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시인, 대학교수
▲1965년 인천 출생
▲1986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맨발로 걷기' 당선 등단
▲2003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1991)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1995)
'젖은 눈'(1998)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2001)
1993년 김수영문학상, 1999년 현대문학상 수상
산문집 '물의 정거장' 등
▲김수영문학상(1992) 현대문학상(1998) 등 수상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던 섬소년 장석남.
첼리스트를 꿈꿨으며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기도 했던 장석남 시인은
지금도 술이 거나해지면 “나는 딴따라를 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곤 한다.
비오는 날 밤,
장석남 시인에 대한 이문재 시인의 소묘는 한 편의 시다.
‘수만 개의 양동이로 물을 퍼부어대는 것 같은 폭우가 내렸다.
장석남 시인은 그 비를 바라보며
“비의 허리 좀 봐”라며 입으로 시를 썼지만,
“사실은 버틸 때까지 버텨보는 것”이라는, 시가 아닌 산문이 곧 이어졌다.
[ 시(詩)가 있는 아침 ] - "여름숲"
[중앙일보 박덕규] - 장석남(1965~)
여름숲 부분저만치 여름숲은 무모한 키로서 반성도 없이 섰다
반성이라고는 없는 녹음(綠陰)뿐이다
저만치 여름숲은 城보다도 높이, 살림보다도 높이 섰다
비바람이 휘몰아쳐오는 날이면 아무 대책 없이 짓눌리어 도망치다가,
휘갈기는 몽둥이에 등뼈를 두들겨 맞듯이 휘어졌다가 겨우, 겨우 펴고 일어난다
그토록 맞아도 그대로 일어나 있다
여름숲의 녹음을 보다가, 이제 제발 그만 푸르거라, 하고 싶어지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찌들어 살고 있기 때문인 거다.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걸 기대할 수도 없다.
비바람에 대책없이 짓눌리는 게 또한 여름숲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삶 자체일 뿐이다.
더 말할 게 없다.
이 묵묵함을,
다만 그 위에 앉은 새가 대신 노래하는 걸 보고는,
여름숲의 무모한 푸르름에 다시 또 탄성을 지르게 된다.
- 박덕규 시인.소설가 -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시인 장석남
얼마전의 일이다.
집 마당에서 현관으로 오르내리던 계단을 철거하고
그자리에 대[竹]를 몇 주 심었다.
그걸 심어 놓고 올려다보며, 내려다보며아주 좋았다.
대라는 식물이 가진
상고취자(尙古趣者)들이 말하는 무슨 상징성이라든가 하는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넣고도남는 어떤 것이 오래 전부터 좋았던 터다.
내게도 조숙(早熟)이 있었다면
아마도 대를 좋아한 것 정도를 말할 수 있을까?
계단이 있던 자리는 마땅히 그것이 있어야 할 만한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바 아니나 나는 계단을 아주 한쪽으로 밀어 붙이고
그 빈 자리를순수하게 내가 차지하고자 했다.
대를 심어 기르는 것도 차지하는 거라 치면 그렇다.
평수로 쳐 봐야 한평이 넘을까 말까 한 정도지만
내 욕망은 가끔 이런 쓸데없는 데에 곧잘매달린다.
물론 이른바 경제적 측면 등등에서는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을 어림없는짓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이전의 계단은 한쪽 담모퉁이 쪽으로 밀려났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대 몇 주는 이제 마디마디 나의 마음을 높이는 시퍼런 계단이 되었다.
내가 문학을 하는 행위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집을 구해 왔듯이 이러한 세상에 왔을 뿐이다.
적응하여 사는 것이 순리라면
순리일 것이매 대를 좋아했다손 치더라도심을 만한 자리가 없으면 그만이어야 한 것을 그러나 그렇게는 안되겠다싶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문득 멀쩡한 계단을 큰돈까지 들여 부수어 내고만 것이다.
그런데 그 대와 나무를 심는 행위에 몸이 가진 힘을 넘겨서 쏟다 보니 한동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내가 좋아한 나무를 심는 바이지만 이게 인류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위라고 보아무방하지 않은가 하는 개똥철학의 진실이 그것이다.
어떤 동화에서 얼핏보았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나무를 심는 행위의 그 무심스러운,
그러나 구체적인 의미를 문학은 따라야만 하리라.
이제 청년이 되려고 하는 사춘기의 어느날 야트막한 야산의 숲에서 걸어나온다.
갈대 숲 사이로 한 사람이나 가끔 지나는 듯 흐지부지 길이 나 있다.
봄은 아직 일러 묵은 갈대들은 철 지나 버리려고 밀쳐둔 누더기 같지만
그 위에 쏟아지는 햇빛의 온도는 어머니의 그것을 닮아서 그 온도를 따라가서는 한참을 머물렀던 터이다.
쭈그려 앉았거나 혹은 두팔을 전쟁 포로가 투항할 때 그러는 것처럼
뒷머리에 깍지 껴 받쳐 눕거나 하다가 이내 무료해져서는
다시 그 멧갓 짐승의 길 같은, 길 아닌 길을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그 길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뒷산으로 이어진,
지금도 여기 이렇게 아주흩어지지는 않고 흐지부지 머물러 있다.
아무리 다잡아도 그 공부는 아닌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리던 때였으므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다가 포기한 시간들,
그것을 일러 어떤 살(煞)이라고 해야 할 텐데 종잡을 수 없다.
그때의 간절한 소망은 어디 밥 먹여 주고 아무 잔소리하지 않고 책이나읽게 놔 두는 장소에의 간절한 소망 정도라고 할까? 도대체 그런 데가 이세상에 어디 있겠는가만 그래도 그 비스름한 데라도 가고 싶었던 것이다.
산을 걸어 내려오면 거기 높게 쌓아 올린 돌 축대가 있었다.
그 아래 멈춰서서 그 축대를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고 했다.
축대 위의 시퍼런 하늘이녹아서는 두 눈에 담겼다 떨구어지곤 했던가? 그 까닭을 찾자면 수도 없이많겠고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은 정작 별 것 아니었다고 말해도 괜찮은 종류들이었겠지만 절실했다는 사실만은 거짓이 아니다.
어디 없을까? 어디 없을까? 그때 절간이란 데를 한번이라도 가보았다면그곳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어느 호젓한 창호지 방에 머리 깎고 앉아 있는 아름다운 신세가 되었을지 모른다.
꼭 절간은 아니라고 하더라도….그러한 때에 다시금 나타난 건 역시 시였다.
‘세상엔 이런 것이 있구나!’하는, 아직 경이(驚異)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부득이 ‘이러한 것이 있어서’ ‘기댈 만한 것이 이것이겠구나’ 하는 어떤 것이 슬그머니 확정지어진 것이다.
그전에도 물론 홀연 나타나지 않았던 바 아니지만 붙잡아야 할 건지는 의구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저물어 어두워진 뽕밭에서 뽕잎을 딴다.
초등학교 오학년 즈음의 소년과중년을 넘어가는 그의 어머니가 나란히 별 말도 없이 뽕잎을 따서 연신 자루에 넣는다.
어둠들도 뽕잎과 더불어 싱싱하게 뜯겨서는 자루에 넣어진다.
놀다 집에 돌아와 보니 부랴부랴 늦게 품팔고 온 어머니도 당도했다.
그해 처음으로 돈을 만들어보겠다고 얼만큼의 누에를 쳐보는 중이었다.
저녁에 당도한 집에 누에를 먹일 뽕잎이 없었다.
예상대로라면 남아 있어야 했지만 하루를 더 자란 누에는 그 전날에 비해 배는 더 먹어서 남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굶길 수는 없는 일이므로 어린 아들과 뽕밭으로 간 거였다.
그 기억이 왜 이렇게 선명한 걸까.
싯푸른 물결 같은 그 잎들 사이를 오가며 가장 크고 넓은 것들을 똑똑 손가락으로 부러뜨리던 소리까지도 싱싱하게 아직 남아 있으니.네 번의 잠을 잔 누에는 몸이 투명해지면서 먹이를 끊었다.
그리고는 두리번거리며 방황을 시작하는 거였다.
집을 지어야 할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급한 대로 소나무 가지를 잘라서 놓아두면 거기에 올라 적당한 자리를 잡고 고개를 휘휘 두르며 입에서 실을 뽑아서는 고치를 지어나갔다.
식구들이 불화한 아침나절이면 나는 햇빛도 찰랑이는 샘가에 앉아 있곤 했다.
불화를 형상화하는 소재는 다양했지만 그 주제는 모두 가난 플러스 알파였다.
가난하면 가난에 어울려야지 가난보다 똑똑해선 안 된다.
어린 내가 주체하기 어려운 그 불화의 가장자리! 가난에 보태지는 알파에는 우리의 역사를 한몫 크게 넣어야 하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걸 말하고 싶진않다.
그땐 알지도 못한 거지만 말이다.
샘가에서 샘물을 들여다보며 울음을 터뜨릴 나이가 지난 내가 하는 일은‘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고 되뇌는 일과 무력감, 딱히 어디,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적의 같은 것들을 삭히는 거였다.
어른대는 물 속의 내 불쌍한 모습도 삭혔다.
갑자기 배가 고프고 빈혈이오고 악다구니가 오고 부끄러움이 오고 살기 같은 것도 그 어린이에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막막하고도 막막한 슬픔의 체험은 누에와 다를 바 없던 그 소년에게는 모두 뽕잎들이었는지 모른다.
비로소 고치 속에 제 몸을 들여놓은 누에가 그 안에서 계속해 고개를 저어가면서 집을 두터이 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분명 멀어지는것은 아닌데도 멀어지는, 사라지는 것으로 느껴져 마음이 찹찹해졌던 기억이다.
어느새 그 모습이 어렴풋해지고 마침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안에서 누에는 제 육신이 다할 때까지 쉬지 않고 그 육신의 모든 것을 뽑아 집을 짓고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솔가지 여기 저기에 주렁주렁 매달린 새하얀 타원형의 누에고치는 이쁘기그지없었다.
얼마간의 누에고치가 수습되어 어머니는 그걸 들고 도회지로나가시고 또 얼마간의 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습될 수 없었던 늦된누에들이 있었다.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대로 늦된 대로 내버려두어 그만한 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 그 안으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곤하였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세상에 대한 적의가 문학을, 시를 만났을 때 그것은 순진하게도 그것을 통해서 무슨 말이든지 지껄일 수 있겠다는 것이었고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어떤 정신적 고통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고 앙갚음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모른다.
내게 치욕을 안긴 인물은 문학에다 실명으로 그려 넣어서 영원불멸의 치욕으로 되갚아 주겠다는오기가 내게 문학을 생의 아귀에서 꼭 붙들고 놓지 않게끔 했는지 모른다.
그러한 얼뜨기 믿음은 내부에서 쾌감을 생산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것은마술과 같은 것이어서 누구도 나를 당할 순 없으리란 오만방자를 갖게 한다.
어느 정도는 지금도 그 앙금이 남아서 호기를 낳는다.
그것도 없다면정치적 겸손이거나 거짓말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문학만을 가르친다는 대학을 찾아갈 수밖에없었고 그리고 지금까지 그 길은 이어져서 문학을 가르치는 행복으로, 또는 고통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어느 저녁 집으로 돌아온다.
무엇인가를 찾느라고재봉틀의 서랍을 연다.
거기 한 영혼이, 고요히 현현하였다.
작고 흰 나방하나가 누추해진 고치 위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서랍 속 귀퉁이를 찾아가집을 지은, 버림받은 거와 다를 바 없는 영혼이 이제 육신을 벗고 깨어나날아가려 하고 있다.
내게 그보다 더 극적인 체험은 달리 없다.
그것은 차마 예상치 못한 하나의 경이였다.
그리고 내 생이 어떠해야 할것인가를 보여주는,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몇 가지 풍경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내 육신은 고통과 증오와 치욕과 방황을 먹지만 그것들을 다시 뱉어내어 집을 짓고 그 ‘내부’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나는 육신을 다 써버린어느날 날개를 달고 나와 늠름하게 이젠 버려도 되는 그 집 위에 앉아 내가 살아낸 세상을 유유히 바라볼 수 있으리라.그러나 내가 먹은 그 많은 ‘뽕잎’이 사랑의 명주실로 소화되지 않고서는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발견이야말로 또 한 층의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그 고통을 미래에라도 실감할 수 있다면….나는 이즈음 사춘기의 높다란 돌축대 대신 싯푸른 대나무 아래 서서 대잎들에 서걱이는 하늘을 눈에 녹이며 그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헌데 그 나방은, 영혼은 훌쩍 날아올랐던가? 날아올랐던가? 그것을 나는보았던가?
● 연보
"문학으로 치욕 갚으려는 호기로운 오기도 남았지만
육신 다 바쳐 고치 만든후 날아오리는 나방이고 싶어"
** 장석남 님의 시
((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1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
찌르라기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
저문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
찌르라기 속에
환한 봉분이 하나 보인다.
2
누군가 찌르라기 울음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봄 햇빛이 너무 뻑뻑해
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
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 자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엔가로
데리고 가리라는 것을 안다
찌르라기떼 가고 마음엔 늘
누군가 쌀을 안친다
아무도 없는데
아궁이 앞이 환하다.
(( 꽃 본 지 오래인 듯 ))
가을 꽃을 봅니다
몇 포기 바람과 함께하는 살림
바람과 나누는 말들에
귀기울여
굳은 혀를 풀고요
그 철늦은 흔들림에 소리 나는
아이 울음 듣고요
우리가 스무 살이 넘도록 배우지 못한
우리를 맞는 갖은 설움
그런 것들에 손바닥 비비다보면요
얘야 가자 길이 멀다
西山이 내려와 어깨를 밉니다
그때 우리는 당나귀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타박타박 길도 없이
가는 곳이 길이거니
꽃 본 지 오래인 듯 떠납니다
가을은 가구요
(( 들판이 나를 불러 ))
바람에 흔들리러 집 나온
들꽃들을 보겠네
봄 들판이 나를 불러 그것들을 보여주네 갑자기 저,
노을을 헤쳐가는 새들
의 숨소리가 가까이 들리네 숨가쁨이 삶이 아니라면
온 들판 저 노을이 새들을 끌고 내려와 덮인들
아름답겠나
봄은
참았던 말들 다 데려다 어디서 어디까지 웅얼대는 걸까
울컥
떠오르는 꽃 한 송이가 온
세상 흔드는 것 보겠네
오래 서 있으면 뿌리가 아프고
어둠은 어느새 내 뿌리 근처에 내려와 속닥거리고
내 발소리 어둠에 뒹굴다 별이
되면 거기
내 뿌리가 하얗게 글썽임에 젖고 있네
살아 있는 것이 글썽임이 아니라면 온
하늘 별로 채워진들
아름답겠나 그렇게 봄
들판은 나를 불러 봄 들판이게 하고
(( 기억하지 말아야 할 ))
그대 설움 옥수수밭.
기억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한치 더 자라 쑥덕이는.
강물 너무 쉽게 넘어오는 저녁 오랑캐.
식은 죽처럼 웃는 물의 밤.
젖은 옷을 입고 옥수수밭에 뒤척이러 들어가는 그대.
들이쉬는 숨 끝 물먹은 별.
나와 반씩 나누는 빛.
손바닥 펴 가슴 문질러 지워버릴 터이니 그대.
옥수수밭에서 나와 옥수수밭 다독여 재우고.
기억의 등뒤로 못 박아줘.
턱 빠진 기억
기억 뒤의 대못.
(( 맨발로 걷기 ))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주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또다시 나무에 싹이 나고
나는 나무에 오르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젠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殘像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 겨울 모과나무 ))
저녁에 되어 아이 데리러 시립 어린이집엘 간다
철문 기웃이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서 잠시 窓에 이마 바싹 대고
어떻게 놀고 있나 內部를 들여다본다 잘 뵈지 않는다 그러다
잠시 돌아서서
마당 귀퉁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들
만져보기도 한다
맨질맨질한 살갗이,
외출에서 돌아와 양말 벗으며 만지는 찬 발목
복숭아뼈께 같다
데리고 나온 아이 잠시 딴전피울 때
전지자국 아문
얇은 가지 사이사이 올려다보면
어린 별들 돋아
모과나무에 새로 돋는 매화 같다
가난한 집에 세든 세입자들
이런 이쁜 나무는
성욕 없이 平生 만날 수 있는 女子 같다
나는 잠시 내 老年을 훔쳐보고
아이 걸리어 모과나무로 걸어 들어갔다
'아빠 손톱달'
'그래 손톱달' 리기다 소나무잎들이 품고 있는,
'아빠 반달' 며칠 후 이런 말 하리라
((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 ))
누구나 혼자 있을 때는
돈 걱정 여자 걱정 같은 거나 좀 면하면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 같은 것이나 생각해보면 좋다
그 못물이 못자리 한바퀴 빙 돌아
새로 한 논둑에 생긴 손자국 발자국 앞에 슬몃 머무는 것
생각해보면 좋다
그것도 아니면
못자리에 들어가는 그 못물의 소리를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 가운데다
앉혀보는 것은 어떤가
그 소리로써 잠자리의 곁을 삼아보는 것은 어떤가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
하루나 이틀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
아니, 여러날씩
살아보는 것은 어떤가
(( 민들레 ))
내가 밤늦도록 붙잡고 있었으나
끝내는 지워져버리고 만
몇몇 내 마음속 시구들,
그 설렘의 따스한 물무늬들을 위한
여기 호젓하고 고요한 주소지의
안타까운 묘비명들
(( 해남 들에 노을 들어 노을 본다 ))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해남 들 가운데를 지나다가
들판 끝에 노을이 들어
어찌할 수 없이
서서 노을 본다
노을 속의 새 본다
새는
내게로 오던 새도 아닌데
내게로 왔고
노을은
나를 떠메러 온 노을도 아닌데
나를 떠메고 그러고도 한참을 더 저문다
우리가 지금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저 노을 탓이다
이제는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중얼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저문다
해남 들에 노을이 들어 문득
여러날 몴의 저녁을 한꺼번에 맞는다
모두 모여서 가지런히
잦아드는 저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슴속까지 잡아당겨보는 일이다
어쩌다가 이곳까지 내밀어진 생의 파란 발목들을
덮어보는 일이다
그렇게 한번 덮어보는 것뿐이다
내게 온 노을도 아닌데
해남 들에 뜬 노을
저 수천만 평의 무게로 내게로 와서
내 뒤의 긴 그림자까지를 떠메고
잠긴다
(잠긴다는 것은 자고로 저런 것이다)
잠긴다
(( 5월 ))
아는가,
찬밥에 말아먹는 사랑을
치한처럼 봄이 오고
봄의 상처인 꽃과
꽃의 흉터로 남는 열매
앵두나무가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앵두꽃잎을 내밀 듯
세월의 흉터인 우리들
요즘 근황은
사랑을 물말어먹고
헛간처럼 일어서서
서툰 봄볕을 받는다
(( 뻐꾸기 소리 ))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봉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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