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와 서정과 따뜻한 감성의 조화
- 조헌론
백남오
1.좋은 작품집의 요건
바야흐로 수필전국시대라 할만하다. 인문학의 쇠퇴와 문학의 죽음이 예견된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수필문학의 저변확대는 식을 줄을 모른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팽창하고 있다. 수필가 수는 1만 명에 육박하고 수필전문지만 30여종에 이른다. 연간 쏟아져 나오는 수필집만 해도 수 백 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 된다. 각 대학과 지자체의 수필교실에서는 문학공부를 하려는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넘쳐난다. 문단 전체적으로 본다면 전통 있는 문예지마저도 폐간이 속출되는 현실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너무 많은 수필집이 출간되다보니 좋은 수필집을 가려서 읽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세종도서, 우수도서, 각종 문학상 등으로 옥석을 가려내려고 노력하지만 크게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제도가 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번호부터 좋은 수필집을 소개하는 기획연재를 마련했다. 물론 이 역시 한계가 있을 것이고 주관적인 견해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수필집들이 모두 무용지물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는 한 작가의 치열하고 열정적인 생애를 담은 감동적인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작품집은 분명히 있다. 독자의 사랑을 받는 작품집은 몇 가지 유형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 즉 읽히게 하는 힘이 그 첫 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 힘이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드러운 문장을 꼽고 싶다. 문장이 부드럽고 섬세해야한다.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야 한다. 철학적이면서 섬세하면 더 좋다. 이때 철학적이라 함은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화소라고해도 좋다.
그 다음으로 좋은 작품집의 큰 방향은 신변잡기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깊은 사유를 확장해가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전문적인 삶의 현장을 담은 수필시대가 열릴 것으로 본다. 이미 그런 시대로 접어들었다. 가령, 나무를 키우는 일, 야생화를 탐색하는 일, 산을 노래하는 일, 바다를 탐구하는 일, 평생을 종사한 직업적 체험, 등이 핵심적인 소재의 방향이다. 하나의 주제를 통한 집중적인 사유야말로 문학작품의 가치와 격은 높아지고 예술성으로 이어질 것이고, 독자의 가슴에 감동을 주게 될 것이다. 이것저것 백화점식 글에서 독자들의 박수를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무명작가의 사소한 일상에 독자들은 전혀 관심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는 대하소설처럼 대하수필도 나와야 한다. 이런 실험정신의 작품집을 기다리는 시대가 되었다.
2. 조헌 수필 「구름 속에 머문 기억」
우연한 기회에 조헌의 수필 「구름 속에 머문 기억」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을 단숨에 읽고 깜짝 놀랐다. 끌어들이는 힘이 감동적이었다. 이런 좋은 작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청년시절 찾아갔던 화순에 있는 운주사 여행기다. 거기에서 지공이라는 젊은 비구니승과의 짧은 만남과 그리움을 중심 화소로 하고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잔잔한 감정의 파문이 일었다. 아마도 그 감정은 연정이라고 하는 게 가장 가까운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서로에게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냥 몇 마디 주고받는 대화가 전부일 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은 모든 것이 이미 예견되어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간절하다. 문제는 그 순간적인 만남의 감정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산다는 사실이다.
나는 차 시간에 맞춰 절을 나섰다. 땡 볕에 오리 길은 팍팍했다. 한참을 걸어 거의 다 왔을 무렵, 부르는 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뜻밖에 지공스님이 숨을 헐떡이며 좇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책 드리고 싶어서요. 제 몫이에요. 우리스님 그리 야박한 분은 아닌데 워낙 정확하셔서 그래요. 죄송해요.”
아직도 숨을 채 고르지 못한 스님의 얼굴은 진홍빛이었다. 책을 건넨 스님은 작은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곤 말없이 돌아서 절을 향해 걸었다. 무슨 일인지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스님의 모습이 길 끝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내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텅 빈 길 위로 하얀 햇살이 빗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불현 듯 눈물이 핑 돌았다. ...중략....
‘그리움은 인간이 가진 숙명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구름 속에 머문 기억하나를 아직도 이렇게 그리워한다.
- 「구름 속에 머문 기억」 부분
서사도 나의 추억처럼 관심이 가지만 서정적인 문체는 더 아름답다. 젊은 날 한때의 연민과 서정적인 문장이 잘 어울린다. “텅 빈 길 위로 하얀 햇살이 빗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불현 듯 눈물이 핑 돌았다.”라는 부분에서는 독자도 함께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깊은 감동을 선물한다. 이런 경험은 모든 사람들이 젊은 날에 한번쯤은 겪어 볼 수도 있는 흔한 소재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 흔함이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말 그대로 그리움은 인간이 가진 숙명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수필은 서사와 서정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서사와 서정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아무리 좋은 서사와 서정이 존재하더라도 결합되지 못하고 각자 겉돈다면 좋은 수필이 될 수가 없다. 감동이란 서서와 서정의 결합에서 창출되는 고도의 문학적 장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름 속에 머문 기억」 은 서사와 서정과 그리움이 잘 버무려진 감동적인 작품이다.
3. 수필선집 『추천역을 아시나요?』
조헌이 최근에 펴낸 수필선집 『추천역을 아시나요?』를 텍스트로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4부로 나뉘어져 있는 작품집은 각 부별로 10편씩, 모두 4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중간표제로서 제1부-노크 좀 해줘요, 제2부-여전히 간절해서 아프다, 제3부-모든 벽은 문이다, 제4부-구름 속에 머문 기억, 으로 편집이 되어 있다. 중간표제는 작품집의 제목이거나 대표작이며 그 서정성과 상징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전부를 다 읽고 난 다음 그 소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냥, 아득한 그리움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39세에 요절한 형에 대한 그리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 친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제자에 대한 그리움이 다양하게 작품집의 밑바닥을 관통하고 있다.
역 앞 좁은 마당엔 일찍 어둠이 내려앉았다. 휑하니 부는 바람은 마른 나뭇가지 사이를 내달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가뿐 기적소릴 울리며 지나가는 화물열차는 칙칙한 건너편 골짜기를 뚫고 사라져 버렸다. 화전민이 떠난 묵밭에 싸리나무가 지천이라 ‘추천’이라고 불렀던가! 이곳의 쓸쓸함은 이제 모든 소임을 마치고 사라짐을 준비하는 비감 그 자체였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 추천역은 돌아앉은 아버지의 처진 어깨처럼 힘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추천역을 아시나요?」부분
오래되고 낡은 추천역과 연로한 아버지를 대비로 엮은 작품이다. 한때는 수많은 인파로 넘쳐났지만 지금은 적막감이 감도는 추천역이다. 늙고 노쇠한 아버지가 그대로 오버랩 된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피할 수는 없지만 한때나마 아름다움이었다는 사실을 화자는 강변한다. 추레한 사당처럼 허물어지는 역사의 풍경은 빈손으로 일가를 이루고 가정을 건사한 아버지의 늙음과 쇠락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낡은 역사에서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 연민 같은 그리움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이젠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잊은 줄 알았던 사랑이 아픔처럼 문득 내게 다가설 때가 있다. 그건 어느 누구도 사랑했던 사람을 완전히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게다. 마치 비바람에 씻겨 나무뿌리가 지층으로 드러나듯이 한때의 고통과 분노, 오해와 질투 그리고 미처 익지 못한 생각 탓으로 결국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 새삼 회한이 되어 되살아나는 것이다....중략.... 인연의 끝이 늘 이렇게 허망한 줄은 알지만 편도선 부은 목에 침 삼키듯이 아직도 묵묵히 아픔을 참으며 넘겨야할 때가 있다. 첫사랑! 아름다움의 한 절정, 그러나 낙엽 지는 가을과 닮은 나이가 되고서도 회고해 보면 여전히 간절해서 아프다.
-「여전히 간절해서 아프다」 부분
첫사랑에 대한 간절함과 그리움이 절절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그는 「시간은 독이다」라는 작품에서 사랑에 대한 정의를 해박하고도 이성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 즉, “사랑은 별을 따겠다는 무모함이다. 이미 수억 년 전에 사라져 빛으로만 남은 환상에 집착하는 헛된 몸짓이다. 모든 사랑은 호기심에서 발아되고, 불안감 속에서 웃자란다. 낯선 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사랑이란 감정을 불러오고, 그 사랑을 놓칠세라 동동거리는 조바심이 더욱 열렬히 상대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사그라지는 불빛이라”는 것이다. 그 역시도 무시로 솟구치는 그리움은 피를 맛본 야수처럼 감당할 수 없을 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사그라지는 불빛임을 잘 알면서도 사랑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고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깊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게다. 만약 그가 이성의 힘으로 감성을 억제할 수가 있다면 좋은 작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작가가 될 수도 없었으리라.
그렇다. 나 역시도 실체도 없는 그리움 때문에 젊음을 애태우고, 밤을 지새우며 아파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병이 다 나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리움이야말로 서정성의 핵심이요, 창작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또한 문학의 핏줄이라고 할 수가 있다.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위험한 곡예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예술을 창작하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영감을 얻는 샘을 하나 가지고 사는 것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을 상기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이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4. 조헌의 작품세계
조헌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계간 《문학춘추》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여전히 간절해서 아프다』(2013,계간문예) 『모든 벽은 문이다』(2019,문학나눔 우수도서) 와 수필선집 『추천역을 아시나요?』를 펴냈다. 제4회 한국산문문학상, 제5회 계간문예 수필문학상을 받았다. 중견작가로서의 요건을 갖추었다 하겠다.
비교적 늦깎이로 등단한 편이지만 문학적 토대는 튼튼하다. 평생을 지켜온 국어교사로서의 내공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의 수필은 섬세한 문장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미세한 영혼의 움직임, 안정적인 구성 등 수필창작이론을 성실하게 지켜낸다.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고른 편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강점외도 행간에 문학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연민의 정이 가득하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강한 힘이 내장되어 있다. 오늘날 수필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고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조헌은 수필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다음 글을 한번 보자.
내가 그토록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뜻한 마음이 배어있는 감동과 슬며시 번지는 착한 눈물에 관한 것이었으면 한다. 칼날 같은 이성이 동강동강 잘라놓은 빤질대는 이야기가 아니고, 작은 씨앗 속에 숨어있다가도 정성을 다해 심고 가꾸면 쑥쑥 자라주는 순한 나무들같이, 편안하고 너그러운 이야기여야 한다. 커다란 천둥소리가 아니고 격랑의 파도소리도 아닌, 작은 시냇물소리 내지는 고요한 호수의 잔물결소리 같았으면 좋겠다. 그저 마을로 들어가는 길섶의 하찮은 풀꽃같이 소박한 이웃의 잡다하고 곰살궂은 이야기, 하지만 거기엔 삶의 흔적이 켜켜이 묻어있고 땀 냄새든 입 냄새든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겨, 함께 느끼고 즐기며 정겹게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호랑이 고기를 먹다」 <나의 글쓰기> 부분
조헌이 지향하고자 하는 문학의 방향이 충분히 제시되었다고 본다. 그가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편하고 너그러운 이야기, 고요한 호수의 잔물결 같은 것, 길섶의 하찮은 풀꽃같이 소박한 이야기,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다. 헝가리의 비평가 루카치는 1988년 출간된 『영혼과 형식』이란 책에서 진정한 영혼이란 인간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정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 전제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자신의 형식을 갖기 마련이며 그 형식은 보이지 않는 영혼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그릇이어야 한다고 했다. 루카치는 수필의 양식을 “삶의 근원적이면서도 직접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이자 좀처럼 붙잡기 힘든 인간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음의 미세한 풍경을 그리며 동경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 기초한 글”이라고 정의 하였다. 뛰어난 수필은 지적인 시의 본성과 형식을 지니게 된다고도 한다. 결국 수필을 쓴다는 것은 영혼과 본질에 맞는 형식을 찾아 찾아나서는 일이기도 하다. 수필은 영혼의 끊임없는 확장과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 자체를 형식으로 추구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헌의 수필쓰기는 루카치가 지향하는 수필의 방향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갑자기 조헌문학의 뿌리는 어디에 박고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다음 인용문을 한번 보자.
그날 엄마가 들고 온 상엔 여느 날과는 달리 상보가 얌전히 덮여있었다. “아침밥이 웬만한 보약보다도 낫다는데 도대체 먹질 못하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네!”밥상을 내려놓고 숭늉을 가지러간 사이, 이건 또 뭔가 싶어 나는 무심코 상보를 들춰 보았다. 순간 목구멍에 무언가 울컥 치미는 것을 느끼며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놀랍게도 밥상엔 열댓 개가 넘는 수저가 줄지어 놓였는데 수저마다 일일이 밥을 퍼 그 위에 반찬을 올려놓은 것이 아닌가. 생선살과 나물 그리고 장조림과 김치까지 골고루 였는데 반찬이 올려 지지 않은 서너 개의 수저 옆에는 갓 구운 김이 댓 장 놓여 있었다.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떠놓은 수저들이나 비우고 가! 오늘은 날씨가 추워 꼭 먹고 가야 해!”엄마는 굳게 맘을 먹은 듯 옆에 앉아 단단히 채근을 하는 거였다.
-「열댓 숟갈에 담긴 사랑」부분
참 유별난 사랑이다. 세상에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거름이 되고 희생이 됨은 물론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것이 한국의 부모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에도 수많은 길이 열려 있을 테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정말 대단한 정성이고 희생이다. 새벽에 학원으로 향하는 고3 아들을 위하여 어머니는 매일 밥을 해서 바치고, 그 아들은 이른 시간에 밥을 먹지 못하고 매번 물리친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열댓 개의 수저에다 각각 밥을 퍼서 반찬을 올려 아들이 그것만이라도 먹게 하려는 극한 처방이다. 아무리 철없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이 같은 어머니의 정성 앞에서는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들은 먹먹한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수저위에 놓인 밥을 꾸역꾸역 다 먹고 만다. 어머니의 승리다.
참 부럽기도 하다. 나 역시 척박한 산골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사랑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게 받으며 성장했다고 자부했는데 그 이상이다. 결국 조헌 문학의 뿌리는 가족의 사랑이다.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형이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그의 온몸을 관통하는 문학의 강물이 되어 흐른다. 그런 사랑의 힘으로 성장한 작가라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무서울 것도 그칠 것도 없으리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그리워하면 그만이리라. 그것이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조헌의 힘이 아닐까 싶다.
5. 마무리를 대신하며
이상에서 조헌의 수필집과 문학세계에 대하여 개괄해 보았다. 정리해보면, 그의 수필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 읽히게 하는 힘이 강력하다. 서사와 서정과 그리움이 조화롭게 잘 버무려져 있다. 칼날 같은 이성보다는 따뜻한 감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미세한 풍경까지 그려내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힘은 성장과정에서 받은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다. 온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때론 인간답기에 아프고 눈물도 흘리겠지만 그 눈물은 혼자 흘리는 것이 아니므로 분명 긍정의 눈물로 돌아올 것이다. 예술에도 삶에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사랑의 색이다. 그리움, 슬픔, 기쁨, 외로움, 낭만, 환희 등의 정서는 모두가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색깔이다. 이 모든 것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인생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조헌수필은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 밑바탕에 흐른다. 그러면서도 정확한 문장력, 다양한 사유의 확장,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표면적인 언술의 힘보다는 섬세한 감각이 길어 올린 그리움의 정서와 해석의 힘이 돋보인다. 모처럼 만난 좋은 작가의 수필집에 박수를 보내며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백남오: 2004년《서정시학》수필, 2015년《수필과 비평》 평론등단. 수필 「겨울밤 세석에서」 전문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수록. 2014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공동저자. 수필집 『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등 4권, 수필선집 『겨울 밤 세석에서』. 제15회 경남대한마공로상, 제2회 수필미학문학상. 제13회 김우종문학상, 제5회 시대의에세이스트상 수상. 경남대수필교실 지도교수.
*E-mail: jilisarang1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