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나다니엘 호손 / 김욱동 / 민음사 (2007)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인 책이다. 고전문학을 읽는 맛은 '읽을 때마다 달라진다'는 점에서 분명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진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까닭이기에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널리 읽히고 입소문을 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주홍 글자>에서 느낄 수 있는 맛과 깊이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윤리적인 접근'를 통해서 '죄와 벌'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헤스터의 가슴 한복판에 '선명한 주홍빛'으로 빛나는 글자 'A'는 원래 간통(Adultery)를 뜻하는 앞글자다. 결혼한 여인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통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으니 '일곱 번째 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청교도적인 종교적 윤리관에 따라 '사형판결'을 받아 마땅했다. 허나 그녀의 남편이 2년간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므로 여인의 몸으로 홀로 지내기 힘들었다는 정상을 참작하여, 가슴엔 '낙인'을 찍고, 지은 죄를 널리 알린다는 목적으로 '조리돌림'이라는 벌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간통'에 따른 벌을 받는 장면만을 보여줄 뿐, '간통'을 저지른 정황이나 두 남녀의 사정 따위는 '건너띄기'를 해버렸다. 만약 건너띄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통속소설'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작가는 '문제의 장면'을 과감히 삭제하고 '죄'가 아닌 '벌'에 집중조명을 비춰낸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문제를 과감히 드러내며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효과도 얻어냈다. '죄값'을 치뤄낸 사람에게 냉담하기 그지없는 '낙인찍기'를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말이다. 또한 '여성'이 감내해야 할 사회적 무게감이 얼마나 무거우며 무한한 희생을 강요하는지에 대한 비판도 함께 싣고, '패미니즘(여성주의)'의 정신도 아울러 전하고 있다.
이런 메시지는 '선홍빛 글자(The Scarlet Letter)' A가 뜻하는 바가 '능력(Able)'과 '천사(Angel)'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이는 헤스터에게 주어진 '죄값'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감내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죄를 짓지 않은 평범한 이들보다 오히려 죄를 지은 헤스터가 이토록 숭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이 소설의 '백미'일 것이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더욱더 면밀히 돌아보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반성을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죄인의 신분을 '낙인'을 품고 살아가지만, 지울 수 없는 '낙인' 덕분에 더 바르고 더욱 올바른 도덕심으로 살아가게 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헤스터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능히' 해내는 능력을 갖게 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배려심 깊은 행동으로 '천사'라는 칭송을 받게 된 것일테다.
이는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효과도 낳게 된다. 일명 '도덕군자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 도덕적인 일만 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고, 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을 일상으로 실천하는 이가 진정한 천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는 삶을 살아야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인정'만을 추구하는 삶은 스스로를 추레하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도덕적이지도 않으면서 윤리적인 심판을 받을만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작은 만족감'만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밝고 건강해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차라리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철저히 반성한 사람이 더욱 위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면 '잘못'을 저질러 본 경험을 통해 '무엇'이 잘못인지 더욱 잘 알게 되고,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더욱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딤스데일의 고통을 통해서 더 잘 드러난다. 딤스데일을 헤스터와 달리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밝히지 못했다. 목사라는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는지, 혹은 헤스터의 의지를 존중한 탓이었을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제대로 삼지 못하고 끝없는 고통속으로 침잠해버리고 만 것이다. 차라리 헤스터와 같이 '죄값'을 처절하게 치르고 나서 헤스터처럼 '철저한 반성'을 통해 지은 죄를 말끔히 털어버리고 '새출발'을 했더라면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이어나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또한, 칠링워스의 악마와 같은 괴롭힘에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등장인물 가운데 독자들에게 가장 용서받지 못할 자는 바로 칠링워스일 게다. 그는 자칭 '지식인'이라면서도 해박한 지식을 쌓아올리고도 고작해야 자신의 아내와 연적(?)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이런 악행의 결과가 심히 참혹했기에 마땅한 결론이라고 박수를 아끼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우리들이 가장 '따르기 쉬운 캐릭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지상정이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칠링워스같은 '복수심'에 빠져 자신을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주홍 글자>를 통해서 자신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되돌아보고, 적어도 '칠링워스'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겠다는 '반면교사'로 삼기 딱 좋다.
이처럼 이 소설은 '도덕교과서' 같은 주제로 이해하기 딱 좋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의 삶'에 대한 메시지를 하나 더 건져냄으로써 고전의 매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대명사가 바로 '여성'을 온전한 주체적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수동적이고 타율적이고 나약한 존재로 단정 짓는 일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란 말인가. 여성의 행복은 오직 '남성에 의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다는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이제 버려야할 때다. 여성도 얼마든지 '홀로서기'를 할 수 있으며, '독립적인 삶'을 선택해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헤스터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헤스터는 낙인 찍힌 죄인이었지만 남편이나 연인(?), 심지어 사회적 시스템의 도움 없이 '수놓기'라는 재능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떨쳐내고, 나아가 '조금의 여유'라도 생기면 아낌없이 남을 위해 내놓고, 베푸는 삶을 살아갔다. 즉,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아갔고,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는 '위대한 삶'을 여성의 몸으로 직접 증명했단 말이다. 주위의 남성인 딤스데일은 '고뇌'를 하고, 칠링워스는 '복수심'에 불타고, 그밖의 남자들은 헤스터에게서 펄을 빼앗아갈 생각만 할 때, 헤스터는 스스로 자신에게 닥친 위기와 문제를 척척 해결하며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났단 말이다.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이런 소설을 그저 그런 '삼류 막장드라마'에 버금가는 '불륜소설'로 치부하는 목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오히려 훌륭한 종교인들이라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죄 지은 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위인들이 '날 선 비난'만을 앞세워 궁지로 모는 어리석음은 절대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실수'에 관대한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실수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보다 실수를 거울 삼아 더욱더 정진하는 사람이 더욱 굳센 법이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 이치와 상통할 것이다. 그리고 실수를 해본 사람만이 더 많은 지혜를 얻는 법이다. 늘 성공만 한 사람은 '실패'했을 때의 슬픔과 고통, 아쉬움과 비참함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수를 거듭하면서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이는 성공했을 때의 기쁨과 만족, 그리고 성취감을 2배 이상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 '실수'를 한 이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제공하고 북돋아주는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면, 우리는 더 멋진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잘못을 고쳐나갈 줄 아는 위대함을 스스로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실수도, 실패도 소중한 경험으로 삼아 위대함을 이룰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주홍 글자>를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삼는 까닭도 바로 이런 위대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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