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21]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 필립 존슨
매일경제 2020.02.03
[효효 아키텍트-21] 1979년 프리츠커상 초대 수상자인 필립 존슨(Philip Johnson·1906~2005)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이하 '미스'로 약칭)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1928년 하버드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유럽 여행에서 미스가 작업 중이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설계도를 보게 되면서 미스와 교류를 시작한 존슨은 1938년 미스의 입국 행정 수속 등을 도와준다. 1941년 존슨은 건축 공부를 위해 자신이 졸업했던 하버드대 건축학부에 다시 입학한다. 바우하우스를 창설한 근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건축가이며 디자이너인 마르셀 브로이어 밑에서 사사한다.
코네티켓주 뉴케이넌의 글라스하우스(THE Philip Johnson Glass House)
존슨은 1946년 모마(MoMA)의 전시기획자로 미스의 건축 전시를 준비하면서 미스가 설계 중인 판스워스(farnsworth) 하우스의 설계도를 보게 된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자신이 직접 살기 위한 주택을 코네티컷의 뉴케이넌에 짓는다. 이게 그 유명한 '글라스하우스'다. 판스워스 하우스는 시카고 일리노이공대 건축대학 건물인 크라운홀과 함께 미스의 미니멀리즘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기에 글라스하우스는 표절 시비를 낳는다.
글라스하우스는 투명한 유리로 안이 들여다보이고 화장실만 동그랗게 불투명하게 돼 있다. 집 안이 들여다보인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주변 수십 에이커 땅이 모두 건축주인 존슨 땅이기 때문이다. 필립 존슨은 집 전체를 유리로 만들어 주변 자연을 바라다보게 했다. 투명한 유리벽은 벽이 아니라 창문이 되어서 인간과 자연을 시각적으로 연결해준다.
글라스하우스는 이후 건축가, 예술가 등 저명인사들을 초청하는 사교장으로도 사용됐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도 다녀갔다. 별관의 지하 벙커 미술관에는 회전식 벽걸이로 프랭크 스텔라 등 화가의 작품들을 컬렉션했다. 팝아트의 황제이면서 항상 화제를 모았던 앤디 워홀도 자주 드나들었다. 글라스하우스에서 내려다보이는 '연못 파빌리온(Pond Pavilion)'은 건축물을 실제 사용 목적보다는 관상용으로 만든 듯해 존슨이 동양적 심미안의 소유자임을 짐작하게 한다.
필립 존슨과 미스의 불편한 관계는 1952년 뉴욕 시그램 빌딩의 설계자로 미스가 선택되면서 해소된다. 존슨이 시그램 회장의 딸 필리스 램버트를 설득해 르코르뷔지에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제치고 미스로 결정되는 데 역할을 했다. 미스는 시그램 내의 포시즌스 레스토랑 인테리어 설계를 존슨에게 맡긴다.
1958년 6월, 시그램 빌딩의 건축주인 시그램사는 1층 '포시즌스' 레스토랑의 벽화를 추상 표현주의 작가로 성가를 높이고 있었던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에게 주문한다. 포시즌스 레스토랑은 반 층 내려가 깊이파인 바닥에, 미스와 필립 존슨이 디자인한 모더니즘 가구로 채워졌다.
1959년 6월, 마크 로스코는 세 편의 연작 스물일곱 점의 작품이 완성돼갈 무렵 작업을 중단하고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계약을 파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필립 존슨과 마크 로스코 간의 협업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스코 사후 1년 뒤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에서 완성된다. 존슨이 설계를 맡았으며 로스코는 명상적인 색면 추상 작품들로 공간을 채운다.
존슨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1925~2018)가 1966년 출간한, 정통파 근대 건축의 모순을 지적한 저서 CCIA(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건축의 복합과 대립)에 많은 동감을 표시하면서부터 미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건축 작업을 한다. 모마의 초대 건축 담당 디렉터로 1951년 모마에 조각정원을 만들었던 존슨은 1968년 이 정원을 개축했다.
존슨은 링컨센터·시그램 빌딩·AT&T 본사 등 뉴욕 도시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타임지의 1979년 신년호 표지에 존슨은 어깨에 비스듬히 외투를 걸치고 AT&T 빌딩 모형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논쟁을 예고한다. AT&T 빌딩(1982)은 1층 로비가 일반 건물의 7개층 높이에 달해 거대한 기둥이 드러난다.
건물 꼭대기는 뻥 뚫린 원형 개구부와 바로 아래 수직의 긴 띠창이 특징이다. 전면은 고전적 파사드와 기하학적 요소, 아치형의 입구, 뻐꾸기시계나 의자 등받이에 쓰인 치펜데일 양식(chippendale style)이 어우려져 있다. 외장은 화강석을 썼다. 쉽고 친숙한 고전주의 양식도 과감하게 도입해 모더니즘과의 확실한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곧이어 고딕 스타일의 휴스턴 리퍼블릭 뱅크(1983), 피츠버그의 PPG플레이스(1984), 뉴욕 맨해튼의 립스틱 빌딩(1986)으로 필립 존슨만의 건축 언어를 표현한다. 존슨은 1988년 모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분파인 '해체주의 건축'전을 개최한다. 전시에 참가한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등 7명의 건축가 모두 2000년대 신자본주의 시대의 '스타 건축가'가 되었다.
1993년 존슨은 자신보다 서른 살 아래인 미술 큐레이터이자 컬렉터인 데이비드 휘트니가 동성 파트너임을 밝혔다. 존슨은 2005년 그가 평생 만들어온 뉴케이넌의 글라스하우스에서 영면한다. 데이비드 휘트니 또한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글라스하우스 별관에는 앤디 워홀을 비롯해 프랭크 스텔라, 제스퍼 존스, 줄리언 슈나벨, 로버트 라우션버그 등등 미국 현대미술사 거장들의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미술사를 쓰는 이들은 작가도, 평론가도, 갤러리스트도 아닌 컬렉터다. 필립 존슨은 건축사와 미술사를 동시에 쓴 보기 드문 인물이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 박영우 건축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