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에... 김웅렬 신부님 강론 중에서...
찬미예수님
청주에 있을 때 어느 은행 지점장을 만나 일을 보고 나오는데 그 "백 배 이익은 1이 0이다"
문을 열고 나오려다가 분심이 들어가지고 한 30분 동안 다시 지점장실로 들어갔지요
"아니 신부님, 가신 줄 알았더니 어떻게 또 오셨습니까?" "저게 무슨 암호입니까?" "우리 은행 직원들만 알고 있는 암호입니다."
"내 말이 틀리리지 잘 모르겠지만 뭐 혹시 그 뜻이 아닙니까?"
이 지점장이 입을 못 다물며 "세상에~~ 신부님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사순절은 우리들이 열심히 공로를 쌓다가도 마귀의 장난에 한순간에 공로가 허물어 지는 그런때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축복의 시기면서도 동시에 사탄의 장난의 시기이지요 다른 어느때보다 이 사순절 동안에는 마귀의 장난이 극심합니다.
오늘 2독서에
‘여러분들은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오늘 우리들이 들은 이 긴 복음은 돌아온 아들의 비유입니다.
유대인들의 법에 의하면 장자는 아버지가 죽으면 재산의 3분의 2를 가질수 있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재산을 주고 싶은 마음이 '어차피 아버지께서 죽고 나면 그 재산 3분의 1은 아버지 죽고 난 다음에 주는 것이나 살아있을 때
이렇게 협박 공갈을 해서 아버지의 재산 3분의 1을 뜯어내어 아버지의 집을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것은 이 둘째 아들은 마치 살아있는 아버지를죽은 아버지 대하듯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하느님은 이론적으로만 살아있고
신자생활하면서 여러분은 정말 하느님은 살아계신 분이라고 하는것을 유명한 과학자요, 신앙인 이었던 파스칼은 살아있는 하느님을
옷을 벗고 입을 때 마다 떼어서 바꿔 달았고 죽을때 수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몇년 몇월 몇시에 만났다.'
파스칼은 신앙이 약해지고 흔들릴 때 마다 그 하느님을 만났던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느님을 처음 만났던 곳은 어디겠습니까?
아마 여러분들이 세례를 받았던 성당일 겁니다. 진천성당에서 세례 받으신 분들은 바로 이 진천성당이 하느님을 첫 번째로 영접했던 장소입니다. 저는 사제서품을 5월 14일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5월 14일이 되면 저 혼자 내덕동 주교좌성당에 가서 오전 내내 몇 시간씩 묵상을
바로 이 자리에서 사제가 됐던 그날을 생각하면, 그때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셨던 것을 생각하면, 눈물 콧물이 되어서 기운이 다 빠졌다가도 다시 기운이 솟아납니다. 야곱은 하느님을 만났던 장소가 바로 베델이었습니다. 신앙이 흔들릴 때마다 야곱은 베델을 찾아가서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살아있는 하느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그 신앙생활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미사시간에 앉아 있으면서도 십자가를 쳐다보더라도
복음에 나오는 이 둘째 아들 처럼 살아계신 하느님을
하느님은 컴퓨터가 아니요, 목석도 아닙니다.
한 사람 한사람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신 인격적인 하느님이요 살아 숨쉬는 하느님입니다 .바로 내 곁에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가지
여러가지 징표를 통해서 내가 죽은 하느님이 아니라 알려 주고 계십니다
첫째, 하느님은 성서를 통해서 당신께서 살아 있다고 하는것을
예래니모 성인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안다고 하면서 성서를 읽어보지 않는
우리들이 나중에 죽어서 하느님 앞에 가면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너 살아있으면서 네 눈으로, 네 힘으로 창세기 부터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했을 때는 분명히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너 어찌 성서책도 읽어보지 않으면서 나에 대해서 호된 질책에서 벗어 날 길이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13절에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다 끌어 내버립니다
그러나 성서를 펼치고 무조건 페이지만 넘긴다고 해서
그래서 사제의 강론을 듣기 전에 화살기도를 쏘셔야 합니다.
'성령님이시여! 사제 입을 통해서 나오는 저 말이 말씀으로 들리게 해주십시오!'
성경책을 펼치고 읽을 때마다 먼저 눈보다도 마음이 성령을 빌려야 됩니다.
'오소서 성령이시여, 오늘 제가 읽으려고 하는 이 성서의
제가 이 곳에 부임해서 1년 동안
"성서 책을 꼭 가지고 다녀라. 군인이 전쟁터에 나갈 때 하고 일년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했습니다.
1독서, 2독서, 복음을 미리읽고 미사가 시작되면서 다시한번 듣고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저절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준비 중에 첫 단추가 성서를 들고 성당에 와야 됩니다.
신부님, 미사 때는 성서책을 안 들고 와도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집에서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전례 때 성서를 가지고 오지 않는 자는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성령의 눈으로 성서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지지직~~
'성서를 읽으니 이렇게 행복하고 좋은 걸 내가 왜 텔레비전에만 빠져서 살았던가!'
사람끼리 모여서 수다 떨면서 보내는 시간도 헛되고 헛된 겁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할머니가 성서를 읽고 성서 구절을 외우면서 교리반에 입교를 시킵니다
말씀으로 무장된 사람들은 이 세상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성서구절을 많이 외우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 증인들은 성서를 달달 외고 있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를 여호와로 다니는 겁니다.
꿰어 맞추는 성서라 잘못된부분이 많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말씀에 충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살아있다고 하는 첫 번째 출구는 말씀입니다.
아직까지도 성서책을 들고 다니지 않는 분들, 집에서
열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읽는 것이 더 은혜롭습니다.
두 번째 살이계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는 길은 성사를 통해서 입니다.
일곱가지 성사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당신이 살아 있다고 하는것을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과 인간이 지상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천국을 가지 않아도 일곱가지 성사만 온전히 하는 사람
정기적으로 고백성사를 보는 사람은 항상 천사같은 마음을 가지고
세 번째로 살아계신 하느님은 일상적인 체험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십니다.
성공한 체험보다는 실패한 경험을 통해서 당신이 살아있다고 하는 하는 것은 물론 하느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러나 우리 약하고 교만한 인간들은 모든 일이 잘 될때는 성공한줄 알고 하느님께 감사 하지 않는 겁니다...
몸이 건강할 때도 자기가 자기 몸을 잘 관리해서 건강한 줄 알고
늪지대에서 빠져서 허우적 거리다가 하느님이 내미는 손을 잡고
어느날 다윗왕이 궁궐의 베란다에 나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내 침대로 끌고 오너라"
비서를 시켜서 여자를 데려다가 간음하고 보석 몇개
그여자가 가고 난 뒤에 다윗은 불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혹시 임신이라도 되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남편이 누구냐?' 하고 알아봤더니 지금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
"그럼 우리야를 빨리 불러들여서 특별 외박을 시켜라!" 우리야는 우직한 군인이기 때문에 자기 아내와 동침을 전쟁터로 나갑니다.
작전이 실패하자 다윗은 우리야에게 편지 한통을 들려주며 보냅니다.
"너의 상관에게 이 편지를 보여주어라."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었느냐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놈은 죽여야 되니까
우리야는 죽었습니다.우리야갸 죽었기 때문에 다윗은 작전이 완벽히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단 예언자는 다윗의 이런 비리를 알고 있었기에 다윗 앞에
"임금님, 세상에 이렇게 나쁜 놈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느 주인이 자기는 가축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자기 하인은 양을잡아서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야,세상에 그렇게 나쁜 놈이 어디있냐?"
다윗은 땅을 치고 통곡을 했습니다. 남의 아내를 탐했던 이 뼈아픈 거룩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우는 사람이 웃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죄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기 때문에 당당해서
하느님은 당신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하느님을 죽은 하느님 대하듯 하지 않았는가.. 반성해야 됩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느님은 이 김신부의 입을 통해서 여러분의 잠시후에 거행되는 성찬례를 통해서 여러분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성체가 여러분의 혓바닷에 녹아내리는 순간 여러분은 또하나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되어서 말하는 것이오 그리스도처럼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의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대로
느티나무신부님 -2001년 3월 25일 (진천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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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안에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아우구스딩
첫댓글 문기님 백배 이익은 1대 0 이다.
좋은 글 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