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幸福)과 행복(行福)의 차이
행복(幸福)이라는 말은 화복(禍福)과 동의어로 금기(禁忌)용어다.
그래서 세배(歲拜) 덕담(德談)으로 행복(幸福) 많이 받으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복 많이 받아라. 지어라 하거나
운수대길(運數大吉), 만사형통(萬事亨通)하라 한다.
또 “어른께는 이렇게 강건(康健)하시니 홍복(弘福)입니다.
새해에도 만수무강(萬壽無疆) 하세요.” 하는 것이다.
'행복(幸福)'이라는 말은 19세기에 일본의 학자들이
서구의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신조어로서,
그 후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이다.
영어의 'happiness' 혹은 불어의 'bonheur' 같은 단어는
어원상 '(신이 허락한) 좋은 시간'으로
기독교적인 신의 개념이 배후에 놓여 있다.
동아시아의 사고에는 그런 것이 없었으므로
일본의 번역자들은 물질적 풍요와 관련이 있는
두 글자인 '행(다행 행:幸)'과 '복(복복福)'을 붙여서 단어를 만든 것이다.
원래의 서구 개념이나 일본의 신조어나
우리의 고유문화와는 거리가 있다. (서울대 주경철 교수)
<관무량수경>에서
행복(行福)은 대승(大乘)의 행법을 지키며 도심(道心)을 일으켜
인과의 도리를 믿고, 대승 경전을 읽고 이해하여
남에게 권함으로써 얻는 복을 이른다.
보살의 도를 행하는 복으로 행선청복(行善淸福)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끊임없이 선업을 쌓아 무량대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량대복을 불교에서는 청복(淸福)이라고 한다.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아니라 생행복사(生行福死)가 되어야 한다.
생행복사(生行福死)는
탄생(誕生), 행선(行善), 청복(淸福), 시사(時死)을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귀하고 귀한 일로 탄생(誕生)이다.
행선(行善)은 이 세상에 사람 몸 받아 태어나서 할 일은
너와 내가 하나이니 더불어 모두가 잘 사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한없는 선업을 지으면
내가 하는 일마다 복이 넘친다.
선업이 쌓이면 청복(淸福) 즉 무량대복을 가져온다.
무량대복은 평소에는 없다가
그때그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생기는 복이다.
무량대복으로 아름답고 멋지게 살다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생을 마치고 돌아가는 데
이를 시사(時死) 라고 한다.
우리는 태어어서 죽을 때까지 복(福)으로 시작해서
복(福)을 끝을 마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계산하지 말고
그저 행선하여 복을 쌓아야 한다.
금강경에서 “수일체선법(修一切善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卽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온갖 모든 바른 법(善法)을 닦으면
즉시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했다.
행복(行福)은 우연히 어쩌다 얻는 행복(幸福)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을 행(行)하고 악을 짓지 않으며
자신의 마음을 맑히는 건강한 생활로 얻는 복이다.
행복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참다운 행복을 얻는다.
수천억 복권에 당첨 되는 것은 행복(幸福)이지 행복(行福)은 아니다.
행복(行福)은 감사하는 생활로 늘 선업을 쌓을 때 찾아오는 복이다.
인과의 도리가 적용되지 않는 어쩌다 우연히 받는
잠시 잠깐의 복이 아니라 보살도를 행하며
지금 이 순간 선을 행하는 복이 행복(行福)이다.
행복(幸福)은 유루복(有漏福: 새는 복)이고
행복(行福)은 무루복((無漏福: 새지 않는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