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시골 면단위의 재계 판도를 살펴보면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과 발동기로 가동되는 방앗간인 ‘정미소’를 양대 산맥으로 하고, 곳에 따라 전답마지기가 아주 많은 이른바 ‘대농’들이 끼어들어 3파전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경쟁업체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방앗간에 비하면야 양조장이 현금동원능력이나 파워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다고 보아 큰 무리가 없을 터입니다.
배가 늘 출출했던 우리는 맨날 양조장 술찌기 얻어먹는게 유일한 간식이었는데 4학년 어느날, 술찌기 잔뜩 먹은 '만취상태'에서 책보를 등에 메고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우울 려어고오 내가 왔던가아~ 우우스려고오 와았더언가아~ 짜잔짜잔짜~ 비리인내애 나는~~"
어쩌고 하며 한곡 구성지게 꺾으며 집에 오다가 길가던 어른들이 보고 아부지한테 일러서 지게작대기로 먼지나도록 맞았습니다
하여튼 공짜로 술찌기를 얻어먹는 우리에겐 양조장이 인기만점이었으나 어른들의 감정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던 것이, 일반 농가에서 막걸리를 만든 낌새가 있으면 여지없이 고발하여 세무서 직원들로 하여금 집안을 수색하여 단속하게 해야만 자신들의 매출에 차질이 없으므로 보통은 마을마다 담배값깨나 쥐어주고 술담그는 정보를 수집하는 앞잡이들을 관리하며 횡포를 부리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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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일반 농가가 아니라 잡화점이나 주막등, 비교적 대량판매가 이루어지는 메이저거래선에서 밀주를 담그는 날에는 경영상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므로 가히 필사적으로 이를 막거나 단속하기에 혈안이 됩니다.
우리 마을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재 넘어 5리길을 가다가 외딴주막 하나를 지나 아랫마을을 거쳐 주욱 개울따라 내리막길로 다시 10리쯤 이어집니다.
여기서 잠깐,
술도 팔고 노름도 붙이는 외딴집 주막의 여주인 ‘개성댁’에 관해 잠시 언급하면, 나이는 설흔후반쯤 되고 얼굴은 반반한 편이나 체격이 어지간한 남정네 못지 않게 기골장대할 뿐 아니라 힘도 드세어 술값을 떼어먹거나 술외상값을 제때에 갚지못하는 날이면 멱살잡이를 하다가 심지어는 마당 구석에다가 패대기를 치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이었습니다.
구경중에 쌈구경이 젤인건 뭐 말이야 바른말이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이렇다할 이슈가 없던 우리들에게는 개성댁(개성서 시집온건 아니고 그냥 고향이 개성이라고 해서 동네에서 붙인 택호)이야 말로 며칠씩을 화제에 올려도 손색이 없는 대형사건들 이를테면 술값시비와 관련되어 힘깨나 쓰는 남정네를 흠씬 두들겨 패거나, 술값 비싸다고 항의차 방문한 아짐니들과의 집단 길거리 결투,노름하다 돈 잃은 사람들끼리의 대판 싸움등을 통해 끊임없이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지역 엔터테인먼트의 본산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교길에서 아랫마을에 디딜방아로 고추를 빻기 위해 내려왔던 개성댁과 밀주단속차 나온 세무서직원, 동네이장, 양조장 지배인등이 맞닥뜨린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단속반들은 유력한 첩보에 의해 단속을 나온 것인데 마침 마을에 내려온 개성댁과 미리 마주친 것이지요.
순간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낌새를 챈 개성댁이 고추푸대를 어깨에 걸쳐 맨 채로 슬글슬금 외딴집 자신의 주막을 향해 잰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술독을 빨리 감춰야 되니...
아랫마을에서 주막으로 가는 길은 자전거나 자동차가 아니라면 신작로 보다는 지름길이 훨씬 빠릅니다. 개성댁이 움직이자 당연히 단속반원들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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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빠른 걸음으로 가다가 급기야는 빠른 속도로 달려 가는 것입니다.
개성댁, 세무직원, 양조장지배인, 이장, 그담은 갤러리인 우리들, 이런 순서였는데 모두들 안간힘을 쓰고도 결승선인 주막까지 이르도록 아무런 순위의 변동이 없었던 이유는
우선 개성댁이 88올림픽에서 우승한 그리피스조이너 정도는 아니더라도 운동회 일반인 달리기 때마다 노랗고 커다란 양은냄비를 독차지할 정도의 만만찮은 주력을 가지고 있던 터라 절대체력면에서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더욱이 지형적으로도 논두렁 밭두렁이란 것이 추월이 가능한 2차선이 아니라 일방통행1차선에 불과하므로 따라잡기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던 거지요.
하여튼 주막에 도착한 개성댁은 아래채 방 안으로 부리나케 들어갔습니다. 술독을 감추기 위함이었지요. 가택수색권한이 있던 세무서직원들이 어디 바보인가요? 당연히 현장확보를 위해 개성댁을 뒤따라 방안으로 들어갔고.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세무서직원을 위시한 세 사람의 공무집행이 예상못한 난관에 봉착한 겁니다. 우리의 호프 개성댁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술이 담긴 옹기단지(김치담는 장독정도의크기)에 치마를 걷고 냉큼 올라 앉은 것입니다.
세무: 아줌마 그거 술독이잖아 빨리 내려와욧!
개성댁: 나 지금 급해서 볼일 보는거여. 이건 술독이 아니라 내 요강이고.
세무: 이 아줌마 정말 웃기네. 술독이 요강이라니 허 참~
(세무를 비롯한 이장 지배인 모두 박장대소. 우리 아이들도 키득키득~)
말도 안되는 이 해프닝은 금새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천만에 말씀.
누가봐도 술독이 분명하지만, 본인이 요강이라고 우기며 세무가 접근이라도 할라치면 돌아앉은 상태에서 치맛단을 휙 걷어서 엉덩이를 슬쩍 보여주며,
“아니 이 양반들이 요강에서 볼일 보는 사람한테 수작을 부려!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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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소리를 질러대니 기가막힐 노릇이지만 술독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딱히 어쩔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하기사 요강이라는 것이 무슨 KS규격품만 쓰라는 법도 없고, 요강규격에관한국제협약 뭐 이런게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실 말이지 원래 시골의 퍼세식 변소 기본디자인이 옹기단지를 땅에 묻고 그 위에다 널빤지 두 장을 놓아 얼기설기 돌담이나 볏짚을 두른 것이니 옹기단지를 요강으로 쓸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전혀 없는 건 아닌 셈이지요.
하여튼 일행이 도착한 게 오후 두 시경이었는데 30분,1시간, 두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호프 개성댁은 술독위에 앉은 채 꿈쩍도 안합니다. 동백아가씨 노래까정 흥얼흥얼 콧노래로 불러 가면서....
사태는 장기 대치국면으로 접어들어 이미 방문앞에는 볏집단을 가져다가 세무,지배인, 이장이 일렬횡대로 앉아 영장집행을 기다리고 우리는 두어 발 뒤쯤에 역시 볏짚단 가지고 관중석을 만들어 사태추이를 관망하고...
팽팽하게 맞선 이 엽기적인 대치국면은 해가 저물도록 계속되었으나 애초에는 무모하기 짝이없어 보이던 개성댁쪽으로 급격히 대세가 기웁니다.
이장: 개성띠기요~(‘개성댁요’의 사투리발음) 인제 고마하고 내리오소!
개성댁: 요강에 볼일 본다는데 다들 뭐하는겨? 안가고!
세무: 아줌마 정말 그게 술독이 아니고 요강이요?
개성댁의 결정타: 우이씨~ 자꾸 술독이라 그러는데 내 볼일 다 보고 나서 당신들 한사발 씩 다 먹일거다. 안쳐먹기만 해봐라!!!
이장: (겁을먹고 귓속말로 세무에게) 독안에 든게 술이 맞다캐도 저 개성띠기가 진짜로 볼일 봐 놓고 우리보고 묵으라카믄 우짜요? 저 성질에 진짜로 믹일낍니더. 날도 저물었는데 담에 하고, 아이고 마 오늘은 가입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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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의 호프 개성댁은 국세청과 내무부 합동의 강력한 공권력을 단신으로 무력화시켰던 것입니다.
하여튼 우리의 개성댁은 다음날 부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술을 팔았습니다.
당시 우리는 개성댁이 공권력을 무력화시킨 주막대첩(ex.살수대첩,한산대첩,귀주대첩etc.)에 대한 역사적 평가 못지않게 과연 개성댁이 여섯시간 이상을 아무런 생리현상 없이 지낼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날 동안 학교를 오가며 깊이 있게 논의하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의 기본성격과는 별도로 그 다음날부터 판매를 재개한 막걸리에 약간, 혹은 상당량의 이물질이 혼합되었는가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정청 차원의 과거사진상규명 작업이 개시된다 하더라도 증인으로서 조사에 응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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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술하면 막걸리가 최고죠...![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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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쪼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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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존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