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주제 수필 / 날개
날 개
김예태
캔 아나칸이 감독한 영화 <럭키 레이디>(1965, 영국)의 첫 장면은 '새'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었다. 훨훨 나는 새.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미지의 곳까지 닿는 새
두 팔을 벌려 나는 시늉을 하던 인간은 날개를 달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바위에서 뛰어내리다가 마침내 비행기를 갖게 된다. Lucky lady는 비행기 발전의 여명기(1910년)에 세계의 비행사들이 갖은 해프닝을 벌이며 도버해협을 건너는 코미디 영화다. 경합에서 우승한 수튜어트 휘트먼과 재벌의 딸 사라마일즈와 나누는 키스신 위로 '지금은 7분만에 도버해협을 건넌다는 자막과 한께 60년 뒤의 제트기가 빠른 효과음을 내며 날아간다. 참가국의 민족성을 풍자한 여러 파일럿의 행보에 눈물이 나도록 웃었던 이 코미디는 '날개=꿈, 날개=도전'의 등식을 선명하게 보여준 잊지못할 영화였다.
새의 날개보다 인간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혹독한 추위를 피해서 또 먹이를 찾기 위해서 시베리아에서부터 10,000km이상을 떼지어 날아오는 기러기들의 날갯짓, 학익진과 같은 대열로 흐트러짐 없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경건하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다. 그들의 대열을 만나 하늘을 우러르며 서성이던 기억들조차 아름답다. 홀로 날고 있는 독수리도 그렇다. 하늘을 빙빙 돌다가 내리꽂듯이 먹이를 낚아채고 유유히 사라져가는 독수리의 날갯짓은 섬뜩하면서도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그것은 잔디밭을 뒤져 종종종 따르는 병아리들에게 애벌레를 찾아 먹이는 어미닭의 사냥과는 다르다. 퇴화된 날개를 치켜들고 남극의 얼음 위를 뒤뚱거리며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펭귄의 모습과도 사뭇 다른 긴장미를 준다.
날개는 꿈이다. 꿈은 그것을 이루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꿈이 된다. 날개는 날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새에게만 진정한 날개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날개는 미래를 꿈꾸는 힘이며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 도전이다. 인류에게 있어서는 행성에까지 관심을 가져 우주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원동력이며 추진력이다.
가을이면 나무들을 전지하는 장면을 자주 본다. 여름내 웃자라 상가의 간판을 덮는 가로수들을 문툭뭉툭 쳐내고 나면 거리는 둥치만 남은 나무들로 한 순간에 삭막해진다. 태양과 눈 맞추어 반짝거리기도 하고 태양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마음껏 하늘을 향해 오르던 나무의 꿈이 무자비히게 잘리는 순간이다. 가지와 잎들은 나무들의 팔이자 손이자 날개이자 꿈이었다. 팔들이 뚝뚝 잘려나간 뒤 둥치만 남은 플라타나스는 더 이상 파란 손을 흔들어 태양을 부를 수 없고 바람과 몸을 맞추어 춤을 출 수 없다. 팔 뻗어 구름을 잡을 수 없고 노래하는 새들을 불러 어깨를 내줄 수 없다. 그래도 나무들은 더 깊이 뿌리를 내려 다가오는 겨울과 다시 돌아올 봄을 준비하리라. 아마 그들은 이렇게 노래했으리라. "박제가 되어버린 나무를 아시오. 사랑밖에 모르는 나무를.// 날개여! 다시 돋아라 /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 번만 더 날자꾸나. /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얼마 전 한 어린이가 詩를 써서 교육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놓은 일이 있다. 소위 잔혹동시 사건이다. 일부에서는 이순영 어린이의 시를 자신의 심리상태를 가감없이 드러낸 글이므로 솔직한 자기표현을 해야 하는 문학의 속성에 부합하는 글로 볼 수 있다며 '잔혹동시'라는 뜻밖의 이름으로 갈래지어 평가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문학의 본질을 새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은 현실의 거울이다. 결국 이순영 어린이는 부모 또는 사회와의 대화ㅡ 소통. 소통 . 수용. 변화 '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침해당한 것이다. 마음껏 날 수 있는 날개를 잃어버린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욕구가 극한의 상황에 이르른, 폭발의 현장. 몸이 오싹 하도록 전율이 온다. 친구를 향해 장난감 총을 겨누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나로서는 통제하고 강요당할 때의 정서를 표현한 어린이의 글이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이미지일 뿐 결코 현실은 아니라고 문학의 현실과 작가의 현실은 다르다고 누누이 말해도 나는 날개를 잃은 아이의 섬뜩한 간장만 보인다. 상처받은 이 어린이의 감성을 어떻게 위무해주어야 할 것인가!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협약 당사국은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첨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이들의 현실은 사교육을 강요받는 심각한 스트레스로 정서적 장애를 일으켜주는 무서운 곳이다.
날개를 얻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뭇꾼과 선녀의 이야기에만 날개옷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천사의 이미지에도 날개가 있다. 아이들도 사랑과 이해와 지지를 얻으면 날개를 달고 풍선처럼 두둥실 하늘로 오를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순간 그들은 본디 지니고 있던 천사가 되어 자신들의 내일을 환하게 밝혀갈 것이다. 사랑은 아이들의 날개다. 꿈이 있어야 비상을 시도할 수 있고 날개를 얻어야 아이들은 비상에 성공할 수 있다.
나는 나비 /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추는 / 나는 아름다운 나비 ~ 볼륨을 높이고 노래를 부른다.
(2015년 지구문학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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