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조대 정자에 앉아 하륜과 조선 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정병경.
ㅡ역사는 흥망성쇄의 반복이다ㅡ
조선왕조는 고려 말기의 무인 출신 이성계가 세운 나라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기세 등등하게 출발한 조선(1392~1910)은 518년의 역사를 이룬 후 끝을 맺는다. 왕조시대의 막을 내리면서 제26대 고종이 1907년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한다. 연호를 융희隆熙 원년으로 정한다.
아들 순종이 이어받지만 파란을 겪는다. 4년만에 27대에서 막을 내리고 일제의 속국이 된다. 단군께 뵐 면목이 없다.
합구필분合久必分 분구필합分久必合은 삼국지의 고사성어이다. 합쳐진 지 오래면 필히 나누어지고,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진다는 의미이다.
우리 땅에는 단군 왕검으로부터 역사를 이어오면서 많은 부족이 탄생하고 소멸된다. 치治와 란亂은 자연의 이치로 여긴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대국의 침략 방어에 전력을 쏟는다. 전쟁을 겪다보니 국가나 백성은 지친 상태이다. 호시탐탐 넘보다가 세력이 약한 모습만 보이면 서슴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설상가상 봉기나 내분으로 스스로 무너져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호족 세력으로 세워진 고려는 태조 왕건을 중심에 두고 출범한다. 태봉국 궁예의 부하로써 후백제 견훤을 견제한 왕건이다. 민심을 잃어가는 궁예보다 백성으로부터 신뢰가 두터운 왕건은 왕좌 자리를 굳히게 된다. 877년에 태어난 왕건은 조상의 업적이 알려지지 않아 기반조차 없다. 왕건이 죽은 이후 왕자들의 투쟁으로 이어져 말기에는 난세를 극복하지 못한다.
정몽주가 이방원의 수하인 조영규에게 제거되면서 조선 개국이 급물살을 탄다. 제34대 공양왕을 끝으로 고려(877~1392)는 515년간의 막이 내려진다. 공양왕은 제 20대 신종의 6세손 정원부원군과 왕씨 사이에서 태어나 정창군에 봉해진다. 45세인 공양왕을 이성계를 비롯한 9명의 핵심 인물들이 꼭두각시로 앉힌다. 조준도 이에 가담한다. 이때 하륜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성계의 정치 참모인 조준은 소신이 분명한 사람이다. 조민수를 탄핵해 유배까지 보내게 한 조준은 리더십을 지닌 인물이다. 제 32대 우왕과 아들인 제 33대 창왕을 옹립하다 이숭인, 하륜, 권근도 유배를 가게된다. 이들은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누어진다. 지용기와 설장수, 정몽주는 기회를 엿본 후 개혁하자는 온건파이다. 서둘러 새 왕조를 세우자는 급진파는 이성계와 조준, 정도전, 박위 등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조선도 최후의 날을 맞게된다. 역지사지이다. 개미 구멍에 방죽이 터지게 마련이다(堤潰蟻穴). 내분으로 인해 나라가 없어지고 만다. 조상이 세운 왕조를 지키지 못해 언어마저도 사라진다. 스스로 나라를 바친 어처구니 없는 처사이다.
ㅡ만남의 인연ㅡ
하륜과 조준이 함께 만난 역사의 현장인 하조대로 향한다. 하륜의 후손과 함께 나선다. 계절은 여름 문턱이다. 강원도 양양은 고속도로 덕분에 당일에도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 바다는 가슴을 열어주는 치유제이다. 동해안은 수심이 깊고 검푸르며 파도가 일어날 때는 장관이다. 양양의 명승지로 알려진 하조대는 자연이 선물한 문화유산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밀담 장소로 제격이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지만 정승 둘이 만나면 산새도 못 듣는다. 바위에 부딪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에 이야기를 담는다. 소리꾼도 한 곡조 읊을 만한 누대樓臺이다.
하조대는 조선 개국공신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의 성을 따서 지은 정자이다. 두 선비느 한 살 터울로 서로 생각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관계이다. 육각정이 세워진 배경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혁명 이전에 만난 장소이거나 개국 이후에 함께 한 자리이다. 나라를 잃었을 때 누군가는 하조대에서 선대에게 부끄러워하며 슬퍼하기도 했을 것이다.
조선 정조 때 건립 후 해체 복원을 반복한 하조대 정자는 아직도 건재하다. 바위에 새겨진 河趙臺는 조선 숙종 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이세근李世瑾(1664~1735)의 글이다. 바위 위에 우뚝선 보호수 천년송의 수령은 추측하기 어렵지만 긴 세월 동안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선비의 기개가 스며있다. 두 정승의 대화가 바위를 스치며 바람따라 사라지고 흔적이 없다. 감시 카메라가 흔한 시대로 변해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쉽게도 무인등대로 가는 길은 데크 공사 중이어서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조대 일대는 기암괴석과 거목이 어울어져 해를 거듭할수록 분위기를 더한다. 명당 터에서 두 선비가 함께 만나 주고받은 대화가 궁금하다. 천년 전 바람에 실려간 일화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