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산(436m) 진달래 산행 [G10]
위치: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일자: 2014년 4월 8일(화)
날씨: 맑음/ 기온:강화2.1~14.3도(서울: 5.7~19.7도)
참가자(7명): 김 철 회장, 송창기 대장,
양종주, 유희주, 정성호, 채희묵, 최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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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 청련사 산행 들머리
11:25 고려산 정상 400m 전 식사
12:06 고려산 정상
12:36 고인돌 지대
13:45 낙조대 도착
14:00 적석사
14:30 적석사 입구 도로 도착
15:46 남장대 직전 잣나무 숲
15:48 남산 (223m) 정상의 남장대 도착
16:50 밴뎅이회집(강화풍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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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고려산 북쪽 사면에 펼쳐진 분홍 진달래 군락지
고려산 진달래군락지를 지나는 데크에서
바람도 없고 전형적인 포근한 봄 날씨다. 김포에서 강화 가는 도로의 가로수 벚나무가 하얀꽃으로 뒤덮인 절정에 있다. 노란 개나리가 합류해 봄을 수놓고 있다.
날씨에 민감한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생명체인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는 꽃샘추위가 서성이다 갑자기 20도가 넘는 초여름 기온으로 올라가더니 나무들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꽃을 같이 피우는 현상을 보인 올 봄이다.
봄이면 진달래로 성가를 올리고 있는 강화도 고려산 (436m)에서 분홍 진달래꽃에 취해보자고 잡은 4월의 정기 산행이지 않은가.
좀 일찍 개화한 진달래로 뒤덮힌 산의 모습이 수줍은 새악시 얼굴처럼 볼그스레하여 상춘객들을 흥분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연전에 한번 와 진달래에 푹 빠져본 산. 더욱 새롭게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서울의 삭막한 시멘트정글에서 각박하게 살아왔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다른 많은 상춘객들 사이에 끼어 곳곳을 마음과 디카에 담았다.
그렇게 만끽하고난 후 우리 일행은 국화리에서 다시 남쪽 강화산성 성곽이 있는 남산(223m)으로 올라 남장대에 서 보았다. 또 다른 조망이 동쪽과 남쪽으로 전개된다. 북한과 경계를 이루는 임진강 입구가 더욱 가깝고 강화대교 건너 문수산 (376m) 아래로 문수산성, 강화도 동쪽 해안을 따라 있는 광성보, 덕진진 등 개화기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려고 애썼던 흔적인 성곽과 진지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문으로 내려와 시외터미널 인근 강화풍물시장으로 들어갔다. 강화의 유명 먹거리 밴댕이회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곳. 송대장이 안내한 식당에서 밴댕이회와 무침으로 꿀맛보다 더한 뒤풀이를 해 진달래 산행의 맛을 배가시켰다.
강화군청 축제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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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송정역에서 7명이 모여
8시 조금 지나 고속터미널 9호선 승강장에는 입구마다 두 줄씩 길다. 출근시간 고속을 타기위해 서 있는데 승객이 다 들어가지 못한다. 한 편을 보내고 맨 앞에 서 있다 다음차에 들어섰다. 여의도역까지 서서 가기는 했어도 30여분 걸려 김포국제공항역에 내려준다.
5호선으로 갈아타 동쪽으로 한 정거장 가 송정에서 내렸다.
2번출구 표시를 따라나가는데 출구 앞 층계에 송대장이 올라가고 있다. 8:50. 밖으로 나가니 김포시내라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차도 많다. 5호선 한번 타고 고덕에서 오는 희주가 합류하며 마나님이 김밥을 너무 일찍 싸주는 바람에 30분 전에 나와 계단을 한참 동안 오르내리고 있었단다. 과천에 사는 종주는 김포공항에서 놀다오는 중이란다. 최종헌 친구도 시간전에 오고 압구정에 사는 김철 회장은 빠른 줄 알고 종로3가에서 5호선을 갈아타고 왔더니 너무 늦더라는 것.
오늘은 3명이 빠졌다. 유양수 친구는 개인 일정으로, 백영호 친구는 병원 건강진단으로, 47재경동창회 왕총무 박종성친구는 임플란트로 같이하지 못했다.
벚꽃 만개한 김포 48번 도로
송정역에서 강화시외터미널행 3000번 버스를 올라탔다. 39번도로를 따라 시내를 빠져나가 고촌 IC에서 48번 국도로 갈아타고 운하 아라뱃길이 있는 아라대교를 지나며 농촌풍경이 전개된다. 곳곳이 봄이다. 특히 가로수 벚나무의 꽃이 만개해 봄기분을 한껏 끌어올린다.
김포대학교 학생 등교 시간
봄기운에 취해 1시간 가량 가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내린다. 차가 헐렁하다. 강화대교 못미처에 있는 김포대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이다. 하마터면 이들 대학생들 때문에 내내 서서올 뻔했다. 버스를 타면서 자리가 많은 듯 싶어 중년 여인 둘을 먼저 태우고 올라갔더니 맨 뒤 가운데 좌석 하나만 비어있지 않은가.
터미널에서 택시 타고 들머리 청련사로
강화고속터미널에서 내려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세줄로 서 있는 택시들.... 우리는 두 대로 청련사로 향했다. 청련사는 고려산의 다섯 들머리 중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곳. 7,000원에 택시가 산 동쪽 들머리인 절 턱앞에 내려준다.
400미터 남겨놓고 점심 자리 펴
처음부터 등로 옆에서 활짝 웃으며 지나가는 등산객들을 기웃거리는 진달래다. 생각보다 평일인데 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계속 길 옆과 숲속으로 진달래가 화사하게 웃고 있다. 11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송대장은 군락지에서 400미터 남겨놓고 길옆에 앉아 점심을 미리 먹자고 한다. 군락지에서는 점을 찍을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단다.
송대장이 등산용 납작병에 양주 두병, 종주가 가져온 소주 한병. 막걸리도 한병. 알콜은 충분하다. 송대장은 밥그릇 겸 술잔 겸 해서 쓰라고 큰 스테인리스 그릇을 하나씩 하사한다.
송대장님이 밥그릇, 국그릇 등 다용도로 쓰라고 하사
희주는 어부인이 말아준 김밥, 송대장은 파김치, 김회장은 돼지고기가 든 김치찌개에 찰밥, 최종헌 친구는 속을 넣은 식빵에 유자차, 나는 오메기떡에 김밥 한줄... 종주친구는 도시락을 꺼내지도 못했다.
지나가는 아주머니보고 와서 뭐든 먹고 가라고 하니 한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오메기떡을 하나 주었다. 시각장애자. 단체로 왔단다. 옆의 아주머니는 도우미. 맛있다며 고맙다고하고 간다. 눈이 멀쩡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더욱 잘 보존하고 써야 할 것이다.
금주말이 고려산 진달래 절정될 듯
배를 채우고 다시 일어섰다. 군시설이 있는 정상은 금지구역이다. 옆구리를 따라 북쪽으로 돌아서니 축제시의 포토존 겸 먹거리장터가 나오고 서쪽으로 북사면자락이 분홍치마다. 너나 없이 감탄사 연발.
사방에서 올라오기 때문인지 진달래를 구경나온 상춘객들이 많아졌다. 데크 따라 울긋불긋 패션의 등산객들이 볼그스레한 진달래꽃과 어우러져 장관이다. 곳곳에서 포즈를 취하며 즐거워하는 모습들이다. 금주 말에는 절정에 이를 것 같다.
포토존 겸 먹거리장터 서편에서 서쪽 산사면 진달래군락지를 배경으로 한 컷
송대장이 찍으니나도 많이 잡힌다. 나를 집중적으로 찍었는지도 모른다.
KGB 국장(?)
19일 시작하는 진달래 축제 어쩌나
정작 강화군은 19일(다음 토요일)부터 5월 1일까지를 고려산의 진달래 축제기간으로 잡아놓았는데 이를 어쩌나. 그래서 매년 봄꽃 축제기간을 잡는 각 지방 자치단체들은 봄만 가까워지면 날씨가 심술을 부리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고인돌 지대를 지나
주말이 아니라서 인파가 적어 그래도 한적하게 진달래를 즐길 수 있었다. 군락지를 지나니 고인돌 지대가 나온다. 북방식이라며 여러군데 표시가 되어 있다. 이렇게 높은 산에 있는 경우가 드물단다.
지나온 고려산 정상을 뒤돌아보니 군시설이 카운트다운에 들어선 인공위성이 오똑 서 있는 것 같다. 남쪽 가까이에는 강화섬에서 마니산(469m)에 이어 두 번째 높은 혈구산(466m)이 우뚝 서 있다.
고려산 이야기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인도의 천축조사가 가람터를 찾기 위해 고려산을 찾았다. 그는 정상에 피어있는 5가지색상의 연꽃을 발견하고 불심으로 이를 날려 꽃이 떨어진 장소마다 절을 세웠다. 하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엔 백련사를, 흑색 연 꽃이 떨어진 자리엔 흑련사를, 붉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엔 적석사를, 황색 꽃이 떨어진 자리엔 황련사를, 청색 꽃이 떨어진 자리엔 청련사를 각각 지었다. 그러나 청련사만은 조사가 원하는 장소에 떨어지질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라는 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고려산 주변엔 3개의 사찰과 1개의 암자가 천오백년을 넘게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한때는 이곳에 자리한 연못을 오련지라고도 하였으며 산이름을 오련산으로, 다섯 개의 사찰을 하나로 묶어 오련사라고도 불렀으며 후에 오련산은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려산은 고려의 정기를 품은 산으로 진달래가 피는 봄의 모습도 좋지만 백련사, 적석사 등 사찰과 고인돌 군락지, 오련지, 홍릉 등 문화재가 분포하여 역사탐방 위주의 산행에도 좋다. 서쪽 적석사를 가다보면 솔밭을 지나고 갈대밭을 지나 낙조봉을 만날 수 있는데 저녁에 서해 수평선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며 해지는 광경은 [강화8경]중 하나이다.
또한, 고려산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연개소문에 관한 구체적인 전설이 있는 장소이다. 고려산 인근에서 태어나 치마대에서 말을 타고 무예를 닦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오련지에서 말에 물을 먹였다고도 하는 전설이 있다.
연개소문을 가리켜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위대한 혁명가로, 박은식은 [천개소문전]에서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 일인자로 평가했다. 연개소문은 시대에 따라서 그 평가가 달라져왔다. 한때는 독재자로, 아니면 거대한 제국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민족최고의 영웅으로 평가되었다. (강화군청 홈피에서)
혈구산
산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만개한 생강나무 꽃
6월 개통하는 교동대교 웅자한 자태 보여
교동도와 석모도 사이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해의 조망봉인 낙조봉에 서니 서쪽으로는 이 두 큰 섬이 길게 드러누워있고 북동쪽으로는 북한 서해안과 산들이 코 앞에 보인다.
교동도를 잇는 대교도 멀리 보인다. 3.4km짜리란다. 6월이면 개통된다니 여객선이 역사속으로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2월 설연휴에 주민과 연고자들에게 잠시 허용해 차로 교동에 들고 날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했단다. 석모도도 2017년에는 2.2km 연육교(삼산대교)로 연결된다니 도선의 승객을 따라다니며 새우깡을 얻어먹는 갈매기들은 어떻게 하나...
낙조대에서 상상의 낙조를
우리는 낙조를 감상하라고 만들어 놓은 데크인 낙조대로 내려왔다. 낙조가 얼마나 멋진가를 얘기해 주는 데크다. 한쪽에는 해수관음상이 앉아 있다. 희주는 앞으로 다가가 합장을 한다.
계단을 지그재그로 따라 내려오니 적석사. 불심이 깊은 "우리 자기" 주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에 들어간다. 다시 우리는 시멘트 길을 따라 고천리 적석사입구 표지석이 서있는 도로로 나왔다.
낙조대에서
맨 뒤 석모도(왼쪽)와 교동도 사이로 해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정면에는 고려저수지
적석사 범종각 지붕이 살짝
택시로 국화저수지에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오지를 않는다. 옆 부동산중개소에 들어가 물어보니 4시20분에 있단다.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차가 없느냐고 되물으니 다른 곳은 하루 네차례 배차인데 이곳은 관광지라 두 차례 많은 6차례라고 응대한다.
우리가 오전 청련사에 가며 지나친 국화저수지까지 8km이니 걷기는 좀 멀다싶어 전화를해 택시 두 대를 불렀다. 운전 기사는 지난해 보다 10일 이상 빠르게 진달래가 피고 있다며 축제기간에는 꽃이 다 진 상태일거라고 걱정을 한다.
우리는 국화저수지 앞에서 내려 민가 옆을 지나 남산(223m)으로 향했다. 이곳도 진달래가 수줍은 듯 여기 저기에 얼굴을 살포시 내밀고 있다. 한참 올라가니 하얀 쑥돌 성벽이 보인다. 옛 돌과 새로운 돌이 섞여있다. 새로 복원한 것이다.
강화산성의 남장대는 또 하나의 조망 포인트
잣나무군락지를 가로질러 올라가자 2층짜리 남장대 누각이 남산 정상에 서 있다. 북한산성 동장대나 남한산성 수어장대처럼 성곽 내 군사를 지휘하던 총본부. 동쪽과 남쪽으로 시원한 조망이 전개된다. 북한과 경계를 이루는 임진강 입구도 더욱 가깝다.
송대장은 임진강 입구에 있는 섬을 가리키며 옛날 북한에 홍수가 나 소들이 이 섬에 떠내려와 잡아서 되돌려주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멀고 멀기만 나라 북한 땅이 지척이다. 동족 상잔의 전쟁이 일어난지 60여년이 됐건만 동토처럼 얼어붙어 봄이와도 봄이 아니다.
어휴 힘들어^^ 잣나무숲을 올라서며
개화기 외세 방어 애쓴 흔적이 동쪽 해안 따라
강화대교 건너 문수산 (376m) 아래로 문수산성, 강화도 동쪽 해안을 따라 있는 광성보, 덕진진 등 구한말 개화기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려고 애썼던 흔적인 성곽과 진지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인삼 막걸리 한잔씩 하고 다시 일어섰다. 꼬불꼬불 복원중인 성곽을 따라 내려오다보니 마음이 포근히 푹 가라앉는다. 송대장이 이 트레킹코스를 곁들인 이유를 남장대에 올라서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남산 정상에 동작대가 우뚝
강화산성의 내력
강화읍에 있는 강화산성은 1232년 고려 고종이 몽골의 2차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고려궁을 방어할 목적으로 처음에 토성으로 축조했지만, 1270년 개경(開京)으로 돌아온 뒤 몽골의 요청으로 헐어버렸다. 조선 초기에 규모를 축소해 다시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파괴됐고, 1677년 강화유수 허질이 대대적으로 개축하면서 고려시대의 내성을 돌로 쌓았다. 1964년 6월 사적 제132호로 지정됐다.
제비꽃
동문에서 인증 샷
고소운 밴댕이회로 뒤풀이를
동문을 빠져나와 배경으로 마지막 인증샷 하나 만들고 시외터미널쪽으로 난 길로 따라나섰다. 종헌친구가 일이 있어 먼저 터미널로 향했고 우리는 풍물시장으로 들어갔다. 2층에 밴댕이회집이 연이어 붙어있는 곳. 송대장은 식객들이 좌석을 대부분 점령한 식당으로 안내한다. “밴댕이로 왕창잘되는 집”(032-932-9316). 이름도 재미있다. 건너편 식당마루에 엉덩이를 대고 등산화끈을 풀려고 하니까 앉지마란다. 파리날리는 그 식당 주인의 마음을 읽기전에는 내 심사가 좋지 않았다.
회에 무침 두 종류를 주문했다. 한접시에 20,000원씩. 김철 신라호텔급 세프는 전문점이아니라는 생각이었는지 들어오면서 마음에들지않는 듯 하더니 회가 나와 먹어보더니 맛이 좋다며 칭찬이 대단하다. 막걸리도 잘 넘어간다. 아주머니한테 어디서 고기가 오느냐고 물으니 목포산이란다. 강화도산은 5월이나 되어야 나온단다. 송대장은 이 집 주인이 강화도 밴댕이를 취급하는 총대장이란다. 비린내가 없고 맛이 고소하다. 김회장은 우리 먹으라고 안먹는다. 한접시 더 시켜 나하고 성호친구가 원없이 먹었다.
돌게 간장게장도 짜지 않고 맛이 좋다. 무한 리필이란다. 마지막 바지락 칼국수를 2인분만 시켜 6명이 나눠 먹었다. 싱싱한 게도 넣어끓였다. 그래서 칼국수 맛도 일품.
이게 밴댕이회
밴댕이 무침
밴댕이 맛보면 "속알딱지"란 말 쓰기 힘들 듯
내장이 적어 "밴댕이 속알딱지 없는 듯 하다"고 비하를 했는데 앞으로 그렇게 비하하는 사람에게 한번 맛을 보여주어야 할 듯 하다. 밴댕이 편에 서 쌍지팡이 들고 추켜세울 것이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6시 30분 다시 3000번 시외버스를 타고 송정에서 내려 올 때와 반대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진달래와 밴댕이... 화창한 봄 강화도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눈요기와 먹거리였다.
내 카메라는 남문에 거의다 내려와 칩에 불량이 생겼다. 그래서 그 많은 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그래도 송대장이 간헐적으로 찍은 것이 있어 다행이다. 산행 준비를 해준 김철회장님과 송대장님, 그리고 같이한 네명의 G10멤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채희묵 배상
첫댓글 "진달래로뒤덮인 산의모습이 수줍은 새악시얼굴처럼 불그스레,,,,, "최고의시적시적인글로진달래핀고려산을가고프게만드셨넴!!! "뱅뎅이로 왕창 잘되는집"와~~ 간판이름길고도 멋지도다!!!먹고싶담.........
강화도는 인접지역임에도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참 애매한곳인데...
잘 다녀왔구만~~ㅎ
난 지난 목욜날 승용차로 백년사 기점으로 다녀왔는데 위 사진보단 많이 개화되어 분홍빛에 흠뻑 취하고 왔네^^
요즈음 개화에서 이틀이면 엄청난 차이가 날겁니다.
주말에는 절정을 이루었을테니까요...
분홍빛에 취한 기분 이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