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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고운매
영월 집 초입
옛날 어린 시절 성장했던 친정집 안방에 구성된 다락방이 문이 열린 채 짙은 화장을 한 한 아주머니의 영정같은 사진틀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검은 한복을 입은 상체의 사진은 분명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신 아주머니의 영정사진이었다. 그 순간 눈 을 떴다. 꿈이었다. 시간은 새벽 4시가 조금 지났다. 급격히 무서움이 엄습함에 얼른 일어나 불을 켠다. 그리고 정신을 수습하고 집 전화를 찾는다. 그리고 몇 번 울림이 가서야 귀에 익은 음성이 들린다.그것도 아주 힘없이, "여보새이~요?" 난 안도의 한숨과 반가운 음성으로 대답한다. "아줌마, 접니다. 별일 없으시지예?"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 아이구, 새 대기 아잉교, 와요? 또 새대기 꿈에 내가 죽었덩교? 안 그라마 새대기가 이 시간에 말라꼬 전화하겐노." 난 간신히 대답한다."아 니, 그게 아니고 갑자기 아줌마 생각이 나서예. " 나는 짧은 통화로 마무리하고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인 질긴 인연이란 끈의 실체를. (새댁이란 호칭은 1982년부터 그녀가 생존해 계실 때까지 나를 호칭함이다.)
어느 순간 난 이미 눈을 감고 회상의 숲을 걷고 있었다.이십 대 후반인 내가 두 번째 아이 태어나기 두 주전 나를 돕기위해 오신 사십 대 후반의 아주머닌 그날로써 우리 집에 입주하여 우리의 인연은 시작된다.관계 형성 이 전, 첫인상이 몹시 심술궃고 사나 움이 시쳇말로 성격이 괴팍할 한 성질 할 인상이셨다.나 역시 대인관계가 유연하지 못함은 자타가 인정하는 무뚝뚝한 성격으로 사람과 사귀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매력없는 유형이었다. 그러나 혈육도 부부의 인연도 아닌 그녀와 28년의 세월에 나름 의 시간여행을 해볼까 한다.
그녀는 일찍이 가임이 불가능한 신체적 결함으로 남편의 본능적 종족 보존에 의한 외도를 인정할 수 없어 미련 없이 시집을 박 차고 나온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 시절 이른 이십 대에 이혼이란 부정적 시선도 마다하지 않으신 채, 이쯤 하면 그녀의 불과 같 은 성정은 이미 검증된 바이다. 경우가 밝고 바르지만, 타인에게 어떠한 지적도 용납되지 않은 성격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 가는 억척스러운 여인이었다. 남편으로부턴 무일푼으로 인연을 정리하였지만, 친정 살림이 넉넉하여 친정 부모에게 받은 재산 으로 생활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부지런한 그녀가 두 손 재배하고 가만히 앉아 재산 축낼 성격은 절대 아니었듯이 여러 일 자릴 전전하시다가 나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또한 매사 근검절약의 표상이신 그녀의 굳은 의지는 미덕을 넘고 넘어, 자린 고비 수준임에 저축에 대한 그녀의 집착에 월 소비액수는 제로였다. 그녀 삶의 방식이 당시 나로서는 이해 불가했지만, 우리 집 일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상주한 지 두 주쯤 지나 나의 절친의 방문에 간단한 다과를 내놓으시며 우리의 대화에 그녀가 불쑥 끼어든다. 내심 놀란 나는 친구가 떠난 후, 그녀에게 상황 파악의 필요성과 말의 절제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십여 분 후 그녀가 보따리를 들고나오셔 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나 집에 갈라요."난 화들짝 놀라 왜그러시느냐고 되물었다. 이유인즉슨 나의 요구가 기분 나빴다는 것이 다. 난 순간 아연실색하였지만 냉정하게 말했다. "아주머니 그러시다면 가세요. 그러나 내일 가세요. 그렇게 가시면 내 마음이 편 치 않습니다. 훗날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 조우할지 모르는데 이런 헤어짐은 내가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주일 동안 수고하 신 급료도 챙기셔야 할거 아닙니까?" 그녀는 머뭇거리며 마지못하신 척 자기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는다. 28년동안 초창기 일 년 사이 두 번 더 발생했지만 그녀의 보따리는 늘 나의 일언지하에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와 같은 행위는 그 후론 없었다.내가 주 장하는 내일의 의미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간을 의미함이다.
물론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가 완벽할 순 없듯이, 남편의 세탁물 정리에 발생하는 가끔의 실수에도 남편의 호통과 나무람은 늘 나의 몫이었고 어떠한 상황에도 그녀를 나무라는 경운 단 한 번도 없었다.나 역시 단 한 번도 그로 인한 화풀이를 그녀에게 보인 적도 없었다. 이미 그녀는 자신의 실수로 내가 바람막이 역할 한 것에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알기에 재론 은 필요 없었다. 다만 며칠이 지나 다시 남편의 세탁물을 내놓게 되면, "아줌마 이건 손세탁해야 합니다. 모레 출장 때 입어야 되 예." 입가의 엷은 미소가 나의 입장 표명이었다.
일, 이 년 세월이 흐르고, 함께하는 공간엔 상호관계 작용에 불가피한 작은 실수와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듯, 나는 그때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엔 즉시 솔선수범하여 상호입장 정리에 유연한 자세를 취한다. 난 언제나 그녀의 상황 입지를 간 과한 적 없었고 상반된 관계가 무색하리만치 우린 같은 평행선에 위치한다.작은아들 탄생부터 함께한 그녀의 세심한 아기 돌봄 과 남편 식사를 제외한 가사는 그녀의 책임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사실 혼자서는 벅찬 노동량이었다.세월은 흘러 어느덧 아이 들은 성장하고 그녀의 위상은 우리 집 안 주인이 된다. 그녀에게 살림을 맡겨버린 나의 마음에 어떤 불편함이나 불신은 곁에 두 지 않았다.
식탁에 무엇이 올라오든 그녀의 솜씨는 언제나 정갈했고 정성이 듬뿍 든 음식 맛은 가족 결속력을 높였다. 그 외 수시로 장만하 는 별식은 (모든 곡물류의 죽) 나를 즐겁게 한다. 그녀가 온 후는 한 번도 내가 직접 시장을 본 적은 없었다.장보기 땐 가끔 기동 력은 되었지만 음식재료 준비는 그녀의 의무였다. 그 당시 영수증발급이 생활화되지 않았듯이 근근이 적은 계산서의 필체는 나 의 되물음 없는 결제로 연결된다.가사를 수행함에 무언가 불편한 점이 있으면 즉시 바로잡고 최대한 그녀의 편의성을 도모한다. 그 세월동안 난 겨울에 김장이나 이른 봄에 장 담그기를 집에서 단 한 번도 실행한 적없었다.그건 늘 친정의 도움이었고 친자매 의 배려였다.
두 아이 초등 시절, 해마다 겨울방학이 되면 2주간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일 년 중 그때 그녀에겐 자유로운 휴가 역할을 한 다. 물론 매 주말 하루는 그녀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절정의 여름과 겨울엔 그나마 가시지 않는다. 투철한 자린고비 정신이 잘 반영된 부분이다. 단 하루 자신을 위한 냉난방 가동은 낭비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런 날은 잊지 않고 반드시 급료로 지급한다.
1982년 월급 13만 원에 시작하여 연로하신 시기엔 백사십만 원이었다. 참으로 긴긴 세월이었다. 그녀와 함께한 시공엔 내 사랑 하는 작은 언니를 제외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에겐 친구 같고 멘토 같은 언니었지만, 그녀에겐 언니의 존재는 해결사와 같았다. 가사수행 중 고충이나 월급 인상은 반듯이 언닐통해 듣게 된다.한마디로 좀 곤란한 요구사항이나 부탁같은 것은 직접 얘기하지 않으신다. 그럴 때마다 난 불편해하실까 봐 특히 월급 인상은 이유 불문 그녀 요구대로 말없이 바로 실행한다. 그건 상호 민감한 부분이듯, 내가 배려할 수 있는 최고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 역시 터무니없는 인상은 요구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엔 피차 표정만 봐도 느낌이 감지됨에 이심전심의 침묵으로 진행한다.
우리 집에 오시기 전 그녀의 일터는 난 모른다.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일터는 우리 집이었다. 그녀는 우리 집의 산 역사이기도 한 긴 세월 동안 나름의 갈등은 존재했겠지만 우린 단 한 번도 얼굴 붉히며 고조된 음성으로 의견 충돌한 적 없었다.우리 가족은 그 녀를 늘 고맙고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인식해 왔다. 집안 살림을 맡기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부부에게 그녀 존재의 의미 는 대단한 것이었다.심지어 한밤중에 무서운 꿈을 꾸다 눈 뜨게 되면 난 바로 그녀 방 소파로 가서 누워버린다.그럴 때마다 인기 척을 느낀 그녀의 갈라진 목소리는 자동으로 읊는다. "아이구, 또 무서븐 꿈 꾼능교, 어서 그 누우소, 주야장청 꿈이 그리 무서바 서 우짜능교. 어서 좀 더 자소," 그녀의 경남 사투리 투박한 억양은 나를 안심하게 한다. 남편이 떠나고 삼 년 가까이 함께 머물다 가 28년 종사한 가사에 스스로 노령이라 일컬으시며 76세의 연세로 종지부를 찍으셨다. 난 그동안 그녀의 도움과 고마움을 나름 의 잣대로 보답하며 그녀를 보내는데.
마산 집까지 내 차로 모셔다드리기로 했지만 본인의 극구 만류에 난 동대구역에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한다.물론 연중 여 러 차례 안부 통화는 빠지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지난 지금도 늘 곧 죽을 거라시며 82세의 연세로 생존해 계신다. 펄펄하신 중년 을 함께하던 시절, 난 유식한 그녀에게 많은 배움을 얻는다. 친, 외가 모두 사대부 자손으로서 명망 있는 가문의 고택은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인상이 고약하고 감정 표현이 직설적임에 때로는 자책하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하시나, 임무수행 중 태만이란 어 휘조차 생소할 성실성과 책임성은 남달랐다. 우리 부부는 그녀의 도움에 중독된 지가 오래였고 상호 관계 속에 넘치지도 부족하 지도 않은 이성으로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이어옴은 사실이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아닌, 한 가족으로 인식하는 나의 성격은 그녀 를 친정엄마의 위치만큼 신뢰하는 관계였다.변덕이 없음이 단점이고 무뚝뚝함이 문제라는 그녀의 탄식에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 았다. "아줌마 그게 제 천성인데 어쩝니까."
그렇다. 그녀와의 시간을 돌아보면 까마득하다. 인간관계에 있어 어떤 형태이든 한 생 동안 수많은 사람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 한다. 인간은 유아기를 시점으로 천성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집단생활의 시초는 당연히 배움의 현장이듯 학 교 교육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모든 조건의 지식과 덕목과 경험을 쌓아가며 사회를 배우고 인성은 다듬어진다. 인간관계의 형성 은 내가 좋든 싫든, 생존의 근거이자 정상인으로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듯 여러 성장의 단계는 빈부의 격차를 막론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과 심안을 심는다. 그것을 우린 지혜라 하고 관용의 시선이라 부르듯.
이십 대 후반 풋내기 주부와 사십 대 후반 중년 아주머니와의 만남은 서로의 목적이 상반되었지만, 삼십여 년을 할 수 있었던 절 대적 조건은 바로 역지사지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측은지심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모습이 천태만상이듯 인간의 성격 또한 그럴 것이다. 천성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과 같아 때로는 제어가 불가능한 것이나, 인생은 대체로 천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듯이 환경적 요소보다 더 개조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격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관성이 관건이다. 기 분대로 넘치고 감정대로 움직이는 넘어지고 엎어지는 안하무인의 성격은 힘들다. 감정과 기분에 취해 매사 아전인수격으로 보는 근시안적 이성은 주변을 힘들게 한다.
우리의 만남은 그녀의 말대로 자신의 심청 궂은 모습이나마 경우가 바르고 비록 무뚝뚝하나 변덕 없는 일관성의 인간관계가 도출 한 세월이었다. 그녀가 떠나면서 하셨던 고백이 통화할 때마다 쏟아내시는 그녀의 진심이셨다. "새대기요, 고맙소, 성질 더러븐 날 눈 거친데 하나없이 잘해조서 고맙소, 정말 고맙소,복 바들 끼요." 그녀의 독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며칠 전 안부 전화에 대 답이 없었다.성격이 까다로워 홀로 계시다가 어느 날 건강이 악화하여 동생분집에 기거한다고 하셨는데 전화하면 수차례 벨이 울 리고 수화기를 드는 거 같은데 아무런 음성이 없다. 그렇다고 끊지도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아니 어떤 상황일까.혹시 그녀가 늘 염두에 두시던 그런 장애가...나는 급한 마음에 혼자 소리친다. "아줌마, 접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 계속 불러보지만 어떤 대 답도 없으셨다. 수화기는 내려 지지 않은 채.
공허한 메아리만 공명하여 나의 공간을 맴돈다. 순간 슬픔이 목까지 치밀고 목이 멘다. 나는 망연자실함에 내 손에서 수화기가 미 끄러진다. 그리고 붉어지는 눈시울은 어느새 울음으로 흐느끼는데.
2022년 제2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수상작 특별부문 대상과 입선 Special Sector Grand Prize & Merit Prize
1. 부문: (Category): 대상: (Grand Prize) 작품명: 찰들지 않는 세계 A world that never grows 촬영지: 대한민국 제주도 Jeju island,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장승진 Jang eung-jin
2.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쌍둥이와 함께 가을길 산책 A walk with my lovely twins 촬영지: 대한민국 제주도 Jeju island,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이구왕 Lee Gu-wang
3.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우리, 함께, 바다 We, together, the ocean 촬영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고성군 상족암 Sangjogam, Goseong-gun, Gyeongsangnam-do,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이경미 Lee Kyoung-mi
4.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추억은 방울방울 One fine spring day 촬영지: 대한민국 울산 무거천 Mugeocheon, Ulsan,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장원정 Jang Won-jung
5.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작지만 소중한 나의 일상 여행 My small but precious daily jouney 촬영지: 대한민국 서울 잠실철교 Jamsilcheolgyo(Railway Bridge), Seoul,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박성욱 Park Sung-uk
6.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지친 나를 위로하는 시간 Healing time 촬영지: 대한민국 경기도 강천섬 Gangcheon Island, Gyeonggi-do,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박윤준 Park Yoon- jun
2.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산책길에 만난 빛내림 The light we met in the park 촬영지: 대한민국 인천 인천대공원 Incheon Grand Park, Incheon,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김정수 Kim Jung-soo
8.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내가 바라는 세상 Hope 촬영지: 대한민국 충청남도 당진 삽교호 Sapgyoho, Dangjin-si, Chungcheongnam-do,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이승원 Lee Seung-won
9.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일상을 여행처럼 Daily life like a trip 촬영지: 대한민국, 서울 한강시민공원 Hangang Park, Seoul,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임유정 Lim Yu-jung
10. 부문: 입선(Meritz Prize) 작품명: 낯선 순백의 일상 A special snowy day 촬영지: 대한민국 서울 양재천 Yangjaecheon, Seoul, Republic of Korea 사진작가: 심규섭 Shim Gyu-se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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