기억을 문득문득 떠올리곤 합니다.
황차(발효차)는 잘 익은 향미를 느낄 수 있고, 많이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질이 따뜻하여 속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화개지역에는 봄차농사를 마치면 여름이 오
기전에 티백용 저급차를 한번 만들 뿐입니다. 이는 유월이후에는 차잎이 세어져서 녹차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세어진 여름과 가을의 차잎은 발효차를 만들기에는 오히려 적합
합니다. 때문에 발효차 생산이 개발되면 차 농가나 차 생산자들의 이익을 높힐 수 있고, 차
소비자들에게도 질좋은 우리 발효차를 전해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머지 않아 차시장이 개방되면 중국산 발효차가 물밀 듯이 들어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
는 하루 빨리 우리 땅에서 나는 차잎 성질에 알맞고, 우리의 입맛에 맞는 좋은 발효차를 만
들어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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