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은 2004년 12월 26일 쓰나미로 울고 있는 아체를 2005년 3월 5월 두 번 그 지역을 찾아 간다. 그곳에서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다. 모스크 신전에서만 소리 내어 신 앞에 우는 이들 그들의 신음소리를 책속에 담아왔다.
하루아침 생사를 넘나드는 불가항력 자연 재앙 왜 그들에게 신은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을 내렸을까?
그들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원 없이 희망 나무를 심어 가는 이들은 기어이 스스로 일어설 거라고 말합니다. “돈 가진자, 많이 배운자, 성직자, 그들에게 의지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와서 항상 모스크 이망(성직자)만 상대하고 성금하고 그들에게만 줍니다. 주민 없는 모스크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합니다. 주민들을 무시하고 이간질하고 협박하는 존재들이 그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p.77)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전우익 선생님이 말하는 착함을 지킬 독이 필요한 시기가 쓰나미로 더욱더 앞당겨 진듯하다.
전우익 혼자만 살 살믄 무슨 재민겨 에서 “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고치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같습니다.(p.130.)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너무나 착한 이들 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착함을 지켜 낼 독한 것이 필요 합니다.
쓰나미를 기회로 그 지역의 독립운동을 억압하는 정치권력 과 전 세계에서 전달되는 구호 자금을 착복하는 벌레만도 못한 지배층과 고아가 된 수만명의 아이들, 아이를 잃은 엄마와 아빠들을 위해서라도......
울렐르 마을 사람들에 공동체 정신을 통해 그 독함이 부활되고 있었다.
(천막에서 공동 거주를 하고, 주민회의도(남녀가 함께) 하고, 고아가된 아이들을 우리 마을의 자녀로 키우겠다는 마음, 지하수 우물이 만들어지고 그 우물을 울렐르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마을 난민들도 그 물을 퍼 갈수 있도록 개방했다.)
박노해 시인에 착해지지마라 시로 나의 자리도 뒤돌아 본다.
착해지지 마라 / 박노해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에서 p.257.)
거대기업들이 착해지고 있다
양극화 시대의 가난한 자들에게 손길을 내밀고
생태파괴로 죽어가는 환경을 살리자고 앞장서고
시민운동과 손잡고 아름다운 기부에 나서고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우리 사회와 내 삶을 책임져 주겠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자본권력들이 갑자기
'착하게 살자'고 나서니 세상이 무서워진다
갑자기 투명해진 국정원 안에 들어선 듯
갑자기 반성문을 쓰는 대통령을 지켜보는 듯
착해지고 아름다워진 거대기업들에게
온 세상이 희망이라며 박수를 보낼수록
나는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이 무섭다
민주공화국을 '주식회사 대한민국'으로
합법적으로 인수합병해 버린 자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버린 자들이
대학과 언론과 종교까지 장악해 버린 자들이
왜 갑자기 '차카게 살자'고 썩소를 날리는가
글로벌 대기업이여, 너는 네 스스로 착해지지 마라
네 주둥이를 묶은 안전망과 목줄로만 착해져라
너는 사냥개답게 싸움터를 용맹하게 내달려라
하지만 너는 사람 사는 마을에 들어설 때는
튼튼한 규제망 속에서만 온순하고 착해져라
살점과 피가 흐르는 너의 날카로운 주둥이의
안전망도 쇠목줄도 시장자유로 풀어놓고
갑자기 침 흘리고 꼬리 치며 우아떨지 마라
네가 물어 죽인 마을의 아기염소와 송아지와
아이들의 어깨에 박힌 이빨 자국이 나는 무섭다
최고 권력이 된 삼성이여 거대기업이여
너는 결단코 네 스스로는 착해지지 마라
너는 오직 더 강한 민주주의와 농동조합과
깨어 있는 시민의 몽둥이 앞에서만 착해져라
첫댓글 도움장님의 멋진 낭독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네요. 혹 착함의 연대로 착함을 지켜낼 수는 없을까 하구요. 잘 읽었습니다
착함의 연대로 지켜낼수 있다고 봅니다. " 만약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면 그냥 돌아가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뿌리가 같다고 보고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이 문장이 강수돌 교수(경쟁은 어떻게 내면화 되는가 p.48)는 생동하는 연대의 의미를 밝히는 논리라고 말합니다. 부자 되기가 아니라 소박하게 살기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내는 삶의 연대의 모습으로 나아가도록 착함이 넘쳐 나야겠지요
@김진수 끄덕 끄덕~ 힘쓰고 애써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