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투숙 중인 호텔 방에 걸려온 전화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즉시 연결된다면? 또 호텔 식당이나 연회장에 설치된 무선(無線) 랜(LAN)을 통해 이메일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2000년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서울개최를 계기로 불붙기 시작한 국내 특급호텔의 디지털 서비스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객실에 설치된 초고속 유선 통신망은 이제 구문(舊聞)이다. 요즘은 방마다 무선 랜 설비를 설치하여 침대에 누워서도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은 신관 25~29층 95개 객실에 DVD플레이어까지 갖추어 투숙객들이 150여 개의 최신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롯데·조선호텔은 이메일 전송은 물론 통역·비즈니스 정보를 찾을 수 있는 PDA도 고객에게 대여해주고 있다. 또 롯데는 네이트·엔탑 등 이동통신회사가 제공하는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활용, 업계 처음으로 휴대전화로 객실 예약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인터넷 환경에 관한 한 국내 호텔은 세계 특급 호텔들을 능가한다. 일본 최고의 호텔로 손꼽히는 도쿄 오쿠라호텔, 파크하얏트호텔 등도 무선 랜 설비는 없으며 초고속통신망을 갖추지 않은 특급 호텔들도 외국에서는 적지 않다.
객실 다음으로 인터넷 환경이 잘 구축되어 있는 곳은 비즈니스센터다. 대부분의 호텔이 비즈니스센터 내에 PC방을 따로 만들어 고객들이 수시로 이메일 체크는 물론, 인터넷 검색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호텔을 비롯한 몇몇 호텔들은 원격 화상(畵像)회의를 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추었다.
국내 호텔들이 이렇게 ‘IT 호텔’로 변신한 데는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호텔리어(호텔종사자)들의 고민과 땀이 배어 있다. 투숙객들에게 보다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최첨단 디지털 설비가 아니라 바로 호텔 직원들이다.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의 김광철(42) 지배인. 98년부터 ‘사이버 매니저’로 근무 중이다. 지난해 미국 본사 회의 시간에 맞추어 컴퓨터 파일을 급히 전송해야 하는 피시맨(Fishman)이라는 여성 투숙객이 데이터 전송을 못해 끙끙 앓다가 김 지배인에게 ‘긴급구조’ 요청을 보냈다. 김 지배인이 몇 분의 작업 끝에 파일 전송에 성공하자 그녀는 김 지배인을 끌어안고 “당신이 나를 살렸어요(You saved my life)!”라며 고마워 했다.
그랜드하얏트서울의 송영진(35) 계장도 호텔업계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통한다. 호텔 홈페이지 관리와 호텔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e-뉴스레터 발송 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사무실에 컴퓨터만 3대다. 송 계장은 “홈페이지에 객실은 물론 식당, 연회장 동영상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인터넷 예약 고객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라호텔 시설팀 송재환(43) 과장은 신라호텔이 8월부터 호텔업계 세계 최초로 실시하고 있는 ‘인포 모바일(Info Mobile·객실 전화 자동연결 시스템)’ 서비스를 제안한 사람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객실로 걸려온 전화를 호텔이 미리 지급한 휴대전화를 통해 호텔 밖에서도 받을 수 있다. 또 신라호텔 신동복(47) 과장은 객실 전화가 울릴 때 TV 볼륨이 자동으로 낮아지는 ‘TV 볼륨 자동제어 장치’ 도입을 처음 제안, 300만원의 아이디어 상금까지 받았다. 지난 97년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의 방한 때 신라호텔을 투숙호텔로 정한 이유도 이 시스템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신라측의 설명이다.
호텔 정보화서비스 업체인 메지넷 이국진 사장은 “이제는 전망이나 입지보다는 정보화가 앞선 호텔이 ‘좋은 호텔’로 통하는 시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