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종
이사야 42:1-8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서 40장 이하는 메시야에 대한 너무나 많은 예언이 담겨 있어서 첫 번째 복음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신약의 4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구약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정확하고 풍성하게 알려주는 책은 4복음서가 있기 전 대략 720-750년 전에 쓰인 이사야서입니다.
그곳에는 메시야에 대한 정보가 풍성하게 담겨 있습니다. 어디서 오실 것인지, 어떤 모습이실지, 무엇을 하실지 등, 정확한 정보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이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650년 이상 전에 주어진 것이니, 참으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신 것이 분명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성령으로 감동하여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42장은 이사야 41장의 고레스와 맞물리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주인공이신 메시야를 소개합니다. 그 메시야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바벨론 제국의 포로에서 구원하는 그런 정치적 개념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어김으로 영원한 형벌에 처한 인류 중에 택함 받은 자들을 열방 중에 불러내어 십자가의 속량으로 죄사함을 허락하시고 나아가 완전한 의를 전가하여 주심으로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메시야는 고난 받는 종으로 불립니다. 그 메시야에 대해 이사야 후반부는 네 개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그 노래 제목은 “종의 노래”이고, 이 노래를 통해 구약의 주의 백성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바르게 알고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그 네 개의 종의 노래는 이사야 42장, 49장, 50장, 그리고 52-53장에 실려 있습니다.
이 네 개의 ‘종의 노래’를 정리해 놓으면 메시야의 모습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종은 여호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러 오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아픈 자를 치료하고 상한 자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신비는 이 종은 하나님께 반역한 언약 백성을 대신하여 공의로운 율법에 따라 저주의 형벌을 받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그 종이 불순종하고 반역했던 주의 백성을 대신하여 율법이 정한 저주와 형벌을 받으심으로 주의 백성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구원은 율법의 저주와 죄와 마귀와 부패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고, 나아가 영생과 성령과 하나님 나라를 받는 구원입니다.
오늘 이사야 42장은 41장에서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고레스가 예표하는 실재 구원자를 소개합니다. 즉,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율법의 저주와 죄와 마귀와 세상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택하시는 종을 묘사합니다.
먼저, 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사실, 원어로 보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전할 때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보라’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Behold! 히브리어로는 (헨!)입니다.
“보라,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꼭 드는 내가 택한 자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미스파츠), 즉 정의를 베풀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 사람에 대해서는 다윗의 그 씨로 오는 왕으로서 이미 이사야 11장에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사 11:2, 4-5)
신약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이사야 42장 1절의 묘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3:16-17)
특히 마태복음 12장 18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사야 42장 1절이 말하는 바로 그 분이라고 명시합니다.
[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15 예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마 12:14-18)
우리는 예수께서 친히 자기 자신에 대해 이사야 42장 1절에서 4절을 인용한 사실에서 우리의 본문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임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 말씀을 주께서 인용하신 때의 배경이 중요한데,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배교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남은 자들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남은 자들 중의 남은 자요, 모든 남은 자들의 머리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율법주의자들로서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자기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자기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죽이고자 합니다. 그들은 율법의 목적을 망각하고 도리어 율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합니다.
특히 마태복음 12장의 구체적인 배경은,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배고픈 주의 제자들이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을 두고 예수님이 율법을 어겼다며 예수님을 범법자로 몰아가는 장면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여 온전하게 한 사건을 두고도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고,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 12:6-7)고 하시고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요, 그 분 안에서 주의 참된 백성은 자비와 선행을 베풀게 된다고 답변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복음을 그들 바리새인들에게 전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주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신지, 그리고 자신이 행하실 구원에 대해 분명하게 선포하자 바리새인들은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것은 어둠이 교만한 자기 의를 드러내며 율법의 창시자인 참 빛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대답이 이사야 42장 1-4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즉, 나는 이사야 42장이 예언한 그 메시야로서, 그곳에 기록된 메시야에 대한 역할 및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사야 42장에서 묘사된 메시야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메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붙드는 그분의 종”입니다. 종은 히브리어로 (아바드)인데 보내시는 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를 말합니다. 즉, 주인의 명을 따르는 자를 뜻합니다. 이 종은 일차적으로는, 주의 징계로 바벨론 포로로 있는 주의 백성을 해방 시켜주는 바사의 고레스 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실패하지 않고 반드시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종의 궁극적인 실재는 주의 백성을 죄와 율법의 저주와 마귀와 세상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를 붙들어 주시는 분은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그 종은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그는 반드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 내실 것입니다.
둘째는, 메시야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뻐하시는 자요, 주께서 택한 사람입니다. 사실 그분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며, 친히 삼위 하나님 사이의 구속 언약에 따라 사람이 되셔서 자기 백성의 죗값을 십자가에서 치르기로 하신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신 독생하신 하나님으로서 주 하나님의 기쁨이며, 창세 전부터 이 사명을 위해 택함을 받은 자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분입니까! 하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시더라도 둘째 아담으로서 자기 백성의 죗값을 치러야 하십니다. 즉, 흠 없는 어린양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셋째는, 아버지께서는 자기 영을 그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주의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을 통해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며 지혜와 능력과 용기와 충성과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심지어 그가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에도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받으셨습니다. 또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가르치실 때에도 성령의 한량없는 충만함 가운데 하셨습니다. 즉, 우리 주 예수님은 잉태하시는 그 순간부터 십자가에서 호흡을 마치시기까지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여호와의 영으로 한량없이 충만하셨습니다.
[
31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요 3:31-34)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자기 백성의 구원 사역을 실패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은 위격 안에서 친히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아가 사람이신 그리스도로서도 성령이 무한하게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메시야의 사역은 실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아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사명은 한없이 무겁고 그 어떤 사람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무한한 권능의 오른 팔로 그를 붙들어 주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모든 권능을 베푸시니 우리 예수님은 능히 메시야의 구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표현이 이사야 후반부에서 거의 이스라엘 백성을 표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42장, 49장, 50장, 52장, 53장에서 “여호와의 종”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다섯 장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이사야 63장부터 66장까지는 메시야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한 주의 백성을 주의 ‘종들’이라는 복수로 표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메시야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불리면서 주의 백성과 일체가 되신 머리입니다.
그리고 지난 41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의 종”인 의로운 한 사람 메시야로 “내가 택한 야곱”, 즉 “나의 종 너 이스라엘”을 “의로 불러”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만들었습니다(참조, 사 41:8; 사 42:6). 하나님의 뜻에 따라 메시야로 인해 의롭게 된 이스라엘은 구약에서는 하나의 민족과 국가로서 온 세상 나라들을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었어야 합니다. 즉, 그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대로 온 세상 나라들을 향해 빛이 되어야 했고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도구가 되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의 언약을 완전하게 지킬 메시야를 보내실 것입니다. 그 의로운 한 사람 메시야는 이방에 정의를 베풀 것입니다. 산헤립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이 땅에 오신 메시야는 주의 백성을 박해하고 멸절하려는 원수들을 향해 심판하시고, 열방에 흩어져 있는 주의 충실한 남은 자들을 찾아 모아 구원하심으로 온 세상을 향해 정의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은 구언약 때에 이스라엘이 이루었어야 할 사명을 친히 감당해 내실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완전하게 순종하실 것이고 하나님과 철저하게 동행하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불순종에 대한 죗값을 친히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나아가 주의 성령을 부으심으로 자기 백성이 죄의 세력에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42장에 등장하는 주의 종 메시야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 백성을 통해 죄 많은 이 세상을 마침내 구원하셔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는 것이 주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인 새하늘과 새땅인 것입니다.
이처럼 전 우주적인 어마어마한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1절에 해당하는 분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그리고 마태가 인용한 이사야 42장에 대한 사도 마태의 해석에 따르면 주께서 심판하여 이기실 때까지는, 즉 정의 또는 심판이 완전하게 임하기 전까지는, 이방들이 메시야의 이름을 바랄 것입니다. 즉, 모든 열방으로부터 주의 백성이 하늘의 시온으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 42장 4절에 언급된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는 내용에 정확한 의미를 알려주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주의 참된 백성이 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특이한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특징이 2-4절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사 42:2-4)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한 성취가 이미 확인한 것처럼 신약 성경 마태복음 12장에 실려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 문맥을 보면,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더라”(마 12:15-16)
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실 때 어떤 자세를 취하셨는지를 뚜렷하게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자세에 대해 사도 마태는 이사야 42장 1-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어떤 자세를 취하셨습니까?
첫째는,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합니다.” 즉, 여호와의 종 메시야는 시끄럽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에게 자기를 알리려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위협하며 고함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자기를 크게 보이려고 “소리를 크게 들리게 하려고” 의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온유하고 조용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는 선동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선동’은 세상 마귀가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 방법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감동시키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께서는 복음 사역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리새인의 방해가 있을 때는 늘 피신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약해서 피신하셨겠습니까? 복음 전파 및 하나님 나라 확장은 세상 권세와 힘 겨루기를 하여 싸워 이겨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간혹 부패한 교회들과 목사 중에는 세상 사람들과 돈과 권력과 명예와 인기에 있어서 싸워 이겨야 복음을 전하고 주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방법도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로마 병정을 보면 늘 피신했습니다. 때가 이를 때까지 예수님은 세상과 부딪히지 않고 조용히 복음을 위해 피신하며 옮겨 다니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과 논쟁하거나 다투지 않으셨습니다. 큰 소리로 소란스럽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조용히 진행시켜 나갈 뿐이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수고하실 뿐이었습니다.
지금 이런 메시야의 모습에 대한 간단한 묘사는 세상의 지도자들과 왕들과 정확하게 비교되는 묘사입니다. 이러한 메시야의 자세는 제자들을 향한 메시야의 교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5-28)
세상에서 왕이나 지도자가 되는 방법은 시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언론을 동원하고 군중을 선동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가장 높은 사람처럼 보이고 가장 힘있어 보이고 가장 실력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거리’ 또는 ‘광장’에서는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큰 소리로 말합니다. 사람들의 갈채와 박수와 인정을 끝없이 요구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이끌림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을 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거짓말을 보태며 허위 경력을 말하고, 자신을 늘 크게 보이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우리의 영광에 방해가 되면 비난과 수군거림으로 그 상대를 제거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런 모습을 위선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4-7)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성도들 역시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배우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문제가 아닌 한 모든 사람과 화목과 평화를 추구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납거나 교만하거나 흘기는 눈을 하거나 위협하거나 남을 멸시하는 자세를 지닌 적이 없으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느라 외치거나 투덜거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조용히 복음을 전하며 말과 행실로 사랑과 진리의 향기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문제, 즉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위기에 놓일 때는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 21:12-13).
복음을 가리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진리를 밝히시며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은 항상 인내와 은혜와 평강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성품 중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겸손과 온유입니다. 겸손은 2절에서 묘사된 것처럼 자기를 높이려고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도리어 가장 낮은 자리로 자원하여 내려가 주의 나라를 위해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온유는 본문 3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사 42:3).
온유는 세상적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을 향해 따뜻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성경 표현으로 하면 세상적 기준인 “외모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자비와 관용함으로 연약한 자를 대하십니다.
갈대는 습지 또는 도랑 둑에서 자라납니다. 갈대는 연약하기에 약한 바람만 불어도 흔들거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약한 갈대가 농부의 장화에 짓밟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반쯤 구겨져 아래를 향해 있거나 진흙에 처박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 비참한 모습의 사람이 상한 갈대입니다. 원래 세상에서 연약한데, 돈도 없고, 명예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았고, 권력도 없고, 그저 한끼 먹고 살며 누추한 작은 방에서 살아가는 갈대 같은 인생인데 힘센 사람들에게 짓밟힌 상태에 있는 비천하고 슬픈 사람이 상한 갈대입니다. 세상의 풍랑에 허리가 꺾인 연약한 갈대가 상한 갈대입니다. 병에 걸려 연약해진 사람이 상한 갈대입니다.
심지어 상한 갈대는 정신적으로 피해 의식이 강하고 심지어 죄책으로 자신감을 잃은 영혼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용도에도 사용하기 곤란한 사람이 상한 갈대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 상한 갈대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유하신 그리스도는 아무런 쓸모 없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오셔서 붕대로 싸매시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심지어 버팀목으로 그 갈대를 세우신 후 주의 나라를 위해 영광스럽게 사용하십니다.
마음이 상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고 패배 의식으로 가득한 사람들! 우리 주 예수님은 그들을 붙들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은 그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주님은 주의 나라에 그 연약한 상한 갈대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 눈에는 세상에서 잘난 자들보다 상한 갈대가 보입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것이 메시야의 마음이며 우리 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6-29)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상한 갈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주께서 찾아오셔서 일으켜 세우시고 주의 나라를 위해 영광스럽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온유하신 분입니까? 혹시 지금 ‘상한 갈대’인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또한 메시야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등불은 정확하게 등불의 ‘심지’를 말합니다. 양초도 보면 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양초가 거의 다 타면 마지막으로 심지가 꺼질까 말까 합니다. 영어로 flickering 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등불을 사용할 때도 등불의 기름이 다 타고 거의 없어지면 등불이 깜박거렸습니다. 이는 마치 마지막 호흡을 하며 죽어가는 환자의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어쩌면 강도를 만난 사람처럼 모든 것을 다 잃고 피를 많이 흘려 누군가 돕지 아니하면 곧 숨을 거둘 수 밖에 없는 그런 형편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온유하신 우리 주님은 그러한 자들을 보고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마리아 사람으로 등장시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
30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 10:30-37)
이것이 온유입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살려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꺼져 가는 심지와 등불에 기름과 생명을 더하여 주십니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엘리사와 엘리야를 통해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도록 두지 아니하시고 빛과 연료를 주시며 살려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낸 등불을 통해 온 마을에 빛을 주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
10 엘리야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
11 …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이르되당신의하나님여호와께서살아계심을두고맹세하노니나는떡이없고다만통에가루한움큼과병에기름조금뿐이라내가나뭇가지둘을주워다가나와내아들을위하여음식을만들어먹고그후에함께죽고자하노라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왕상 17:10-16)
[
1 엘리사의 제자 중 한 사람의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노예로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엘리사가 이르되 …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많이 빌리라.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왕하 4:1-7)
이것이 여호와의 온유이고, 메시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온유의 결정체입니다. 그분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새로운 힘과 공급과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 상한 갈대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께서 찾아오셔서 용서하여 주시고 누군가를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고 누군가를 버팀목으로 사용하여 우리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사람에게 예수님처럼 온유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연약한 그리스도인에게, 나아가 세상의 낙오자들, 실패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는 그런 마음이 메시야 우리 예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요,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으로 거듭나 주의 생명을 받은 후 그런 온유한 마음을 배워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머리로 계시는 참된 교회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등불이라면 삶을 포기하지 마시고 그리스도 예수께 나아오기 바랍니다. 또한 그분이 머리로 계시는 교회를 찾아가기 바랍니다. 주께서는 반드시 그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셔서 주의 나라를 위해 위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죄와 사탄과 세상의 유혹에 패배한 영혼은 더욱 그리스도께 나아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지체로부터 도움과 위로를 받고, 머리 되신 예수님께로부터 성령의 전능하신 도우심과 하늘의 능력과 기쁨과 평강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요, 강단에서 흘러 넘치는 복음입니다. 그 누구도 메시야에 대한 복음으로 일어서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마귀에게 패배함으로 상한 갈대가 되고 꺼져가는 등불이 되었더라도 참 마음으로 회개하고 더욱 주 예수께 나아오면 다시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여지고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주의 명령에 따라 세상에서 낙오된 자들을 멸시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위로해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6-18)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
또한 3절을 보니 메시야는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1절에서도 벌써 메시야는 ‘정의’를 베풀 것이라고 했습니다. 4절을 보아도 그는 “세상에 정의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로 보건대, 메시야의 특징은 ‘정의’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정의는 하나님의 공평의 원칙입니다. 정의는 공의에 따른 하나님 나라를 운영하는 원칙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으로서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억울한 일을 당한 신자들을 신원하여 주셔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반면, 교만하며 남의 것을 착취한 자에게서는 그들이 속여 빼앗은 모든 것을 다 토해내게 만드실 것입니다. 이것이 정의입니다.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박해 당하는 남은 자들에 대한 정의의 날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사 30:18-19).
메시야를 통해 만나는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시행하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사 33:5).
메시야께서 세우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정의와 공의입니다.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사 16:5).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사 32:16-18).
인생을 살다가 억울함을 느끼십니까?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바랍니다. 주의 나라 안으로 들어오기 바랍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모든 억울함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주 앞에는 완전하고 영원한 정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선한 일과 거룩한 삶과 사랑하는 삶을 멈추지 않기 바랍니다. 이는 하나님은 참으로 정의롭고 공평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7-9)
정의로우신 우리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우리 중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한 위선된 신앙 생활 및 세상의 유혹을 따른 삶을 헛수고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가장 정확한 정의로운 판단이며 그 효력은 영원합니다. 그분의 심판과 판단은 모든 개인 및 각 나라에 정의에 따라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탐욕을 위해 살아간 자들은 지옥을 맛보다가 불못으로 떨어질 것이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과 거룩함으로 살아간 자들은 천국을 맛보다가 새하늘과 새땅을 기업으로 얻어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공의와 정의 앞에 온 세상은 입을 다물고 오직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선하고 아름다우신 주 여호와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기 바랍니다. 죄 많은 우리 인생을, 상한 갈대와 같은 우리를,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대신 죗값을 치르시고 또한 의를 이루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게 하시고, 나아가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곳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이에 이십사 장로들과 보좌 앞 생물들과 만군의 천사들이 외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지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옵나이다”(참조, 계 4:8-11)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참조, 계 5:8-14)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역시 오직 주 여호와와 그분의 그리스도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시는 영광스런 주의 백성과 권속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