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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고봉산 선생님의 대표곡이지요.
당시로서는 드물게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데뷔한 고봉산 선생님. 1957년 자신이 부르게 될거라 기다렸던 '울어라 기타줄'이 손인호 선생님의 곡으로 발표되자 울분을 삼키며 직접 작곡을 해 노래를 발표하겠노라 다짐을 하셨지요. 1963년 직접 작곡해 발표한 '아메리칸 마도로스'가 히트를 하며 1962년에는 '용두산 에레지', 다른 제목으로는 '추억의 용두산'인 이 곡을 발표하게 됩니다.
만들어진 것은 1962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1964년 최초로 발매된 '용두산 엘레지', 아세아레코드 사의 최치수 사장님에게 가사를 받아 완성된 이 노래는 고봉산 선생님의 대표곡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 후 작곡에 흥미를 느낀 고봉산 선생님은 여러 앨범을 통해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보이셨지요.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
한발 올려 맹세하고 두발 딛어 언약 하던
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사 계단에
사랑 심어 다져 놓은 그 사람은 어디 가고
나만 홀로 쓸쓸히도 그 시절 못 잊어
아 못 잊어 운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그리운 용두산아
세월 따라 변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냐
둘이서 거닐던 일백구십사 계단에
즐거웠던 그 시절은 그 어디로 가버렸나
잘 있거라 나는 간다 꽃피던 용두산
아 용두산 엘레지"
용두산이라고 하면 충북 제천의 용두산(龍頭山)을 떠올리실 수도 있지만, 노래 속의 용두산은 부산 중구의 용두산을 일컫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곳에 초량 왜관(草梁倭館)이 위치해 있어 일본과의 무역 혹은 일본인들의 출입국을 관리하기도 했지요.
고봉산 선생님의 '용두산 엘레지'는 많은 후배가수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습니다. 1990년 67세를 일기로 떠나가신 고봉산 선생님.
첫댓글 보고 또 봐도 감동이 보장된 지원이님 무대 영상🧡
멋진 공연을 계속 돌려보면서 이 황홀 경애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어떡하죠? 한참을 헤맬 것 같아요.😽😻
아마 지원이님 보고 싶은 갈증 때문에 더 영상에 집착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참잘부르네요 청아한목소리 차분하게 대박입니다 감사드림니다~~~
용두산에 자주 갔었는데 옛 생각이나네요ㆍ용두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