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 켜진 새벽길을 나선다. 두툼한 방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란히 걷는다. 시선을 들어보니 대교 위에도 순례 행렬처럼 인파로 가득하다. 날마다 오는 아침이건만 새해 첫날 해맞이는 특별하다. 희붐한 바다 위로 요트와 어선들이 이른 새벽 바다로 나왔다. 빌딩과 빌딩 사이로 붉으레 탄생의 징조가 보이자 사람들의 걸음이 바빠진다. 서두른 보람이 있다. 흥건한 바다의 장력을 뚫고
머리 하나 밀려 오른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셔터 누르는 소리 속에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린다.
새해가 다가오면 한 해 설계를 한다. 이루고 싶은 소망이 너무나 많았던 어린 날과 달리 단출하다. 수첩을 꺼내어본다. 작년 계획에는 무엇이 적혔을까 보니 반타작은 한 것 같다. 수필 5편 이상 쓰기, 시 2편 적기, 수첩에 적힌 사람 정리하지 않기, 해외여행 가기, 옷 사지 않기, 시는 단 한 편도 완성하지 못했고 옷장에 가득한 옷을 두고도 저질렀으니 두 가지는 꽝인 셈이다. 해외여행은 가까운 일본이지만 두 번을 다녀왔으니 성취했다. 수필은 질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6편을 적었으니 가장 많은 결실이다. 감응이 오는 순간을 기다리느라 다작을 못 하는 편이다. 고작 두세 편 혹은 서너 편이 고작이었는데 여섯 편이라니 성공했다.
수첩에 적힌 사람 정리하지 않기는 약간 고민되는 부분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수첩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인연 줄을 끊고 싶은 사람에게 과감히 줄을 긋는 의식을 치렀다. 인연의 사망 선고인 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그럴 자격이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군더더기 같던, 엉킨 실타래 같던 인연들을 싹둑 자르고 거미줄같이 끈끈한 인연들만 남겨두려 했단 게 과연 옳은가. 답을 내리지 못한 지금 그냥 물 흐르는 대로 놓아두자는 생각이다. 가끔 수첩과 휴대폰에 가득한 가벼운 인연부터 두터운 인연까지 벅찰 때가 있지만 내가 먼저 정리하지는 않기로 한다.
올 한 해 무엇을 할지 연말부터 고민해 보았다. 첫째, 나 자신에게 상 주기라고 적어본다.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열심히 사는 나를 위한 상을 가끔씩 내리자는 결심을 해 본다. 항상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자신에게 ‘그만하면 됐다.’라는 다독임의 말과 함께 상을 내리고 싶다. 부상은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갖고 싶은 물건이든 하고 싶은 여행이든 주최 측 마음 가는 대로 주고 싶다. 무엇을 또 저지른다든지 ‘사고 쳤다.’ 하는 말 대신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하는 마음을 증정하고 싶다.
또 한 가지는 ‘마음이 동한 날 무작정 떠나보기’다. 우려낸 찻물처럼 어제도 오늘도 비슷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는 우리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고전문헌 학을 가르치는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도 그런 남자다. 그는 한 여자를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도 그렇게 무작정 낯선 곳에 발을 디디고 싶다.
문득,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에 나오는 은자가 사는 땅, 그 비밀스러운 은비령, 필례 계곡에 가고 싶을 수도 있다.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처럼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은 날일지도 모른다. 이동순 시인의 시집 〈묵호〉처럼 그 먹먹하고 캄캄한 어둠 빛 항구가 그리워져 떠나는 길이라도 좋겠다. 떠날 수 있다는 용기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길을 나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달에 두 번은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기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각자의 시간에 쫓겨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밥 먹을 일이 드물어졌다. 딸아이는 취직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밖에 있다. 아들은 이제 졸업반이 되니 자격증 취득이니 취업 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게 될 터이다. 식구란 방금 끓인 뜨거운 찌개 냄비를 앞에 두고 숟가락을 같이 꽂는 정겨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찌개 냄비의 숟가락처럼 들락날락 마음 방을 수시로 엿보아야 속을 알 수 있는 법이다. 다 함께 집밥을 먹을 날이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는지,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니, 마음이 먼저 쓸쓸해진다.
소망을 묻는 아나운서들의 질문에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온 가족이 건강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대답이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꿈과 희망을 말한다. 나이가 지긋해질수록 바람이 소박하다.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이요, 누구나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이 어렵다는 방증일 수 있다.
햇솜처럼 마음이 부푼다. 흥건넌출한 바다 위에 비친 해의 얼굴은 진홍빛이다. 붉은 비단의 귀퉁이를 잡고 푸새를 하듯 바다가 잔잔하게 흔들린다. 온몸으로 감응하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천명, 개인적으로 뜻깊은 해이다. 백세시대 인생의 변곡점이다. 하늘의 이치를 깨치는 나이가 아니라 하늘 무서운 줄 아는 나이라 칭하고 싶다. 어쩌면 둘 다 일맥상통하는 뜻일지 모른다. 하늘 무서운 줄 알고 분수를 지키기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두의 새해 작은 바람들이 붉은 태양 아래 익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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