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책임자
해럴드 무어(Harold. G. Moore)는 베트남 전쟁 영웅입니다. 그는 미군 제7기갑부대 대대장으로서 4배 넘는 규모의 월맹군 포위를 뚫고 혁혁한 전공을 올렸습니다. 멜 깁슨 주연의 영화 ‘위 워 솔저스’에도 소개된 그의 무용담은 탁월한 리더십과 정신력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무어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연설도 있습니다. 그는 부대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다 살려서 고국에 무사히 데려갈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한다. 전투가 시작되면 내가 제일 먼저 적진을 밟을 것이고 가장 마지막에 그곳에서 나올 것이다. 우린 살든지 죽든지 모두 함께 고국으로 갈 것이다.”
“살든지 죽든지 함께”라는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요 17:12) 인간 해럴드 무어는 모든 장병의 생환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령관은 자신 있게 선언하십니다. “단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반드시 산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위대한 책임자 곁에서 오늘도 용기를 냅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 교회)
잠수종과 나비
프랑스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는 ‘성공한 남성의 표본’으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즐겼습니다. 마흔셋에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화목한 가정과 화려한 인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1995년 갑작스레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전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됐습니다. 그에게 남은 희망의 끈이라고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꺼풀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왼쪽 눈꺼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언어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왼쪽 눈을 깜박거리는 횟수와 알파벳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했습니다. 말할 수 없었던 그는 하루에 반 페이지씩 눈꺼풀을 움직여 글을 써나갔습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20만번 넘게 왼쪽 눈꺼풀을 움직여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책 제목엔 자신의 몸은 잠수종에 갇힌 상태지만 자신의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롭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겉사람은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사람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미래의 괜찮은 나’ 만들기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극히 일상적인 것은 뇌가 잘 기억하지 않는답니다. 그러나 의미 있으면서도 감정을 자극하고 예측을 벗어나는 경험은 잘 기억한다고 합니다. 재밌는 것은 의미 부여나 감정 자극, 예측을 벗어난다는 판단은 각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점입니다. 같은 사건이나 상황도 어떤 사람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모든 시간이 소중합니다. 어떤 부분은 기억에 남고 또 어떤 부분은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지만 결국 현재의 시간과 경험이 우리 미래와 정체성을 만드는 재료가 될 것입니다. 학자들의 분석을 빌리면 우리 정체성은 모든 사건의 한 묶음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기억과 그것이 우리를 위해 골라주는 기억의 모임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기억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잘 다뤄야 합니다. 현재 내가 기억을 선택할 수 있건 없건 간에 현재 시간과 경험은 자신의 미래 기억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괜찮은 나와 만나게 될 것입니다.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 불행할 순 없습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은퇴, 교과서에서 사전으로
3월 첫 주간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제가 섬기는 기독교대한감리회는 3월부터 교회마다 장로은퇴찬하예배가 줄을 잇습니다. 은퇴예배 설교를 맡을 때마다 아직 은퇴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많이 고민합니다. 은퇴라는 단어는 은거(隱居)와 퇴직(退職)의 복합어입니다. 그러니 의미를 따지다 보면 자칫 속된 말로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라는 말로 들리게 될까 봐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저도 금언 하나를 전달합니다. 저도 은퇴하신 제 선배님에게 배웠고, 지금도 제 마음속에 계속 맴도는 금언입니다.
“은퇴는 교과서 같은 삶에서, 사전 같은 삶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교과서는 매일 복습하고 예습하면서 사용하는 책입니다. 반면 사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거나 매일 읽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막힌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요즘은 은퇴하는 분들이 너무 젊어 보여서 그런 면이 더합니다. 은퇴 이후의 아름다움은 교과서여서가 아니라 사전 같은 삶에 있습니다. 훌륭한 사전이 많이 나오고 그 사전들이 의미 있게 존중받고 쓰임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찬하"뜻 -두 손바닥을 마주 대어 손을 가슴에 모으고,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함.
내가 바라는 것은
모세가 아브라함에게 천 냥 빚을 졌습니다. 갚을 날이 코앞인데 돈이 없으니 큰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랍비를 찾아가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지금 정말 큰일 난 건 자네가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네.” 그렇지요. 생각해 보면 걱정할 사람은 빚쟁이입니다. 받을 돈을 못 받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랍비의 지혜는 뭘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진심이 통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바란다.”(호 6:6, 새번역) 호세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너무나 큰 죄악의 빚을 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무엇으로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몸이라도 불살라서 바쳐야 할까요.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포이에마
16세기 초 당시 20대 중반 미켈란젤로에게 조각상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작은 도시국가였던 피렌체가 용기와 도전정신이라는 국가적 정신을 담아낼 작품을 제작 의뢰한 것입니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1501년부터 4년간 그 유명한 다비드상을 만들었습니다. 인체 해부학에 기초한 유려한 몸의 곡선과 손등의 핏줄 및 근육의 섬세한 묘사에 대리석 작품이 맞느냐는 극찬이 쏟아졌고 이후 미켈란젤로는 거장의 반열에 들게 됩니다. 걸작을 만든 비결을 묻는 말에 그는 이런 답을 남깁니다. “나는 대리석에서 완벽한 다비드상을 보았고 꾸준하게 끌과 망치로 다비드상이 아닌 부분만을 없앴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만드신 바’라는 뜻의 헬라어는 포이에마입니다. 이 단어에서 시(poem·포임)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의 손에서 걸작품이 나오듯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시처럼 아름답고 생명력 있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오늘도 그런 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격려의 힘
밥 비먼이라는 멀리뛰기 선수가 올림픽 결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밥은 미국 대표였지만 메달을 딸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유력 금메달 후보였던 러시아의 이고르가 세운 기록은 밥이 그동안 한 번도 세워보지 못한 기록이었습니다.
긴장된 표정으로 1차 점프를 준비하던 밥에게 동료인 랄프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넌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어. 이제 망설이지 말고 힘껏 뛰어오르기만 하면 돼. 지금 너의 몸은 깃털처럼 가볍고 점프를 하는 순간 날아오를 거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힘껏 뛰어오르라고!”
랄프의 조언을 듣자 마음이 뜨거워지며 몸에서 힘이 솟아나는 게 느껴졌습니다. 랄프의 조언대로 최선을 다해 달린 밥은 8.9m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이 기록은 무려 23년 동안 깨지지 않았습니다.
진심을 담은 격려의 힘은 위대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관심과 격려가 볼품없는 제자들을 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시켰습니다.
날마다 격려해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람들을 격려로 세워가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이 함께하실 때 정말로 모든 것이 가능함을 믿게 하소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 축복의 말을 전해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설명할 수 없는 삶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정말 축복받은 인생’이라며 부러워했지만 청년은 세계여행을 다니던 중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고 그 후 자신이 꿈꾸던 삶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저택에서 아담한 집으로 이사해 차도 없이 살면서 대부분의 재산을 헌금했고, 그것도 모자라 복음의 황무지인 중동에 직접 복음을 전하고자 선교사가 됐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마침내 이집트에 도착한 청년은 사역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풍토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삶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명석한 두뇌에 백만장자였던 청년이 예수님을 만난 뒤 몇 년 만에 모든 것을 잃고 25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심한 뒤의 청년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 삶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덴이라는 청년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세상과 같은 방법, 세상과 같은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때로는 두렵고 떨릴 수도 있고, 때로는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매진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내 의지와 생각이 아닌 주님의 생각과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소서.
오직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내 인생을 살아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창조의 방식
미국에서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10대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이자 가정문제전문가인 에리카 코미사 박사는 이 문제의 원인을 ‘신앙심의 감소’로 꼽으며 부모가 무신론자라도 자녀들은 교회에 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1주일에 한 번이라도 교회에 나가는 자녀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 사명감이 높아지면서 정신건강에 유익
- 마약 복용 및 성적으로 타락할 확률이 낮아짐
- 자원봉사를 비롯한 이타심 상승
- 이혼이나 폭력과 같은 나쁜 환경을 이겨내도록 도와줌
-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봄
신앙은 단순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삶이 좋은 것들로 풍성해지고 참된 평안이 찾아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참 기쁨과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인정하십시오. 아멘!
주님! 모든 사람, 모든 연령대에 주님의 사랑이 필요함을 알게 하소서.
교회를 나오기 싫어하는 10대들에게도 포기하지 말고 복음을 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오직 은혜만이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약물중독자가 된 청년이 있었습니다.
중독을 이겨내려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음에도 벗어날 수 없었던 청년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숙자가 됐습니다. 의지했던 하나님이 오히려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청년은 그 분노를 교회와 성도들에게 돌렸습니다.
도저히 분을 참을 수 없었던 청년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부수고 불을 질렀습니다. 청년이 불을 지른 ‘아칸소중앙침례교회’는 1억 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지만 청년의 사정을 들은 성도들은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용서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청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동안 배우고 누린 신앙생활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은혜에 감화된 청년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재활프로그램에 등록했고 1년 뒤 중독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신이 불을 지른 교회에서 침례(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은혜의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 청년은 구원받지 못하고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 출신이며 우리 모두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한량이 없는 주님 은혜를 할 수 있는 한 베풀며 사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사랑과 은혜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은혜를 힘입어 용서하려 노력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말씀만이 가능하다
어느 교회의 성경공부 시간이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며 서로 변화된 삶을 나누는 시간에 한 남자가 자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삶을 고백했습니다.
“제 오른손을 봐주시겠습니까?”
남자의 오른손에는 약지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 재미로 도박에 빠졌습니다. 가산을 탕진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큰 빚까지 냈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집에 들어오니 엉망진창이 된 집안에서 아내가 울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해 주방으로 달려가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도박에 손을 댔습니다. 나 같은 구제불능 인간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자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정말로 살아계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치유해주십니다.”
‘술, 담배, 여자, 마약 등’ 세상의 잘못된 쾌락에 빠져 인생을 망치다가 주님을 통해 변화된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의 비어있는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사랑뿐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포기한다 하더라도 주님은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만은 저를 포기하지 않음을 어떤 상황에서도 잊지 않게 하소서.
극복해야 할 약점과 죄들을 주님께 맡김으로 이겨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인간의 본성
사형 직전에 목숨을 건졌지만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 한 소련의 작가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용소의 생활은 생지옥이었습니다. 작가는 수용소의 삶을 지켜보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 우리가 사는 곳이나 이곳이나 인간의 본성은 똑같구나.’
석방 뒤 ‘수용소 군도’를 집필한 솔제니친의 이야기입니다.
솔제니친은 소련의 참상을 책으로 냈다는 이유로 국외추방을 당했고 이후 평생 소련이 끔찍한 공산주의 국가가 된 원인을 분석했는데 최종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렸습니다.
“6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끔찍한 소련의 대혁명이 왜 일어났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
스탈린이 정권을 장악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폭파시키고 종교인들을 권력 아래 굴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단체 중 하나인 러시아 정교회가 무너지자 그리스도인들도 힘을 잃었고 그 결과 소련에 역사상 가장 처절한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철저히 죄성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빛을 만난 우리가 세상에 비추는 사명을 잊는다면 세상은 다시 죄라는 어둠으로 덮일 것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세상에 전파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사명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나의 연약함을 고백함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나님께 맞추라
예부터 제주도는 1년 내내 바람이 강하게 불어 집을 지을 때 튼튼한 담을 쌓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주도의 돌담집들을 보면 그냥 길가의 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엉성합니다. 보기에는 너무도 엉성한 담이라 바람을 막아낼 수 있을까 싶지만 태풍 같은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팁니다. 돌을 쌓을 때 심혈을 기울여 아구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맞물린 돌담은 그저 쌓기만 해도 태풍도 버텨낼 정도로 강한 담이 됩니다.
비슷한 원리로 ‘그렝이질’이라는 건축양식이 있습니다.
고궁이나 가옥을 지을 때는 반드시 주춧돌을 놓는데 예전에는 돌을 연마하는 기술이 없어 자연상태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돌을 가져다 세웠습니다.
연마되지 않은 주춧돌에 기둥을 세우는 방식은 단 하나, 기둥의 표면을 주춧돌 표면에 맞게 깎는 것뿐입니다.
주춧돌에 꼭 맞게 그렝이질이 된 기둥은 그 어떤 매듭이나 접착제 없이도 흔들리지 않고 건물 전체를 지탱해줍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내 인생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나의 바람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에 내 삶을 맞추십시오. 아멘!
주님! 내 뜻과 의지를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고 순종하게 하소서.
완전한 주님의 방식에 나의 삶을 맞춥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부인할 수 없는 이유
소련에 혁명이 일어나 공산당이 장악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기독교가 법으로 금지되었던 때였지만 자부르스키라는 악명높은 군인은 오히려 이때 예수님을 만나 변화됐습니다. 발각되면 처형될 위기에서도 자부르스키는 사람들에게 몰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관이 그를 사무실로 끌고 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이미 알려졌네. 이대로라면 수용소에서 평생을 보내던가 총살형이야. 하지만 이 서류에 사인을 하고 신앙을 포기한다면 오히려 승진을 시켜주겠네.”
자부르스키가 거부하자 상관은 주머니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 보여줬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같은 제안을 했더니 십자가 목걸이를 벗어 던지고 서류에 사인을 했네. 자네는 뭐가 아쉬워서 포기를 않는건가?”
“목걸이를 벗을 수는 있지만 제 마음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제 마음에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자부르스키는 결국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삶의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습니다.
복음을 믿고 영접한 순간부터 예수님은 항상 내 마음에 계시며 떠나지 않으십니다. 태초부터 한 번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주님을 작은 고난 때문에 부인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온 세상에 가득한 주님의 사랑을 제 마음에도 가득 채우소서.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항상 모십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목숨보다 소중한 것
프로이센의 국왕 프레드릭 1세는 훗날 ‘대제’로 불릴 만큼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프레드릭 1세는 기독교를 병적으로 싫어했는데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서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프레드릭 1세 밑에는 기독교인이 많았지만 왕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대부분 아무 말도 못 하고 웃음으로 비위를 맞추었습니다.
어느 날 출정을 떠났던 장군들을 위로하는 연회에서 프레드릭 1세가 다시 한번 예수님을 대상으로 수준 낮은 농담을 던졌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왕의 말에 웃고 있던 찰나 프로이센의 총사령관인 폰 질란트 장군이 나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폐하의 명을 받들어 수많은 전장에서 세운 공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는 폐하를 위해 38번이나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견딜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제 영혼의 구세주 그리스도가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제 말이 심기에 거슬리신다면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다만 왕의 장군이 아닌 그리스도의 제자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저는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질란트 장군의 진심을 느낀 프레드릭 1세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했고, 이후로 다시는 하나님과 기독교인들을 모욕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수치를 감당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지 말고 당당히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감으로 화답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과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으로 인도하소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주님을 나도 당당하게 섬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성령의 바람
• 성령의 바람 = 기도의 불씨를 살리는 하나님의 숨결같은 바람
• 세상의 바람 = 기도의 불씨를 꺼뜨리는 의심, 원망, 불평, 교만의 바람
바람은 동시에 불어옵니다.
그 바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날려 버리려는 것처럼 불어옵니다.
기도했는데 정작 불어오는 바람은 기도의 불씨를 꺼뜨리려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 때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기도의 불씨를 살리는 성령의 바람으로 바꿀지, 반대로 바람에 날아갈지는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신앙)의 눈을 뜨게되면 나와 바람 사이에 계시는 예수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바람을 막아주고 계실때 우리는 기도의 불씨를 살려서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기도의 불씨가 작으면 작은 바람에도 쉽게 꺼지고 맙니다. 하지만 기도의 불씨를 살려 활활 타오르게 된다면 기도를 꺼뜨리려는 바람조차도 오히려 우리의 기도의 불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는 성령의 바람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에베소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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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크리스찬
예전에는 무릎으로 사는 크리스찬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엉덩이로 사는 크리스찬이 대부분 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활 양식이 변하고 교회 내에서도 의자 문화가 필수가 된 요즘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기도모임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때에도 의자가 놓여진 본당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문화는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솔직히 아쉽습니다.
'무릎으로 산다'는 말은 신앙의 자세라고도 하지만, 원래 표현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속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크리스찬의 모습을 본뜬 말입니다.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은 단순히 보여지는 모습뿐만이 아니라 무릎을 꿇을 때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단정해지고 절대자 앞에서 겸손한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릎을 꿇으면 신기하게도 마음까지 겸손해 집니다.
이것은 행위적 자세가 동기적 자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만큼 눈에 보이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개인적으로 기도할때 소파나 의자에서 잠시 내려와 무릎한번 꿇어 보세요.^^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편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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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같은 리더
오늘은 짧은 동화 하나를 창작해 보았습니다.
바늘, 실, 노끈, 밧줄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주인은 이 넷중에 바늘을 리더로 세웠습니다.
어느날 바늘이 없는 곳에서 실이 말을 했습니다.
‘얘들아, 솔직히 우리 중에서 가장 짧고 하는 일 없는 것 같은 바늘이 우리의 리더라는게 웃기지 않니?’
그러자 노끈이 말을 했습니다.
‘응, 나도 평소에 그런 생각을 좀 했어. 우리는 항상 온 힘을 다해서 무언가를 묶고 있는데, 바늘은 평상시에는 놀고 있잖아?’
밧줄도 말을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새로운 리더를 뽑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실, 노끈, 밧줄은 바늘을 몰아내고 새로운 리더를 뽑기로 했습니다.
가장 힘이 센 굵고 튼튼한 밧줄이 새로운 리더를 하기로 했고, 자신들의 주인에게도 이제부터 우리의 리더는 바늘이 아닌 밧줄이 하기로 했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주인은 이들을 설득했지만, 셋의 결정이 너무 완강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주인은 이 넷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실, 노끈, 밧줄을 이용해서 여행중 찢어진 옷을 수선하고, 짐을 묶고, 냇물도 건넜습니다.
여행중, 사람이 살지않는 어느 숲속 방에서 잠게 되었는데 창문도 없고 벽으로만 되어 있는 방이었습니다. 주인은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에 들었고 자고 있는중에 집에 불이 났습니다.
시커먼 연기가 방안으로 들어와 앞은 보이지 않고, 주인은 연기에 질식되어 갔습니다.
숲속 멀리 밖에서는 사람들이 저 집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니 사람을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불이난 집안에서 밧줄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해야할텐데 어떻게하지?’
‘그런데 문밖에는 불이 너무 거세서 나갈 수 가 없고, 창문도 없잖아’
‘어? 저쪽 벽에 작은 구멍이 있어. 리더인 밧줄아 니가 저 구멍으로 나가봐’
밧줄은 구멍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너무 굵어서 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노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가는 실이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실은 혼자서는 너무 힘이 없어서 구멍을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바늘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내 몸에 실을 묶어볼래? 그리고 실을 노끈이 붙잡고, 밧줄은 주인을 감싸고 노끈을 꼭 붙잡아’
그렇게 바늘이 실을 묶고 구멍을 빠져 나갔습니다. 바늘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쪽에 자신들의 주인이 쓰러져 있다고 말을 했고, 사람들은 벽을 부수고, 실과 노끈과 밧줄을 잡아당겨 주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후로 실, 노끈, 밧줄은 다시 바늘을 리더로 세워주고 주인과 함께 전보다 더 행복한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런 경험 있지 않으십니까?
겉으로 약해 보이거나 부족해 보이는 리더의 모습으로 불만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늘은 제가 결론은 짓지 않고 열린 결론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니라 하신지라...고린도후서 12: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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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자폐아
‘세계 자폐인의 날’에 한 방송사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자폐아 부모가 겪는 스트레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과 같다고 합니다. 한 자폐아의 어머니는 그 고통을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벽에 매일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폐 아들의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여섯 살 아이가 작은 소리로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엄마의 눈에선 눈물이 터져 나오더니 어머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나, 오늘 엄마란 말을 생전 처음 들어봤어요.” 어머니의 고백에 주위에 있던 모든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인간은 영적 자폐아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공간에 있어도 영적 소통이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죄인들 때문에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의 입에서 터져 나온 기도의 첫마디를 기억합시다. “아버지.” 그 말이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감동하게 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오늘도 마음을 다해 불러봅시다. “아빠, 아버지.”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1986년 강원도 민간인 통제소에 걸쳐 있는 최전방 육군 사단 훈련소. 6주 동안의 훈련소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훈련 4주 차엔 야외 교장에서 훈련을 받고 훈련소로 돌아가게 되는데 해는 저물고 배는 고프고 집 생각이 간절합니다. 훈련소 동기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다가 탈영을 결심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훈련소로 들어가는 마지막 커브 길에서 몸을 날려 논두렁으로 떨어질 생각이었습니다. 몸을 던지려는 순간, 내무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고했다, 다 왔으니 조금만 참아라. 오늘 훈련소로 들어가면 건빵을 나눠 줄 것이다.” 탈영을 결심했던 동기는 이 말을 듣고 탈영을 하루 미루기로 합니다. 건빵은 그날부터 이틀에 한 번씩 지급됐습니다. 탈영 생각을 하다가도 하루 참으면 건빵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건빵에 소망을 둔 동기는 건빵 먹을 생각에 탈영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엔 건강하게 만기 제대했습니다. 부대를 떠나던 날, 동기는 마지막으로 관물대에 건빵을 올려놓고 “충성” 하며 경례했습니다. 그 동기에게 건빵은 군대 생활을 지켜주는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짬뽕에서 얻는 지혜
한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 중 짬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짬뽕이라는 음식은 독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이렇게 세 나라와 관련이 있습니다. 중국 산둥성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이주해 ‘초마면’을 팔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게 변형되면서 짬뽕이 됐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중국요리의 하나로 돼 있고 짬뽕이란 단어는 실제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묘하게 이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메뉴가 됐습니다.
음식 하나에 담긴 사연이 참 복잡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역사가 그렇습니다. 어느 한 가지 요인에 의해 이뤄지는 법이 없고 여러 요인이 특정 상황에 의해 뒤섞여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이 되고 그 나라의 역사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에 나타나는 여러 요인을 너무 복잡하다고 어려워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현실이고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요인들에 끌려가지 말고 적극적인 입장에서 지혜롭게 다루면 좋은 길을 여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2·29 프러포즈
내일은 2월 29일입니다. 4년에 한 번 있는 날인데 공교롭게도 올림픽이 있는 해에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1년을 아주 정확하게 계산하면 365.2422일입니다. 0.2422일이 4번 모이면 1이 되기 때문에 4년에 한 번씩 하루를 더하는데, 가장 날 수가 적은 2월에 갖다 붙인 것이 바로 2월 29일입니다. 윤일(閏日), 즉 덧붙은 날입니다.
4년에 한 번씩만 있다고 모두가 환영하는 날은 아닙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생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요즘 산모들은 2월 29일을 기피하기에 출산율이 유독 낮은 날이기도 합니다. 직장인에게도 좋은 날은 아닙니다. 하루를 더 일해도 월급이 늘어나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슬픈 이들은 군인과 재소자입니다. 정말 하루가 여삼추 같은 이들이죠.
아일랜드에서는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면서 2월 29일을 성 오스왈드의 날로 정했는데, 이날은 여성이 남성에게 프러포즈하면 무조건 승낙해야 한다고 합니다. 결혼이 드문 시대인데 이런 복에 도전하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하루 더 누릴 수 있으니 어쨌거나 감사한 날입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예’ 할 때와 ‘아니오’ 할 때
푸른색을 초록색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 말할까요. 누구나 ‘아니오’라고 말하겠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초록색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땐 많은 사람이 ‘예’라고 말한답니다. 대세를 따르는 게 편하고 실제로 초록색으로 보이기까지 한답니다.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것도 그런 심리 때문이겠지요.
“너희는 ‘예’ 할 때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마 5:37, 새번역) 그리스도인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와 아니오를 분별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과거 로마는 황제를 신으로 선포했습니다. 온갖 술사와 점쟁이들이 아첨하며 혹세무민하고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도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라고 말하면 살고 ‘아니오’라고 말하면 죽는데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그때 그리스도인은 ‘아니오’라고 말했습니다. 단호히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기꺼이 십자가의 길로 갔습니다. 3·1절이 다가옵니다. 일제의 억압에 ‘아니오’라 하며 일어섰던 순교자들의 믿음을 떠올려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천 개의 생명
루비 켄드릭 선교사는 1907년 9월, 24살의 나이로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송도(개성)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아픈 아이들을 간호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 온 지 불과 9개월 만에 급성 맹장염으로 쓰러진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맙니다. 꽃다운 나이, 주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그 먼 태평양을 건너왔는데 제대로 된 사역도 못 해보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죽기 전 부모님께 보낸 편지 일부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조선 땅에는 많은 꽃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양화진에 있는 켄드릭 선교사의 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만일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그는 대단한 사역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한 알의 밀알처럼 죽어간 선교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생명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주께 하듯 하라
아주 사소한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 경영컨설턴트이자 학자인 왕중추는 저서 ‘디테일의 힘’에서 중국의 한 냉동 새우 회사를 소개합니다.
저장성에서 냉동 새우를 판매하는 회사가 유럽의 수입업체로부터 수입을 거부당했는데 손해배상까지 청구 당했다고 합니다. 새우에서 발견되는 항생물질 클로람페니콜 0.2g 때문이었습니다. 총수출량의 50억분의 1에 불과한 양이었습니다. 중국 측은 인체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미량이므로 이는 중국에 대한 무역장벽을 만들기 위한 공격이라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수입업체 측에서는 중국업체들의 수준이 낮아서 생긴 일이라며 신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클로람페니콜이 검출되게 된 원인은 새우껍질을 벗기는 직원이 습진 때문에 손에 바른 소독약에 있었습니다. 0.2g이 국가 분쟁으로 번질 뻔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모든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