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년 목사
오늘도 주일(1.2.3부)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지난주간 무더운 날씨와 열대야 관계로 힘든 삶을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또한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충격이 컸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저는 지난주 우리교회 초신자에게 두 권의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권은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가 쓴 ‘구안록’이라는 책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마음의 평안을 어떻게 얻는가?’입니다. 그 책에 보니까 면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천사가 될 자격을 갖추고서도 가끔 짐승에까지 떨어진다. 올라가면 하늘 위의 사람이 될 수 있고, 내려가면 지옥의 마귀가 된다...”
나는 그 책을 보면서 사람이 좋을 때는 천사같이 보이지만 사람이 나빠지면(나쁜 방향으로 발전하면)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과 같은 이런 범죄를 저지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찬 사람들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자기 삶이 100% 만족해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삶의 어려움과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날마다 이겨 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하여 주신 본문 말씀에 보면 ‘때’(시기)에 대한 말씀이 28가지 나옵니다.
“모든 인생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습니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습니다.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습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습니다.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습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습니다.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24가지 때에 관한 내용 가운데서 14가지는 긍정적인 내용이고, 14가지는 부정적인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은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있다고 너무 좋아할 것도 없고, 안 좋은 일이 있다고 너무 실망 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일 후에는 안 좋은 일이 올 것이고, 안 좋은 일 후에는 좋은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1절/
인생길 험하고 마음지쳐 살아갈 용기 없어질 때
너 홀로 앉아서 낙심치 말고 예수님 품으로 나아오시오
2절/
평생의 모든 꿈 허물어져 세상의 친구 다 떠날때
어둠에 앉아서 울지만 말고 예수님 품으로 나아오시오
3절/
어둔밤 지나면 새날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오듯
이세상 슬픔이 지나고 나면 광명한 새날이 다가오네
(후렴)
예수님은 나의 생명 믿음소망 사랑되시니
십자가 보혈 자비의 손길로 상처 입은 너를 고치시리
요즘 무더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휴, 더워서 못 살겠다”
그런데 못 살기는 왜 못 살아요.
잠깐 후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휴, 추워서 못살겠네”
그러므로 추워도 살고, 더워서 삽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모든 범사를 주신 분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때(시기)에 대한 안목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일은 우연히 벌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다양한 때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인생이 당하는 여러 가지 이런 때를 임의적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전쟁과 평화가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미움이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할수만 있다면 죽고 싶지 않고 슬퍼하거나 미워하거나 전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우리 중에 인생을 통제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상황이 어떤 때의 상황이든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가 무엇일까요?
금언 중에서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금언은 ‘오늘’이라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다하겠다는 뜻입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도 오늘이라는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어떤 사람은 너무 ‘과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나이가 많이 들면 더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말고는 살아야지만 집착하거나 그리워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너무 미래에 뜻을 두고 삽니다. 맨날 나중에 뭐가 되면, 어떻게 되면 뭐 한다는 둥 큰 소리를 칩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가 미래의 꿈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너무 미래에 집착하다 보면 현실을 도피할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시도 하고 미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리가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사람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여기서 히브리 원문대로 보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두셨다'(하울람 나탄 벧리밤)고 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을 설치했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번역으로는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을 심어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영원>을 그리워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심어 놓으시고,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설치 해 놓았으므로 누구나 영원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는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끝나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현실의 불만족은 영원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현실을 영원 속에서 바라 볼 때에는 잠깐의 경점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화 : 바다에 거북이 이야기
바다 거북이가 산란기가 되어 육지로 올라옵니다. 바다에서 100M 쯤 떨어진 아늑한 수풀 밑에 모래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습니다. 거북이는 몇 초 간격으로 많은 (10개)알을 한꺼번에 낳고는 그 위에 모래를 덮습니다.
일정한 시일이 지나자 부화하는데, 신기하게도 알을 낳은 순서대로 한 마리씩 모래를 헤치고 올라와서는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바다 쪽을 향하여 필사적으로 달립니다. 결국 영원한 안식처인 바다에 도달합니다.
거북이에게는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하여 달리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바다를 향해 갑니다.
바다의 거북이가 바다를 향해 달려가듯이, 하나님은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땅에 살면서도 언제나 영원한 세상을 소망하면서 삽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와 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 잘 먹고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날에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땅엣 것만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눈을 들어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땅에 것을 생각지 말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이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치 말고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므로 영원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