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을 가다
1. 이번 주 답사 장소는 특별한 곳이 생각나지 않아 나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많은 추억을 담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청평’이다. 대학시절부터 S와의 추억까지 수많은 일상의 기억들이 다양하게 누적되어 있는 장소이다. 청평유원지는 화석과 같은 거리이다. 40년 전에 있었던 거리의 풍경이 외형적으로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시의 활력과 매혹은 사라졌지만 폐허와 같은 모습 속에서도 펜션의 영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유원지의 변화는 도시의 폐허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활기차고 붐비던 거리와 사람들이 줄어들고 몇 군데 음식점만 남다가 그것이 사라지고 카페로 바뀌었지만 카페 또한 사라진 것이다. 몇 년 전 상점 주인에게 들었던 개발계획도 별다른 이행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낡은 것의 잔존은 묘한 낭만적 회상감에 빠지게 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세상에 무너져가는 모습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긍지에 대한 혼합된 감정이다.
2. 청평역 주변을 걷다가 저녁 때 청평시장에 있는 순두부 집으로 향했다. 청평에 올 때마다 방문하는 식당이다. 두부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게 다양한 두부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오늘은 두부를 동그랑땡처럼 요리한 것과 막걸리를 마셨다. 오늘 짧은 답사 동안 ‘청평’의 매력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와 비례해서인지 음식도 맛이 없었다. 짜고 김치도 입에 맞지 않는다. 우연하게 이곳을 찾아도 가고 싶은 매력을 상실한 것이다.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싶은 장소가 소멸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나의 답사의 근본 목적은 가슴에 남는 장소를 발굴하는 과정이다. 많은 곳을 방문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점점 매력적인 장소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시대의 변화와 상충하는 것들에 대한 불만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3.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북한강변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카리브 모델’로 들어갔다. 바로 옆에 북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깨끗하게 관리되는 강이어서 물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와 함께 저물어 가는 강가를 바라본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의 낭만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낡은 모델이어서인지 찾는 사람도 없다. 조용하고 고요하다. 그 깊은 적막 속에서 멍하니 흐르는 강을 바라본다.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그저 강처럼 물처럼 흘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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