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메시지까지
정통과 이단
옳다고 인정받는 이론이 과연 무엇인지를 규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이단도 규정될 수가 없기 때문. 정통이 없으면 이단도 없고, 이단이 없으면 정통도 없다.
초대교회에서 정통을 얘기하고 이단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항상 예수님 말씀과 사도들의 권능을 들먹거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확한 내용을 확정지을 절대적 근거가 부재.(당시 문서화된 성서가 없었기에)
현실적인 대답은 목소리 큰 놈이 정통이다. 그래서 정통과 이단의 구분은 다수와 소수의 문제로 결착난다. 교회내에서 분란이 일어나 이단으로 몰려 쫓겨나는 사람은 소수파일 것이다.
개인, 교회에게 타인을 이단으로 규정할 수 있는 배타적 권위가 부재했다. 이것이 초기기독교의 생명력이었으며 급속한 팽창의 주원인이었다.
2세기초부터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정통 개념이 형성된다_로마교회의 다수에 의하여 지지를 받는 기독교 형태. 로마황제의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권위를 획득으로 정통성의 역사적 계기.
신약 27서 정경화작업도 콘스탄티누스 기독교 공인 이후 로마가톨릭교회의 입장이 정립되었다는 사실과 관련.
동방교회는 다양한이방철이나 종교 관습을 포용 영지주의 적개방성 유지
로마교회는 구약의 정통성을 중심으로 보수적 입장 견지
기독교 공인으로 하루아침에 헬라스 로마문명 전체가 촌놈 이교도들의 문명이 되어버렸다.
기독교를 정통으로, 유일신에 대한 유일한 신앙체계로서 수용하는 순간, 길거리에 가득한 제우스등 나체의 신상들이 모두 우상이 되어버리고, 인류문명의 극상의 예술품이었던 위대한 신전들이 모두 악령의 소굴이 되며 저주와 파괴와 약탈의 대상으로 전락.
오늘날 신상들이대부분 잘라지고 꺾어지고 뭉개진 이유가 이것.
기독교 공인이라는 이 사태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야만스러운 문명의 전환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거만한 자세는 얼마나 교권이 황권과 대적할 수 있을 만큼의 조직적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방증하면서도 결국 황제를 능멸하는 신민이 편하게 버틸 수 있을 만큼의 판도는 아니었다.
기독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원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독점을 원했다. 그래서 신앙의 자유를 공평하게 고려하는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배교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율리아누스는 어릴적 니코메디아에 외할머니에게 보내졌는데 이곳은 아리우스파들의 본거지 중 하나였다. 그래서 아리우스파 성직자들의 교육을 받았다.
기독교 역사만 해도 안타까운 측면은 있다 해도 오늘까지 흘러내려온 기독교의 모습은 그 많은 민중들의 피땀에 의하여 최선의 방향으로 선택되어온 것이고 또 그렇게 흘러가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 사실은 인간의 역사와 얽혀있으며 인간의 언어 속에 일차적으로 내재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언어와 하나님의 언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언어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언어와 역사의 사실을 밝힘으로써만 접근될 수 있는 것이다.
전업 성직자계급의 발저_기독교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고인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성직자를 전업화시키고 그들에게 특별한 권세를 부여함으로써 그들 중심으로 로마사회의 결속력과 정신적 일체감을 재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기독교는 로마라는 정치권력의 파트너가 된 것이다. 기독교제국의 기초.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우대
황제의 전재산 교회에 기증. 성직자의 모든 공무 면제, 세금면제. 인두세는 물론 토지세 면제도. 성직자의 사유재산도 인정.
가난한 자들이여 이제 천국이 너희 것이다라고 외쳤던 예수의 복음은이제 부유한 자들이여 천국이 너희 것이다라고 외쳐대는 로마사회의 새로운 법질서로 변질되었다.
아타나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의 삼위일체논쟁은 외면적 명목.
실상은 새로 개편되어가는 교구를 놓고 주교들끼리 벌인 전쟁. 동서 로마 황제들까지 가담. 재야생활을 해온 기독교가 이제 집권여당이 되면서 세력 판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를 놓고 싸우는 내분의 한 표출.
불교는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인간이 속세의 영욕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느냐 하는 해탈에 관심. 그 교설 자체가 인간 내면의 심리탐구에 집중. 정통 이단의 문제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많은 경전의 이유. 정경화x
기독교의 정경화과정은 오로지 이단을 배제하려는 배척의 과정.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경을 성립시켰다. 정경화작업에는 교회라는 조직의 이해가 얽혀있었다. (정경이라는 텍스트의 절대성 집중하기보다 교회라는 실제적 삶, 관계의 중요성)
14.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우리는 성서라는 문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막연한 공포감에서 해발될 필요가 있다.
성령의 계시에 의한 절대적인 말씀이라서 일점일획도 건드릴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라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세뇌로부터 발생하는 것.
그러한 이들의 신앙세계를 존경해야 한다. 성경은 번역, 개정에 따라 문법, 의미가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하나님 말씀으로 간주할 수 없다. 절대적 기준이 되는 그 하나의 성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롬은 고난 받는 꿈을 꾸고는 성서의 연구와 주석에만 전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홀로 생활. 시리아말과 희랍어를 몰랐고 몸이 약했기에 사막에서 사는 것은 심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행복했다. 사막의 고적과 미풍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며 기도와 단식에 매달렸다. 그리고 유식한 유대인 기독교도로부터 히브리말과 희랍어를 배웠다. 그리고 희랍어 성서 수집.
그리고 여러 작품등을 라틴어로 번역. 가장 온전한 정본을 만들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보편적 가톨릭교회가 받아들여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구분하여 우리는 성경을 취급해야 한다.- 사본의 개수만큼 성서의 개수가 있다고 할 만큼 종류가 많았다. 제롬은 기존해 있던 구약의 시편을 셉츄아진트사본에 의거하여 새롭게 교정했다.
바이블 클라스_돈많고 고상하고 홀가분하고 헌신적인 보살들이 종교발전의 토대가 된다. 이들에게 아름다운 구약 시편을 히ㅡ리어로 강의, 성서전바늬 궁금한 문제에 관해 강의. 성모 마리아의 처녀성을 극찬하였고 그런한 고행을 실천하는 자들을 존경해야 한다. 금욕과 경건한 독신생활을 주창하며 로마사회의 성직자계급들의 태만과 위선과 부패, 거짓말 처녀총각들의 추태를 맹렬히 비난했다.
교황 다마수스가 죽자 수세에 몰렸고 처녀수행단들의 도움을 받아 팔레스타인 전지역의 성서와 관련된 지역을 세밀히 돌면서 고고학적 탐색을 하고 성지순례 한다. 우명한 주석가 디디무스와 지내며 토론도 한다. 파울라가 지은 수도원, 순례자를 위한 여인숙에서 34년간 머물며 성서번역에만 전념. 그리고 평온하게 예수가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서 숨을 거둔다.
성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황량했던 시절에 이미 팔레스타인 각지를 순례하며 역사적 상황과 분위기를 익히고 히브리어와 희랍어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유려한 라틴어로 번역을 감행했던 사막의 수도승 제롬과 같은 이들의 피눈물나는 삶의 헌신과 천로역정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라틴 벌게이트 성서 출현 이후에도 논재은 계속 되었고 벌게이트판 성경이 기여한 바는 지대하지만 그것이 유일무이한 권위를 갖지는 않는다. 교회는 계시된 모든 것에 관한 확실성의 근거를 오직 성서 하나로부터만 끄집어내지는 않는다.
1) 나는 학교에 간다.
2) I go to school
동일한 의미. 동일한 하나의 명제. 그것은 언어의 종류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Logos)다. 누구든 이해할 수 있지만 여기 쓰여져 있는 문자형상체계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이다. 성서라는 종이 위에 문자형상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문장 하나에도 본 의미의 지평을 확정지을 길이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는 스스로 고민해보기를.
15. 이집트인들의 종교관념
나일강 지역에 수도사들이 많다. 사막은 버림이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사랑도 욕정도 다 버리게 된다. 모든 것이 무상하고 무화된다. 순수한 영혼만 남아 하나님과 독백하게 된다. 매우 금욕적이고 이세간적이다.
다양한 이들이 살았기에 다양한 문화전통이 혼합되었다. 때문에 절충적 사유방식이 익숙하다. 옛 전통과 새 전통이 항상 공존 융합하고 이방과 토착의 융합이 매우 유연, 자연스럽게 이뤄짐.
이집트 종교에서 죽음과 부활은 익숙하다. 다만 우리와 같은 몸으로 부활이 아니라 죽음의 세계로의 부활이다. 사후 세계의 진실성을 믿었다. 죽은 후에도 삶의 영화를 계속 지속할 수 있다는 신념. 삶이라는 것 자체를 죽음에 대한 준비. 삶의 윤리가 사후의 훌륭한 삶과 관련. 최후의 심판 관념도 중요한데 기독교처럼 집단화되어 있지 않고 개인화되어 있다. 물직적 풍요보다는 신을 경배하는 삶을 살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가난한 자를 보호할 줄 아는 삶의 윤리가 죽음의 세계로의 부활을 보장.
16.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
요즘 기독교를 현세종교로서만 생각, 교회를 현세적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친교의 장, 일종의 소셜 클럽. 부자 청년과의 대화_이러한 성경구절을 놓고 교회에서는 추상적인 해석, 잘 다루지 않는다. 교회 입장에서 부자신도들의 존재가 조직운영상 매우 필요한 것이기 때문_교회의 목적이 무엇인가. 교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지
다만 이 대화는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정황으로 볼 때 매우 리얼한 말씀이었다.
팔레스타인은 농경사회. 조세로 착취당하던 농민들.
불합리성을 근원적으로 혁파하려한 정도전. 그러나 예수는 정도전과 같은 정치혁명의 길을 거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함으로써 로마조세거부운동에 정치적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그를 따르려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주라 그래야 나를 따를 자격이 있다’ 고 외쳤다. 예수는 철저히 조세제도의 착취에 시달려 신음하던 농민, 그래서 땅 잃고 부랑하는 천민들과 운명을 같이 한 사람이었다.
세속적 가치의 부정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완성하려 했고 불교는 자기 마음의 각성으로 달성하려 했다.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는 초기 기독교 교회내의 만연되어가는 부패현상, 관습적 예배, 제한된 봉사에서 떠나려는 평신도운동으로 전개. 그리고 로마시대 점점 가중하는 조세제도로 세리나 토지관리인들의 횡포가 심해지자 고통스러운 현세로부터 떠나가려는 각성된 농부들의 움직임.
안토니는 유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자 청년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그대로 실천했다. 부모에게 받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동네의 가장 편벽한 곳에 움막을 짓고 수도에 전념했다. 그리고 더 완벽한 고독을 찾아 사막으로, 절해고도에서 홀로 수행했다. 그는 끊임없이 악의 세력을 대변하는 악마의 형상들과 투쟁하면서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영적 순결성의 거의 완벽한 상태에까지 도달한다. 밀라노칙령이 발표되면서 기독교인의 박해가 종식되고 오히려 그들이 우쭐대는 세상이 오자, 다시 한 산으로 옮겼다.
콘스탄티우스가 황제가 되며 아타나시우스에 대한 보복 시작. 그러나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그를 추방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당국은 자체의 힘으로써는 대주교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설득하거나 강요할 힘이 없어 로마군단을 동원해 이집트로 온다. 성직자와 일반민중과 함께 야간미사를 행하는 교회를 습격. 끔찍한 유혈사태가 벌어짐. 주교와 사제들은 잔인한 모욕을 당했고 성처녀들이 벗겨져 채찍질 당하고 강간 당한다. 그리고 부유한 시민들의 집은 약탈되었다. 종교적 열정이라는 가면 아래,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고 심지어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온갖 탐욕과 욕정, 그리고 사적인 원한을 마음껏 충족하였던 것이다.
그 틈에서 파코미우스 승려들의 도움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17. 사바크의 저주와 축복
정경화 작업에서 27권에 들지 못한 서적들은 항아리에 담아 깊은 동굴에 담았었다. 그 항아리가 1578년 후에 우연히 동네 아이들에 의해 발견된다. 그 안에는 13개의 코우덱스(파피루스를 제본한 것)가 있었다. 피의 복수에 매몰된 무지한 이들에게 인류의 성스러운 영적 보고가 들어간 것이다.
제3 코우덱스는 콥틱 박물관으로 갔고 제2, 4-13은 다타리타노 콜렉션이 되었다.
제1 코우덱스는 돌고 돌아 카이로에 있는 벨기에 출신 골동상인 알버트 에이드엑 들어간다. 그는 밀반출해 미국시장으로 갔다. 안 팔리자 은행 금고에 넣어두고 죽어버렸다. 그러자 칼 구스타프 융의 권유로 부인에게 산다. 그래서 제1 코우덱스는 융 코우덱스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문헌을 둘러싼 인간들은 지혜롭지 못해다. 이기와 탐욕과 영예가 지배했다. 결국 다타리-타노 컬렉션은 국유화 되었고 융 코우덱스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코우덱스가 카이로의 콥틱 박물관에 안치되었다. 이후 나그 함마디 라이브러리 전체가 영역되어 출판된다. 지금은 누구든 쉽게 볼 수 있다.
18.에필로그
쿰란은 구약시대와 더 밀접히 관련되고 나그 함마디는 신약시대와 더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 둘을 같은 시공에서 연속적으로 파악할 때만이 우리의 성서 이해는 풍요로운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도마복음은 4복음서의 형성과정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많은 생각의 실마리와 기준을 제공하는 순수한 예수의 말씀집이다. 도마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는 예수를 인식케 해주는 너무도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도마복음은 외경이라는 개념과 멀다. 외경이 아닌 정경의 오리지날한 형태이다.
첫댓글 어렵다 어려워~ 하지만 기독교가 어떻게 세워져 왔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