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효사랑방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영상시와 좋은글。 스크랩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풀잎 추천 0 조회 15 14.09.30 16: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 시집『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작은숲,2014)

..........................................................................................

 

 나도 나이 열여섯에 얼른 스무 살이 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때 서른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이 넘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싶었다. 그렇게 낡은 나이로 남은 생을 산다는 건 지루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세상에 두려울 게 없고 충분히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이였던 이십대가 싱겁게 가버렸고 서른이 되어 있었다. 이십대의 가운데 토막은 군대에서 빡빡 기었고 또 몇 년은 실패한 연애에 열중했다.

 

 그때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는 있지도 않았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내 나이 마흔을 넘기고서야 간간히 이 노래를 들으며 지나간 청춘을 돌아보았다. 영화 ‘빠삐용’에서 마지막 홀로 남은 ‘드가’의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만 해도 마흔이 청춘인 줄 몰랐다. 정말 몰랐었다.

 

 언젠가 ‘나가수’에서 인순이가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눈을 감고 들으면서 비로소 생각했다. 그때가 내 인생의 꽃이었음을 인정했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깨달았다. 그리고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란 노래를 들으면서 까닥까닥 다가오는 예순의 나이를 막연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제서야 알겠네. 우린 언제나 모든 걸 떠난 뒤에야 아는 걸까. 세월의 강위로 띄워 보낸 내 슬픈 사랑의 작은 종이배 하나...’

 

 어느새 예순을 훌쩍 넘겼다. 내가 최선을 다해 재롱을 피우면 방긋 웃어주는 손녀도 생겼다. 이즈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너그러워졌을 뿐, 여전히 ‘난 슬프게 멀쩡했다.’ 그러나 더 이상 누구도 쉰을, 예순을 위로하거나 노래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이 시의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란 시를 읽고부터 나는 되도록 나이를 세지 않으려는 버릇을 붙이기로 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는지 모르는데/ 그때 그 사건이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그리고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인 것을,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는 걸 온몸으로 살아내고서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을 소망하노니.

 

 참고로 박우현 시인은 1955년 대구에서 태어나 평생 대구에서 살고 있다. 계간사람의 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시작했으며,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나와 현재 대구 원화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권순진

 

 
마흔 즈음- 안치환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