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강의 푸른 비원, 인도 / 시인 김윤자
-인도문화 탐방~한국문인협회 세미나
인도를 보아야 세계를 다 보는 것이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과 동물이 동일선상에서 공존하며 모든 생명체가 평화로이 더불어 사는 나라, 타고난 운명에 순응하며 모자라고 아파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나라, 더러는 역겨운 환경에 이건 아니라고 도리질하면서도 가슴 훈훈한 정서에 눈시울이 촉촉이 적는 나라, 그래서 세계인의 걸음을 이끄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인도의 서곡인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은 규모가 크고 웅장했다. 종교 그림이 많다는 차이뿐 다른 나라의 공항과 동일하며 밝고 우람했다. 인구 11억 명,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 GNP 500불의 아주 가난한 나라, 철저한 계급사회로 상하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나라, 절대로 서로의 계급을 넘보지 않으며 타 계급을 부러워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신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신분에서 행복하게 사는 나라다. 기차역 주변에 가면 계급사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쪽에서는 거지 아이들이 승객이 버린 도시락을 주워다 먹고 있고, 다른 쪽 부유한 가정집 아이는 여행객이 주는 사탕도 받지 않는다. 기차도 특급열차는 깨끗하고 음식서비스가 끊이지 않는데, 일반열차는 피난민 열차처럼 거지행색으로 창문에 매달려간다. 무심한 석양은 이것이 인도라는 듯 살빛 언어를 늘이지만 바라보는 자의 눈에 서글플 뿐 정작 그들은 어느 족속에 속하든 고요한 평화다.
1947년까지 200년간 지배당한 나라로 한국과 비슷한 민족주의 국가다. 한국인들을 무척 좋아한다. ‘우리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간디의 화장터는 대단했다. 한 점 흐트러지지 않은 넓고 근엄한 정원에 그를 추모하는 불꽃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외국인 및 내국인 모두 간디 화장터에는 꼭 간다. 얼마나 인도인의 높은 추앙을 받는지 짐작케 한다. 간디 박물관에는 그의 마지막 총살당한 혈흔까지, 그가 총살당하여 부축하고 걸어가는 뒷모습까지 모두 전시해 놓았다. 조국을 위한 간디의 붉은 피 앞에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델리 도심에서 데모 장면도 보았다. 인도는 공학이 발달한 나라인데 컴퓨터의 발달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젊은이들이 직업을 잃은 것에 대한 분노 폭발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진압하는 경찰은 겨우 막대기로 막고 있다. 이것이 시위고 데모라면 그들에게는 심각할지 모르나 이방인의 눈에는 데모도 진압도 인간적이다.
한국 16배 크기 나라, 버려진 듯 들녘이 전개될 때는 한국인에게 저 영토를 준다면 알뜰히도 운영할 텐데, 부러운 시선으로 대륙의 인도를 바라보기도 했다. 도심에는 소도 많다. 허술한 곳뿐만 아니라, 궁전 앞, 시장, 차도 등 모든 곳에 소의 걸음이 허락된다. 인도의 소는 제약된 장소가 없다.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변에서도 그냥 지나간다. 버스는 아무 불평 없이 소를 위해 서행한다. 뭉쳐 다니거나 홀로 떠돌며 쓰레기장을 뒤져 먹이를 찾아 먹기도 하고 끼리끼리 뭉쳐 다니며 함께 먹이를 찾기도 한다. 사람을 절대 해치지 않는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인도의 소와 호흡을 같이 했다. 거품을 제거하고 인간 본연의 가슴을 열고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곳이 인도다. 눈으로만 보면 기막힌 구토가 목을 훑는다. 자이푸르 바람의 궁전 앞 진입로에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산적해 있다. 사람도, 물건들도, 짐승들도 무한한 자유로 널브러져 있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다. 삶의 질서도, 생의 고리도 현대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이색 풍경의 나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인도의 저 대책 없는 행정을 어찌할까. 차라리 원시의 귀향이라 부르고 싶었다. 한국의 50~60년대를 재현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지만 이곳이 그보다 더 순수한 천연생활이다.
한국문인협회에서 인도 세미나를 위해 온 여정이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강변 도시 바라나시의 호텔 세미나장에서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학 강연을 듣고 시낭송으로 갠지스강을 적셨다. 인도인에게 있어 갠지스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세상을 초월한 신의 영역이다. 여기서는 모두가 거룩해지고 행하는 모든 일들이 신성하게 여겨진다. 죽은 소가 둥둥 떠 있는 물에서 목욕하고, 빨래하고, 강변 화장터에서 시신을 태우고, 갠지스강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모든 것들이 가장 신성한 경지에 이르는 의식이다. 어떤 일을 해도 신의 손길로 정화되며 맑아진다고 믿는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인도의 눈으로 보고 인도인의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그들의 푸른 비원을 읽을 수 있다.
이방인을 반기며 순수의 인간적인 정을 심어주는 나라, 한번 맺은 인연은 배반하지 않는 나라, 눈물겹게 만나 눈물겹게 헤어지는 나라, 헐벗은 나락에서도 처연한 평화를 가르쳐준 나라, 인도는 그런 나라였다.
* 뉴델리와 올드델리
델리는 뉴델리와 올드델리로 나뉜다. 같은 인도인데, 같은 델리인데 뉴델리와 올드델리의 차이는 엄청나다. 뉴델리는 델리 중에서도 가장 깨끗한 곳이다. 서울의 강남이다. 거리가 잘 정비되어 있다. 여인의 정갈한 옷차림이 돋보인다. 건물도 우람하고 자동차도 많다. 도로변 인도의 가정집을 자세히 보았다. 마당에 불 화덕을 놓고 남자들이 요리를 한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것 같다. 델리 도심의 주택이니 그래도 살만한 집이다. 제법 모양새를 갖춘 집이다. 우거진 나무와 쇠창살 담장이 깊은 연륜을 드러내며 운치를 더해준다. 행복이 도란거린다.
올드델리는 거리에서 얻어온 밥을 먹는 아이들, 노변에서 사는 가족들, 방뇨자들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거리는 자동차보다 삼륜 자동차와 오토릭샤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질서는 실종되고 상당히 복잡한 거리다. 좁고 불결한 풍경이다. 재래시장은 더욱 복잡하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그리고 그곳을 지나는 차량들로 엉켜 있다. 버스도, 승용차도 간신히 빠져 나간다. 거리도 지저분하고 동물도 올드델리에 많다. 쓰레기 더미에서 당나귀 무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인도에서 말이나, 당나귀는 교통수단이다. 동물을 이용하여 이동한다. 길가에 당나귀가 많다. 아파트도 거의 없다 있어도 저층이다. 외곽의 민가는 천막집이다. 지하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한국도 지원하고 있다. 올드델리와 뉴델리를 왕래하는 지하철선이다. 도심 가운데에 중장비 차들이 들어차 있다. 이미 운행되는 구간에는 지하철역도 보인다. 경제, 문화 등에서 분할된 뉴델리와 올드델리를 잇는 큰 발전의 함성으로 다가온다.
인도의 뉴델리 시가지
인도의 올드델리 시가지
* 델리 이슬람 사원
올드델리에서 만난 사원이다. 상인과 자동차, 릭샤가 엉켜 있고 입장이 까다로워 관람에 힘들었다. 반팔, 반바지차림은 안 된다. 사진촬영도 금지구역이다. 사진 찍으려면 인도 화폐로 200루피, 달러로는 5불을 내야한다. 350년 전에 세운 아시아에서 제일 큰 회교사원이다. 140m 탑이 두개 있고 초생달, 별 모양의 문이 3개, 돔지붕 등 이슬람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곳에는 왕 접견실도 있다. 1만 5천명 동시 기도가 가능한 큰 사원이다. 이슬람교인은 하루 5번 기도한다. 흰 모자를 쓴 사람은 모두 이슬람교인이다.
긴 계단을 따라 안에 들어갔을 때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마당에 네모진 연못이 있고 그 물가에서 인도인들이 손을 닦는다. 세수도 하고 발도 닦는다. 성스러운 예식이다. 이방인인 우리도 물가에 앉아 그들처럼 손을 씻었다. 안에는 거룩한 자세로 기도하는 자들이 앉아 있다. 종교인이 아니어도 이곳에서는 함께 성스러워지는 가슴이다. 사원은 무척 큰 규모로 돌고 돌아도 끝없이 이어진다. 가장 가까이서 체험하는 인도의 종교 유적지다.
올드델리에 있는 이슬람 사원
* 간디 화장터
간디를 화장한 곳이다. 1948년 여기서 그의 시신을 태워 갠지스강에 버렸다. 연중 가스불을 피우며 그의 넋을 기리고 있다. 1월 31일은 간디가 살해 당한 날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으로 힌두교 쪽에서 화가 나서 총살한 것이다. 10월 2일은 간디 생일이다. 매년 생일과 사망일에는 이곳에서 큰 행사가 열린다. 간디는 수상은 아니고 인도에서 가장 높은 자다. 1947년 8월 15일은 영국이 떠난 인도의 해방일이다. 간디는 영국에서 공부했고 남아프리카에 가서 변호사로 종사했다. 간디로 인해 인도가 해방된 것이다. 인도의 영웅이며 아버지다.
죽어서도 이리 아름다운 곳에 머물면 죽음이 서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잔디 공원 직사각형의 담장 아래 고즈넉이 그의 화장터가 있다. 나무 울타리가 곡선으로 예술이다. 어느 한곳 허술함이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간디박물관도 있다. 입구에 간디가 앞장서고 영국인을 추방하는 독립운동 시위군상 조각 동상이 있다. 전시실에는 생시의 간디 활동사진과 함께 사용 물품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옷, 안경, 물레, 도서관, 그의 마지막 총살당한 혈흔까지, 그가 총살당하여 부축하고 걸어가는 뒷모습까지 모두 생생하다. 아직도 붉은 피 앞에서는 가슴이 서늘하다.
간디는 성적으로 초월한 분이라고 들었다. 인도의 성적 문란을 타파하기 위해 금욕했는데, 그것을 시험하기 위해 발가벗은 여인을 침실에 들여보냈는데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잤다는 것이다. 고고한 인품을 지닌 위대한 성인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화장터에서 박물관에서 인도의 정신적 지주를 만났다.
델리의 간디 화장터
델리 간디 박물관에 전시된 간디의 마지막 혈흔
* 인도 거리 아이의 묘기
어찌할까. 바라보기조차 안타까운 일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델리 도심에서 슬픈 묘기가 가슴을 적신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인 두 남매가 도로변에서 묘기를 부린다.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할 시간에 오빠는 장구를 치고, 여동생은 재주넘기를 한다. 그리고는 지나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한다. 살기 위한 방법인데 너무나 애처롭다.
그러나 그들은 웃는다. 이런 현상은 인도여행 중 수없이 목격된다. 거지의 신분에서도 그들은 행복을 쥐고 산다. 도로 휴게소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먹거리를 구걸하는 아이도 있다. 역시 그 아이도 화사하게 웃었다. 먹다 남은 생수통을 주어도 웃으며 받고, 볼펜 한 자루를 주어도 행복에 겨워 웃는다. 그들 마음속에는 세상과는 다른 맑고 순수한 영혼이 살아있다.
인도 거리 아이의 묘기
* 델리 인디아 게이트
델리 도심을 빛내는 웅장한 문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형상으로 상당히 아름다운 건축물인데 슬픈 역사를 담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로 있던 세계 1차 대전 때 영국은 인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면 인도를 독립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1차 대전에서 영국은 승리했으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 문은 오로지 조국독립의 일념으로 몸 바쳐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인도 장병들을 위하여 세워졌으며 벽면에 전사한 13500명 병사들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다. 아직도 향불을 피워 넋을 위로하고 있다.
주변에는 대사관 거리로 울창한 나무와 파란 잔디가 정취를 더욱 빛내고 이 문을 거쳐서 나가면 긴 대로 끝에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궁이 아련히 보인다. 맞은편에는 높은 분수대가 있다. 사람과 상인, 자국인과 외국인으로 가득하다. 차량 통행을 막아 사람만 자유로이 왕래한다. 주인 없는 개들도 함께 거닌다. 평화 그윽한 인도 자존의 성역이다.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
* 바라나시행 야간 침대열차
뉴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 침대기차다. 델리 기차역은 인도만큼 큰 품으로 오가는 행인들을 보듬는다. 허름한 가건물 상가에 쥐가 들락거려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빨간 자켓을 걸친 짐꾼들이 분주하다. 팔뚝에 쇠붙이로 된 인증패를 두르고 있다. 그렇게 차린 사람에게만 짐을 맡겨야 한다. 우리들의 짐도 그들에게 맡겼다. 그들은 돈을 받고 기차 타는 플랫폼까지 짐을 날라준다.
긴 기차의 여정이다.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약 12시간 걸린다. 끝없이 긴 기차 침대에서 자면서 간다. 한국의 기차와 유사한 점도 있다. 수도시설, 화장실, 커피 파는 사람, 승무원 순찰,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 열차는 침대에서 잠을 자며 뉴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750Km를 가야하므로 그것에 맞게 침대 위주로 구성된 기차다. 2층 혹은 3층의 침대좌석이다. 종교의식으로 손뼉 치며 노래 부르는 단체도 있고, 간간이 철도직원이 순회하기도 한다. 새벽에 눈을 떠 화장실 앞 수돗물 앞에서 인도의 한국가이드를 만났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4명을 데리고 온 인도 현지 가이드다. 그의 이름은 '라카'라고 했다. 한국인을 좋아한다며 인도에 대하여 묻는 것을 자세한 설명해주었다. 라카는 가장 높은 신분인 승려 계급이란다. 요일별로 기도하는 대상이 있는데 월요일은 시바, 화요일은 원숭이 등이다. 인도 국조는 공작이다. 들녘에 암수 공작이 있다. 인도에서는 절대로 잡으면 안 되는 새다. 한국의 공원에서 보호받는 새가 들녘 여기저기 많이 앉아 있다. 죽으면 깃만 뽑아서 팔고 고기는 먹지 않는다. 인도 국화는 연꽃이다. 여자 수명은 70~75세, 남자 수명은 60~65세란다. 남자는 더운 환경에서 일을 많이 해서 그렇고, 여자는 힘든 바깥일을 하지 않아서 수명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라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아름다운 만남이다.
어스름 불빛에 인도의 들녘이 보인다. 피난민 이동 열차 같은 느낌이다. 침대만 가득하여 좁은 창문에 여럿이 모여 밖을 보았다. 간이역도 지나고, 소와 돼지들이 철로변에서 먹이를 찾는 풍경도 지나간다. 동물만 아니라 사람들도 기차에서 버려진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다. 기차 안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안내원이 창문 밖으로 던지기 때문이다. 대소변도 아무데서나 보는 진풍경도 보인다. 철로변은 아주 지저분하지만, 그곳에서 생을 엮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충분한 낙원이다.
아침에 도착한 바라나시 기차역은 플랫폼에서부터 복잡하다. 데모 진압 경찰도 나와 있고 인도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으로 혼잡하다. 계단 아래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큰 짐은 포터가 이동하기로 하고, 작은 짐만 챙겨서 내려 기차역사 밖으로 이동했다. 기차역 건물이 예술이다. 사원 모양 첨탑으로 색상도 아름답다. 역전 광장은 온갖 풍경으로 가득하다. 흰천을 파는 상인들, 노숙자들, 드러누운 가족들, 소, 사람, 오토 릭샤, 자동차 등으로 인도의 집합체다. 야간 침대열차는 거르지 않은 인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 침대열차 내경
갠지스강이 있는 바라나시 기차역
* 불교 성지 녹야원
인구 300만 명이 사는 바라나시에 있는 불교 성지다. 2500년 전 석가모니가 최초로 불법을 전한 곳이다. 42m의 탑이 올곧게 서서 그날의 설법을 전하는 듯하다. 즉 이곳은 인도 불교의 시작점이다. 사위가 모두 푸른 녹지다. 고요한 정원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데 인도 여인들은 녹지를 다듬고 있다. 보리수 그늘에 앉으면 석가의 설법이 들릴 것 같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석가모니가 해탈한 바라트맛타 사원도 있다. 사원은 네 종류가 있는데 출생, 해탈 전, 해탈, 사망의 사원이다. 그 중에서 이곳은 석가의 해탈 사원이다. 아담하다. 뜨락도 사원도 녹야원에 비하면 아주 협소하지만 인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 석가모니를 만나러 들어가는 사원 안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을 관리하는 사람이 문 곁에 있어 그곳에 놓고 들어갔다. 금불상이 불교의 빛을 발한다. 잠시나마 불심에 젖어본 해탈의 시간이었다.
바라나시의 불교 성지 녹야원
* 인도문화 탐방 한국문인협회 세미나 및 시낭송
바라나시에는 거대한 갠지스강이 있다. 그래서 이 도시를 찾아온다. 4대 문명 발상지라고 교과서에서 수없이 배웠던 갠지스강, 그 작은 지류가 바라나시 도심을 흐른다. 서울의 한강 같은 강이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이 도시에는 더 잘 어울린다. 해가 넘어감에 낙조가 드리워 더욱 곱다.
인도 갠지스강이 흐르는 강변 도시 바라나시의 호텔 세미나장에서 한국문인협회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학 강연을 듣고 시낭송으로 뜻 깊은 시간을 엮었다. 1부에서는 시에 대하여, 언어 구사에 대하여 강연을 들었다. 그 어려운 장벽을 넘어야 시인이라 했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고 시와 언어가 즉시 연결되는 작업을 시인은 잘 해야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끊임없이 언어에 대하여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다. 2부에서는 인도의 땅에 조국의 시를 심었다. 호텔 직원들은 큰 소리로 외치는 대한민국 문인들의 시낭송에 눈과 귀를 열고 바라본다. 나는 [한반도], 졸시를 낭송했다. 조국을 떠나서 바라본 조국은 안에서 볼 때보다 더욱 위대하다. 밤 깊도록 문학의 정열을 쏟으며 배우고, 문인의 사명을 다짐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바라나시 호텔 세미나장에서의 시낭송
바라나시에서 문학 강연과 시낭송을 마치고 한국문인협회 기념사진
* 갠지스강의 푸른 비원
갠지스강으로 가는 새벽길, 무어라 표현할까.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거리에서 자더라고 말하면 믿어질까. 인도에 대하여 수없이 들어왔는데, 그래도 설마 그럴까, 했는데 다 사실임이 목전에서 증명되는 인도의 새벽 거리다. 소가 길 위에서 누워 자고, 사람이 건물의 추녀 끝에서 누워 잔다. 어느 무리가 사람이고, 어느 무리가 동물인지 가뭇한 형상으로 구분 지을 뿐이다. 쓰레기더미까지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인도의 정직한 새벽을 열고 있다. 왜 그런 모습들이 밉지 않을까. 코를 막아야 할 상황인데 아무 거부감 없이 신성한 그들의 터전을 응시한다. 더러는 거룩한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분주히 걸어간다. 개인 혹은 단체로 간다. 그들은 정갈한 몸차림이다. 외객은 갠지스강의 일출과 강의 비경을 보러 가는데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신을 만나기 위해 간다. 목적은 달라도 한 지점을 향해 함께 가는 걸음이다.
모두가 분주하다. 상인은 물건을 팔기 위해 준비하고, 뱃사람은 손님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보살피고, 걸인도 오가는 길손에게 구걸하느라 바쁘다. 새벽의 갠지스강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그 한 일원으로 동참하여 빠른 횡보로 움직였다. 강의 비경과 일출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기 때문이다. 갠지스강은 장엄하다. 강변의 건물들도 대단한 위용이다. 차츰 어둠이 가시며 서서히 갠지스강의 비경은 드러나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갠지스강으로 나갔을 때 한송이 꽃단을 나누어 준다. 가운데에 작은 촛대를 세우고 불을 켜서 정성스레 손바닥에 놓고는 비원의 꽃을 강물에 띄우는 의식이다. 갠지스강에서 내국인 및 외국인 모두에게 이루어지는 거룩한 하나의 종교 의식이다. 인도인들에게는 신과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시간이다. 나도, 너도, 모두 하나 되어 이 나라의 예법에 따라 동일한 모습으로 소원을 빌며 소중하게 꽃단을 강물에 띄웠다.
사람들이 옷을 벗고 강물에 들어가 빨래를 한다. 목화 재배의 나라여서일까. 하얀 광목천을 빨아 널고 있다. 어찌 보면 지저분하게 보일지 모르나 저들에게는 몸도 마음도 깨끗해지는 정화의 순간이다. 강물 색깔은 탁하지만 결코 예사로운 강은 아니다. 인도의 역사를 이어가는 강, 장엄한 강이다.
드넓은 갠지스강 위로 해가 솟는다. 바다 같은 강물 위 배에서 핏빛 해가 솟구쳐 오르는 풍경을 보는 것은 오늘 여정의 절정이다. 눈부신 장관이다. 멀리 갠지스강 다리가 보이고 일출을 맞이하러 나온 많은 배들이 유유히 갠지스강에 떠 있다.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비경이다. 광폭한 강, 그 위에 푸른 지대가 길게 드리우고, 끝이 어딘지 모르는 우주 저 너머에서 신성한 해가 인간에게로, 인도에게로 빛을 발하며 떠오른다. 인도의 앞길에 빛이 있기를 빌었다. 강변 한자락은 평화로운 목욕탕이다. 드넓은 갠지스강은 지긋이 눈감고 이들의 행동을 허용한다. 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구분 없이 모두 발가벗고 물속에서 하나로 목욕한다. 원초적 삶이다. 손을 흔드니 함께 손을 흔들어 화답한다. 부끄러움도 없다. 기도하며 가장 천연의 모습으로 평화를 선사한다. 저들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신성한 경지에 이르는 의식이다.
갠지스강은 상당히 넓고 길다. 이곳 바라나시에 흐르는 강물만도 끝없이 길다. 그 강변에 들어선 건물들 역시 대단히 크고 우람하다.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과는 다르다. 높이도, 외형의 아름다움도, 한줌의 빈 공간도 없이 줄기차게 이어져 있다. 외객을 의식한 건물일까. 물론 숙소도 있을 테고, 식당, 상가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겠지만 갠지스강의 역사만큼 장엄한 혼이 서려있다. 갠지스강변에도 분명히 번화가는 있다. 그저 어설프게 지어진 건물은 결코 아니다.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는 외형은 첨탑의 사원이 많다. 목숨처럼 지켜오는 인도인의 종교가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나 갠지스강변 화장터에서 소록소록 연기를 올리며 타고 있다. 나무더미 위에 올려진 시신은 차츰 살점이 사그라들고 거룩한 영혼을 하늘 위로 올리고 있다. 신과 상면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시신을 태우는 사람들 사이로 하얀 연기가 솟는다. 석가는 회양목으로 태웠다. 보통 사람들은 망고나무를 사용한다. 재도, 뼈도 강에 버린다. 망자와 산자가 엄격히 구분되는데 누가 산자이고 누가 망자인지, 바라보는 자들의 시선은 혼돈이다. 죽어도 사는 듯, 살아도 죽는 듯 하나로 매듭지어진다.
화장터의 연기가 잦아들고 사람도 떠나고 나무 더미들이 빼곡이 쌓인 풍경만 보인다. 부자로 살았던 사람은 사후에 그래도 이곳 갠지스강변에서 하늘로 오르는데, 저 건장한 나무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서럽기 그지없는데 갠지스강변에서는 가장 평화로운 정경이다. 갠지스강에 누런 소의 시체가 떠 있다. 개의 시체도 떠 있다. 산자도 떠서 헤엄치고, 죽은 자도 연기로 떠서 맴돌고 인간과 동물이 강변에서도 하나로 맴돌고 있다. 지상의 도심에서도 함께 살더니 사후에도 동일한 길을 간다. 갠지스강의 푸른 비원은 생과 사를 초월한 불멸의 거룩한 성토에 이르는 기막힌 의식이다.
갠지스강으로 가는 바라나시의 새벽 거리
갠지스강 비원의 꽃 띄우기
갠지스강의 일출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갠지스강변의 화장터
* 카주라호의 동쪽 사원군
카주라호에는 사원이 많다. 그 중 동쪽에 모여 있는 사원에 먼저 들렀다.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문화가 잘 혼합된 사원군이다. 천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인도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원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그 비경은 사원이라는 느낌보다 어느 별천지 신선이 마무는 밀회의 아늑한 정원 같았다. 모두 다 예술이다. 쌓은 형상도, 조각된 형상도 엄청난 예술이다. 눈과 귀를 의심한다. 과연 1000년 전의 작품인지, 오늘날 발달된 건축술과 조각술로도 완성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보이는데 기막힌 사원들이다. 에로틱한 조각상이 대부분이다. 사랑을 표현해도 적나라하다. 성기 교합이 그대로 여과 없이 표출되고 있다. 혹자는 성의 문란을 논하고, 혹자는 성교육을 논하는데 나는 후자를 믿고 싶었다. 석가의 훌륭한 성교육이라고 믿고 싶었다.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진솔한 예술 조각 앞에서 새로운 인도를 발견하게 한다.
뜨락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다 모여 있다. 봉선화, 백일홍, 노란 국화 등등 청초한 정경이다. 석가모니가 현존한다면 저 아름다운 정원에서 더 무르익은 설법으로 사람들을 훌륭하게 교화시킬 일이다. 후세에 이르러 그 향기만으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불심이 서려 있다. 빈틈없이 전개되는 파란 잔디, 올곧은 나무들, 고운 색상의 꽃들 모두 하나로 통일되며 우주를 동글게 묶는다. 모나지 않은 세상을 외치고 있다. 인도 철학의 향수에 흠뻑 젖는다.
카주라호의 동쪽 사원군
카주라호 동쪽 사원군의 예술적인 조각
* 카주라호 서쪽 사원군
카주라호의 서쪽에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동쪽 사원군과 대칭되는 이름이다. 이곳은 동쪽 사원군과는 다르다. 우선 규모면에서 협소하고 단조롭다. 섬세한 조각상도 있지만 대개는 뭉툭한 건물들이다. 다시 고친 건물도 있어 역사적 감각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원은 사원이다. 우람한 인도의 불심이 오롯하다.
카주라호 서쪽 사원군에서 나올 때 인도의 가정집이 열려 있어서 잠시 들어갔다. 한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짓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가까이 다가가자 손바닥에 석류 한줌을 준다. 격의 없이 다가오는 그들의 삶, 친절하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인정, 배워가야 할 덕목이다.
카주라호 서쪽 사원군
인도 카주라호의 가정집
* 전원 도시 오차의 오차성
오차는 인구 5천명이 거주하는 소도시로 왕이 머물던 도시다. 자연 풍경이 빼어난 도시다. 인도의 남동부 갠지스강이 있는 바라나시에서 서편으로 이동하며, 그리고 다시 델리로 돌아가며 그저 거쳐 가는 한 도시쯤으로 여겼는데 아니다. 오차에 진입할 때도 그렇고, 오차성에 올라가서 본 도시는 온통 푸른 물결이다. 산은 멀리 한줄기 아련히 보이고 끝없는 들녘이 나무 물결이다. 그 옛날 왕궁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고풍스럽기도 하다. 도시의 건물들은 초원 위의 꽃으로 곱게 부상한다.
오차성은 무굴왕 때 축성한 성이다. 왕과 왕비가 살던 성이다. 붉은 사암 벽돌로 지어 온통 적색이다. 보수공사 중으로 인부들이 입구에서 사암 벽돌을 다듬고 있다. 우리가 멈추어 서서 쳐다보아도 아랑곳없이 열심히 일한다. 성은 4층이고 방이 지하까지 150개다. 최상단층까지 올라갔는데 오차의 전원 풍경이 비경이다. 데칸고원의 초원과 강, 등 아름다운 조화다. 오차성의 방이 하도 많아 돌고 돌아도 끝이 없다. 건축물의 모양도 대단히 수려하다. 인도의 찬란했던 문명을 현실에서 뚜렷이 만나고 있다.
인도의 전원도시 오차의 오차성
* 세계 7대 불가사의 타지마할
동문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곳에서 입장했다. 타지마할의 서곡일 뿐인데 들어서자마자 입구의 건물과 정원이 범상치 않은 풍경이다. 이곳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궁전이기 이전에 한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의 꽃이라는 매목에서 인간 본연의 깊은 속정이 타오르는 영역이다.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양식 건물로 하얀 대리석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다. 타지마할에서 '마할'은 왕관이라는 뜻이고 샤자한 왕의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1631년부터 1653년까지 18년에 걸쳐 지은 눈물겨운 사원이다. 왕비인 아내가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 아이를 낳다가 1631년에 사망했는데 샤자한 왕은 그 불쌍한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타지마할을 세웠다. 눈부신 비경이다. 하루에도 햇빛의 각도에 따라 7가지 색깔로 변하며 수려한 아름다움의 꽃으로 떠오른다. 눈물처럼 깔아놓은 물길이 애련하다.
타지마할 곁에는 아름다운 야무나강이 흐른다. 그날의 비극을, 왕비가 아이를 생산하다가 죽어간 슬픈 장면을, 증언하듯 고요하다. 얼마나 가슴 아팠으면 18년간 국고를 탕진하며 왕비를 위해 지은 궁전 곁 강물에서 샤자한 왕의 고뇌가 짙푸르게 일어서는 것일까. 야무나 강물은 여전히 청청한데 사람은 간 곳 없으니 애달프다. 저 강 건너에 왕과 왕비의 무덤이 있다하여 소슬한 눈으로 한동안 응시하며 사람은 동일하게 한 세상을 빌려 살다가 떠남을 확인했다.
타지마할은 눈부시게 웅장한 하얀색 대리석 건물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간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옛날 누구의 손끝에서 조각되었는지, 바라보는 자의 눈이 시리다. 무수한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이 왕비의 넋을 기리고 있으니 죽어서도 행복한 여인이다. 곡선과 수직 수평의 고운 선을 늘이며 천상의 하모니로 인도 대륙을 빛내고 있다.
세계 7대불가사의 타지마할
* 아그라성에서 본 타지마할
인도 특유의 생산물인 붉은 사암 벽돌의 궁전 아그라성 입구는 관람용 마차, 오토 릭샤, 구걸하는 자와 종교인, 거리의 상인들이 한가득 메우고 있다. 전혀 통제 받지 않는 인도 그대로 정경이 전개되고 있다. 야생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사람을 빤히 들여다본다. 절대로 해쳐서는 안 되는 인도의 한 동물이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뜨거운 현장이다.
이슬람 양식의 붉은 성은 무굴제국의 군사기지로 강대한 권력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건물마다 온통 적색이 고운 꽃술로 부각된다. 건축 양식도 수려하고 천연 돌의 색상이 절묘한 운치다. 아그라성은 샤자한 왕의 아들이 거하던 곳이다. 또한 이곳에 아버지 샤자한을 8년간 감금하여 사망케 한 곳이기도 하다. 무덤은 타지마할에 두었지만 샤자한 왕이 목숨을 거둔 곳은 여기다. 저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권력 앞에서 눈먼 광경을 재현하고 있지만 인도는 이러한 유적으로 후손들이 살고 있으니 한줄기 바람이 슬프게 지나갈 뿐이다.
야무나 강줄기를 따라 시선이 멈추는 끝선에 타지마할이 신비로운 자태로 서 있다. 천상에서 내려온 자태로 아름다움을 지상에 선사한다. 아그라성 성문에서 바라보니 훤히, 아주 정겹게 다가온다. 권력이 부자간의 끈을 자를 만큼 무서운 위력이라는 사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알고 있지만 샤자한 왕의 아들이 저 아름다운 궁전 타지마할의 주인인 아버지 샤자한 왕을 살해했다는 것에 대하여는 짙푸른 슬픔이다. 드넓은 초지와 강을 사이에 두고 붉은 피를 흘렸던가. 아그라성에 올라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눈이 시리다.
아그라성에서 본 타지마할
* 자이푸르 암베르성
자이푸르는 상당히 크고 웅장한 도시다. 도로도 넓고, 재래시장도 아주 큰 규모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암베르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인도인들은 부지런히 생활 문을 열고 있었다. 과일, 야채 상인과 출근자의 모습, 릭샤를 타고 가는 사람들, 낙타와 소가 사람들과 함께 걸어 다니는 모습, 등 거리 풍경이 살아 일어선다.
자이푸르 도시에서 아주 서서히 산길을 오른 곳에서 범상치 않은 산정의 성벽을 만났다. 우람한 산꼭대기마다 줄지어 성벽과 성이 전개된다. 하늘 가까운 도시였다는 암베르성이 그 옛날 왕정시대의 찬란했던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암베르성을 왕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도보, 코끼리, 지프차 등이다. 바쁜 여정의 방문객들은 한번은 지프차로, 한번은 코끼리로 오르고 내린다. 오를 때는 코끼리를 탔고, 내려올 때는 지프차를 탔다. 인도 사람들의 큰 돈벌이 수단이다. 인도 코끼리를 타고 암베르성에 오르는 행렬이 장사진이다. 코끼리에게 고운 입을 입혀 걸리는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한 마리에 두 사람씩 앉을 수 있는 안장이 코끼리 등에 있다.
코끼리를 모는 사람은 한국인이라 하니 볼펜을 달란다. 메모용으로 쓰던 볼펜을 꺼내 주었다. 인도에서 우리나라의 볼펜은 큰 인기다. 가는 곳마다 볼펜을 달라고 외친다. 한국인이 쓴 모자를 달라는 주문도 한다. 한국 상품이 그 만큼 우수한 제품임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코끼리는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하늘 닿을 듯 높은 성에 데려다 주었다.
산 위에 이런 성을 짓고 살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굴제국의 황제가 죽고 쇠퇴하는 시기에 암베르를 통치하던 자이싱은 정사보다 암베르 건설에 힘썼다. 점점 늘어가는 백성들의 안전한 거주지로 자이푸르를 선정했고 외침의 방벽으로 암베르성을 쌓은 것이다. 성과 성벽은 눈물겹도록 아슬하다. 위로는 하늘만 보이고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 절벽이다. 기막힌 비경 앞에서 눈과 가슴은 연민에 젖는다.
성의 창문 앞에서 내려다보니 자이푸르 시가지가 절경이고 성으로 오르는 코끼리 행렬은 여전히 진풍경이다. 정원에는 호수와 나무, 잔디로 궁전 뜨락을 재현해 두었고 오래 전의 성터 흔적이 내려다보인다. 건너편 산의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과 또 맞은 편 산의 성벽이 병풍처럼 늘여 있다. 자이푸르 도시가 깊은 산과 산 사이로 아름다운 정경이다. 자이푸르는 인도 최초의 계획 도시로 벵골제국의 총명한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어 가까이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훌륭한 도시다.
산정의 궁전은 신의 손길로 지은 듯 아름답다. 대리석 문양과 색상도 대단히 수려하고, 저 멀리 산등을 휘감아 흐르는 성벽의 위용이 외침을 제압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하늘 가까운 이 도시에서 살았다 하니 믿기지 않는다. 인도의 옛 향기를 온전히 호흡하는 역사적 성터다. 인도의 높은 성에 입성했다는 환희, 왕과 백성이 거하던 하늘 도시의 나들이는 황홀한 경이다. 더운 날씨에 모두들 지쳐 있는데 암베르성은 아름다운 날개로 우리를 감싸 안는다.
암베르성을 관람하고 하산하는 길목에서 코브라뱀 공연을 보았다. 인도 남자 둘이서 피리를 불며 바구니에 담긴 뱀을 조정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저들은 저것이 생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촬영해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다. 영상매체로만 보았던 코브라뱀 공연을 목전에서 보다니 꿈인 듯싶다. 커다란 코브라뱀의 머리가 주인을 응시하며 묘기를 연출한다.
사람을 태우고 암베르성을 오르내리는 코끼리 행렬
* 자이푸르 천문대
자이푸르는 인구 145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다. 라자스탄 주의 주도로 상업과 금융,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아주 우람하고, 질서정연하고, 깊은 역사 유적도 많고, 시민들의 표정에서 생기가 돌고 있다. 도심의 일정 구간을 핑크빛으로 꾸몄다. 건물이 모두 분홍빛이다. 그 안에 바람의 궁전, 재래시장, 천문대, 등 주요 기관이 많이 있다. 꽃처럼 아름다운 블록이다. 자이푸르는 직선 방사형의 거리와 도로로 이루어진 도시다. 일직선의 가게가 9각의 도시 구역으로 정비되어 격자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이 도시는 정글의 맹수와 외국군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7개의 대문을 가진 성벽으로 둘러 싸여져 있다. 자이싱의 계획도시는 모든 압력과 변화로부터 잘 견디어 내었다. 그런 연유로 자이푸르 도시는 지금까지도 훌륭한 시가지이며, 그 단단함이 돋보인다. 그 중에서도 핑크시티는 자이푸르의 핵심 포인트다.
자이푸르 중심의 핑크시티 안에 고대 천문대가 있다. 그저 옛날 기상관측 시설물 하나 있겠지 했는데 놀랄 만큼 많은 고대 천문 유적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높이 평가 받는 것은 해시계다. 해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눈금으로 시간을 가늠하며 살았던 인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다. 그외 별자리 관측소, 24절기 등 여러가지 우주를 관찰하던 천문대 부속 기구들이 뜨락 가득 들어 차 있다. 과학적인 사고가 전시된 새로운 인도를 보는 현장이다.
자이푸르 천문대
* 자이푸르 바람의 궁전
인도말로는 '하와마할' 즉 바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핑크시티 안에서 다른 건물과 동일한 핑크빛으로 지은 아름다운 궁전이다. 1799년 왕족의 여인들이 일상생활과 시내의 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대로변에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인도의 왕이 와서 산다. 영국에 갈 때 가지고 간 갠지스강 물통으로 쓰였던 대형 항아리도 있고 출입구에는 두 대의 대포와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지금 인도의 왕에게 아들이 없어 다음번의 왕은 외손자가 될 것이란 소문이 돈다. 상당히 높은 5층 건물인데 회오리바람처럼 높이 솟았다. 색상도 핑크빛으로 눈부신 비경이다. 자이푸르의 명물이다.
궁전 앞에는 규모가 아주 크고 웅장한 시장이 있다. 핑크시티의 상징처럼 도심 한 블록을 양편으로 다 점유하고 있다. 궁전식으로 꾸며놓은 상가 건물의 행렬이 아주 인상적이다. 인도의 헐벗은 모습은 간 데 없고 화사한 어느 유럽을 느끼게 한다.
자이푸르 바람의 궁전
자이푸르 바람의 궁전 앞 핑크시티의 재래시장
* 자이푸르 바람궁전 앞의 소
유명한 바람의 궁전 진입로에는 소뿐만 아니라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산적해 있다. 사람도, 물건들도, 짐승들도 무한한 자유로 널브러져 있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다. 비둘기 모이를 파는 남자는 비둘기를 아기 다루듯 한다.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 나라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거품을 제거하고 인간 본연의 가슴을 열고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곳이 인도다. 눈으로만 보면 기막힌 구토가 목을 훑는다.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있다. 한국의 덕수궁 앞에 소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고 하면 이해가 되겠는가. 걸인이 소와 함께 있으며, 소에게 마른 풀을 주고 있다 하면 이해가 되겠는가. 바람의 궁전을 찾아온 관광버스가 주차한 바로 곁에서 소들이 파리가 들끓는 음식물 찌꺼기를 훑고 있다. 염소떼와 개도 떠돈다. 형식을 버린 나라, 외부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나라, 목숨이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 이것이 인도다.
자이푸르 바람궁전 앞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소들
자이푸르 바람궁전 입구의 동물들
* 인도의 낙타
인도에서 낙타는 대단한 동물이다. 한국의 그 옛날 우마차처럼 큰 교통수단의 동물이다. 인도에서 소는 주인이 없지만 낙타는 분명한 주인이 있다. 시골과 도시 가리지 않고 짐과 사람을 실은 낙타의 수레가 활보한다. 한 무더기 낙타떼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주인과 함께 쉬고 있다. 양순한 몸매다. 더운 나라에서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생존의 한 수단이다.
넓은 평원에는 옥수수대가 세워져 있다. 낙타에게 줄 먹이란다. 마른 사초처럼 저장하기 위한 것이다. 소 먹이로 둥글게 말아둔 풀더미와 유사한데 묶지 않고 그대로 세워둔 것이 다르다. 인도에서 낙타는 물건운반 수단의 아주 소중한 동물이다. 그런 만큼 낙타를 위한 먹이를 준비하는 것이다. 정겨운 풍경이다.
인도의 교통수단인 낙타
* 뉴델리 연꽃 사원
뉴델리 도심의 나무 숲 사이로 하얀 연꽃 모양의 건물이 솟구친다. 연못이 9개, 연꽃잎이 27개, 키가 34m의 아름다운 사원이다. 긴 보도블록 길을 따라 들어갔다. 황홀한 연꽃 모양의 사원이 영혼을 흡입한다. 그 안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이곳 사람들은 안에서 50분 동안 기도한다. 월요일만 휴관이다. 사위를 둘러싼 연못과 잔디가 사원을 푸른빛으로 물들인다. 정원의 조경도 빼어나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예술이다. 인도 종교를 모른다 해도 여기서는 모두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게 된다.
뉴델리 연꽃 사원
* 꾸뜹 미나르 유적지
뉴델리에 있는 델리 최고의 유적지로 73.5m의 높은 승전탑이 하늘을 오른다. 꾸뜹 마니르 왕의 승전 기념탑으로 무슬림 세력이 힌두교도에 맞서 싸워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독특한 건축양식의 5층탑으로 1층은 힌두양식 2,3층은 이슬람양식으로 두 종교의 기묘한 조화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도 최대의 미나르 유적지로 세계문화유산이다. 탑의 안에는 379개의 계단이 있어 1982년까지는 정상에 일반인 출입을 허락했으나 압사사고와 더러는 이곳에 올라 자살하는 여인도 있어 현재는 2층까지만 오름이 가능하다.
나무 사이로 내민 탑이 오롯하다. 붉은 색의 기둥모양 탑이 예술이다. 저녁 석양이 내리는 시간이어서 그 아름다움은 더욱 눈부시다. 인도 시민들이 많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곤 한다. 탑 외에 곳곳에 남은 유적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붉은 사암의 건물들도 꽃처럼 곱다. 인도인의 한 가족이 이방인인 우리를 보더니 역으로 신기한 듯, 아이와 아내를 우리들 가운데 세우고 사진촬영을 해도 되냐고 묻는다. 쾌히 승낙했다. 여기가 인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기 때문일까. 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향기로운 인도 여행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오기 어려운 나라, 인도에 우리는 문학이라는 동일한 주제로 뭉쳐서 온 것에 대하여 서로에게 감사했다. 문학의 정을, 인도에 대한 애정을, 인도에 대한 연민을 품고 떠난다.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밤하늘을 힘차게 가르며 조국 대한민국으로 날아가고 있다. 인도에 대하여 공부한 수많은 자료들을 문학기행 자취록으로, 시로, 곱게 엮어 문인의 사명에 충실하리라 다짐하며, 내 생애 세계여행의 족적 선상에 인도라는 또 하나 큰 획을 긋는다.
뉴델리의 꾸뜹 미나르 유적지
갠지스강의 푸른 비원, 인도-작가와 문학 2010년 공간테마 인도문화 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