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은 머리의 땀을 닦으며 우리를 돌아봤다. 질의 뒤로 허름한 4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낡아 보이는 간판에는 크게 `Old Pony`라고 쓰여있었고 그 밑에는 `Bar & Motel`이라는 글씨가 조그맣게 쓰여있었다. 질은 문을 사펴보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잠겼군."
잠긴 문이라......바이오해저드 시리즈에서 빠질수 없는 것이 `열쇠 찾기`지. 어디에선가 열쇠를 찾을 수 있을 지도......
- 타앙!
갑자기 들려온 총소리에 놀라서 쳐다보니 문의 손잡이가 부서져있었고 핸드건을 꺼내든 채 씩 웃고 있는 질이 보였다. 카를로스가 투덜거렸다.
"위험하잖아! 총알이 튀기라도 했으면......"
"괜찮아, 괜찮아. 자, 다들 들어가자고."
질은 실실거리며 문을 당겨서 열었고 일행들은 우르르 들어갔다. 하지만 난 잠시 작은 충격에 휩싸여 발걸음을 쉽사리 옮기지 못했다.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에서......문을 총으로 열다니......그럼 대체 무슨 재미로......`
역시 난 바보인가?
"자, 그럼 연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양쪽에서 나한테 붙어 쳐다보고 있는 두 남자 -레온과 카를로스 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두 남자도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카를로스가 촐싹거렸다.
"있겠지? 있겠지?"
나는 대답도 하지 않은채 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없으면 안되는데......만일 `그것`들이 없다면 그에 따라 겪게될것은 무서운......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체 힘차게 손잡이를 당겼다.
"에잇!"
문이 열리자 마자 우리들의 시선은 모두 안쪽으로 쏠렸다. 레온이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있다!"
카를로스의 기쁨은 레온의 기쁨을 능가했다.
"있다! 있다! 있다! 있다고......먹을것이!! 으하하하하!"
모텔에 들어와서 긴장이 풀어지자 가장 먼저 우리를 괴롭힌 것은 배고픔이었다. 우리가 그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것에 생각에 미치자 가장 급했던 사람들 - 나와 카를로스, 그리고 레온이다.- 은 그대로 부엌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내가 막 업소용의 커다란 냉장고를 열려고 하자 갑자기 카를로스가 나를 막았다.
"잠깐!"
"왜요?"
카를로스는 나보다 겨우 한 살정도 많을 뿐이지만 웬지 말을 낮출수가 없다. 분명 얼굴은 그렇지 않지만 웬지 분위기상 존댓말을 써야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동안 험한 전쟁터에서 살아온 것이 그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일까......
카를로스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 주인.......지금 여행중이라고 했지?"
"그, 그런데요?"
"그렇다면 혹시...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게 아닐까?"
"예? 그게 무슨 소리죠?"
카를로스가 심각한 어조로 말하자 우리 둘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왜, 음식점같은 곳에서는 냉장고에 음식을 오래 놔두지 않잖아? 신선도가 떨어진다, 어쩐다해서 말이야."
"......."
"그러니까 만일 주인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안의 음식들을 전부 치우기라도 했다면......"
우리는 자신들도 모르게 마치 폭탄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눈앞의 커다란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레온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기본적인 음식은 있지 않겠어요?"
"그, 그럴까?"
그런 (쓸데없는) 긴장감속에서 냉장고는 개봉되었고 다행히도 냉장고 속에는 음식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 주인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가게를 다시 열 작정이었는지 음식재료들은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난다! 헤헤. 카를로스도 신나서 음식재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전부 양식재료라 잘 모르는것도 많았지만 모두 맛있어보였다. 우리가 주방에서 그렇게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을 때 홀에서 쿵쾅소리가 들렸다. 누가 2층에서 급하게 내려오는 것 같았다. 이어서 쉐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클레어 언니! 빨리 와봐요! 뜨거운 물이 나와!"
쉐리와 레베카는 들어오자마자 카운터에서 방열쇠를 찾아들더니 방들이 있는 2층으로 뛰어올라갔었다. 알고보니 샤워를 하고 싶었나보군. 클레어도 기분이 좋은 듯 대답했다.
"정말? 다행이다. 질, 같이 않갈래요?"
"아, 난 나중에."
"그럼 저희들 먼저 샤워할게요."
이어서 클레어의 들뜬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여자들쪽도 신났군. 이런 허름한 모텔 덕에 이렇게 즐거워 질 줄이야. 여태까지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던 나에게는 이 모텔이야말로 천국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레온과 카를로스가 조리대위에 멍하니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뭣들 해요?"
"나 요리 할 줄 몰라......"
느릿느릿 흘러나온 카를로스의 말은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큰일이군. 나도 요리는 못하는데. 물론 밥하는거라던가 라면을 끓이는거라던가 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재료들도 없다. 기껏해야 달걀 후라이나 할 수 있을까? 내가 뭔가 요리 할 수 있는 것을 찾느라 음식더미를 뒤적거릴 때 질이 부엌에 들어왔다.
"뭐하는거야?"
우리가 사정 얘기를 하자 질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남자들 셋이서 요리도 못하는거야? 에그......내가 할테니까 모두 나가!"
우리는 주방에서 쫓겨났다. 그래도 질이 요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주방을 나서던 나에게 이채롭다는 눈빛으로 질을 바라보고 있던 카르셀이 보였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카르셀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래?"
카르셀은 여전히 질에게 시선을 고정시킨채 말했다.
"저 여자 좀 이상한걸."
"뭐가?"
"저 여자 유부녀냐?"
엥?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닐걸......그건 왜? 관심있어?"
그러자 카르셀은 나를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저 여자......임신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말한 그대로야. 한 2~3주 정도 된것같아. 본인은 아직 모르나 본데."
"그, 그럼 말해주어야지!"
"바보같은 놈!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래?"
아......그런가? 어쨌든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그럼 어쩌지? 홀몸도 아닌데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안되잖아?"
"글쎄다. 날짜가 얼마 안됐으니까 그리 위험할건 없지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조심해야겠지. 그리고
나중에 간접적으로라도 알게 해주는게 좋을거야."
카르셀은 그렇게 말하고는 루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나저나 충격이다. 바이오해저드의 히로인인 질이 미혼모라니. 하긴 요즘 시대가 많이 변해서 미혼모라면 무조건 나쁘게 보는 나라는 우리나라정도 일 것이다. 예전에 어떤책을 읽어보니깐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고 사는 나라중에 어떤 나라는 미혼모를 일등신부감으로 친다고 한다. 한마디로 애를 잘 낳는 여자가 최고라는 이 말이다. 아, 그런데 질의 뱃속에 있는 애는 누구의 아이지? 질의 주변이라면 설정상......그렇군! 크리스밖에 없잖아. 분명 크리스와 질은 서로 연인사이라고 들은 것 같아. 음......크리스놈! ......부러운 녀석! 질이랑 그랬겠다? 질한테 그런 부러운 짓을......크리스는 언제 등장않하려나? 레베카도 나왔는데 크리스라고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 놈! 나오기만 해봐라!
"뭐하냐?"
내가 쓰잘데기 없이 분노하며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자 카를로스가 나를 불렀다. 나는 퍼뜩 정신차리며 둘러댔다.
"아, 아니에요. 메이델 이 놈은 어디갔나.....?"
나는 괜히 카르셀 핑계를 대며 모텔에서 황급히 뛰쳐나갔다. 휴, 마치 내 마음속을 들킬뻔한 느낌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나는 저쪽 언덕 끝에서 카르셀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메이델! 뭐하냐?"
나도 모르게 녀석의 가명이 튀어나왔다. 에이, 뭐 어떠냐? 그런데 카르셀은 대답하지 않는다. 참! 녀석은 귀가 잘 않들리지? 나는 카르셀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뒤에서 보니 카르셀은 뭔가 병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주사기 앰플병같이 작은 병이었는데 안에는 붉은 액체가 들어있었다. 카르셀은 심각한 표정을 그 병을 들여다보더니 그대로 붉은 액체를 입에다 쭉 들이키기 시작했다. 저게 뭔데 먹는거지? 붉은색의 액체......혹시 사람의 피인가?
- 빠직!
갑자기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놀라 보니 그 소리는 빈 병이 카르셀의 손아귀에서 부숴지는 소리였다. 이어서 카르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크윽!"
"메, 메이델?"
카르셀은 온몸에 땀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눈동자의 검은색은 이미 없어지고 흰자위만 남아있었다.
"크어어어!"
카르셀은 소리를 지르며 못참겠다는 듯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몸에서 붉은 기류가 폭발적으로 쏟아져나왔다.
- 슈아아아앗
"크으으으으으!"
얼핏 느끼기에도 굉장한 기운이었다. 이제 카르셀은 완벽하게 회복된것인가? 붉은 기륜는 계속 뿜어져 나오다가 갑자기 뭔가에 걸린 듯 주춤하더니 다시 카르셀의 몸으로 빨려들어가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에 다시 검은색이 돌아왔다. 카르셀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땀을 닦았다.
"휴, 힘들구만. 그래서 이것만은 웬만해선 마시지 않을려고 그랬는데. 그래도 효과는 대단하군."
"메이델?"
카르셀은 내가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라며 돌아보았다.
"아, 너 왔었냐?"
"방금 마신게 뭐지?"
카르셀은 내 질문에 머뭇거리며 되물었다.
"......봤냐?"
"그래, 봤어. 대체 뭘 마신거야? 사람의 피?"
카르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확실히 사람의 피이기는 하지만......"
"방금 마신 피로 체력을 회복시킨거야?"
"그래. 원래의 몸일 때의 힘까지는 회복이 안돼지만 지금의 작은몸의 힘까지는 회복됐어."
"그런데 그렇게 작은 양의 피로 이렇게 빨리 회복이 되는거야?"
"보통 인간의...... 피가 아니니까.
"......뭐?"
카르셀은 갑자기 씨익 웃었다. 나는 그의 미소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표정은 여태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미소였다. 그 작은 얼굴에 너무 많은 감정이 섞여있었다. 슬픔, 분노, 안타까움, 외로움, 고독, 고통...... 어떻게 저 많은 감정을 미소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거지? 갑자기 카르셀은 얼굴에서 미소를 싹 지우고 나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눈을 감아라."
나는 나도 모르게 그가 시키는데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갑자기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의식이 점점 어디론가 빠져들 때 카르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이 피의 정체......알려주지."
성전으로 깡마른 장년의 남자가 뛰어들었다. 남자는 급한 걸음으로 공회 의원들과 제사장들이 있는 방으로 찾아 들어가서 말했다.
"만일 내가 당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언제 어디에서 잡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면, 내게 얼마나 주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남자의 물음에 당황해하던 의원들과 제사장들은 비로소 남자의 정체를 알아보았고 이어서 얼굴이 환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서 제거해야할 인물의 제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무척 기뻐했다. 누군가가 돈가방을 꺼내어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은화를 건내주었다.
"여기 있다, 유다야. 은 삼십을 지금 가져가도 좋다. 네 선생이 어디에 있는지 가능한 한 빨리 알려다오"
남자는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은화를 챙겨서 성전을 나섰다. 심장이 터질 듯한 격동을 간신히 누르며 걷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예수의 12제자중의 하나, 가룟 유다였다.
슬픈 처형이 있었던 날로부터 이틀 후,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던 골고다 언덕에서 유다는 쓰러져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유다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미 팔과 다리뼈가 박살나있었고 결정적으로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를 찌르고 있었다. 그 외에도 작고 큰 상처들이 셀수도 없이 유다의 몸을 뒤 덮고있었다.
"여기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의 스승이 최후를 맞이한 이곳에서 너의 죽음을 홀로 외롭 게 맛보아라. 그것이 너의 죄의 심판이다."
자신에게 두 시간동안 몰매를 가한 5명의 거한들 중의 한 명이 골고다 언덕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유다는 갑자기 5명의 남자들에게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왔었고 그들은 스승을 팔아넘긴 죄라며 자신을 이꼴로 만들었다. 누구였을까. 자신을 제외한 11명의 제자들을 따르는 자들은 아닐 것이다. 자신과는 달리 스승의 진정한 제자들인 그들이 이런 짓을 용납할리 없다. 아마 어디서 진상을 들은 불량배들이었겠지.
"크크크......"
유다는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점점 기력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대신 그의 볼에 피섞인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죽고 싶지않아......`
비록 죄를 지은 그라도 생존의 갈망을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그의 생명은 앞으로 몇 분, 아니 몇 초나 남았을까. 모든 것을 체념하고 흐릿해져 가던 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한 없이 붉은 것. 그의 스승도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던 그것. 유다는 이미 금이 간 목뼈에 통증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피묻은 십자가가 자신을 내려다보듯 서있었다. 이틀 전 그의 스승이 매달려 있다가 숨을 거둔 바로 그 십자가였다. 유다는 다시 시선을 옮겨 십자가 밑에 고여있는 붉은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라면......그것이 정말이라면......`
유다는 마지막 힘을 내어 십자가 밑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팔과 다리는 다시는 사용할 수 없을 듯이 부셔져있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이것이 그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다시 한번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마침내 유다는 붉은 웅덩이 다달았다. 그는 떨리는 얼굴을 천천히 붉은 웅덩이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입술은 붉은 웅덩이 닿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최초의 벰파이어가 탄생했고 그의 최초의 흡혈이 이루어졌다.
나는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 마치 악몽을 꾼 듯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눈을 뜬 나에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씁쓸히 웃고 있는 카르셀의 얼굴이 보였다.
"그 후부터 였다. 내가 흡혈의 저주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피를 마시고 살아났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아무리 예수의 것일지라도 어떻게 피만 마시고......그리고 이틀이나 지난 피가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게......"
"예수의 피다. 그렇게 간단히 썩어버리지는 않아. 아마 평생을 가도 그대로일거다. 그리고......"
카르셀은 목이 메이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잠시 후 다시 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얘기가 있다. 예수가 아기이던 시절 두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었다. 두 아
내들 중 한 명은 선했고 한명은 사악했는데 각각 아들이 하나씩 있었지. 착한 여자의 이름은 마리아였고 아 들의 이름은 칼렙이었는데 두 아내의 아들이 모두 위독한 병에 걸렸다. 그러자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에게
양탄자를 선물하며 예수의 기저귀를 한 폭 얻어내었지. 칼렙은 그 기저귀로 옷을 만들어 입고는 병이 나았지
만 사악한 여자의 아들은 죽고 말았어. 이를 시기한 사악한 여자는 칼렙을 죽이려 했지만 칼렙은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예수의 힘이지. 하물며 기저귀 한 폭도 이런 위력을 내는데 나는 그의 피를
마신거야......"
"그럼 좀 전에 마신게 예수의 피야?
"방금 그건 피를 한 방울만 물에 탄 것이다. 그 정도로도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지. 병은 못고치지만 죽기직 전까지 상처를 입거나 체력이 소진되어도 이것만 있으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어. 나는 그때 고여있던 피를 모두 퍼왔다. 그곳에 피묻은 흙까지 모두 챙겼지. 무엇보다도 다른 짐승들이 피를 마시고 흡혈귀가 되면 큰일
이거든."
"와! 그럼 그건 정말 엄청난 체력회복제잖아!"
"그렇지. 하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어."
"단점?"
"그래. 나는 처음에 이 피를 마시고 피에 대한 엄청난 갈증을 느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강렬한 갈증이지.
그래서 급한김에 예수의 피를 다시 마셨는데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더 해가는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평
범한 인간의 피를 마셨더니 갈증이 해소되더군. 이 피는 마시면 마실수록 점점 흡혈귀가 되는 피야. 이유는
모르겠지만......어쨌든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면 먹지 않는게 좋아. 상처가 난데는 바르기만 해도 났으니까..... 나도 지금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먹지 않겠는데......"
흡혈귀가 된다는 것만 빼면 이건 정말 엄청난 거군. 어쨌든 정말 놀라운 것을 봤다. 예전부터 카르셀의 정체는 알고 있었지만 벰파이어가 되는 과정은 오늘 처음본 것이다. 예수의 피를 마시고 벰파이어가 되다니......그건 예수의 저주인걸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카르셀이 옆에서 두 팔을 펼치고 주문을 외우는게 보였다. 그러자 모텔은 붉은 색의 투명한 막에 휩싸였다. 주문을 마친 카르셀이 말했다.
"이제 웬만한 괴물들은 이곳에 얼씬도 못할거다. 무엇보다 벰파이어의 왕이 여기 있는것이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저 새가 알려줄거야."
위를 쳐다보니 옥상의 난간에 루비가 앉아 있는게 보였다. 카르셀은 몸을 돌려 모텔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의 뒷 모습에 충만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예수의 피의 위력이군. 그러나 카르셀의 뒷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슬픔......나는 그 슬픔에 도취되어 나도 모르게 카르셀을 불렀다.
"메이델."
그러자 카르셀은 발걸음을 멈췄다.
"예수 그리스도......그는 과연 누구지?"
카르셀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정말로 `그 분`의 아들인가?"
카르셀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아버지`는 단순히 인간들이 말하는 부모 자식과의 `아버지`와는 다를거다. 왜,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그런 대단한 힘들을 갖게 되었을까?"
카르셀은 잠시 대답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아마도 `하느님, 아버지`라는 말을 가장 잘 이해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카르셀은 이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모텔에 들어가버렸다.
"와우!"
내가 생각에 잠겨서 모텔에 들어섰을 때 카를로스의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홀 중앙의 테이블 위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가득 있었다. 질이 들어오는 날 보고 말했다.
"KuA. 어서 와서 식사해."
"우와! 이거 전부 질이 한거에요?"
"응."
"정말 대단한데요?"
"별거 없어 그냥 스테이크 좀 굽고 소스는 주방에 있는걸 썼는데 뭘."
나는 허둥대며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한 입 먹어보았다. 맛있다! 나는 정신없이 음식을 먹다가 카르셀이 보이지 않다는걸 깨달았다. 2층에라도 올라간건가? 에이, 무슨 상관이냐? 배고픈데. 벰파이어는 벰파이어고 먹는건 먹는거지.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우갸갸~ 피곤하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올랐다. 배도 불렀겠다, 긴장까지 풀리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2층으로 올라오니 방하나가 문이 열려있는게 보였다. 들어서보니 방에는 아무도 없는데 구석에 문에서 여자들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저기가 욕실인가본데 목욕을 참 오래도 하네. 난 괜히 훔쳐본다고 오해받라도까봐 얼른 나와서 옆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목욕이나 할까?"
나는 욕실로 들어가서 따뜻한 물을 받고는 옷을 받고 욕조에 들어갔다. 흠. 따뜻한 물에 들어오니 너무 졸린걸. 나는 졸다가 깨다가 졸다가 물에 빠졌다가 하면서 간신히 목욕을 마쳤다. 마침 옷을 입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소란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 카를로스였다.
"KuA! 술 먹자!"
"술이라고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저기 피곤하지 않으세요? 거기다가 이런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찮아, 괜찮아."
카를로스는 아무 상관없다는 투로 방 중앙의 테이블위에 맥주랑 안주등을 차렸다. 카를로스 뒤를 따라 질과 레온이 들어왔다. 질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얘네들은 아직도 욕실에 있는거야?"
"그런가봐요. 무슨 목욕을 그렇게 오래들 하는지......"
내가 투덜거리자 질은 싱긋 웃었다.
"여자들이야 다들 그렇지 뭐. 아, 나도 애들이랑 목욕이나 할까?"
"그러세요. 저도 대충했는데 좋던데요. 피로도 웬만큼 풀리고."
"그래, 하자. 내 것도 남겨놔. 금방 올테니까."
그때 복도에서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쉐리! 어서 내놔!"
"힝~ 나 갖고 싶단 말이야! 줘요~ "
"안됀다니까! 그건 내 행운의 부적이란 말이야!"
무슨 일이지? 카를로스가 클클거리며 말했다.
"저 둘은 아직도 기운이 넘치나 본데?"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복도로 나갔다. 그러자 실랑이를 버리고 있는 쉐리와 클레어가 보였다. 그런데......
"클레어! 옷은 입고 나와야지!"
내 말에 방안쪽에서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오, 클레어! 벗은 거야? 그럼 나도.......으악!"
- 꽈당!
클레어는 다시 황급히 옆방으로 들어갔고 카를로스는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아이구!
"도대체가 이해가 안돼.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 칠칠맞게 굴어?"
내가 흘겨보며 말하자 클레어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뭐 어떻다고 그래? 목욕타월은 몸에 두르고 있었구만."
"뭐야?"
내가 다시 한 번 눈을 부라리자 클레어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맥주잔을 들었다. 한 쪽에서는 카를로스가 빨개진 이마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위험하잖아, 질. 다리를 걸다니."
질은 아무 대답없이 카를로스의 멍든 이마를 손바닥으로 `딱`소리 나게 후려쳤고 카를로스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목욕하고 올테니까. 클레어, 카를로스가 찝쩍대면 주저말고 총으로 쏴버려. 알았지?"
옆에 있던 쉐리는 그 모습을 보고 킬킬거리며 웃었다. 쉐리는 클레어의 분홍색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빼앗았다.) 그렇게 입는것도 귀여워 보여 어울렸다. 클레어는 약간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쉐리에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껴서 잘 입어야해. 내 소중한 옷이니까."
클레어는 조끼를 빼앗기고 위에는 검은 티만 입고 있었는데 내 취향에는 그렇게 입는 것이 더 어울려 보였다. 그때 옆에서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들렸다.
"KuA....."
"엥? 뭐야? 이 녀석 벌써 취한거야?"
카를로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레온은 테이블에다가 자신의 턱을 얹어놓고는 빨개진 얼굴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KuA......"
"응?"
"이뻤지......?"
"뭐? 누가 이뻐?"
"에이다......"
"에, 에이다라고?"
뭐야? 레온은 벌써 에이다랑 만났었나보다. 그는 여전히 풀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신비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였는데......"
"오, 에이다가 누구지? 애인이냐?"
카를로스가 흥미를 가지고 물었지만 레온은 계속 중얼거리기만했다.
"살아있을까......? 그녀는......"
갑자기 레온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우리가 놀래서 쳐다보는것도 개의치않고는 중얼거리며 느릿느릿 걸어갔다.
"분명......경찰서는 폭발했지만......그녀는......살아있을거야......."
그리고는 그대로 침대까지 걸어가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우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봤다. 카를로스가 맥주를 따르며 말했다.
"저 녀석 술 정말 약하네. 어째 생긴게 범생이 같다 했더니......"
그러고 보니 클레어는 레온보다도 어린 나이인데도 거침없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녀는 맥주잔을 내려 놓으며 물었다.
"루비는 어디 있어?"
"아, 밖에서 지금 보초서고 있어."
카를로스가 끼어들었다.
"루비? 루비가 누구야?"
"예? 아, 우리랑 같이 있던 붉은 새요."
"흠. 그 비싸게 생긴 새말인가? 정말 호화롭게 생겼더군. 종류가 뭐지?"
"글쎄요. 저도 그건 잘....."
나는 귀찮게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얼버무렸다. 이것이 나의 술버릇인데 나는 술을 먹으면 뭐든지 귀찮아진다. 앉아서 마냥 술만 마시는 것이다. 그러나 클레어는 그 반대인가보다.
"KuA야......"
"응?"
"얘기 해봐."
"뭘?"
"뭐든지. 뭐든 듣고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서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흐릿하게 풀렸지만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취하면 다른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타입임에 틀림없다.
"무슨 얘기를 하란 말야?"
"히잉~ 뭐든지. 얘기 해줘. 응?"
윽. 여자애가 이렇게 조르면 약해지는데. 거기다가 클레어는 볼이 발개진채로 애교까지 떨고 있다. 이런......기대를 저버리기 힘들군. 카를로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봐, KuA. 뭐라도 말해줘. 정 할 얘기가 없으면 사랑한다라는 말이라도 하라고. 구경해줄테니."
"무슨 소리를! 천만에요! 내가 왜 이런 덜렁거리는 여자한테!"
내가 기가막혀서 소리지르자 클레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는 갑자기 변해버린 그녀의 표정에 뜨끔해서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다.
"아, 저기 그러니까......그게......."
내가 더듬거리자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크, 클레어?"
"가서 잘거야."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더니 나가서면서 문을 쾅소리 나게 닫아버렸다. 그러자 쉐리도 눈치를 슬금슬금보더니 클레어를 따라 나갔다. 나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고 카를로스는 여전히 키득거렸다.
"전부 카를로스 당신때문이에요."
"큭큭......그러길래 왜 그렇게까지 말한거야?"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클레어가 왜 저러죠? 무슨일 있었나보죠?"
"아, 아가씨도 이리 와서 한 잔 들지 그래."
"와! 그럴까요?"
레베카는 일행중에 두 번째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냉큼 다가와서 의자에 앉아 전혀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클레어한테 무슨 일있었어요?"
"글쎄....... 청춘의 불꽃의 영향이랄까?"
카를로스는 재밌다는듯이 말했고 나는 다시 한번 한 숨을 쉬었다.
"그게 무슨...... 아! 알았다!"
레베카의 반응이 예상외였기 때문에 나와 카를로스는 눈을 크게 떴다.
"불꽃이라면......그거죠?"
"응?"
"그러니까.......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아는 사람중의 하나가 친구한테 담뱃불을 붙여주려다가 실수로 눈썹을 태울 뻔 했었거든요. 이번일도 그런 것 아닌가요?"
우리는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정말 이 여자는 이해가 않가는 여자군. 어떻게 카를로스의 말에서 저런 추리를 해내는거지? 레베카는 우리들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아닌가요?"
"......클레어는 담배 않피우는데요."
"어머, 말씀 놓으세요. 저 18살밖에 않됐어요."
"........알았어."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서는 다시 맥주잔을 들었다. 더 이상 저 여자랑 얘기를 한다면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될거야.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카를로스를 불렀다.
"카를로스."
"응?"
"우리들 정말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도 되는거에요?
"그럼 어떡할래? 지금이라도 마을로 내려가서 모든 좀비들을 싹쓸이 할래?"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어. 어찌됐든 오늘 하루는 푹쉬자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빨리 여기서 탈출할 길을 찾아야되지 않을까요?"
"말했잖아. 나갈길은 없다고. 그리고 조금 있으면 정부에서 지원이 올거야."
"정말 올까요?"
"당연하지. 도시 하나가 이 모양이 되었는데 설마 지들이 않오고 배기겠어?"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 생각에는 정부에서 지원같은게 올 것 같지는 않은데요."
"응? 왜?"
"간단하죠. 지원이 온다면 벌써 오고도 남았을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딱잘라서 말했고 카를로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목이 껄끄러운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나도 알고 있어......"
"예?"
"하지만 말이야......"
그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카를로스는 여태까지 장난스로운 모습만 보였는데 이렇게 심각한 눈빛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일행이라면 여기서 탈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하, 하지만......"
"약한 소리 하지마. 나는 이런 것보다 훨씬 더 살벌한데서도 살아남았어. 훗. 좀비라고? 그깟 어설픈 동작으
로 달려드는 시체들. 그런건 전쟁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KuA. 너 총을 든 군인들을 상대해 봤어?"
"아니요......"
"물론 게중에는 애송이들도 많지. 하지만 아무리 애송이라도 총을 들려주면 위험하다. 하물며 제대로 된 군인
들이 총을 들면 정말 무섭지. 확실히 그런 전쟁터에서는 살아남는 쪽이 더 비정상이야. 재수 없으면 아군한테
총맞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나는 그런곳에서 혼자서도 살아남은 적이 있어."
그는 상체를 조금 뒤로 젖히며 자세를 편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표정도 한결 편해진 듯 하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 일행들 능력은 무시할게 못돼. 질만 해도 정말 엄청난 몸놀림을 보여주더군. 권총하나로
좀비 다섯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우는걸 네가 봤어야 하는데."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럼 모두들 왜 그리 순식간에 좀비들한테 당해버린걸까요?"
"흠.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 나는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공포심이라고봐.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평소에는 그냥 누워있는 시체도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깐데 시체가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정신 차
릴 수 있겠어? 도망이나 갈 수 있으면 다행이지. 나도 많이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의 반사적으로 대처 할 수 있었고. 확실히 걸어다니는 시체를 보고 총을 들이댈 수 있는 쪽이 비정상인거야. 그런데 우리 일행들
은 거의가 다 그런 비정상적인 녀석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들 몸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아. 그 조그마한
여자애는 그렇다 치고......아! 그러고 보니......"
카를로스는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 꼬마는 뭐지? 검은 장발의 남자애. 걔도 몸놀림이 보통이 아니던데?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잠시 얘기를 끊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군. 용병들한테도 그런 눈빛은 흔치 않아. 마치 수 많은 전쟁을 겪어 온 노장들이나 가
지고 있는 눈빛이야."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내뱉듯이 말했다.
"걔 원래 집안 환경이 그래요."
카를로스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집안 얘기라고 말해서 그런지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냥 다시 맥주를 컵에 따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병에서 맥주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어? 이거 왜 이래? 술이 전부 어디 갔지?"
"파아~"
카를로스의 물음이 끝남과 동시에 레베카가 숨을 내뱉으며 맥주잔을 내려 놓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주변에 맥주병이 여러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뭐야! 그 사이에 이 아가씨 혼자 다 마신거야?"
"헤헤헤."
레베카는 머리를 긁적이며 헤죽 거렸다. 맙소사. 그녀가 비운 맥주병은 10여병이나 되어 보였다. 카를로스는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좋아! 나도 질 수는 없지. 한 번 해보자고!"
그러면서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보나마나 주방으로 가는 것이겠지. 그러자 레베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술 가지러 가야지."
"얼마나 더 가져 오려고 그래?"
"손에 들 수 있는 만큼요."
".......나는 이제 빠지겠어."
어쨌든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먹었으니 바람이라도 쏘일 생각이었다. 레베카와 같이 계단을 내려가는데 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 아, 그러고 보니 아래층 홀에 피아노가 있었던 것 같다. 누가 치는거지?
홀에 들어서자 홀 중앙의 탁자에 앉아 있는 쉐리와 카를로스, 그리고 클레어가 보였다. 그리고 한 쪽 벽쪽에는 질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와, 멋진 연주인데?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래식 보다는 그냥 일반 팝송같아 보였다. 홀에 앉아있던 세 사람은 질의 음악에 홀린듯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와 레베카는 혹시 피아노 연주를 방해할까봐 조용한 걸음으로 세 사람 옆에 앉았다. 나는 카를로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정말 잘 치는데요?"
카를로스가 그제서야 내가 온걸 알았는지 퍼뜩 정신 차리며 나를 쳐다봤다. 클레어가 갑작스럽게 내 목소리가 들리자 움찔했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이런, 단단히 삐졌나보군. 카를로스는 다시 질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게. 나는 피아노는 잘 모르지만 정말 듣기 좋군."
"피아노를 몰라요?"
"응. 나는 레하고 시밖에 칠 줄 몰라."
그러자 쉐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쉐리는 파하고 솔하고 도를 칠 줄 알아요! 클레어 언니는요?"
"나는 도하고 라밖에는......"
"우하하! 그럼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도,레, 미,파,솔,라,시,도를 전부 칠 수 있는것이군! 대단한걸? 우하하!"
카를로스가 유쾌한 듯 웃자 쉐리도 따라 웃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우리가 웃고 떠드는 사이에 질은 피아노 연주를 마쳤다. 질은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술 마신다더니?"
"술이 떨어져서 가지러 나왔다가 질이 피아노 치는 소리에 그만 여기에 주저 앉아버렸지."
"후훗. 그렇게 듣기 좋았어?"
"제법이던데. 참! 2층까지 올라갈 것도 없이 그냥 여기서 마실까?"
"그러지, 뭐."
"어이! 너도 와서 마시지 그래?"
응? 누구한테 말하는거야? 카를로스가 말하는 쪽을 보니 홀 구석 어두운 곳에 카르셀이 보였다. 언제부터 있었던거지? 모두들 카르셀이 저기 있는 것을 몰랐었는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카를로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까내려 올 때부터 거기에 앉아 있더군. 기척을 숨기는게 능숙하던데? 질의 피아노를 들으려고 거기에 앉
아있는 것인가?"
"......그냥 여기서 쉬고 있었던 것 뿐이야."
카르셀이 메마른 표정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자 카를로스가 물었다.
"술 마실거지?"
카르셀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쉐리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무래도 자기 또래처럼 보이는 아이가 술을 마신다는게 이상한가보다. 그러나 카르셀이 벰파이어임을 상기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질이 물었다.
"어, 너 술 마실 수 있어?"
카르셀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카를로스가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뭐 어때? 나무랄 사람도 없는데."
"안주는 제가 준비할게요."
클레어가 일어나자 질이 물었다.
"클레어도 더 마실거야?"
"그만 자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더 마셔야 겠어요."
클레어는 그렇게 대답하며 나한테는 시선하나 않주고 주방에 들어가 버렸다. 나는 한 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만 잘게요."
"더 않마셔?"
"벌써 많이 마셨어요."
나는 계단을 오르며 일행들한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모두들 적당히 마시고 자요."
"잘자라."
"내일 봐요."
방에 들어가니 레온이 코도 않골고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옆의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재미삼아서 게임의 세계에 들어온게 난데없이 전 우주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클레어랑은 러브러브한 상황까지 갔다가 그만 삐지게 만들어버리고, 질은 임신해버렸으며 카르셀이 벰파이어가 되는 장면까지 보아버렸다.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자연히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걱정 되었다. 앞으로 중요한 일은 잔뜩 남아있는데 여태까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게임을 충실히 마치라고 해서 그러려고 했더니 경찰서는 폭발해서 날아가버리고 바이오해저드2편의 보스인 G몬스터는 구경도 못했다. 그러면 질도 만났으니 3편의 스토리대로 해야되는건가? 그러나 질과 카를로스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쩐다......`
술이 깨려는것인지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어쩐다, 어쩐다........`
나는 그렇게 머릿속으로 어쩐다, 어쩐다만 반복하다가 그만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1부, 첫 쨋날. 끝>
P.S : 이런, 이런.......떠나기 전까지는 완결을 지으려 했지만 떠나기까지는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어요. 나름대로 큰 야망(?)을 갖고 이 글을 시작했는데......생각지도 못하게 군대라는 장벽에 부딪혀 버리는 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번 편까지 글을 1부로 나누어 글을 중지 시켰습니다. 제 글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할 따름이군요. 다음편이 언제 나올지는......저도 잘 모르겠군요. 군에서 훈련을 받다가 난데 없이 휴가를 나와서 쓰게 될려나 아니면 2년2개월 후에 제대하고 쓰게 될려나.......어쨌든 여기 레지던트 이블 카페가 살아있는한 저는 돌아올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처음 써보는 글을 미완성으로 남겨 두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참고로 이번 편에 대해서 말씀 드릴 것은, 음.......우선 가룟 유다가 벰파이어가 되었다는 얘기는 예전에 모 카페에서 올라온 글에 아이디어를 얻어 제가 나름대로 꾸민겁니다. 그리고 이번 편의 내용이 바이오해저드랑은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 하 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편이 마지막이다 생각하니까 웬지 등장인물들의 여유있어 보이는 모습을 써보고 싶었거든요. 그럼 이만 횡설수설은 그만 할께요. 그럼 모두들, 군대 갔다와서 뵙겠습니다!! 캬! 군대의 낭만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