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퀸) / Bohemian Rhapsody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Caught in a landslide,
No escape from reality.
이게 정말 현실일까
아니면 단지 환상일까
마치 산사태 속에 묻힌 것처럼
현실로 부터 벗어날 수가 없어
Open your eyes,
Look up to the skies and see,
I'm just a poor boy, I need no sympathy,
Because I'm easy come, easy go,
Little high, little low,
Any way the wind blows doesn't really matter to me, to me.
눈을뜨고
하늘을 올려다 봐
난 그저 불쌍한 소년일 뿐이지 동정은 필요없어
왜냐면 나는 쉽게왔다 쉽게가고
고상하지도 않고 비천하지도 않게
어디서 시련이 들어닥쳐도 내게 문제될 건 없어 내게는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Mama, life had just begun,
But now 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
어머니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
그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고 그는 이제 죽었어요
어머니, 삶이 이제 막 시작했는데
난 내 삶을 내팽개쳐 버린 거에요
Mama, ooh,
Didn't mean to make you cry,
If I'm not back again this time tomorrow,
Carry on, carry on as if nothing really matters.
어머니
당신을 울게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가 이번에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것 처럼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가세요.
Too late, my time has come,
Sends shivers down my spine,
Body's aching all the time.
Goodbye, everybody, I've got to go,
Gotta leave you all behind and face the truth.
이젠 늦었어요 시간이 됐어요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끼쳐오고
육신이 항상 쑤셔와요
모두들 안녕 이제 가야 해요
모두를 뒤로 하고 진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Mama, ooh (any way the wind blows),
I don't wanna die,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어머니
전 죽고 싶지 않아요
때론 차라리 제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고 바라기도 해요
I see a little silhouetto of a man,
Scaramouche, Scaramouche, will you do the Fandango?
Thunderbolt and lightning,
Very, very frightening me.
(Galileo) Galileo.
(Galileo) Galileo,
Galileo Figaro Magnifico-o-o-o-o.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이는군요
광대 스카라무쉬 스카라무쉬 판당고 춤을 추어 보지 않을래요?
천둥과 번개가
나를 아주 아주 두려움에 떨게해
갈릴레오 갈릴레오
갈릴레오 갈릴레오
갈릴레오 귀하신 몸 피가로
I'm just a poor boy, nobody loves me.
He's just a poor boy from a poor family,
Spare him his life from this monstrosity.
난 그저 불쌍한 아이일 뿐이야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이 아이는 가난한 집의 불쌍한 아이야
이 악몽에서 그의 목숨을 구해 주자구
Easy come, easy go, will you let me go?
Bismillah! No, we will not let you go. (Let him go!)
Bismillah! We will not let you go. (Let him go!)
Bismillah! We will not let you go. (Let me go!)
Will not let you go. (Let me go!)
Never let you go (Never, never, never, never let me go)
Oh oh oh oh
No, no, no, no, no, no, no
Oh, mama mia, mama mia (Mama mia, let me go.)
Beelzebub has a devil put aside for me, for me, for me.
쉽게 왔다가 쉽게 가는 인생 날 보내주세요
절대로 안돼 널 보내 줄 수 없어(그를 보내주세요)
안돼 널 보내 줄 수 없어(그를 보내주세요)
저를 제발 놓아 주세요 보내 줄 수 없어(그를 보내주세요)
널 보내 줄 수 없어(그를 보내주세요)
절대 널 보내 줄 수 없어(절대, 절대, 절대, 날 보내지마)
오오
안돼, 안돼, 안돼
어머니... 제발 절 좀 보내주세요
마왕께서 내게 악마를 준비해 놓으셨구나
So you think you can stone me and spit in my eye?
So you think you can love me and leave me to die?
Oh, baby, can't do this to me, baby,
Just gotta get out, just gotta get right outta here.
당신이 어떻게 내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수 있는거지
날 사랑해놓고서 어떻게 죽도록 내 버려 둘수가 있는거야
내게 이럴 수는 없어요
나가야만 해 여기서 빠져 나가야만 해
(Ooooh, ooh yeah, ooh yeah)
Nothing really matters,
Anyone can see,
Nothing really matters,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Any way the wind blows.
오오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
누구나 다 알고 있어
내게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
그 어디에서 어려움이 닥쳐와도
난 아무렇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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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Queen)의 역사는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로 부터 시작되었다. 브라이언 메이는 고교(Hampton Grammar School) 재학 시절에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학교 친구인 '팀 스타펠(Tim Staffell, 베이스, 보컬)'과 밴드를 결성하고 밴드 이름을 '나인틴 에이티 포(Nineteen Eighty-Four)'로 지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브라이언 메이와 팀 스타펠은 런던에 있는 임페리얼 대학교(Imperial College)에 같이 입학,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학교 게시판에 밴드를 함께 할 드러머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낸다.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바로 '로저 테일러'였다. 이 세 사람은 1968년에 트리오 밴드를 결성하고 밴드 이름을 '스마일(Smile)'로 정하게 된다.
탄자니아 출신의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는 스마일의 멤버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자신의 이름을 영어식인 '프레디(Freddie)'로 바꾸게 된다. 스마일이 결성되고 2년이 흐른 1970년에 팀 스타펠이 다른 밴드로 옮겨가게 되자 스마일의 두 멤버들은 자연스레 프레디를 밴드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밴드의 이름도 프레디가 제안한 퀸으로 바꾸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새 출발을 하게 된 퀸은 밴드의 새로운 베이스 주자를 찾아야 했는데 몇명의 베이스 연주자를 거쳐 1971년 2월에 '존 디콘'을 맞아 들여 4인 체제의 밴드 구성을 마무리 짓게 된다.
퀸은 음반 데뷔를 위해 'Liar', 'Keep Yourself Alive', 'The Night Comes Down', 'Jesus'의 네곡을 녹음하여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였다. 또한, 프레디는 음반사에 보낼 신상명세서의 이름을 적는 칸에 자신의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라고 적어 넣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탄생하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가 고안한 퀸의 로고를 새겨 넣은 데뷔 음반 'Queen'은 'EMI'를 통해서 1973년 7월 13일에 발표되었다. 1974년 3월에 두번째 음반 'Queen II'를 발표한 퀸은 같은 해 11월에 세번째 음반 'Sheer Heart Attack'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Killer Queen'이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2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11위 까지 진출하게 된다.
1975년 11월에 네번째 음반 'A Night at the Opera'를 발표하였다. 이 음반에는 너무도 유명한 곡 'Bohemian Rhapsody'가 수록되어 있는데, 처음 싱글로 발표될 당시에는 곡이 너무 길어 성공에 대한 장담을 할 수 없었으나 곡이 발표되자 상황은 바뀌어 엄청난 히트를 하게 된다.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Bohemian Rhapsody'는 캐나다와 뉴질랜드, 네덜란드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에서는 2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히트 곡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라이센스 음반에서는 삭제되었는데 해적판을 통해 'Bohemian Rhapsody'가 알려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을 받게 되고, 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곡이기도 하다.
1946년 아프리카의 잰지바르(Zanzibar)에서는 25년후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퀸(Queen)의 프론트맨을 맡게 될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프레디 머큐리'였다. 프레디는 한때 인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었다.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프레디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고 피아노를 배우게 했으며 합창단에서도 활약하도록 힘써주었다. 그렇게 대학생까지 그럭저럭 지낸 프레디는 대학에서 엉뚱하게도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퀸의 멤버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로써 1972년 퀸(Queen)의 역사적 행보가 시작되었다.
[Queen Ⅱ]를 발표했고 이로 인해서 그들의 인기가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75년에 발표한 앨범이 미국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여 세계적인 락그룹으로 자리 매김한 퀸은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통해 전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최강자의 자리를 굳혔다. 그렇게 80년대를 장식한 퀸(Queen)의 핵심 멤버 프레디 머큐리는 84년 영화 ost를 녹음하면서 솔로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프레디의 솔로 앨범은 87년 발매한 "The Great Pretender"를 통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고, 왕년의 인기를 회복하게 되었다.그런데 1990년 프레디 머큐리가 사라져 버렸다. 1년간 아무런 소식도 없던 그는 1991년 불쑥 나타나 자신이 에이즈로 투병중이라고 선언한다. 이 폭탄 발언을 전해들은 전세계 팬들의 충격이채 가시기도 전,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의 병을 밝힌지 하루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곡 Bohemian Rhapsody는 1975년 말에 발매된 퀸의 4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로 1976년 빌보드 싱글 차트 9위까지 오르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은 오페라에서의 일야(一夜)를 주제로한 컨셉 형식의 구성을 하고 있지만 곡 하나 하나의 내용은 독립되어 있다. 특히, 이 곡은 밴드의 편집광적인 오버더빙으로 단 5분 52초만에 만들어진 곡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한 아름다운 록 오페라 곡이란 평을 듣고 있다. 퀸 특유의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진행이 돋보이는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곡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살인에 관한 가사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국내에서는 한때 금지곡이 되기도 했었다.
보헤미안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야인(野人) 기질의 사람, 흔히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어원은 프랑스어 보엠(Boh?me)이며,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15세기경 프랑스인은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실리주의와 교양 없는 속물근성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필리스틴(Philistine)에 대조되는 말이다. ‘보헤미안’이란 영어를 일반화시킨 작가는 사카레이다. 또한, 이 말은 집시처럼 방랑하는 방랑자(vagabond)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랩소디(Rhapsody)는 형식·내용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곡풍의 기악곡. 광시곡(狂詩曲)이라고도 한다.
Queen의 곡 작업은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Brian May의 주도하에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 곡 만큼은 온전히 Freddie Mercury의 작품이라고 한다. 당시 싱글 판매로만 무려 100만장 이상이 팔려 영국서 세번째로 많이 판매 된 싱글이 되었다. 인트로, 발라드, 기타 솔로, 오페라, 하드락, 아웃트로, 이렇게 여섯개의 섹션으로 나뉜 걸작 중의 걸작인데 그 당시의 노래로는 커다란 도전 같은 것이었다. 이 곡은 또한 발표되기도 전에 호평과 혹평이 공존했던 곡이다. 그 당시 어떤 음악 평론가는 "이건 락도 아니고 오페라도 아니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일곱 번째 싱글로 1975년 발표되었다. 그 후,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인 《A Night at the Opera》에 수록된 퀸의 대표곡이다. 이 곡은 프레디 머큐리가 작곡한 곡으로 일반적인 대중 음악의 구조와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특징으로 전혀 다른 특성의 3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부분들은 각각, 아카펠라, 오페라, 헤비 메탈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유례없는 이러한 독창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도 이 곡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밴드 퀸을 오늘날의 위치 서게 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Mama, just killed a man" 이라는 가사때문에 1989년까지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반면, 이슬람국가인 이란에서는 아랍어로 "알라신의 이름으로"를 뜻하는 "Bismillah" 라는 가사 때문에 방송이 허용된 몇 안되는 서양 악곡이다. 비스밀라(Bismillah)는 중동의 아랍권에서 사용하는말로 자비롭고 자애로운 하나님의 이름으로(비르밀라 아르라흐만 아르라힘의 줄임말로 코란의 첫구절이다. 또한, 이 곡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된 선구적인 홍보 영상(promotional video)은 현대 뮤직 비디오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이 곡은 이후 퀸의 모든 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로 들어갔으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매우 사랑받는 노래 중 하나이다.
락의 명반으로 꼽히는 퀸의 [A Night at the Opera]는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앨범 차트 1위를 비롯해서 미국에서 4위, 일본에서 9위, 스웨덴에서 10위를 기록하였다. 싱글로 발표된 락의 전설적 명곡 'Bohemian Rhapsody'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에서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선 2위, 일본에서는 19위를 기록하였다. 'Bohemian Rhapsody ' 퀸 최고의 걸작이며 아카펠라, 초반 발라드, 오페라, 헤비 메탈, 엔딩 발라드 형식을 가진 명곡이다. 그래미상 최우수 보컬 듀오/그룹 팝 퍼포먼스를 수상하였다. 퀸은 4시간 동안 작업하여 세계 최초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으며 지금도 많은 평론가들과 락 매니아들이 꼽는 락 최고의 명곡 중 한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퀸(Queen)은 영국의 록 밴드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별 판매량 인증 합산에 따르면 퀸은 세계적으로 통산 약 9천6백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역대 12위), 비공식 기록까지 합산한 추정 판매량은 1억5천만~3억 5000만장에 이른다.
퀸은 아레나 록, 글램 록, 하드 록, 헤비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그룹이기도 하다. 퀸은 여러 후세 아티스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쳐 2001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2003년에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한 명 한 명이 아닌 밴드의 단위로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04년에는 영국음악 명예의 전당, 2006년에는 VH1 채널의 록 아너스에 선정되었다. 퀸은 세계적으로 모두 합쳐 앨범차트 18회 1위, 싱글차트 18회 1위, DVD 판매순위 10회 1위를 기록했다.
역사
1970년대, Queen의 창립
퀸은 1970년 밴드 스마일이 해체되자 구성원이었던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에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합류하면서 결성된 그룹이다. 그 이후 2명의 베이시스트가 퀸을 거쳐갔으나 나머지 멤버를 만족시키지는 못하였고, 1971년 존 디콘(John Deacon)이 마지막으로 베이시스트로 영입되면서 퀸의 구성원이 완성되었다. 1973년 데뷔 앨범 《Queen》을 발표하였고, 첫 번째 싱글인 〈Keep Yourself Alive〉는 자국인 영국의 차트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1974년에는 2집 《Queen II》의 싱글 〈Seven Seas Of Rhye〉로 자신들의 이름을 알려 나갔으며, 같은 해에 발매된 3집 《Sheer Heart Attack》의 싱글 〈Killer Queen〉이 각각 영국 앨범·싱글차트에서 2위에 올라 유망한 밴드로 이름을 알려 나갔다. 3집의 8번 트랙 〈Stone Cold Crazy〉는 스피드 메탈/스래쉬 메탈의 첫 번째 예가 된다.[출처 필요] 이와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퀸의 소속사였던 트라이언트(Trident Studios)는 너무 적은 월급을 제공하였는데, 그에 대한 불만으로 퀸 멤버들은 소속사와의 계약을 해지한 후 자신들만의 소속사(Queen Production Ltd)를 법률 관련 사무가 짐 비치(Jim Beach)의 도움으로 설립한다. 이 때부터 짐 비치는 퀸의 법률 매니저로 활동한다.
1975년 4집 《A Night at the Opera》와 싱글 〈Bohemian Rhapsody〉는 그들을 세계적인 밴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투어를 하면서 동시에 방송활동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프레디 머큐리는 〈Bohemian Rhapsody〉의 뮤직 비디오를 찍을 것을 제안했고, 이것은 세계 최초의 뮤직 비디오로 기록된다.
1976년에는 〈Somebody To Love〉를 히트시켰고, 이 곡이 수록된 5집 《A Day At The Races》는 당시 EMI 레코드사 역사상 최고의 예약 기록을 달성하였다. 1977년 6집 《News Of The World》에서는 〈We Will Rock You〉와 〈We Are The Champions〉의 히트와 동시에 〈Bohemian Rhapsody〉로 브릿 어워드를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1978년에는 《Jazz》를 발매하는데 첫 싱글 〈Bicycle Race/Fat Bottomed Girls〉의 표지가 나체의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는 점이 논란이 되어 이를 수정한 후 재발매하게 되었고, 퀸은 영국 학부모 협회의 블랙리스트에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79년 1월에는 싱글 〈Don't Stop Me Now〉를 추가로 발매한다.
1979년에 일본 부도칸(무도관)에서 퀸은 세계 처음으로 콘서트 공연을 비디오로 발매한다. 그리고 《Live Killers》라는 라이브 실황 앨범을 발매하는데, 유일한 싱글인 〈Love Of My Life〉는 약 1년 동안 아르헨티나 차트에 머무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1980년대
1980년에 발표한 9집 앨범 《The Game》의 두 싱글 〈Another one Bites The Dust〉,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의 대성공으로 미국에서까지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주요 밴드들 중에서는 최초로 남아메리카 투어공연을 진행하게 된다. 남아메리카에서 퀸은 단일 밴드로서 세계 최다 유료 관중 기록을 세운다. 1980년 12월에는 SF 영화 《Flash Gordon》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어 앨범 차트 10위를 기록했다.
1981년 10월 퀸은 데이비드 보위와의 합작 《Hot Space》에 수록될 〈Under Pressure〉를 싱글로 발매하여 차트 1위에 오른다. 그리고 캐나다 몬트리올에서의 공연 실황인 《We Will Rock You》와 1981년까지의 히트곡을 모은 앨범 《Greatest Hits》를 발매한다. 《Greatest Hits》는 영국 앨범 차트에 무려 550주간 머물며 판매량 540만 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82년에 발표한 디스코풍의 앨범 《Hot Space》의 실패로 퀸은 큰 위기를 맞게 되어 1983년에는 아무런 공식 활동도 하지 않게 되었고, 해체설에 휩싸이게 된다.
1984년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 《The Works》와 1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싱글 〈Radio Ga Ga〉로 퀸은 제 2의 전성기를 알리며 재기에 성공하였으나, 앨범의 또 다른 싱글 〈I Want to Break Free〉의 뮤직 비디오는 멤버 전원이 여장을 하고 나와 미국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The Works》 투어공연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한 보푸타츠와나(현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속함)의 선 시티(Sun City)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이곳에서의 불미스러운 사고[출처 필요]로 그들은 인종차별자라는 누명을 쓰기도 하였다. 이 해에는 일본 투어에 앞서 로저 테일러와 존 디콘이 관광과 홍보활동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잠시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1985년 1월 브라질에서 열린 합동공연 "Rock In Rio"에서는 과거 1981년 남아메리카 투어의 인기에 힘입어 퀸이 오프닝과 엔딩을 담당하게 된다. 같은 해 7월에는 아프리카 난민 구제를 위한 합동공연 "Live Aid"에서 환상적인 라이브 공연을 보여 주었으며, 주요기획자 밥 겔도프와 동료 아티스트 엘튼 존으로부터 "그들이 쇼를 훔쳤다"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1986년에는 영화 《하이랜더》(Highlander)의 사운드 트랙을 수록한 앨범 《A Kind Of Magic》의 동명의 싱글 〈A Kind Of Magic〉은 35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Magic 투어에서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도 공연을 하였는데 이것은 민주주의권 밴드가 최초로 공산권 지역에서 공연을 한 사례이다.[1]
1989년에는 3년 만의 스튜디오 앨범 《The Miracle》을 발매하였다. 이 시기에 퀸이 투어 공연을 중단함에 따라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발병설을 겪게 되지만 퀸은 이를 강력히 부인한다.
1990년대
1991년 브릿 어워드 수상 당시 프레디의 모습은 병색이 완연하였다. 하지만 1991년 1월 14일 발매되어 10년 만에 영국차트 1위에 오른 싱글 〈Innuendo〉와 2월 5일 발매되어 유럽 전역을 휩쓴 동명의 앨범은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24일 프레디 머큐리는 폐렴을 동반한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프레디 머큐리 사후에는 그의 이름으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기금 머큐리 피닉스 트러스트(Mercury Phoenix Trust)가 설립되었는데,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싱글 〈Bohemian Rhapsody /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가 발매된다. Bohemian Rhapsody는 싱글앨범 역사상 처음으로 1차 발매(1975년)와 재발매(1992년)에서 모두 차트 1위를 기록한다.
1992년에는 《These Are The Day Of Our Lives》로 다시 브릿 어워드를 수상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 4월 20일에는 프레디 머큐리 추모공연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1986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인 《Live at Wembley '86》를 발매했다.
퀸은 1995년에 프레디 머큐리의 유작인 《Made In Heaven》을 발매하여 인기를 얻었는데, 이 앨범은 대한민국에서도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1997년에는 하드 록 성향의 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Queen Rocks》와 프레디 머큐리를 위한 추모곡 〈No-One But You〉가 발매되었다. 이 싱글을 끝으로 존 디콘은 프레디 머큐리 없는 퀸은 퀸이 아니라며 활동 중단을 선언했지만, 현재까지도 퀸의 공식 해체는 없었다.
2000년대
2002년에는 그들을 업적을 기리기 위한 뮤지컬 《We Will Rock You》도 제작되었다. 이 해에는 네덜란드의 Queen's Day에서 40여 분 동안 로저와 브라이언이 공연을 하였으며, 2003년 "46664 콘서트"에 참여하였다.
2004년에는 팬들의 투표에 따라 1982년 6월에 영국 밀턴 케인즈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을 《Queen on Fire- Live at the Bowl》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한다.
2005년에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폴 로저스와 함께 퀸 + 폴 로저스라는 이름으로 투어공연을 18년 만에 시작하였고, 영국 셰필드에서의 공연을 담은 라이브 앨범 《Return of the Champions》을 CD와 DVD로 발매하였다.
2007년 11월에는 로저 테일러가 작곡한 싱글 〈Say It's Not True〉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비디오 〈We Will Rock You〉를 리마스터링한 《Queen Rock Montreal》이라는 DVD와 CD 앨범이 발매되었다. 이 리마스터링 작업에는 700대의 애플컴퓨터와 700명의 디지털 기술자들이 20년이 넘은 낡은 필름을 장면 장면 마다의 잡음이나 화면에 노이즈를 제거했다고 한다. 《Queen Rock Montreal》은 2009년에 대한민국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하였다.
2008년 9월 15일에는 퀸 + 폴 로저스의 이름으로 발매되는 첫 스튜디오 앨범인 《The Cosmos Rocks》가 발매되었다. 또한 6월 27일에는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의 90회 생일 기념 "46664 콘서트"에서 공연하였다. 9월 12일에는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에서 "Rock the Cosmos"투어를 시작하였고, 이 공연의 실황은 2009년 6월 15일 《Live in Ukraine》이라는 제목의 CD와 DVD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2009년 5월 폴 로저스는 자신의 전 소속 밴드 배드 컴퍼니의 재결합 투어를 시작하면서 퀸 + 폴 로저스의 해산을 선언하였다.
2010년대
2011년 BBC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싱글앨범 노래 이름을 딴 《Day Of Our Lives》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으며, 1986년 7월 11일과 7월 12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공연의 7월 11일 공연분이 추가되어 웸블리 공연 25주년 기념판 《Live at Wembley Stadium》 DVD가 발매되었다.
2012년 6월 30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에서 엘튼 존 에이즈 재단(EJAF)이 개최한 에이즈 퇴치 자선공연을 시작으로 애덤 램버트를 보컬로 영입하여 공연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투어로 이어질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9월 20일 198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에서의 공연 영상이 HD로 복원되어 《Hungarian Rhapsody》 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극장에 동시 개봉되었으며 Blu-Ray 및 DVD가 11월 5일 에 발매가 되었다(CD는 따로 발매되지 않았으며 Blu-Ray 혹은 DVD 디럭스에디션에만 포함되어 있다).
2014년 퀸과 애덤 램버트가 6월 19일 미국 시카고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하여 북미 투어를 진행했으며, 8월 14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진행되는 슈퍼소닉 페스티벌에서 로저 테일러와 존 디콘의 1984년 때의 방한 30년만에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원래 각각의 자리를 맡았고, 1991년 사망한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대신하여 아메리칸 아이돌 준우승 출신의 보컬 애덤 램버트가 노래했다. 공연 도중 다음 퀸 팬 카페-Queen Forever에서 Love of my life 연주 도중에 종이비행기를 던지자는 이벤트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관중들의 타이밍과 바람의 악작용으로 시원찮았다. 공연 내내 모든 팬들이 놀라울 정도로 열성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는 퀸의 이번 투어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경우에 속한다. 일본의 써머소닉과 비교해보았을 때 특히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콘서트 직후 서울특별시 삼성동의 한 고급 호텔이 퀸 멤버들의 숙박지였는데, 약 15명의 팬들이 거기까지 몰려들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싸인을 받아내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의 경호 요원들에 의해서 금지되었고, 특히 브라이언 메이는 싸인을 하며 여성 팬들에게 포옹을, 남성 팬들에게 악수를 하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2018년 11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의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제목은 퀸의 명곡인 Bohemian Rhapsody에서 따왔다. 1970년 퀸 결성부터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까지 그려질 예정이다.
논란
퀸이 대중성이 짙은 음악을 많이 선보임에 따라, 지금도 일부 록 팬들 사이에서는 퀸이 록 밴드인지 팝 밴드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퀸은 여러장르를 오가며 다룬 록 밴드 중 하나로 꼽힌다. 퀸이 대중성이 짙은 음악을 많이 선보임에 따라, 지금도 일부 록 팬들 사이에서는 퀸이 록 밴드인지 팝 밴드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퀸은 여러장르를 오가며 다룬 록 밴드 중 하나로 꼽힌다.
또,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이후에는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팬들은 묘지에 새겨진 M의 주인공인 메리 오스틴이 그를 완전히 소유하고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무덤을 옮겼다고 추측하고 있다.
멤버
·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리드 보컬, 피아노, 신시사이저,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보컬, 신시사이저 · 존 디콘(John Deacon): 베이스 기타,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전기피아노, 신시사이저 · 로저 테일러(Roger Meddows Taylor): 드럼 및 타악기,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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