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야구기자로 이름을 날린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단의 성패는 스카우트의 손에 달려 있다”고 썼다. 팀 성적을 좌우하는 것은 구단도 감독도 아닌 선수의 능력이다. 감독이 아무리 신출귀몰한 야구의 신이라 해도 선수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작전은 감독이 내지만, 결국 경기장에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좋은 인재들이 많이 모인 팀이 강팀이 된다. 그리고 그런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모으는 것이 스카우트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코페트는 “스카우트의 임무는 대중“� 널리 알려진 유명 감독이나 구단 임직원보다 더 막중하다”고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야구계에서 스카우트들만큼 중요한 임무를 갖고 있으면서 그토록 무시당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야구란 무엇인가] 347p) 사람들은 어떤 선수가 실패하면 ‘스카우트가 잘못 뽑았다’고 말하면서도, 성공했을 때 스카우트의 안목을 칭찬하는 법은 없다. 현장에서도 종종 무능한 지도자들은 “쓸 선수가 없다”며 스카우트에게 책임을 돌리기 일쑤다. 게다가 스카우트는 일년 내내 전국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고달픈 직업이기도 하다. 구단 직원이지만 사무실에는 앉아있을 새가 없고, 야구장에서 주로 일하지만 현장과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독특한 위치도 스카우트의 특징이다. 이 글에서는 야구단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하는 운명을 지닌 스카우트에 대해 살펴본다.
스카우트의 탄생
스카우트의 탄생 초창기 야구에서 선수 발굴은 전문적인 직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190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 [내츄럴 The Natural]을 보면 이 점이 잘 나타난다. 영화는 야구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주인공 로이(로버트 레드포드)가 시골집을 떠나 시카고 팀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출발하며 시작된다. 시카고 구단이 강속구 좌완투수로 소문이 난 로이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계약하길 원한 것. 선수 스카우트를 사람들의 ‘입소문’과 ‘추천’에 의존하던 시절의 풍경이다. 당시에는 구단주와 감독이 직접 스카우트 역할을 겸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들은 기자나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 “어디에 가면 좋은 선수가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직접 보러 찾아 나섰다. 가까운 사람들의 추천을 통해서도 선수를 수급했다. 말 그대로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재능 있는 선수를 발견하고 계약하는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구단 경영의 선구자’ 브랜치 리키가 1920년대 들어 창안한 ‘팜 시스템’으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 리키 이전까지는 신인 선수를 영입하려면 마이너 팀에 돈을 주고 사오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세인트루이스 단장을 맡은 리키는 마이너 팀 여럿을 사들인 뒤, 직접 계약한 신예들을 산하의 마이너 팀으로 내려 보내 훈련을 시켰다. 가능성 있는 신인을 마이너에서 키워서 메이저로 올려 보내는 시스템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후 1931년 양키스가 세인트루이스의 방식을 따라 하면서, 팜 시스템은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았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구단 산하 마이너에 수백 명의 선수를 확보해야 했고, 이는 입소문과 추천에 의존한 구식의 스카우트로는 불가능했다. 전문적인 스카우트 요원의 필요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한편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초의 스카우트가 나온 것은 1985년으로 보고 있다. 프로 출범 초기만 해도 구단들은 스카우트 보직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2군을 운영하는 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신인 지명도 연고지 출신 선수를 무더기로 뽑는 형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초창기 메이저리그가 그랬듯이 감독이나 코치들이 개별적으로 선수 영입에 관여하곤 했다. 하지만 선진적인 구단 운영을 추구하던 OB 베어스(현 두산)가 1985년에 강태중 씨를 스카우트 담당자로 임명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이후 드래프트 제도가 바뀌고 선수단 규모가 커지면서 스카우트 팀은 프로 구단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현재는 구단마다 많게는 8명에서 적게는 2명까지, 각기 다른 규모로 스카우트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누가 하는가
메이저리그건 한국 프로야구건 스카우트가 되려면 선수 경력이 있어야 한다. 선수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평가를 내리려면 비전문가의 눈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스카우트 대부분은 선수로 뛰다가 일정기간 코치로 활동하고 스카우트 업무를 맡게 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선수 은퇴 뒤 곧장 스카우트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계속 현장에만 머무르는 것보다는 3~4년 정도 스카우트 업무를 하는 편이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LG 스카우트팀 강상수 과장은 “스카우트는 현장과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한 발 떨어져 있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현장을 매일 지켜보기는 하지만 직접 컨트롤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선수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부분까지 아우르며 보다 넓은 시야로 야구를 보게 된다는 얘기다. 두산 시절 스카우트 업무 경험이 있는 롯데 양승호 감독도 “스카우트를 오래 하면 선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눈이 생긴다”며 스카우트 경험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스카우트 업무를 하면 자연히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강상수 과장은 “사람들이 스카우트가 한 두 경기 보고서 선수를 뽑는 줄 알지만, 사실은 아니다. 짧게는 고교 3년, 길게는 대학까지 7년을 보고 선수를 뽑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긴 시간을 지켜보며 공을 들인 만큼 강한 애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스카우트 출신 코치들은 유난히 열의가 강하고 선수들을 소중하게 대한다는 평을 듣는다. 강상수 과장은 “안 해본 사람은 그 마음을 모른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카우트가 그렇게 오래 지켜보고 고생해서 뽑아온 선수라는 것을 아니까, 지도자가 되도 ‘내가 허투루 가르치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거다. ‘우리 정말 한번 미친 듯이 열심히 해 보자’고 의욕적으로 가르치게 될 것이다.” 양승호 감독도 같은 견해다. “스카우트를 하다가 코치가 되면 선수들을 구단 재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 애지중지하고 열심히 가르친다. 좀 가르치다가 안 되면 ‘쟤는 안 돼’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다.”
스카우트와 007작전
임창정 주연의 영화 [스카우트]는 고전적인 방식의 선수 스카우트를 잘 묘사하는 영화다. 여기서 임창정은 선동열 영입을 위해 학부모에게 읍소하기, 인간적으로 호소하기, 부모 비위 맞추기, 주변 인맥 활용하기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심지어는 경쟁자가 동원한 건달들에 의해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기도 한다. 과장을 약간 보탠 이런 묘사는 프로야구에 ‘1차 우선 지명’ 제도가 살아있던 90년대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었다. 당시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은 연고지 내 고교 유망주들에 야구 용품이나 용돈을 쥐어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다른 구단이나 대학과의 선수 영입 경쟁도 영화로 치면 [스카우트] 같은 코미디보다는 전쟁물이나 첩보물에 가까웠다.
스카우트 출신의 한 야구인은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겪기도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한 고졸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일이다. 선수 본인은 일찍 프로로 가서 돈을 벌기를 원했는데, 그 부모는 대학 진학을 원했다. 부모의 뜻이 워낙 완강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먼저 선수를 따로 만나 사인부터 받았다. 그리고 부모를 다른 카페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내 옆으로 와서 앉더니 무섭게 위협하는 거다. 한번만 더 우리 아들 만나면 가만 안 두겠다고. 어쩌겠나. 그 자리에선 ‘알았습니다’하고 물러난 뒤, 선수가 직접 부모님을 설득하게 했지. 결국 나중에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더라.” 그런가 하면 과거 어떤 팀은 점 찍어둔 A 선수의 대학 진학을 막기 위해 입학시험장에서 화장실을 통해 선수를 빼돌리는 ‘007작전’을 펴기도 했다. 대학에 가겠다는 B 선수를 설득하기 위해 청소년 대표팀의 해외 캠프까지 잠입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낸 사례도 유명하다. 옛날 스카우트들이 들려주는 이런 무용담(?)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스카우트의 주요 업무
아마추어 경기를 보러 야구장을 찾은 이라면 한 번쯤은 관중석 한편에서 스피드건과 초시계를 들고 ‘매의 눈’으로 선수를 주시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스카우트다. 스카우트가 하는 가장 주요한 일은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 체크하는 것이다. 경기에서 살핀 내용들을 토대로 선수의 능력을 평가한 뒤 꼼꼼하게 정리해서 보고서로 작성하고, 팀 내 회의를 통해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서로 못 보고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스카우트 요원들 간에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과정이다. 감독이나 코치는 물론 각계의 사람들을 만나 선수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가능한 전부 얻어내는 것도 스카우트의 일이다.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는 날엔 팀의 현재 전력과 미래 상황에 따라 전략을 짜서, 가능한 팀에 가장 필요한 선수를 지명한다. 과거 대학 팀과 선수 영입 경쟁을 벌여야 하던 시절에는, 대학 행을 원하는 선수를 온갖 방법으로 설득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도 스카우트의 업무였다. 야구가 없는 겨울에도 쉴 새가 없다. 많은 스카우트는 고교와 대학 팀의 겨울 훈련지를 찾아 다음 해에 영입 대상이 될 선수들을 부지런히 살핀다. 일부 스카우트는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도미니칸 리그 등을 오가기도 한다.
선수 평가의 기준
최우선 조건은 ‘키+바디’, 신체조건이다. 큰 키에 체구가 건장한 선수는 일차적으로 눈 여겨 볼 리스트에 들어간다. 반면에 키가 작고 체구가 왜소한 선수는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작은 키로 성공을 거둔 예외도 있지만, 부상 가능성이 크고 프로에서의 성장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 다음으로 보는 조건은 선수가 ‘공·수·주에서 갖춘 기본기’다. SK 박철영 스카우트는 “자기 포지션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살펴본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4학년이면 야구를 한 지 10년이 넘은 선수들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야구를 했다면 자기 포지션에서 해야 할 일을 따로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매의 눈’으로 본다
스카우트들이 단지 경기 중에 기록한 구속만 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카우트들의 노트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담겨 있다. SK 박철영 스카우트는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경기뿐만 아니라 연습하는 모습도 지켜본다”고 말했다. “연습에 임하는 자세나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펴본다”는 설명이다. 또한 경기가 시작된 뒤에는 “라인업을 적고 이전 경기에서와 같은 포지션에서 뛰는지도 파악한다”. 포지션이 달라졌다면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몸 상태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감독이 다른 포지션으로 키우려고 마음을 먹은 것인지 등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투수의 경우 최고구속만이 아니라 “이닝에 따라 구속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자가 있을 때 구속은 얼마나 변하는지, 컨디션에 따른 구속 차이는 어떤지” 등을 모두 살핀다. “상위타선을 상대할 때와 하위타자를 대할 때 보여주는 자신감이나 컨트롤의 차이”도 스카우트가 보는 요소 중 하나다.
기억할 점은 스카우트들이 보는 것은 ‘결과’가 아닌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타자가 어느 날엔 운 좋게 수비수가 없는 곳에 타구가 떨어지면서 멀티히트를 쳐낼 수도 있다. 투수 역시 야수들의 호수비 덕분에 실점 없이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 이런 결과와 기록에 현혹되면 올바른 선수 평가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용이 중요하다. 투수라면 자기가 원하는 곳에 투구할 수 있는지, 컨디션에 따라 투구 패턴을 어떻게 가져가는지 등이 점검 대상이다. 타자일 경우 투수에 따른 타격 타이밍, 타격 후에 1루까지 뛰는데 걸린 시간 등을 측정한다. 주자일 때는 리드 폭과 루상에서의 움직임을 살피고, 수비에선 타구에 대한 반응과 송구 능력 등을 지켜본다. 이런 ‘내용’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당장 경기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프로에서 훈련을 거치고 경험을 쌓으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가끔 일반 팬들 사이에서는 아마추어 선수의 개인기록만을 보고 “좋은 선수인데 왜 지명하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카우트들의 생각은 다르다. 서울 팀의 한 스카우트는 “우리가 보는 건 고교에서 얼마나 통하느냐가 아니라 그 선수가 프로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얼마나 성장이 가능한가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개인 기록은 단지 참고사항일 뿐 스카우트에 있어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아마추어는 경기 수도 적고 팀과 선수들의 수준 차이도 크기 때문에 기록에 큰 의의를 두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본다
흔히 많은 선수들이 스카우트들이 경기하는 모습만 본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사이의 모습까지도 꼼꼼하게 지켜보는 게 스카우트라는 직업이다. SK 박철영 스카우트는 “선수들이 내가 왜 손에 초시계를 들고 있는지를 잊는 것 같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타격한 뒤에 1루까지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서인데, 어떤 선수들은 아웃이 될 것 같으면 설렁설렁 뛰거나 아예 달리기를 포기한다. 그러면 보고서에는 달리는 스피드 대신에 ‘근성이 부족함’이라고 써넣을 수밖에 없다. 프로에서 자신들에게 뭘 원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선수가 모든 플레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선수의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살핀다는 이야기다. 아웃이 될 것 같은 타구에도 전력질주하고,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온 힘을 다해 플레이하는 선수를 경기 기록지는 기록하지 않을지 몰라도 스카우트들은 기록하고 있다.
또 어떤 스카우트들은 망원경이나 비디오카메라로 선수를 클로즈업해서 살펴보기도 한다. “선수의 표정이나 입 모양을 본다. 자신감 넘치는지, 아니면 의욕이 없는 모습인지 살펴보고 혹시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지는 않는지도 본다. 포수라면 투수가 어이없는 바운드볼을 던졌을 때 인상을 찡그리고 짜증을 내지는 않는지도 주시한다. 경기장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잘 하는지, 남들과 대화할 때 자신 있게 눈을 쳐다보며 말하는지 등을 보기도 한다.” A구단 스카우트의 설명이다. 선수와의 사전 접촉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인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 같은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는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도, 관중석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점검하고 유급생일 경우 팀 동료들과의 관계도 지켜본다”고 말했다. 선수의 인성과 장래에 가정환경이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팀 동료와의 원만한 관계가 팀 스포츠인 야구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이런 판단이 언제나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2006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동산고 류현진에 대해 야구 관계자 사이에서는 나쁜 소문이 많았다.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술과 담배에 빠져있다”, “도박을 좋아한다”는 소문은 도가 지나쳤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건달이라더라”는 소문까지 있었다. 이런 소문 때문에 좋은 실력에도 불구하고 1차 지명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한화는 류현진을 2차에서 지명했고, 류현진은 데뷔 첫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하며 한국 최고의 투수 자리에 올랐다. 입단 전 그에 관해 떠돌던 소문은 대부분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밝혀졌다. 열길 물속은 보여도, 사람 마음속은 들여다보기가 어려운 법이다.
현장의 개입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스카우트는 전적으로 스카우트 팀과 구단의 권한이다. 코칭스태프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는다. 감독이 “이러저러한 선수를 뽑아 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반면 국내에서는 팀에 따라 코칭스태프의 의견이나 요구를 반영해서 스카우트가 이뤄지기도 한다. 어떤 팀은 감독이 스카우트 보고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정보망을 통해, 또는 비디오 등을 보고는 특정 선수를 무조건 데리고 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문제는 드래프트가 감독이 원한다고 해서 실제로 데리고 올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요구를 반영하려면 실제 그 선수를 뽑아야 하는 순번보다 한참 앞에서 ‘당겨서’ 뽑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드래프트가 될 리가 없다. 게다가 감독이 팀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야 5년 남짓이라면, 선수는 그보다 오랜 기간 팀에 남는다. 자신이 감독으로 있는 동안 그 선수가 1군에 올라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뽑으라고 지시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신인 드래프트
매년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이면 스카우트 팀이 중심이 되어 드래프트 전략을 짠다. 올해는 어떤 포지션을 집중적으로 보강할 것인지, 1라운드에서는 어떤 선수를 뽑을지 등을 정해두고 원하는 선수를 다른 팀이 지명할 경우도 미리 대비한다. 1라운드에서는 거의 모든 팀이 투수부터 뽑고 본다. “아무래도 투수가 승패를 결정하는 비중이 높다. 또 최근의 야구에서는 투수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SK 박철영 스카우트의 설명이다. 물론 이는 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실제로 올해 드래프트에서 한화는 전체 1순위로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을 지명했다. 3순위 LG도 중앙대 포수 조윤준을 선택했다. 신생 NC가 대어급 투수 2명을 우선 지명하면서 눈에 확 들어오는 투수가 없었던 것도 원인이지만, 그보다는 각각 내야수와 포수가 필요한 두 팀의 사정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올해 드래프트에서 많은 팀이 투수보다는 야수를 뽑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투수 지명이 주를 이루면서 투수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구단 스카우트는 “우리 팀에 투수만 40명에 달하는 실정”이라며 “이 때문에 올해는 야수 위주로 지명했다”고 털어놨다. 고졸 선수와 대졸 선수 비율 역시 마찬가지. 이번 드래프트에서 대부분의 팀이 대졸 신인을 중점적으로 뽑은 반면, 삼성은 고졸만 8명을 뽑으며 대비를 이뤘다. 이유는 팀의 1군과 1.5군 선수 층이 매우 두텁기 때문. “당장 1군에서 활용할 만한 선수보다는 장기적으로 팀에 기여할 고졸 선수들 위주로 뽑았다”는 게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고려대 시절 신입생 스카우트 노하우를 소개하며 “한 해는 투수 위주로 스카우트하고, 다음 해는 야수 위주로 데려 온다”고 한 바 있다. 과도한 경쟁이 팀의 단합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스카우트의 능력
많은 사람이 스카우트를 가리켜 ‘진흙 속의 진주를 찾는 일’로 여긴다. 하지만 현직 스카우트 대부분은 이런 평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수도권의 한 스카우트는 “야구하는 사람들의 눈은 대동소이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카우트들이 일하는 환경은 비슷하다. 선수를 지켜보는 곳도 같은 장소다. 누구는 외야 관중석에서 보고 누구는 백네트 뒤에서 보는 게 아니다. 선수를 평가하는 방법도 대부분의 팀이 비슷하다. 또한 좋은 선수에 대한 정보라면 어느 구단이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게 마련이다. A팀의 스카우트가 알고 있는 정보는 B팀에서도 다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팀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 순서가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스카우트의 역량이 상위 라운드보다는 중하위 순번에서 나타난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2라운드에 지명되는 선수는 대부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 있게 마련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5-툴 가운데 3가지 이상을 갖춘 선수가 2라운드 이전에 지명되며, 이런 선수들을 선택하는 데는 스카우트의 능력보다는 팀의 지명 순번이나 팀 사정 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반면 3라운드 이후의 선수들은 5가지 재능 중에서 2, 3개 정도를 갖췄거나, 장단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선수들이 주로 뽑힌다. 스카우트는 이런 선수들이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고 단점을 훌륭하게 보완해서 1, 2라운드 선수를 뛰어넘는 성장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물론 스카우트는 점쟁이가 아니다. 지명 뒤에 선수에게 무슨 변화가 생길지, 어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성 있는 선수도 팀의 선수구성이나 감독의 성향과 맞지 않아 사장될 수 있고, 갑작스런 부상이나 사고로 선수 생활을 망칠 수도 있다.
스카우트는 원석을 찾는 사람
기본적으로 스카우트가 발굴하는 인재는 가능성이 있는 ‘원석’이다. 그 원석을 갈고 닦고 가공해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코칭스태프가 할 일이다. 여기에 선수 본인도 자체발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구단도 선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하나가 됐을 때에만 화려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완성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선수가 성공하기까지의 기여도를 10으로 놓고 볼 때 스카우트의 역할은 3점, 코치가 4점, 구단과 선수 본인의 노력을 3점으로 평가한다. 이를 두고 수도권 팀의 한 스카우트는 “스카우트가 잘 영입해서 좋은 선수가 나왔다는 것도 웃기지만 코치만 잘해서 나온 결과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같은 포지션의 신인 선수 A와 B가 있다고 가정하자. A가 먼저 빛을 내기 시작하면 구단이나 코치가 더 열심히 지원할 것이다. 그런데 B도 A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어렴풋이 빛을 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B에게도 A와 같은 관심과 지원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을 때는 그 선수는 사장되고 말 것이다.” 스카우트가 아무리 애를 써서 가능성 있는 선수를 뽑아놔도 감독이 쓰지 않거나 팀에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 별로 소용이 없다. 선수 본인이 자기 재능만 믿고 노력을 게을리 할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아직도 일부 팀에서는 “스카우트들이 선수를 잘못 뽑았다”, “괜찮은 선수가 없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지도자가 적지 않다.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따로 없다.
스카우트에 투자하라
지난해까지 고교야구는 전국대회가 한 장소에서 연달아 개최되었기 때문에 적은 수의 스카우트만으로도 선수를 파악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전국을 8개 권역 별로 나눈 주말리그가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스카우트는 한 두 경기만 보는 게 아니라 선수를 꾸준히 관찰해야 하는 업무다. 선수의 기량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꾸준히 나타나는 진짜 ‘실력’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제는 각 팀마다 최소한 8명의 스카우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팀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발굴하는 스카우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구단도 적지 않다. 한 야구인은 “과거 어느 팀이 지금까지 파악한 것으로 충분하다면서 스카우트 팀을 없앤 적이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그 이후 해당 팀은 신인 영입에 계속해서 실패하며 팀 성적도 곤두박질 쳤다. 아마야구 선수는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나 체격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오래된 데이터는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 신인에 대한 눈과 귀가 없는 구단이 좋은 선수를 뽑는다는 것은 그냥 로또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카우트에 투자하지 않는 구단은 미래를 포기한 것과 같다.”
이렇게 볼 때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가 창단과 함께 가장 먼저 대규모의 스카우트 팀부터 꾸린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NC는 아마추어 지도자 출신을 중심으로 스카우트진을 구성한 뒤 주말리그가 열리는 전국 각지의 구장과 대학야구 경기를 빠짐없이 누볐다. 과거 쌍방울, SK 등 신생 팀들이 창단 초기 스카우트 노하우 부족으로 고전했던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 결과 올해 열린 드래프트에서 NC는 가능성 있는 투수는 물론 팀에 꼭 필요한 선수들을 두루 지명하는 성과를 거뒀다. LG 트윈스 역시 근래 들어 스카우트 팀에 대대적인 인원 보강과 투자를 하며 신인 드래프트에서 적잖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성적과는 별개로 LG의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는 까닭이다.
스카우트의 희로애락
스카우트는 그 중요성만큼이나 굉장히 높은 노동강도를 자랑한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대회가 초여름에 시작해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끝이 난다. 스카우트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관중석 가운데 앉아, 하루의 절반은 경기를 보는 것으로 보낸다. 게다가 주말리그가 시작된 올해부터는 강행군이 더욱 심해졌다. 한 스카우트는 “주말마다 경기를 보러 지방에 가려면 교통체증을 피할 수 없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거의 하루 종일 운전하며 보낼 때도 많다. 하루는 군산에 갔다가, 다음 날은 대전에 가는 식으로 계속 이동하는 것도 곤욕이다. 지정된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호텔이 아닌 모텔에서 묵어야 해서 잠자리도 불편하다. 한마디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하는 신세다. 가족 얼굴 볼 새도 별로 없다.” 스카우트는 고달프다.
하지만 힘든 대신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특히 자신이 뽑은 선수가 프로에서 좋은 활약을 했을 때 느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B팀의 스카우트 팀장은 올 시즌 초반 야구장에만 나가면 관계자들의 축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뽑은 신인 선수가 초반부터 맹활약하며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었기 때문. 한 스카우트는 “내가 뽑은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친 뒤 다음날 전화해서 ‘어제 제 플레이 보셨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 기쁨이야말로 스카우트가 열악한 여건과 힘든 일정 속에서도 쉬지 않고 경기장으로 나서게 하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