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 광화문 씨넥스에서 화제의 영화 [무사]를 보았다. 물론 음향과 스크린이 좋은 씨넥스를 찾은 것은 영화 [무사]의 스펙터클한 액션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답게 영화 [무사]를 수식하고 있는 단어들은 화려하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70억이 넘는 제작비, 5개월간의 중국 올 로케이션, 그리고 정우성, 안성기, 장쯔이의 호화 캐스팅, [패왕별희]와 [와호장룡]에 참여했던 중국 미술팀과 에반게리온의 작곡가 참여 !!!
나는 영화 [무사]를 무협영화라고 생각치 않는다. 이 영화는 아군과 적군이 순식간에 휩쓸려버리고 난장판 싸움이 펼쳐지는 말그대로 헐리우드식 전쟁영화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전투장면은 [라이언 일병구하기] 초반의 그 사실적인 전투씬을 보는듯하며, 대나무 숲에서의 몽고 기마군과의 게릴라 전투는 베트남전을 다룬 헐리웃 영화의 방식을 그대로 채용한듯 하다. 또하나 전쟁영화와 닮은 점은 특별한 주인공을 위주로 한 영화 진행이 아닌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모든 배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영화 [무사]는 미국의 전쟁영화뿐만 아니라 서부영화의 스타일과도 무척 닮아있다. 화면 가득히 펼쳐있는 사막을 말을 타고 가로지르는 장면이나 그 힘든 상황에서도 개폼잡는 것을 잊지 않는 배우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전투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배우들의 멋진(개폼) 모습들을 누가 뭐라하겠는가? 기록영화나 사실주의 영화가 아닌바에야 일부러 흠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감독이 어릴때 서부영화와 전쟁영화를 무척 동경하며, `나도 나중에 저런 영화를 찍어봐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이 영화에서 의문을 품는 것은 이 고려 무사들이 왜 그 넒은 중원까지 가서 처절한 싸움을 벌이냐는 것이다.
이들에게 싸워야 할 대의명분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생존을 위하여? 자신들의 고향인 고려에 돌아가기 위하여? 생존과 고려에 돌아가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들은 조금 더 쉬운 경로를 택할 수가 있었다. 영화속에서 젊은 장군 최정에게 부하들이 나중에 원망을 가하고 있듯이 이들은 명의 공주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이들의 싸움에 대의명분은 전혀 없다. 젊은 장군 최정은 명의 공주에 대한 개인적 욕망을 고려로 돌아간다는 명분으로 감추며 무리들을 위험으로 이끈다. 물론 이는 정우성이 분한 여솔의 경우 더 심하게 드러난다. 그는 사신단의 임무와는 원래부터 관심이 없었으며 자신의 주인인 부사에게만 복종할 뿐이다. 부사가 죽은 후 자유인(양인)이 된 여솔은 이번에는 오직 공주를 위하여만 싸우게 된다. 이는 몽고의 장군도 예외가 아니다. 이 몽고의 장군또한 명황제에게 납치당한 원황제의 동생에 대한 복수로서 싸우고 있을뿐이다. 영화의 주인공격인 인물들은 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고려의 사신단은 물론이고 몽고의 병사들까지 서로 치고받으며 피를 흘리는 것이다. 이들 모두는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리, 혹은 우정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로 피를 흘리는 것이다. 내가 지적한 이런 내용적인 문제점을 그리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주인공들이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간에 그들이 펼치는 화려한 액션과 멋진 모습에 환호하는 것이 요즘 세태이니까 말이다. 골치아프고 복잡한 요즘 세상에 영화에서만이라도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은 나또한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 [무사]는 영화계의 기대와 투자한 것에 비해 스토리상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든 영화를 골치아프거나 복잡한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지 않는가? 물론 이 영화도 숱한 전투장면들속에서도 메세지와 풍자를 가미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영화 [무사]는 헐리웃 전쟁영화의 캐릭터 배치와 유사하게 각 배우들에게 다양한 캐릭터를 제공해 둔다. 이러한 다양한 캐릭터 배치는 시대극인 [무사]의 경우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많은 것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려의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최정 장군. 망해가는 나라의 지배계급답게 민중을 파탄으로 이끌다가 그들에게 축출당하고나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역사적으로 지배계급들이 몰락해갈 즈음에 늘상 항변했던 말과 결코 다르지 않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았거나 고려의 역사를 배운 분이라면 그의 이 말에 실소를 금치 못할 수 있을까?
`내가 그동안 장군으로서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는지 너희들이 알고 있어?`
이러한 캐릭터 배치를 통한 시대 탐색은 노비인 여솔과 스님과 유생출신 역관의 대사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감옥대신 군대를 택한 병사와 아버지 대신 군역을 나온 병사 등은 14세기 당시를 쉽게 파악할 수가 있게 한다.
하지만 영화 [무사]는 내용면에서 유리한 구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내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내용적 측면을 경시하고 있다. 이 영화는 겉보기에는 시대극의 형식을 택하고 있지만 전혀 시대극으로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장군에게 대드는 여솔이나 장군과 노비, 그리고 공주간의 삼각 애정관계, 그리고 장수, 혹은 노비보다도 못한 장군 등은 인물들을 현대의 인물군상들로 표현했다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극과 현대극의 장점만을 갖춘 영화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인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생아격의 영화가 나오게 된 것인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어보려면 어떠한 상징과 풍자가 필요했다고 보여지는데, 영화[무사]에서 나는 그런 것이 무척 약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 생각으로는 영화 [무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라고 보여지는데....
그렇다고 나는 이 영화를 아예 `실패작`이라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다. 영화상영 내내 그저 액션 장면을 얼마나 멋지게 찍었는지만을 나름대로 태스트하는 시간이었다면 말이다. ^^ 물론 그 화끈하게 치뤄지는 전투장면도 스토리와 명분도 없이 긴 상영시간동안 반복되다보니 식상하고 지루해지는 면도 있었지만, 일단 좋은 시설에서 관람한 장면과 음향은 압권이었다. 후훗~ 차라리 완벽한 액션영화로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 봤다. (물론 액션영화에도 스토리는 있어야하겠지만..--*) 결론적으로 영화 [무사]는 스토리와 감동은 물론이고, 마지막에는 가서는 기대했던 액션장면까지도 긴시간 액션의 홍수로 인해서 식상해졌던 영화였다. 헐리웃 영화인 [라이언일병 구하기]보다도 명분이 약한 `명나라 공주 구하기`에 그들이 그토록 메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명공주인 장쯔이가 너무 예뻐서 고려의 젊은 장군과 젊은 노비가 넋이 나갔기에 두시간 반동안 피흘리며 싸우다 죽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