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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천관산
천관산 ^^ 전남 장흥
주차장 – 관리사무소 – 장천재 – 금강굴 – 환희대
구룡봉 – 닭봉 – 연대봉 – 양근암 – 장안사 – 주차 장
장흥은 알지만 관산읍은 처음 밟아보는 땅이다. 멀리도 왔다. 만남의 광장을 지나면 팔각정 쉼터에서 삼거리갈림길인데 오른쪽 길은 금강굴 방향이고 왼쪽 길은 장안사를 거쳐 환희대 정상에 서게 된다. 어느 길을 택하든 환희대에서 조우하게 된다. 허리 굽은 노송 사이로 키 큰 대숲이 산자락을 에워싼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적당히 굽은 통나무 길은 금강굴을 향해 긴 숲을 형성하고 있다. 맞은편 능선의 천관사 길로 올라오는 등산객들도 허리를 잔뜩 굽히고 올라오는 것을 보면 저쪽 코스도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금수굴부터는 울퉁불퉁한 바위가 나타나면서 보이는 건 바위 암벽이고 암릉이다. 정상 능선의 대세봉과 천주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누워있고 굽어 앉은 바위들이 정상의 환희대를 중심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삐죽삐죽 오르다가 골골이 패이고 계곡이 생겨나고 선인봉에서 봤던 봉우리 봉우리가 금강굴을 올라서면서 수십 개로 솟아 하늘을 찌른다. 왼쪽으로 보이는 봉황봉 쪽 바위능선도 엉거주춤 억새밭에서 허리를 펴고 일어나고 있다.
환희대 능선을 올라서면 사방이 확 트인 들녘 끄트머리에 남해바다의 그림 같은 포구가 내려다보인다. 연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좌우로 목화솜 같은 홀씨를 날리는 억새꽃이 서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술렁술렁 일렁인다. 억새밭 한 가운데로 들어갔다. 제법 두터운 여벌옷을 꺼내 가슴을 덮고 두 손을 모은 채 반듯이 누웠다. 텃새 한 마리 날아가고 바람이 이는 높은 하늘로 새털구름이 천천히 마라도를 향해 흘러간다.
연대봉 정상이다. 옛날에는 이곳 봉수대에서 왜적의 침입을 알리면 강진의 원포봉과 교신을 나누던 장소였다.
관산읍과 득량만 갯벌이 펼쳐지고 영암의 월출산도 고흥의 팔영산도 그리고 해남의 두류산도 가까이 있다.
연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좌우로 목화솜 같은 홀씨를 날리는 억새꽃이
밋밋한 계곡을 소소한 버덩으로 채웁니다.
억새밭 한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제법 두터운 여벌 옷을 꺼내 두 손을 가슴에 얹고 하늘을 향해 누웠습
니다.
한올 두올 가을 바람이 불어와 하얀 억새꽃이 아프지 않게 얼굴을 토닥
이는가 싶은데 어느새 가슴에 단추를 풀고 내 옆자리에 눕습니다.
입 다문 텃새 한 마리 날아가고 또 바람이 이는 높은 하늘로 새털구름
이 바람을 몰고 천천히 마라도를 향해 흘러갑니다.
남쪽나라 어느 빈 바다에 떠있는 나룻배처럼 울렁울렁 가슴이 뜁니다.
이대로 잠들면 저녁 무렵 고깃배의 고동소리를 듣고 으스스 둔한 선잠
에서 헤어날 것 같습니다.
바람잔 억새밭 한 가운데 침소일 지라도 이 가을의 초입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으니 하찮은 계절에도 뜨문뜨문 감성에 젖고 마는 소녀병 같습
니다.
벌교 꼬막
꼬막을 맛보기위해 벌교읍으로 향했습니다.
남도의 작은 마을이지만 도로 양 옆으로 꼬막요릿집이 즐비했습니다.
집에서도 먹어 보는 꼬막 맛이 별것이겠느냐 했는데 참으로 별것이고
별미였고 별맛이었습니다.
흔히 양념꼬막만을 꼬막요리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도의 식탁이 모두 그렇듯, 벌교 역시 반찬 가짓수에 질리고 식
사 후 빈 그릇에 놀란다고 하는데 같은 재료의 꼬막요리인데도 회인지
조림인지, 무침인지 그 작은 꼬막에서 얻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주름이 깊은 참꼬막만을 이용한 통꼬막(삶은 꼬막)이 나옵니다.
구이꼬막에 꼬막튀김, 꼬막전, 양념꼬막, 꼬막 회무침, 꼬막된장찌
개, 바닷고기인 양태구이와 파래무침 등등 해산물의 밑반찬이 일품
입니다.
어찌나 맛이 좋았던지 예로부터 임금의 수라상에도 오르고 지금도 전
라남도에서는 제사상에 이 꼬막 요리를 올리지 않고는 제를 올리지 않
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꼬막의 맛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소설가 조정래입니다.
그는 장편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가 벌교에 사는 외서댁을 겁탈하는
장면을 꼬막맛과 비유하면서 정사의 짜릿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가심(가슴)이 찌리리 하드란 말이여 ... 간간하면서 쫄깃쫄깃한 것
이 꼭 겨울 꼬막 맛이시 ...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하고 ..." (조
정래의 장편 태백산맥중에서 원본 일부) 라고 정사의 순간을 표현 했
습니다.
젊은 과부와의 정사의 느낌, 꼬막맛으로 비유한 소설가 조정래, 이날
점잖을 빼느라 외서댁은 만날 수 없었지만 분명 꼬막의 간간하면서 쫄
깃하고 알큰하면서 배릿한 벌교 꼬막의 제대로 된 요리를 맛볼 수 있
었던 하루였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이 벌교읍에 세워져 있음)
2012. 11. 3 억새능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섬, 대청도
소청도에 잠시 머무르던 여객선이 대청도의 선진포선착장에 접안
한다.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한지 세시간반 만이었다. 칠 년 전에도
눈인사만 주고받았고 재작년 그러께에도 그냥 지나쳤던 작은 섬일
뿐인 대청도는 두고두고 선망의 대상으로 남았던 섬이었다. 여행사
에서 나온 작은 버스로 갈아탔다. 백령도나 동해의 울릉도에 도착했
을 때도 현지의 버스와 가이드가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매바위전망대에 서면 수리봉과 서풍받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거센 파도로 달려들던 바다는 서풍받이에서 기세가 한풀 꺾이고 수
리봉을 만나면서 물결도 잔잔하게 출렁인다. 수리봉이란 지명을 아
무렇게나 지어 부른 이름이 아님을 금세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엉이
를 빼어 닮은 산이다.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큰 날개를 펴고 대청도
를 비행하는 모습이 분명하다. 능선 하나를 더 올랐다. 이번에는 더
크게 날개를 펴고 바다 속으로 부리를 넣는 수리부엉이의 형상이다.
골똘히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영락없는 부엉이다.
삼각산의 정상은 그만그만한 세 개의 봉우리가 마주보고 서있는
대청도의 중심에 우뚝 솟은 봉우리다. 소사나무 아래의 절벽으로 서
해바다가 출렁이고 정면으로는 백령도가 있고 더 멀리로는 북한의
옹진군이 있다. 몇 개의 바위능선을 내려서면 광난두정자각인데 삼
각산 정상에서 잘만 보이던 정자각 지붕이 소나무 숲에 가려졌다가
는 보이고 또 가려지기를 반복한다. 길섶에는 순수 우리 혈통의 춘
란이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지난 이른 봄, 남녘의 섬에서 봤던 춘란
처럼 빵끗 웃는 얼굴이다. 서풍받이 벼랑에서 뒤를 돌아보면 삼각산
이고 아래의 모래을 해변이다. 마당바위의 잘록한 능선 너머로 독바
위가 외로움을 곱씹고 있었다.
저녁밥상으로 대청도 홍어를 주문한다. 흔히 홍어하면 고약한 냄
새를 동반한 삭힌 홍어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항아리에 볏짚과 소금
을 넣고 삭힌 홍어는 숙성기간에 따라 쿰쿰한 냄새의 정도가 달라진
다. 사나흘 삭힌 홍어에서부터 보름을 더 익은 홍어는 톡 쏘는 맛에
질금질금 눈물을 흘리며 먹기도 한다. 흑산도의 홍어가 그렇고 목포
와 여수도 쏘는 홍어가 제맛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청도의 홍어
는 먹는 방법이 딴판이다. 오래전부터 대청도에서는 삭힌 홍어를 먹
지 않았다. 잡는 족족 삭히는 과정을 생략한 채 회를 처서 먹었다.
지금도 대청도에서는 삭힌 홍어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홍어삼합이
란 메뉴도 남녘에만 있을 뿐이고 대청도에는 찾아볼 수 없다. 홍어
회를 비우자 홍어탕이 나온다. 홍어의 뼈에서 진국이 나올 정도가
되면 홍어애가 적당히 맛이 든다. 이래저래 홍어란 놈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고기다.
이른 봄날에 남해의 섬에도 들어갔었다. 막배를 타고 들어가는 서
해의 외딴 섬에서도 하룻밤을 잤다. 그런데 대청도야말로 꼭꼭 숨어
있다 나타난 신기하고 진귀한 섬이다. 섬이 그리우면 주저하지 말고
대청도로 가라. 그동안 섬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그때도 대청도로
가라. 배타는 멀미만 기억난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대청도를 가보라,
아직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섬의 속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17. 3. 26 글쓴이 한 필 수
땅끝 해남의 주작과 덕룡
주작산, 덕룡산 ^^ 전남 해남
오소재 -404봉 - 427봉 - 수암재 - 주작산 – 양란 재배장 - 서봉 - 동봉 - 소석문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벌판에서 달달한 봄동배추국에 밥을 말아 이른 아침을 먹었다. 헤드랜턴을 비추지만 발아래 풀숲은 대충 어림잡아 발을 내딛을 뿐이다. 청미래 가시덤불에 정강이를 긁히면서도 아프다는 느낌을 알아챈 것은 솟구치는 일출의 장엄함을 다 보고 나서 한참 후였다. 남해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크고 작은 섬이 연분홍으로 떠있다. 하늘의 구름도 온통 붉게 번지면서 해남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시작된다.
주봉이라야 고작 475미터에 불과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작산은 험난한 암봉과 암벽의 연속이다. 봉황의 형세를 닮았다는 주작산은 우측 날개가 해남 땅이고 몸통과 좌측 날개 대부분이 강진 땅이다. 바위 모서리에 발을 올리고는 참나무 등걸의 허리춤을 잡고 오르고 매듭지어진 밧줄에 의지해 작은 암봉에 오르면 다시 뒷걸음으로 암벽을 내려서야한다. 한참을 걷다 가파른 능선을 내려오면 상수리나무가 서 있고 키 작은 국수나무가 한참 봄물을 삼키고 있는데 벌써 생강나무는 진노랑의 꽃을 피운다. 산동백도 아직은 이른 아침을 맞으면서 바위에 기댈 자리를 찾고 있었다. 등산로 길섶에는 복수초가 먼저 피고 자잘한 제비꽃과 양지꽃이 잰걸음으로 가고 진달래는 아직 꽃망울을 열지 못했다. 엊그제 설악산에 춘설이 내렸다는 소문을 듣고는 기겁을 한다.
주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그만이다. 바다가 보이는 팔각정에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완도가 가까이 서성이고 왼쪽으로 강진만이 길게 뻗어 있으며 끝 쪽으로 마량면이다. 뒤를 돌아보면 뒤따르는 바위능선이 용트림하는 공룡처럼 움직인다. 전구간이 암릉지대여서 험한 산이긴 해도 불필요한 계단이 없는 이런 산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저 아래 보이는 강진 땅 지척에는 정약용의 다산초당이 있고 숲속 어디쯤에는 백련사가 있으리라.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해남의 두륜산이다. 밋밋한 산등성이를 내려와서 편백나무 숲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편백 향도 같이 마셨다.
서봉과 동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벼랑 끝을 감고 돈다. 암벽을 오를 때도 내려 설 때도 밧줄에 몸을 의지하는 꽤나 조심스러운 산행 구간이다. 설악의 공룡능선이 이보다 더 아찔할까 싶다. 간간이 산동백 군락지를 빠져 나오면 또 이어지는 바위능선이다. 하산길의 솔밭으로 야생춘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빵 터진 꽃망울이 방글방글 웃는 해사한 얼굴이다. 살아생전 난초를 유난히 아꼈던 이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다. 그의 난초는 언제나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내곤 했다. 얼굴난초가 바로 장일순 그였다.
17km의 그닥 길지 않은 산행코스였으나 워낙 거친 암릉의 산이기에 열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해남에서 유명한 회춘탕을 먹었다. 토종닭에 문어와 전복이 들어가고 인삼을 비롯한 온갖 한약재를 넣고 끓여 내온 향토 음식이다. 젊은이도 노인네도 다 좋단다.
깨달음에 이르는 청풍명월의 월악산
월악산 ^^ 충북 제천, 충주, 단양 경북 문경
덕주골휴게소 – 덕주사 – 마애불 – 960봉
헬기장 – 영봉 – 중봉 – 하봉 – 보덕암 -
수산리
좌우로 국수나무가 산길을 터주는 초입이다. 작은 절 덕주사를 지나서 한참을 오르면 덕주사마애불(보물 제406호)과 마주서게 된다. 신라의 덕주공주와 마의태자가 덕주사에 은거하며 마애불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부터 만나는 가파른 계단은 암벽을 껴안고 돌고 다시 벼랑을 이어놓고 끝없이 이어진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면 마애불과 상덕주사의 요사채가 까마득하게 멀어 보인다. 960봉을 만나면 잠깐이긴 하지만 헬기장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동창교 방향에서 올라온 산객들과 자연스럽게 둘러앉았다. 덕주사로 내려갈 수도 있고 동창교 쪽으로도 하산할 수 있는 삼거리인 셈이다.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월악 삼봉의 주봉인 영봉이 보인다. 때마침 아침 햇살을 받은 영봉은 잿빛 비취의 보석처럼 환한 광채로 번득이고 있었다. 산 전체가 거대한 암봉으로 솟아올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늘의 기를 모으듯 솟아오른 자태가 신성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지그재그로 연결된 계단은 끝없이 하늘로 오르기만 한다. 암봉 끄트머리의 목책이 보인다. 중간쯤에서 내려다봐도 까마득하고 올려다보면 더 기가 꺾일 것만 같다. 마지막 계단을 밟았을 때 일행이 손을 내민다. 월악산 영봉이다.
한반도의 숱한 명산 가운데 산 정상을 영봉이라고 부르는 산은 백두산 정상의 영봉과 월악산 정상의 영봉뿐이다. 백두대간의 시작은 백두의 영봉이다. 천지를 품고 한참을 내려오는 백두대간은 동쪽 해안선을 따라 금강산에서 일만이천 봉으로 솟아올라 설악에서 암릉으로 이어진다. 다시 일어나서는 오대산으로 방향을 틀고 태백산으로 내달린다. 다시 긴 호흡을 가다듬고 서쪽으로 기울어 소백산으로 갈라지고 속리산으로 뻗어 내려간다. 그 중간 지점에 청풍호를 가슴에 품은 명산이 있으니 월악산이다. 영봉이다. 월악산은 영봉이 어찌나 높았던지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 하여 월악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렀으며 백제시대에는 와락산이라고 불렀었다.
월악은 시선을 두는 방향에 따라 정상의 암봉이 각기 다른 형태로 보인다. 동쪽에서 보면 단단한 쇠뿔같고 남쪽 미륵리에서 보면 쭉 뻗어 오른 절벽이 히말라야 서북의 거봉 같다. 송계9곡이 기암절경을 이루고, 능선을 오를 때 마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도락산도 월악이 품고 있다. 금수산에 올라 용담폭포를 건너다보면 가슴까지 시리고 황장산 암릉은 다시 가려면 오금이 저려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북바위산, 용마산, 만수봉, 하설산, 메밀봉, 대미산, 가은산 등등의 거봉들을 품고있는 산이 월악산이다.
중봉을 바라보며 암릉을 내려온다. 청풍호의 물줄기가 월악산자락을 휘감고 돈다. 하산하는 중봉과 하봉의 암벽코스는 보덕암에 이르기까지 수려한 경관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명품능선이다. 중봉에서 영봉을 봐도 통쾌하고 하봉은 팔부능선으로 구름이 내려앉는다. 영봉도 묻히고 하봉도 안개에 잠긴다. 금세 산수화가 그려지니 신선의 세상 같아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
보덕암에 마당을 걸어 나오는데 저녁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산행이 끝났다는 신호다. 영봉도, 중봉도, 하봉도 보이지 않는다. 달이 노니는 산이라는 월악산(月岳山). 오늘밤 월악산은 하늘에 달과 친구하며 놀까, 아니면 청풍호에 출렁이는 달과 유희할까?
- 한 발 더 들어가는 멘트 -
도담삼봉에서부터 시작되는 청풍호는 지역마다 강의 이름을 다르게 부른다. 도담삼봉의 주민들은 단양호라 부르고 제천주민들은 청풍면을 가로지르며 흐른다고 해서 청풍호라 부르며 충주주민들은 충주댐에 의해서 만들어 졌으니 충주호라 부른다. 어떻게 불러도 아름다운 호수임에는 틀림없다.
정령치에서 바래봉 능선을 넘다 5월
지리산 ^^ 전북 남원
정령치 – 고리봉 – 세걸산 – 세동치 – 부은치
산덕임도 바래봉 - 남원주차장
정령치의 고갯마루를 오르는 승용차도 새벽이 두려워서 일까 급커브 지점에서는 몇 번을 꿀꺽대며 오른다. 어둠을 깔고 앉은 지리산의 밤공기가 무겁다. 차량의 전조등이 능선과 계곡을 번갈아가며 비추는데 숲속에서 산짐승이 뛰쳐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높은 산에서 울어 대는 부엉이 소리도 음산하다. 아니나 다를까, 밤새 깊은 산중을 헤매던 산짐승이 두 눈에 파란불을 심고 쏜살같이 계곡 아래로 도망친다.어깨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골격이 예쁜 1년 생 고라니였다. 밤 풀벌레 소리가 점점 잦아드는 것을 보면 이제 아침도 그다지 멀지 않았나 보다.
정령치 전망대에 올랐다. 우뚝 솟아오른 천왕봉의 장대한 봉우리는 아직은 어둠에 가려있다. 그러나 멀리 산등성이의 곧은 줄기가 선명해지는 것을 보면 날이 밝아온다는 징조이다. 맞은편 너머로 산이 웅성거린다. 중봉에서 천왕봉으로 다시 능선을 타고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형제봉에 이르기까지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 너머로 붉은 빛으로 몸살을 앓는다. 엊저녁 서쪽 산으로 번지던 노을보다도 더 진한 핏빛의 운해로 번지고 있다. 거의 때를 같이하며 이글거리는 아침해가 중봉과 천왕봉 사이로 솟아오르고 있다. 얼른 시계를 봤다. 이른 5시 19분이었습니다. 세찬 아침의 기운이다. 지리산에서의 아침이다.
정령치 전망데크에서 이른 아침을 먹었다. 고리봉으로 가는 능선은 키 큰 산죽이 앞을 가로막는 거친 숲속이다. 떡갈나무에 산벚나무가 꼿꼿하고 바늘잎 낙엽송은 바람 부는 대로 몸을 흔든다. 화살나무를 감고 오르는 다래넝쿨이 소나무 가지까지 뻗어 오르고 으름덤불은 자잘한 옥색의 꽃을 피워냈다. 침엽수에 활엽수림으로 지리산은 지금 원시림 속이다. 나뭇가지와 연둣빛 이파리 사이로 가느다란 햇발이 굵은 빗줄기처럼 쏟아져서 어깨를 매만진다. 간지러웠다.
세동치의 고갯마루를 내려서는데 멀리 팔랑치의 철쭉 산꽃이 연분홍 꽃밭으로 뒤덮는다. 바래봉의 얌전한 능선이 보인다. 붉은색의 물감을 쏟아 부은 것 같은 계곡이고 능선이고 비알이다. 바래봉 철쭉은 군데군데 띄엄띄엄 무더기를 향성하며 꽃을 피운다. 다닥다닥 떠있는 남해바다의 작은 무인도처럼 말이다. 어떤 꽃무더기는 진홍빛 꽃이고 다른 철쭉은 희디흰 연한 옥색의 꽃이다. 바래봉 정상에 서면 천왕봉은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솟아있다.
바래봉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남원의 운봉읍 시가지가 가까이 있는 것 같아도 두 시간 반은 걸어야한다. 팔랑치로 갈라지고 운봉으로 하산하는 고갯마루에 약수터가 있었다. 지리산의 약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지리산 물을 퍼 담는 산꾼을 따라 나도 두 병을 담았다.
마이산에 가면 탑사가 있다 10
마이산 ^^ 전북 진안
합미산성 – 광대봉 – 고금당 – 전망대 – 성황당
봉두봉 – 탑사 - 북부주차장
강정대 정자각을 끼고 가을 숲에 들어섰다. 손톱만한 토종밤이 길섶여기저기에 툭툭 떨어져 있다. 다람쥐 두 마리가 등산객 주위를 겁주듯 쏘다니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쪼르르 밤나무를 내려와서는 신갈나무를 타고 다시 너덜바위를 뛰어다니며 격한 행동으로 일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감히 자신만의 영역인데 허락도 없이 웬 소란이냐면서 기분 잡쳤다는 표정이다.
가을 산은 나뭇잎이 물들기 전에 열매를 먼저 내려놓는다. 오른쪽의 졸참나무아래 구절초가 무더기로 피어 있고 넓은 구릉으로 갓 피워낸 억새꽃이 가을바람에 일렁인다. 들머리부터 시작되는 마이산은 얼핏 보기엔 시멘트모래와 자갈을 적당히 배합한 인공 산인 것 같지만 사실은 특이한 석질의 연한 수성암 석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악산의 화강암과 다르게 바위의 색감도 거무티티하다.
광대봉에 올랐을 뿐인데 이마로부터 흐르기 시작한 땀이 전신을 적시며 몸을 칭칭 감는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있는 햇살 넉넉한 언덕으로 단풍이 물들고 있다. 아늑한 억새밭이 펼쳐진다. 물도 마실 겸 배낭을 풀고 억새밭에 드러누웠다. 마치 문을 걸어 잠그듯 억새 줄기를 얼굴 쪽으로 당겼더니 내 집의 대청마루 같다. 배낭을 베개 삼아 억새밭 한 가운데 소리 내지 않고 누우면 온통 청자 빛 하늘이 내 하늘이다. 스르르 눈이 감기면 나뭇잎 그림자가 서성이고 잠든 얼굴위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한다. 산객이 밟는 갈잎 소리에 몸을 일으키는데 일행의 발소리는 저만치 바위산의 허리를 감싸며 멀어지고 있었다.
올라서면 다시 내려서고 또 올라서고 마이산으로 향하는 산길은 능선과 구릉이 너무도 아기자기하다. 몸이 늘어지는 한여름의 산행지로는 이 정도의 높이가 너무 좋다. 애써 한눈 팔지 않아도 싸리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고 개옻나무도 붉나무도 진하게 물을 들였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날아와 쑥부쟁이 꽃대를 움켜잡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봤다.
바위의 형태대로 휘어진 계단을 밟고 비룡대 팔각정에 섰다. 시원한 바람이 옷섶을 파고든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면 진안읍이고 멀리 마령면 들판도 누런빛의 가을 들판이다. 가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오른쪽으로 마이산 능선이다. 암마이산과 수마이산이 겹쳐서 보이는데 세상의 얘기를 다 들으려는 듯,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광대봉에서 봤던 마이산이 더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부귀산과 성수산을 바라보다 다시 마이산을 쳐다본다. 금세 마이산이 사라졌다. 눈을 의심해 보지만 분명 마이산이 없다. 그 자리에는 한 여인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다. 비스듬히 오른쪽 무릎을 왼쪽 무릎에 걸치고 아랫배를 거쳐 탱탱한 가슴을 드러낸 아낙의 모습이다. 음흉한 생각이 아니라 자연은 이렇듯 사람의 시선을 가끔씩 혼동시킬 때가 있다.
지금 마이산 능선에는 가을꽃이 한창이다. 구절초에 쑥부쟁이에 산부추에 마타리까지 온산이 들꽃이다. 가을꽃은 두드러지지게 티를 내지 않아서 좋다. 이산저산 소문내지 않고 겸손하게 꽃피우는 꽃이 가을 들꽃이다. 봄꽃이 우아하다면 가을꽃은 청초하다. 동백이 그렇고 벚꽃이며 진달래며 개나리가 떠들썩하게 웅성거리며 원색의 꽃을 피워 내지만 채 열흘을 피워내지 못하고 시드는 꽃이 봄꽃이다. 그러나 가을꽃은 성급하지 않게 기다림으로 꽃을 피운다. 봄꽃이 우쭐대고 으스댈 때 아무도 모르게 새순이 돋고 온갖 비바람에 흔들린다. 억수장마철에도 잠시 비가 멎는 밤이면 하늘의 총총한 별들과 어둑새벽까지 다가올 가을을 얘기한다. 비룡대 기슭을 내려오는데 쑥부쟁이 꽃이 하늘거리고 봉두봉 언저리에 구절초가 무더기로 피어있다. 은은한 향기의 유혹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슬그머니 코를 대고 입술을 내밀었다.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다. 소녀의 귓불에 입술을 대려는데 낌새를 알아채고 돌아서던 들킨 것처럼 은은한 향기에 그만 들키고 말았다.
가을볕에 익어가는 산수유그늘을 빠져나오면 암마이봉 끝자락에 무수한 돌탑 사이로 아담한 산사가 보인다. 탑사다. 잠깐의 햇살만 들것 같은 암벽의 작은 마당에 무수한 돌탑이 예술이다. 치성의 탑이고 소원의 탑이다. 작은 돌로 쌓아 올린 탑이 100년을 넘기도록 골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았다고 하니 아마도 불심이었지 싶다. 마이산 암벽을 휘감고 오르는 능소화 넝쿨은 오늘도 어떤 임을 그리며 꽃을 피운다. 섬진강 발원지인 탑사의 용궁물을 마시고 왼쪽 돌계단을 지나면 탑사 대웅전에서 엎드려 108 배를 올리는 불자들의 모습이 경건하다. 같이 합장을 한다.
탑사를 나와 언덕을 오르면 은수사 마당에 600년 묵은 감나무를 만난다. 두 개의 마이봉이 또 다른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오른쪽이 동봉인 수마이봉이고 왼쪽이 서봉인 암마이봉으로 어느 부부의 이루지 못한 애절한 전설을 담고 지금도 두 바위는 덥석 손을 내밀지 못하는 애절한 바위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강변 수수밭
취적봉 ^^ 강원 정선
벌겋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차에서 내린다. 새벽 세시에 있었던 일본과의 축구경기를 꼬박 뜬눈으로 지새웠으니 아침이 되면서 스르르 감기는 올빼미 눈꺼풀이었다. 멋들어지게 이겼으니 발걸음도 가볍다. 덕우삼거리에서 곧장 가면 정선읍이고 오른쪽으로는 화암동굴로 이어 키 큰 미루나무 그늘에 모여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하목교를 건넌다. 정선찰옥수수를 수확하는 아낙의 등 너머로 길게 어천을 낀 수수밭이 보인다. 아직은 연초록 수수알갱이지만 오늘 같은 뙤약볕이 달포만 더 달궈지면 수수이삭이 자주색으로 붉게 물들어 가을 들판에 고추잠자리를 불러 모을 것이다. 그때까지 불볕더위를 감내해야한다. 작년 가을에 태어난 손녀의 돌상에 수수팥떡이 올려야하기 때문이다.
사모바위를 오르는 능선은 비탈이 심하다. 그런데도 그 흔한 나무계단은 볼 수 없다. 바위 능선 길섶으로 석회암지대에 자생하는 회양목과 노간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히려 영양가를 갖추지 못한 비탈일수록 잘 자라는 나무들이다. 능선을 올라서도 바위는 잔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너덜길을 내려설 때도 온통 석회암바위들이다. 특히 비오는 날에 미끄러지기 쉬운 돌멩이다. 숨이 헐떡이는 것을 보니 정상이 가까운 것 같다. 허리가 잘록한 땡벌을 날려 보냈는데 떡갈나무 잎을 스칠 때 쐐기에 쏘여 손등이 퉁퉁 붓는다. 누군가 <깔딱고개>라고 쓴 팻말을 청시닥나무 가지에 걸어놓았다.
취적봉이다. 가지가 낭떠러지까지 늘어진 노송과 굴참나무 사이로 와 바위 사이로 어천의 강물이 보인다. 건넛산 구릉으로 따끈따끈한 아침안개가 피어오른다. 특유의 향취를 따라가 보면 더덕 꽃이 곱상한 얼굴로 피어 있다. 자잔한 참취 꽃이 하얗게 꽃피운 옆자리에 잔대 꽃도 따라서 피어나는 여름 한나절이다. 덕산기계곡이 보이는 마당바위 그늘에 앉았다. 익을 대로 익어서 바닥에 뒹구는 다래열매를 한참동안이나 주워 먹었다. 달콤하다.
강바닥 잔돌까지도 선명한 계곡으로 몸을 던졌다. 깊은 것 같지만 가슴팍 아래까지 잠긴다. 텀벙텀벙 산발한 머리를 물속에 담그고 오랫동안 버텨보는데 새끼발가락부터 전해져오는 오싹한 냉기가 가슴까지 저려온다. 자갈이 깔린 강변에 물기를 흘리면서 맨발로 걸었다. 햇살에 달궈진 돌멩이가 따끈따끈하다. 얕은 허벅지 물길을 한참이나 쏘다니다 물장구도 쳐본다. 수심이 깊은 합수머리 강가에서 얄팍한 돌을 주어 수제비 띄우기를 한다. 이쪽에서 저쪽 강물 끝까지 동그랗게 번지는 여남 개 물살이 재미있다. 등줄기에 얼룩얼룩한 무늬의 수수미꾸라지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면서 바위틈으로 몸을 숨긴다. 배낭을 열었다. 덕산기계곡의 찬물을 한 자루 퍼 담아 등짐처럼 메고 집에 까지 가고 싶다.
2012. 8. 11 취적봉을 너머 덕산기 계곡까지
강호동 1벅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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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유년 한해 안산![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산을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