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大海)의 조수(潮水)는
간만(干滿)이 없을지라도
부처의 말씀은 잘못이 없다고 함이로다.
게다가 이 법화경(法華經)은 타경(他經)보다 훌륭하시므로
다보불(多寶佛)도 증명(證明)하고 제불(諸佛)도 혀를 범천(梵天)에 붙였으니
일자일점(一字一點)도
망어(妄語)가 있을리 없나이다.
우에노전답서(上野殿答書)
어서 1508쪽
젊은날의 일기
1951년 1월 25일 (목) 쾌청 –23세-
날씨가 청명하다. 오늘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멍하니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K군이 계속 머무르며 나를 간병해 주고 있다. 미안하다.
저녁 무렵, T여사가 결혼문제로 상담하러 왔다. 찬성했다. 기쁜 듯이 보였다. 불행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되어간다. ― 타인의 모습을 냉정히 보고 있으면 묘법의 힘을 알 수 있다.
잡지를 보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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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월 25일 (목) 맑은 뒤 구름 –25세-
선생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연락이 있었다.
소생도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다. 근 10시까지 휴양.
이제 고이와 지부 간부회, M씨 댁에서 열린 회합에서 힘없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출석자, 약 60명. 모두 환희 없고 자신감 잃은 모습.
사막과 같은 이 땅에, 대정열을 갖고 분기하기로 마음에 정했다.
그러나 소생의 이 의기를 받으려 하지 않는 간부들의 무기력, 대사명에 대한 무인식을 슬퍼한다.
나는 그 어떤 지부도 그 어떤 동지도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 밝고 활기차게 단결하여 학회를 일본의, 세계의 학회로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것이 결국 우리들 전 학회인의 행복으로 통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도다 선생님의 뜻을 모르는 제2, 제3의 최고 간부들이 가진 편견과 좁은 도량에 나는 슬퍼한다.
오후, 선생님 댁으로 병문안. 선생님께서 대단히 기뻐하셨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듯하다.
귀가,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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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월 25일 (월) 맑음 – 27세-
특급 쓰바메를 타고 도쿄로 돌아왔다.
본부에서 전국 부대장 모임.
선생님께서는 일찍 귀가하셨다.
선생님의 배려를 절실히 느낀다.
내가 너무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하루하루 진지하고 인내 강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건설해 가자.
―. 진지하게 교학에 면려할 것. 지금 하지 않으면 뒷날 창피를 당하기 때문에.
―. 생활 경제를 검소하고 착실하게 확립할 것. 단, 광포와 학회를 위해서라면 전 재산을 바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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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월 25일 (토) 쾌청 –30세-
나무(南無)라 함은 공경하는 마음이니라. 노래하는 마음이니라.
느긋한 마음으로 근행 · 창제를 하지 못해 ··· 맹렬히 반성.
밤, 분쿄 지부 간부회에 참석. 〈난부로쿠로전어서〉를 중심으로 강의와 지도. 몸이 피곤하여, 생각만큼 지도하지 못했다. 죄송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지부장 등과 차기 지구부장 임명에 대해 논의했다.
10년 후에는 얼마나 많은 인재가 나올 것인가. 아무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메지로 역에서 야마노테 선에 승차. 열차 안에서 청년 부원 몇 명을 만났다. 시나가와 까지 대화를 나누며 왔다. 혁명의 청춘보(靑春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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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25일 (월) 맑음 –31세-
아침에 간부들과 하이쿠(俳句: 일본 고유의 짧은 시) 대회를 열었다.
모두 시를 꽤 잘 지었다.
나는
전진하는 동양 광포에 은사 있으니
라고 읊었다.
오후 4시, JAL기로 귀경.
첫댓글 감사합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