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의 ‘아테나 학당’
라파엘은 1509년에 교황청에서 봉급을 받는 궁중화가가 되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원래 교회의 재판소로 사용하던 이 방을 개인의 거주 공간으로 만들어서 장식했다. 교황의 개인 서재가 되었고, 나중에는 교황이 각종 문서에 서명하고 봉인하는 방으로 사용했다. 일반인들은 이 방을 ‘서명의 방’이라고 불렀다.
서명실 장식은 르네상스 시대의 도서관에 장식하는 네개의 근본적인 장식인 신학, 시, 철학, 법(시민법과 교회법)의 네 가지에 맞추어서 장식하기로 했다. 그림의 주제는 신플라톤 철학을 통해서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했다. 가장 고귀한 형태의 지식인 진 선, 미 형태의 개념을 찬미하는데 있었다.
아테네 학당은 라파엘이 바티칸 교회의 방을 장식한 네 개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하다. 나머지는 아테나 학당의 좌우에 프레스코 화 법학과 파르나소스가 그려져 있고, 맞은 편에 ‘성체 논의’가 그려져 있다.
외관상으로 이 그림의 시대적 배경은 그리스 시대의 아테네이다. 아테네 학당은 한 가운데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치했다. 플라톤(얼굴은 레오나르드 다 빈치 얼굴이라고 한다.)은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르키며 자신의 ‘대화편’을 든 체 이데아를 설파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윤리학을 설파하면서 지상을 가르키고 있다. 라파엘은 서양 철학에서 두 개의 기조를 이루는 플라톤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붉은 색의 옷과 청색의 옷으로 대비시켜 채색상으로 조형과 조화의 미를 구축했다.
오른편 하단에 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슬며시 자신을 그려 넣었다. 등을 돌리고 왕관을 쓴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수확자이자 천문학자로서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이다. 그는 점성술사로서 한 손에는 공을 들고 있다. 그의 바로 옆의 인물은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 개혁가인 짜라투스트라 조르아스터로서 공에 별을 그려 넣었다. 바로 옆의 인물이 라파엘 자신이다.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사람은 추기경이다. 그는 최초로 이탈리아 문법책을 쓴 벰보이다.
가운데에 허리를 굽히고 칠판에 컴파스를 돌리고 있는 인물은 유크리트이다. 유크리트의 얼굴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부라만테의 얼굴을 그렸다. 플라톤의 좌측에 서 있는 대머리의 남자가 유명한 소트라테스이다.
좌측 바로 옆이 크로세폰이고, 투구를 쓴 인물이 알렉산더 대왕이다. 바로 뒤쪽의 인물아 알키아비데스이다. 아네네 학당에 배치된 인물은 이 외에도 안티스테네스, 데모크리토스, 디오넥네스, 피타고라스, 에피쿠로스, 게논, 헤로클레이토스가 있다. 헤로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을 불로 본 인물이며, 학문과 예술은 사색하는 정신에 있다고 말했다. 헤로클레이토스의 얼굴을 미켈란젤로의 얼굴로 그렸다. 이 부분은 그림이 완선되고 난 1년 쯤 뒤에 그린 것이다. 그때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던 미켈란젤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그렸다고 한다.
그림의 좌우에 있는 신상은 아폴론과 아테나이다. 두 신 모두 학문과 예술을 주관하는 신이다.
라파엘이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를 처음으로 본 것은 1512년 이었다. 라파엘은 그때 미켈란젤로를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했다. 미켈란젤로도 라파엘을 하나부터 끝까지 나한데 배운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면서 폄하했다. 인간관계는 관계이고, 예술적으로 존경하는 것은 존경으로 본 라파엘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림의 배경으로 저 멀리 보이는 아치가 두 철학자를 감싸고 있다. 하늘에서 마치 지성과 지식을 상징하는 두 철학자를 강조하듯이 역광이 비치고 있다. 신비주의와 경험주의, 이상주의와 행동주의 등 근본적인 두 가지 철학 전통은 두 철학자의 서로 다른 작은 몸짓을 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아테네 학당은 지식이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발전하고, 논쟁을 통해서 확장하고, 반복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라파엘은 진리를 추구해온 영웅들에게 경의를 나타냈다. 그러나 후기 르네상스 이후에 진리를 추구한 영웅은 누구보다도 예술가 였다.
라파엘은 교황의 방을 장식하는데 종교화가 아닌 그리스 철학자를 왜 그렸을까? 우리는 이 시대가 르네상스 시대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학문과 예술을 탐구하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