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본 <씨네마천국>
4년쯤 전 <gloomy sunday>
그 후 저에게 이토록 강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처음이네요.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에서 이미 그에게 감동하였지만
이번엔 완전 반해버렸답니다.. ㅋ
이하는 날카로운 시각과 분석이 마음에 들어 퍼온 글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1. 먼지와 포름알데히드
미8군의 미군상급자는 먼지를 혐오하는 인간인가보다. 그리 깨끗하고 청결해서
독극물을 한강에 쏟아부으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넓은 배포를 가져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독극물이 식수원인 한강으로 흘러든다는 것을 뻔히 아는 한국인 하급자의 표정에서
일말의 가책을 느낀다. 아마도 그가 가졌던 마지막 양심은 자신의 손에 들려
독극물을 토해내는 병의 먼지를 한번 쓸어보는 행위에서 그쳤으리라.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경찰 미국의 오늘날 자화상이 이런 것이 아닐까.
옳고 그름의 잣대는 지극히 자의적이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국가의 핵보유나
타국침공에 대해서는 침묵의 동조를..자신에게 적대적인 국가에게는 엄정한 정의의 잣대를....
그렇게 이 세상은 그들의 판단에 의해 먼지쌓인 악의 축이 되기도 하고 자화자찬으로
치장된 정의와 타인과 타국의 포용으로 감싸안아줘야 하는 그들의 해악스런 결과
들이 난무하는가보다. 작게는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에서부터 크게는 타국을 침략하는
이중적 잣대가 중첩된다.
2. 낚시꾼과 컵하나
어쩌면 낚시꾼의 컵속에서 그 운명을 달리했을 괴물의 씨앗은 그저그런 일화로
스쳐 지나간다. 낚시꾼에게 있어 자그마한 생물체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이지만
그 호기심은 딸아이가 선물한 컵하나만 못한 존재다. 만일 그 낚시꾼이 생물학자
였다거나 아니 생태계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만이라도 있던 사람이었다면 많은 것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존재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그저 꾸밈없는
삶의 충족만으로도 만족해가기 마련이다. 복잡한 세상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우리
민중의 안목이란 것은 이렇듯 잠재적인 위험의 요소를 스쳐지나가게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자그마한 관심 하나가 미래의 형태를 바꿀 수도 있음을....
조금씩 관심가져가는 그렇게 눈떠가는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3. 괴물과 호기심
거대한 생물체의 출현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모두 본 사람들조차 괴물에게 쓰레기를 던지고 사진 찍으면서 자신만의
호기심을 맘껏 누린다. 괴물의 출현을 제눈으로 보고도 위험을 자각하지 않는 사람들....
결국 사람을 집어삼키고 물어뜯어야만 위험을 지각하고 허둥대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고,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무관심했던 여인에 이르러서는 무관심이 위협을
피하는 데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걸프전을 볼 때 사람들은 한밤중의 미사일들과 대공포화가 날아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해 봤다. 9.11도 마찬가지고 이라크전에 이르러서는 시시각각
날라오는 영상과 음성을 들어야 했다.
어쩌면 인간들의 호기심이란 것을 한껏 충족시켜갔던 그 사건들은 그 이면에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생기기도 전에 만들어진 결론으로
주입되기 시작한다. 위험이 나의 생명을 위협하기 전까지 그저 호기심 대상으로만
여기고들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정작 우리앞에 위험이 다가오면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똑같이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4. 도망과 저항
괴물의 출현으로 모든 사람들이 도망가기 시작한다.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어쩌면 컨테이너 안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듯이 보였다. 허나 그곳이 지옥이 될줄은 몰랐을게다. 그러니 다른사람도
못오게 문을 걸어닫지.
아이러니하게도 괴물에 근접한 사람중 생존자가 괴물에 저항했던 강두와 미국병사였다는
점은 피하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역설이다.
이제 중학생이된 현서의 실종에서 그리고 현서를 지켜주지 못한 어리숙한 아버지
강두의 모습에서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 그리고 그런 위험을 방지해주지 못하는
우리 어른들이 겹쳐보인다.
5. 부상과 희생자
부상입은 미군병사가 연이어 뉴스에 오르내린다. 한국인 수십명의 목숨보다
미군병사의 한쪽 팔이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수십명의 사체와 괴물이 남긴 핏자
국들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란 존재의 확인은 미군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일까?
바이러스 운운하는 미군의 발표로 모든 군경은 현장에서 빠져나오고 우리사회가
구축한 도구로는 상황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진다. 미군의 역정보가 없었다면 괴
물은 군경에 의해 조기 퇴치됐을 것이다.
미군과 미국이 말하면 진실이 되어버리고 그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지는 우리
언론들의 모습은 스스로의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어리숙한 사회의 자화상이다.
가상의 위협에 굴복하고 타인의 정보에 의존하게되는 순간 개인도 집단도 하다못해
국가단위의 조직들까지 상황에 종속된 피지배자로 전락한다. 위험의 과대포장,
그리고 정보를 취득하고 해석하고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을 누구에게 쥐어줬느냐에
따라서 현대사회의 운명은 누구에게 저당잡혀있는지가 정해진다.
현서의 가족들은 한강의 괴물보다 더 집요한 사회통제의 괴물까지 따돌려야 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국민을 세균덩어리 취급해야 하는 국가의 자화상이란 것은
식민지의 다름이 아니다.
사사건건 방해만 되는 공권력은 현서 가족들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도구들이다.
사회를 지탱할 도구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방해하는 수단으로만
작용하는 기묘한 상황. 결국은 멀쩡한 사람 머리에 구멍까지 뚫지 않는가?
원하는 정보를 조작해내기 위한 권력의 잔인함을 엿본다.
현서의 가족들이 고위공무원이었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언론사 기자쯤만 됐다고 해도
일이 그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지팡이는 굽신거렸을 것이고 언론은 핸드폰
추적을 다뤘을 것이다.
사람의 말을 내용보다는 그 배경과 지위로 바라보는 이런 현상은 미군의 거짓말을
교리처럼 받드는 언론과 너무 대비된다.
남주의 두번째 화살이 명중한 순간 환호하다가 시간초과에 혀를 차는 그 이중성의
돌변과 함께.....
현서 가족의 오열을 자극적으로 찍어대는 기자들의 모습이 오늘날 언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다.
6. 부패와 관용적 일탈(=서리)
현서의 가족들에게 마지막남은 알량한 재산은 불법으로 연명하는 이들에게 강탈
당한다. 희봉의 지갑을 갈취해가는 그들의 칼끝에서 인간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상품으로 환원시키는 이 사회의 잔인한 면모를 엿본다. 그리고 현서를 위해 남겨
두었던 강두의 동전은부패한 관리에게 뜯기는 뇌물이 된다.
사회전반을 흐르는 부패와 허술한 시스템들이 도리어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
모습이 씁쓸하다.
한쪽에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식량을 구하러 나서는 형제의 모습에서 처연함을
느낀다. 먹을것을 서리하되 돈은 훔치지 않는다는 형의 말은 이 사회가 감싸야 할
빈곤한 이웃들의 존재와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형제의 양심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강두가 동생을 거둠으로써 밑바닥 인생들간의 고리가 완성된다.
7. 선배와 노숙자
카드빚이 6천이라는 선배. 한때 학생운동을 했던 이 변화한 지식인의 모습은
댓가없이 남일을 도와준 노숙자의 모습과 대비된다.
세탁소에서 옷 훔치기를 거리낌없이 하고, 후배를 현상금에 팔아넘기고,
도망가는 후배에게 화이팅을 외치는 그 이중성의 모습에서 기회주의와 기만행위를
일삼는 변절한 지식인의 자화상을 본다.
반면 가진 것이라곤 돗자리와 빈 소주병들 그리고 배낭 하나가 전부인 이 노숙자의
도움은 영화의 결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번듯한 양복을 입고 입으로 화이팅을 외치는 변절한 지식인보다 알콜에 젖어살고
수틀리면 병이나 휘두르는 노숙자가 도움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사람의 머릿속에
담긴바와 그 입에서 나오는 감언이설 이상을 볼 줄 아는 심미안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준다.
서있는 자리가 번듯하다하여 사람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진영에 함몰되어 인성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가 어느쪽에 서있든 해악스러울 뿐이다.
먼저 인간이 된 다음에 지식도 쓸모있는 것이다.
8. 시위와 화염병
미국의 무슨 방역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저항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공권력에 맞서 계란을 던지고 시위군중이 결집하지만 공권력 앞에서 그들은 정보의
왜곡과 조작이란 핵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시위군중이 괴물의 출현에 맞서는
모습은 호기심과 공포에 일그러진 한강둔치의 시민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괴물에 대항하여 헛되이 소모하는 경찰의 탄알 또한 괴물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이 약화된 공권력의 모습이라면 과장일까?
미국의 화학약품은 괴물은 처치하지 못하고 시민들만 피를 토하게 만들고...
오히려 과거의 운동학생이었던 남일의 화염병과 노숙자가 쏟아붓는 휘발유와
아나운서의 빈축을 샀던 남주의 화살 그리고 어설픈 아버지 강두의 쇠파이프(꼭
죽창같다.)가 괴물을 퇴치하는 무기가 된다.
소시민들의 역량에서 희망을 찾은 것일까?
괴물의 존재와 그에 맞서는 밑바닥 소시민들의 투쟁이 보다 실질적이었음은 미국의
파괴적 해법이나 공권력의 무기력한 저항이나 시민사회의 빗나간 문제의식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9. 괴물
괴물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악마적 권력의 부산물이며 인간까지를 먹잇감으로 삼는 최상의 포획자다.
외부의 권력에 의해 그 존재가 보호되기도 하는(바이러스 정보 이후 한강변에서
자유공간을 가지고 활보하게 된다) 특이한 존재다.
미국이 왜 한강변을 접근제한지역으로 만들고 괴물의 퇴치보다는 존재하지도 않는
바이러스 퇴치에 열을 올렸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그것을 기화로 한강변에 대한
통제권은 미국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괴물은 메기같기도 하고, 양서류같기도 한 수상과 육상을 넘나드는 존재다.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인간을 포획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괴물이
인간의 과오에서 비롯된 생명체라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대단히 지능적인 생명체라는
점에서 이 괴물은 현대사회의 악마적 실체를 오버랩한다.
괴물은 미국의 군산복합체일 수도 있고, 석유자본일 수도 있으며 인간사회에 공포감을
조성하는 독재국가나 테러단체일 수도 있다.
모두가 권력과 자본에 대한 탐욕의 결과물이거나 그 반작용의 결과물이다.
독극물에 의해서 탄생해선지 노숙자가 쏟아붓는 휘발유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는걸
보면 석유제품을 꽤나 밝히는 거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괴물문제가 바이러스문제로 둔갑했다는 점이고 그때문에 현서가족과
노숙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먹는다는 점이다.
모두가 정보의 생산과 해석, 전파의 수단을 타인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현서의 가족이 처음으로 저항을 생각할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괴물에 맞서 싸울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다름아닌 핸드폰이었다. 개별적인 정보전달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매체의 영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을 확보하게 된다.
괴물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민중에게 필요한건 무엇일까?
첫댓글 제목에 스포일러 경고를 써주시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 보고 난후 참 많은 생각들이 있었는데..잘 정리 해준 글인것 같네요... 봉준호 감독은 관객들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감독 같아요..전작에 이어 관객들 반응도 좋아서 앞으로도 흥행감독으로 자리매김할것 같네요..마지막으로 우리시대의 아버지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어요..가족을 위해서는 모든걸 버릴줄 아는 그런.....
음 진짜 스포일러 경고해주3....재미있을것같은 영화
언니가 왠일로 영화르 다봤대??? 나한텐... 뉘기랑 봤느냐가 더중요해!!! ㅋㅋ
에이~ 알믄서 ㅠㅠㅠㅠㅠㅠ
사람도 변하지만,, 그 나라의 민족성도 변한다는,,, ㅡㅡ;
누나! 글이 긴 것을 경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스포일러 포함'이라고 경고 하라는거 아녜요? ㅎㅎ
에구 나땜에 내가 몬살아 ㅡ,.ㅡ
이건 립스포일러가 아니라 완전 GT스포일러급이네... ㅋㅋㅋㅋㅋ -_-a
음.. 그레이트 하지?
난 그래서 안 읽었어,,ㅋㅋ...나도 꼭 볼테다 '괴물'!! 아자아자!!
탄탄한 스토리와 잘 만든 CG...오랫만에 좋은 한국영화를 보았습니다~보는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보고 난 후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네요...모든 님들께 강추인 영화에요...^^
역시나... 아직 안보신 분들도 있을텐데... 너무 까발려 져있는듯..ㅡ_ㅡ;;; [스포일러 주의보]
봐야겠구만..ㅎㅎ 괴물이 고단백질일줄이야..ㅎㅎ
누나야 다른사람의 즐거움을 늠 뺐는거 아냐. ㅋㅋ
한강(한강의 기적이 무색할 ..),양궁(4년마다 주목받는 ..),화염병(민주투사들은 어디에..),주한미군,카드 빚 등등 너무나 너무나 한국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