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한국의 시대정신과 지도자
* 2001년 11월 8일 안동 시민회관
* 노 무 현
특별히 남다른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높은 문화수준을 갖고 계신 안동시민 여러분들 앞에서 말씀드리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김 박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속시원한 말을 해드리고 싶은데 과연 속이 시원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오늘 강연 제목이 "우리 시민은 무엇을 원하는가, 21세기 우리정치의 나아갈 길" 인데, 이 시기에 과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을 잘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하지 못해서 많은 욕을 먹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정치인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인이 해야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첫 번째 경제를 잘하는 일, 두 번째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일, 세 번째는 개혁을 잘 하는 일 , 네 번째는 동서화합을 실현하는 것이라고들 지적합니다. 조사할 때마다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주문을 정치인들에게 합니다.
정치학 원론에서는 정치가 해야하는 기능으로 국방, 치안, 경제, 갈등의 조정, 비전의 제시, 위기관리와 같은 것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두 옳은 이야기이고 필요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해 놓고 이대로 잘하는 사람이 이 시기에 필요한 지도자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이 시대 역사의 요구를 수용하고 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는 반드시 이 시대의 요구와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지도자 1. 아데나워 수상
1952년 서독에 아데나워가 수상이 되었습니다. 그때 독일이 요구하던 것과 1970년 빌리브란트가 수상이 되었을 때 요구하던 것은 달랐습니다. 아데나워 수상은 수상이 된 후에 제일 먼저 독일이 서구 유럽과 하나가 되기 위한 길을 추구했습니다.
그 당시 독일은 유럽국가였지만 프러시아 시대의 공격적인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부터 배척받는 고립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고립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독일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아데나워 수상은 서방정책을 씁니다. 프랑스와는 수백년동안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수백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프랑스와 화해합니다. 그 화해를 통해서 유럽을 하나로 묶어내고자 하는 계획을 실천에 옮깁니다.
그래서 맨 처음 구주석탄동맹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발전하여 EEC, EC를 거쳐 오늘날 EU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유럽통합이라는 것이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 역사인 것입니다. 이 역사를 통해서 독일은 패전국, 전범국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서유럽의 일원이 된것이고 이것이 독일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은 이와같은 정치적 토대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정치적 토대, 국제 사회 속에서 독일의 위상을 안정되게 만들어낸 정치적 토대가 없었더라면 라인강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사람을 에르하르트 수상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 시기의 위대한 수상은 바로 콘라드 아데나워 수상인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 2. 빌리 브란트수상
70년대에 수상이 된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동방정책은 독일이 분단국가로서 동독이 가로막고 있고, 폴랜드 또한 과거 독일로부터 엄청난 박해와 고통을 받았던 국가로서 그 당시에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독일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 관계를 화해관계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어내기 않으면 독일의 미래는 없다, 그래서 그때까지 내세우던 통일정책을 포기하고 평화정책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통독성을 없애버립니다. 참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인데요, 독일의 통일은 통독성이 없어진 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방정책이 성공한 결과 1989년 베르린 장벽의 해체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 통일 독일의 수상이었던 헬무트 콜은 1970년대 빌리 브란트에 의해 추진된 동방정책에 대해서 '공산주의 밀수업'이라고 비난을 했던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분이 통일독일의 수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하나 에피소드는 빌리 브란트 수상이 동방정책 때문에 기민당의 불신을 받아서 기민당이 내각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하게 됩니다. 3표 차이로 내각불신임을 면하게 되는데 그때 기민당내에서 반란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란표의 주도자가 바로 헬무트 콜 수상입니다. 그때 그 반란표 때문에 콜 수상이 89년에 와서 통일의 열매를 따게 된 것입니다. 입으로는 빌리브란트를 공산주의 밀수업자라고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지지했던 것이지요, 이것이 독일의 역사를 바꾼것입니다.
경제를 잘하는 일이 아닙니다. 단지 깨끗한 사회를 위해 공직기강을 바로잡겠다고 감사원 직원들 파견하고 암행감사반을 보내고 하는 이런 식의 개혁이 아니라, 역사의 무대를 크게 잡아서 세계사의 조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멀리 내다보면서 독일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던 이 사람들이 역사의 지도자인 것이죠.
▶훌륭한 지도자 3. 빌 클린턴 대통령
저는 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20년 쯤 후에는 그가 세계 역사에 기록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고 예견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해서 이런 싸움이 날것이다, 저런 갈등이 생길 것이다는 예측과 말들이 많았지만, 과감하게 냉전 이후의 새로운 시대는 화해와 협력을 기초로한 평화와 공존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예측했던 정치지도자 였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저하고 동갑 밖에 되지 않지만 이미 9년 전에 클린턴은 미래세계의 새로운 질서는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의 시대라고 선언하고 그와 같은 세계정책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가 여성 문제로 망신을 당하고 있을때도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역사의 조류를 바로 읽고 가능한 바람직한 역사을 열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개인적으로 다소 수치스러운 일을 했을지라도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본질적 평가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빌 클린턴이 역사에 남을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지금 뒷걸음질치고 있거나 되돌아가고 있는 듯한 그낌을 갖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 그는 클린튼이 밀어나가던 역사에서 되돌아서서 전 세계를 대결과 긴장의 시대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클린턴의 역사의 예언은 과연 빗나갈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역류는 있을지라도 역사의 조류는 클린턴이 예견했고 추진했던 방향,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안목과 그를 실천할 신념과 용기
지나고 보면 그 당시의 경제정책 몇가지, 개혁정책 몇가지가 아니라 큰 틀로서의 역사적 안목, 그리고 그 역사적 인식을 현실로서 추진해 갈 수 있는 신념과 용기, 이것이 훌륭한 지도자의 덕목이다, 어쨌건 오늘의 역사에 필요한 사람이라야 진정한 지도자다 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요구와 시민의 요구를 결합을 시켜보면요, 국민들은 잘사는 나라, 아니 단순히 돈만 많은 나라가 아니라 살기좋은 나라를 요구합니다. 과연 어느 나라가 살기좋은 나라인가 물으면 어떤 이는 돈많은 나라, 장사 잘되는 나라, 경제성장율이 높은 나라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는 단지 돈많은 나라가 살기좋은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살기좋은 나라의 또다른 조건들, 골고루 잘사는 나라 , 또는 삶의 질이 높은 나라, 또는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이야기했던 문화적으로 우수한 나라... 많은 것들이 포함되겠지요
▶21세기 한국의 시대적 과제 1. 한반도의 평화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위한 역사적 조건은 무엇인가.
동아시아의 평화질서, 번영입니다. 동아시아가 평화로운 질서 위에서 번영을 누릴 때 한국이 그야말로 더불어서 잘사는 나라가 되고, 이 조건위에서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켜 나가고, 그래서 인간은 자유롭고, 국토는 아름답고 제도는 편리한 이런 나라가 되면 잘사는 나라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동아시아의 질서를 반드시 내다보고 가야 한다. 왜냐하면 장사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우선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확실한 방법은 기술혁신입니다. 기업을 보더라도 관리를 효율적으로 한 기업보다도 기술개발을 잘 한 기업이 훨씬 경쟁력이 높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우수하더라도 충분한 시장을 가지고 갖지 못하면 또한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가져야 하는데 이 시장을 가리려면 막강한 판매조직과 브랜드를 가져야 합니다.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1억 정도의 내수시장이 있으면 좋다고 합니다. 일본이 그것을 가지고 있죠,
한국은 남북한 합치면 7000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경의선이 연결되어 시베리아의 일부와 중국의 연해주 일대가 한반도 경제권에 편입될 수 있다면, 그래서 한민족 경제권이라는 자유로운 단위가 형성될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대략 약 1억의 내수시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기 용이해집니다.
그래서 남북관계는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틔여야 합니다. 이것이 되어야만 동북아의 7억의 시장이 기다립니다. 2020년에는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모두들 예언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200KM의 원을 그리면 그속에 약 7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그것은 미국과 유럽의 전체 인구를 합한 것보다 많은 인구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시장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중국의 눈부신 질주하는 성장, 주춤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입니다. 이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었을 때 한국이 잘만하면 황금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이 살기좋은 나라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비전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이 꿈이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왜?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핵무기를 꺼내든다면,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들고 협박을 한다면 남한도 불안하지만 일본은 더 불안합니다. 일본에서 지금 유사시법을 준비하고 있는데 유사시법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반도에서 일이 일어나면 , 한반도에서 안전이 무너지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미사일이나 핵무기는 한반도를 통하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의 우익 국수주의자들은 이 위험을 부추겨서 일본국민들을 선동할 것이고 그리되면 일본은 군비증강, 군사대국화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여론을 좇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이처럼 군비증강을 할 경우 중국은 과거 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역시 군비증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간에 군비경쟁이 시작되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군비증강을 해야 하는데 경제는 일본의 10/1밖에 되지 않고 인구는 중국의 20/1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느 쪽에 기댈 것인지를 걱정해야 합니다. 과거 우리의 역사가 그랬거든요. 어느 쪽에 기댈 것인지를 놓고 우왕좌왕하며 싸우다가 망해버렸던 것이 한말의 우리역사 아닙니까?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효과적 대안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 한국은 또다시 한미일 삼각안보체제의 한축으로서 변방의 역사, 주변의 역사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관계의 열쇠를 돌려야 합니다. 남북관계를 새로운 시대로 열어 나가야 합니다. 안정과 평화가 구축될 때 동북아시아의 평화로운 질서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최근 APEC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께서 창안해서 중국과 일본의 동의를 받아 경제장관회의를 만들고 하는 작은 그림을 그리고 왔습니다. 아직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우리 민족의 미래에 엄청난 의미를 갖는 하나의 출발입니다.
수백년 중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변두리 국가로 살아온 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뛰어넘을 수 있는 세계사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시대, 유럽이 하나로 통합되는 시대, 그리고 남북이 하나로 손잡고 평화를 구축하면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을 막을 수 있고 여기에 적대와 불신의 국제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 공존과 번영의 국제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라야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설 수 있는 세계적 통합의 구심점으로서의 위치를 잡을 수 있는 호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일본은 전과가 있습니다. 중국은 너무 큽니다. 패권주의의 전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을 중재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분열을 극복하고 국제사회를 중재해 나갈 수 있는 경제력과 도덕적 수준이 있다면 이것은 가능한 미래입니다. 이것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이 시기의 역사적 조건입니다. 남북관계가 5년간 긴장되어 일본의 방향이 군비증강으로 고착되어 버리면 , 다시 그것을 되돌이키는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저는 이 시기가 그 결정적인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퍼준다고 하지 맙시다. 이건 우리 국가의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 사실을 노태우 대통령도 김영삼 대통령도 알고 있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시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 소련과 수교를 하려고 했고 그 수교를 위해서 30억불 빌려주기로 했다가 결국 15억불 빌려주었다가 아직 까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북한에 32억불을 앞으로 계속해서 지원하겠다는 문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것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지어주기로 한 경수로 발전소, 그것을 위한 한국 부담액이 32억 불입니다. 그 외에도 김영삼대통령은 3년동안 약 3억6천만 불을 북한에 지원해주었습니다.
김대중대통령 당선후 지금까지 북한에 지원한 돈은 금강산 관광비용을 제외하고 민간과 정부를 다 합해서 3억2천만 불 정도에 불과합니다.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시절 그처럼 많은 돈을 우리가 부담하려고 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숙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말하지 않았고 동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툭하면 북한하고 싸울 궁리만 해왔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그동안 남한이 반공사상으로 찌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정권의 성격은 반공주의에 기반한 정권이었습니다. 반공이념이 무너지면 정권 유지가 어려웠기 때문에 말로는 탈냉전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 하면서 실제로는 반공을 고집하면서 국민들을 속였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관해서 국민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 하지 않았던 결과가 당연히 해야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민족적 과제인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국민의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대북지원에 대해서 야당은 퍼주기라고 난리를 부리고 민심이 거기에 호응해서 정부를 원망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습니다. 남남갈등 때문에 남북관계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강짜를 너무 많이 부립니다. 참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없습니다. 풀 수 있으면 풀어야 합니다. 달래서 풀 수 있으면 달래야 하고 돈을 줘서 풀 수 있으면 돈을 줘서 풀어야 합니다. 풀지 않으면 민족의 미래가 없습니다. 너그럽게 봐야 합니다. 지원해 주십시오. 북한에 주는 돈은 하나도 공짜가 없다, 엄청난 이익이 남는 투자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21세기 한국의 시대적 과제 2. 분열의 극복
두 번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이요 그동안 돈도 좀 벌었고 동북아 시대의 희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반드시 극복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분열의 문화를 극복해야 합니다.
해방이 되었을 때 한국은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세워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야 했습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친일파들이 득세해서 그들의 과거를 미화했습니다. 왜곡된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왜 이리 되었습니까
분열 때문이었습니다. 남북간의 분단, 그리고 남한 내부의 좌우익의 대립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소련을 등에 업고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세력과 미국을 등에 업고 자본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세력이 극한적 대립하는 사이에서 공산주의나 자본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족의 통일과 자주독립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던 중도통합세력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김구, 여운형, 김규식........ 통합세력은 모조리 패배해버리고 분열세력들이 각기 득세했습니다.
그 뒤 미국을 등에 업은 남한의 정부는 반공을 자기 존립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빨갱이 대충 다 잡고 나서는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반공이념을 사용했습니다. 그 틈에 가장 솜씨가 좋은 사람들이 일제 때 독립운동가 잡던 친일파들이었죠. 직접 칼들고 잡으로 다녔던 순사 출신들 뿐 아니라 일제관료로서 식민지에 복무했던 사람들이 나라의 주도권을 쥐고 역사를 왜곡해 나간 것이 한국의 현대사였습니다.
왜 그들(친일파들)에게 권력을 줄 수밖에 없었는가.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고 민족의 분열 때문이었습니다. 분열 때문에 그들의 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상대방을 찍어누르기 위해서 그들의 힘을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좌익세력을 짓밟아준 대가로 그들에게 권력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에 안기부가 무소 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들을 탄압하기 위한 불법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특권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안기부가 권력의 앞잡이가 아니다보니 요즘은 안기부도 힘이 없죠? 검찰과 경찰이 그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경찰이 국민 위에 군림합니까? 못하죠. 불법적으로 국민들을 탄압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과거처럼 힘이 없는 것입니다.
분열이 그와 같은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87년 6월 항쟁이 끝난 후 민주정권을 세워야 했는데 민주세력이 분열해서 선거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6공이 들어섰고요, 겨우겨우 정권을 잡은 것이 기존의 독재정권의 품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독재정권을 상속받아서 문민정부를 세웠습니다. 절반의 정권이었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영남에서는 자신들의 정부로 인정하지를 않았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거든요. 이러한 정서의 틈바구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과거 일제시대에도 떵떵거리고, 자유당시절, 군사독재정권시절에도 독재와 결탁해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사회 지도층으로 군림해왔던 사람들이 지금도 그들의 특권을 주장하는 그런 세력으로 뭉쳐서 이 나라의 민주화에 대해서 저항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민주화시대입니다. 특권은 없어지고 국민의 권리가 신장되어 나가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특권을 주장하는 낡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검찰도 그중 하나입니다. 국민의 정부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집단이 검찰입니다. 검찰이 사고 치면 우리가 다 뒤집어쓰고 완전 골병들고 실지로 권력자 몇 사람이 어디에 끼여있는지는 나중에 다 밝혀지겠지만 , 치명적인 상처는 검찰이 주었습니다. 이들이 과거의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특권 행세하며 여기저기 권력에 줄대고 낡은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행위를 하면서 민심을 흐트러 놓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언론이 언론자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시절에는 정권이 불러주는 대로 쓰다가, 문민정부시절에는 자기들 마음대로 쓰더니, 국민의 정부시대에는 가히 권력 위에 군림해서 권력을 짓밟고 있습니다. 功은 십분지 일로 줄이고 過는 열배로 튀기고,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도 과로 만들어서 국민의 정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전혀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의혹을 제기하기만 하면 마치 사실인양 대서특필해서 민심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할까? 그들은 이 정권의 탄생을 처음부터 반대했었습니다. 특정거대언론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민정부 때까지는 정권의 탄생을 언론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의 정부 탄생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반대한 이유가 무엇이냐하면 정권의 교체라는 것이 민권의 신장을 가져오고 특권에 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위협이 되었죠, 탈세를 한것에 대해 문민정부에서는 그래도 눈감아주었는데 지금은 세금내라하고 구속시키잖아요. 확실히 달라진것입니다. 김대중정부의 탄생을 반대했던 언론의 판단은 정말 현명했던 것입니다. 김대중정부가 들어서면 자신들의 특권이 줄어들것이라는 그들의 판단은 정말 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 언론들이 지금까지 과거 독재정권을 찬양했던 자신들의 비굴한 과거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전논리입니다. 북한과 공존한다든지 평화롭게 화해한다든지 하는것에 대해 총론적으로 찬성하고 싶지만 그러나 실지에 있어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냉전반공주의를 존립의 근거로 삼았던 사람들이 냉전논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해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죠. 그들의 논리적 기반이 무너져 내리면 결국 기득권이 무너져 내리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김대중정부 망해라" "지금 망하지 않더라더 다음 정권은 계속 되서는 안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특권에 매달려서 과거의 영화를 그대로 유지해보려는 그런 특권 세력이 역사를 역류시키고 있고, 그래서 민주주의는 지금도 뒤뚱거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진전은 지금 공격받고 있습니다. 왜 그리 되었습니까? 아까 말씀드렸다 시피 분열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분열 되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과 과거의 특권을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때 이 사람들이 의지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지역감정입니다.
똑같은 일도 문민정부 시절에는 호남에서 무조건 싫다하고 국민의 정부에서는 영남에서 무조건 싫다고 합니다. 금강산관광을 시작했더니 영남 사람들은 처음에는 금강산관광을 가지 않았습니다. 일년이 다 지나고 나서 너도나도 다 가니까 뒤에 슬그머니 끼어들만큼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그렇게 강합니다. 언론개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지역에 따라 찬반이 완전히 다릅니다.
과거에 서 모 국회의원이 국세청 간부를 시켜서 기업에서 돈을 거둬다가 선거자금으로 썼던 사건이 있었죠. 그 사건 조사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야당탄압이라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조사도 제대로 못하고 마치 도둑질하듯이 우물우물 하다가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몇 억을 삥땅하는 배달사고가 있었거든요. 그것은 구속해도 야당탄압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때 체포동의안 국회에서 부결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분노하고 계십니까 ? 안하시죠. 왜? 그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됨으로써 미운 호남정권이 한방 먹었으니까. 김대중 대통령을 한방 먹였으니까요,
내 고향 친구들에게 가서 물어보니까 통쾌하다고 합디다. 이것이 오늘 기득권 세력들의 반격의 밑천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한국역사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분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좀더 시간을 갖고 논의를 해 보야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한국의 시대적 과제 3. 가치중심사회 구현
다음 잘 사는 애기 한번 더 합시다. 나라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 첫 번째는 국민적 역량입니다. 국민들이 우수하면 그 나라는 부자나라가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역량은 어떠한가? 한국국민은 40년동안 한국경제를 양적으로 100배 성장시켰습니다. 지금의 60-70대 어르신들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 20-30대 아이들이 자랄 때만 해도 한국의 교육이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났는데 지금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꿇리지 않는 세계일류의 젊은이들로 성장해서 한국의 IT산업을 일본을 능가하는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았습니다. 노랑머리 물들이고 다니는 청년들이 한심하게 보이기는 해도 알고 보면 세계 일류의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적 역량은 일류국가가 되는데 전혀 모자람이 없습니다.
다음 국가적 전략이 올바라야 합니다. 한국의 국가전략은 무엇이냐? 시장경제, 생산적복지, 참여민주주의,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 보편적 세계주의 , 화합적 노사관계....이 전체적인 전략이 올바로 가고 있는가? 여야간에 커다란 싸움이 없는 것으로 보아 대략적으로 올바로 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최강의 노동조합에서는 국민의 정부의 정책을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규정하고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화는 빈부의 격차를 더 키우게 되고 그것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대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무조건 시장경제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분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사회통합의 전략에 대해서 대안을 마련해가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이 사회통합의 전략을 생산적 복지정책이라고 생각하고 밀고 나가고 계십니다.
여하튼 국가적 전략은 큰 탈없이 방향은 잘 가고 있습니다. 시행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는 나타나고 있지만 그 시행착오로 인해서 국가전략의 근본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아나가야 합니다. 교육부분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농정대책의 대책도 미흡하고 몇가지 과제들이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잘 가고 있습니다.
▷신뢰사회
자 그러면 한국 잘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하나의 조건이 또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치문화가 바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라야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질수 있고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라야 경제활동의 비용이 줄어듭니다. 우리 안전의 비용도 줄어듭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 , 수돗물을 믿고 마실 수 없는 사회에서는 전부 정수기를 사서 물을 마셔야 하고 그 비용이 엄청나게 지출되고 있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엄청난 사교육비의 지출이 생겨납니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으면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발표해도 먹히지를 않습니다. 해결이 되지를 않습니다.
의약분업을 하려고 하니까 의사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의사들에게 여러분들이 의약분업으로 말미암아 수입이 줄어들면 그것은 바로 통계에 잡히기 때문에 일단 실시한 후에 그런 일이 발생하면 6개월후에 줄어드는 만큼 조정을 해주겠다고 말을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믿을 수 없으니까 의사들은 현금도 아닌 선금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통계도 내보지 않고 미리 돈내놓아라는 것이 속셈이었는데 그리 말하면 속보이니까 애라 모르겠다 의약분업을 똑바로 하자면서 반대하고 나오니까 정부에서도 어쩌지를 못하고 의료수가만 여러차례 올려주고 말았습니다. 신뢰가 없는 ,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까 믿지않고 선금내라고 한다고 선금을 주어야 하는 엉터리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원칙이 통하는 사회
그 외에도 우리 사회 룰이 지켜지지 않으면요, 이중장부 가지고는 이제 더 이상 국제 사회에서 기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중장부 안한다고 하면서 장부를 컴퓨터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아도 그 장부를 믿지를 않습니다. 믿지 않으면 투자가 안 되는 것이죠, 신뢰가 무너진 사회,
페어플레이 하는 정신이 있어야지 봉투들고 자꾸 뒷문으로 간단 말이죠. 그냥 열심히 일하면 진급 될것이라고 믿어야 되는데 어쩐지 손해보는 것 같고 불안하니까, "나는 호남이 아니라서 진급이 잘 안될 것 같애, 어디 줄잡아야지" 하면서 뛰어다닌단 말이죠. 이렇게 되 버리면 그 사회는 절대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무너져 버립니다.
한국이 앞으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무어냐고 했을 때 외국의 컨설팅 전문가들이 하는 말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은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편법, 뒷거래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칙을 바로 세우고 규범을 준수하고 모든 약속은 지켜진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이 신뢰 사회를 구축하지 않으면 한국은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규범 만으로 되지 않을 때 윤리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범과 윤리, 종교, 이런 것들이 문화이고 사회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을 바로 갖추어야 한국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기본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어느 사회에나 모범이 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정치입니다. 정치가 거짓말을 하면 다른 곳도 따라하게 되어있습니다. 정치가 정직하게 하면 정치인을 존경하지 않더라도 그 사회는 정직한 사회가 됩니다. 왜냐하면 서로 전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적 자존심의 회복
원칙, 신뢰, 규범, 그 위에 사회적 윤리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이거 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가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합니다. 강한 제재, 그런데 이렇게 하자면 감시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교통법규 줄이려고 사진 찍어오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니까 사람들이 감시당한다고 기분 나빠하는데 이를 기분 나빠하면 안되죠, 누가 보건 안보건 법을 지키면 되는 것 아닙니까? 어쨌건 감시를 통해 제제를 하려고 하면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식품위생법과 같은 각종 규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자발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원칙과 신뢰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이 자발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인간의 자존심입니다. 인간의 존엄,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 만이 자발적으로 사회에서 선량한 일을 하고 약속을 준수하고 규범을 준수하고 신뢰를 받기 위해서 ,나아가서는 존경받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자존심을 가진 인간을 길러내야 합니다.
자존심을 가진 인간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제가 어릴 때 어른들이 가끔 물었습니다.
"너 성이 무엇이냐?"
"노갑니다"
"음 양반이구나"
안동 권씨나 김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촌동네 양반이었지만 우리 시골에서는 그래도 양반행세를 했습니다. 어쨌건 양반 소릴 들으면 그 날 하루종일 양반입니다. 양반이 나쁜짓 못하잖아요,
그래서 가문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가문에서 출세한 사람들 끼리끼리해서 서로 취직시켜주고, 자기들끼리 이권주고 받고, 그렇게 자기들끼리 짜고 잘해 먹으라고 가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가문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그 사회의 도움이 되는 규범적인 인간, 자존심 가진 인간이 되라고 가문을 이야기하고 학벌을 이야기하고 하는 것이죠, 자긍심, 집단적 자부심 이것이 개인의 자부심의 근거가 되기도 하죠. 여기에서 우리사회의 정통성의 문화와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원칙과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
한국의 역사를 보면,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를 따져서 잘된 사람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제게 가르쳐 준 가장 설득력있는 교훈은 "야 이놈아 모난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좀 보고 살아라" 이것이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제 어머니께서 "너 센 놈한테 덤비지 말아라. 네 사촌도 센 놈한테 덤비다 죽었다"며 "옳고 그름은 삶의 기준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어도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힘센 사람에게 줄을 서서 알랑거려야 한다는 역사적 체험을 우리는 축적해 왔습니다. 불의를 보더라도 외면하고 살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이런 역사속에서 무슨 자존심의 역사, 원칙과 규범이 서는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제가 미국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정말 부러워 한 것은 지금도 대통령들이 국민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갖게 하는 이것이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리의 헌법에 구현하고자 했던 정신입니다" 하고 한마디 말하면 그것으로 끝나 버린다는 점입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시비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
소위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으로 표현되는 미국독립선언서는 아직도 인류문명에서 민주주의 사상의 금자탑, 인권사상의 금자탑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것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독립선언서를 읽었던 사람들이 승리했거든요, 인간의 평등과 노예해방을 주장했던 링컨도 승리했거든요. 연방의 분열을 반대하고 연방의 통합을 주장하며 전쟁을 감행했던 이 링컨 대통령이 승리했단 말이지요. 이처럼 오늘날도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승리한 역사를 미국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에서 과거에 정의의 깃발을 들었던 사람들 치고 승리한 사례가 어디 있습니까? 김구 선생님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 분의 인생으로서 승리해서 후손들의 추앙을 받고있기는 하지만 , 그분처럼 살자고 하면 따라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랬다간 죽거나 망하니까요. 이게 우리의 역사입니다.
딱 한 분 김대중 대통령이 권력에 맞서 처음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건 정말 값진 승리입니다. 그 이후 언론이 아주 힘이 좋아진 것 아닙니까? 권력 겁 안난다 이거 아닙니까, 드디어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좋은 일이건 아니건 이곳 안동 지역의 유지들도 과거같으면 집권당의 최고위원이 온다하면 눈도장 찍을려고 너나 할 것없이 쫙 줄섰을텐데 오늘을 별로 안오네요(웃음)
정권이 바뀌면서 달라진 것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제 옳고 그름을 따져서 가치를 생각하고 자기의 자존심을 소중하게 가꾸어 나가는 새로운 역사가 이제 시작되고 있는것입니다. 6백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기회를 우리는 살려나가야 합니다. 제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운용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인데 남미에 가면 독재체제가 되어버립니다. 한국에서도 한때 강력한 독재체제로 유지되어오지 않았습니까? 유럽의 내각제는 아시아에 오면 비민주적인 제도가 되어버립니다. 똑같은 헌법가지고 6공이 다르고 국민의 정부가 다르지 않습니까?
▶역사가 바로서야 의식이 바뀐다
인간의 의식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역사의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6.25를 경험하신 분들에게는 아무리 북한하고 잘 지내야 한다고 해도 " 안 된다. 그놈들을 믿으면 안된다. 그 놈들이랑 어떻게 한 솥에서 밥을 먹을 수 있나, 택도 없다"고 합니다. 역사의 경험이 너무도 참혹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경험이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바뀌려면 아직도 30년 이상의 세월이 더 흘러야 할 것입니다. 30년이면 한 세대의 주도권이 바뀝니다. 저처럼 직접적으로 전쟁을 겪지 않았던 사람은 북한에 대한 반감도 훨씬 적기 때문에 북한과도 같이 살아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처럼 30년의 세월은 흘러야 한 사회의 의식이 바뀌게 됩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만들어 가는 역사는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그런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 기초로서 원칙, 신뢰, 규범, 윤리 이러한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새로운 동북아 시대 , 분열을 극복한 통합의 시대,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문화의 시대 , 이것이 이 시대 우리의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세 개의 열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가는 현실정치에서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질문이 있으면 답변 드리기로 하고 여기서 제 이야기는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보고 있나? 대권 주자들이라는 사람들?
이 얘기를 노무현이 몇년도에 했는지 똑똑히 보시라. 2001년도다. 2001년도!
2012년의 대한민국은 2001년도의 노무현 강연 내용에서 얼마나 더 발전했나?
오히려 퇴보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대권 주자 여러분들의 시대 정신은 무엇인가?
무엇을 내 걸고 대한민국을 이끌겠다 말할 것인가?
어쩌다가 운 좋아서~ 가 아닙니다.
이기는 편 내편~ 식으로 골라먹는 재미로 뽑힌 거 아닙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필연> 과 <숙명적 당위> 를 스스로 개척한 사람 입니다
그 어떤 <기득권적 지지기반>도 없이 말입니다.
노무현의 대선 출마 발표 동영상
-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하라
연설은 이렇게 시작함
" 조선건국이래로 600년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한번도 권력을 바꿔보지 못했다~
~ 6백년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울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 "
http://durl.me/84t3o
후단협등 모든 흔들기에도 노무현이 결국 이겨낸 것은,
- 만약 이기려고 했다면 졌다, 그러나 바꾸려고 했기 때문에 이겼다.
- 이겨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꿔야 이기는 것이다 -
PLAY
노무현이 대통령을 물러나기 얼마 전이었는지 그 이후였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유명한 윤리 강사인 이현 선생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노무현을 인정해줄 수 밖에 없는 점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노무현 만큼 깨끗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이 정의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아무도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정의를 말하는 순간 그는 즉시
왕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요?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초라한 모습으로
퇴임을 기다리던 노무현의 쓸쓸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우연히 노무현의 대선 출마 일성을 다시 동영상으로 접했을 때
무엇이 그렇게도 서러웠는지 혼자서 그 동영상을 보고 보고
또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달맞이에서 누가 그러더군요. 이광재가 판세를 제대로
보고 있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시는 분에게 이 동영상을 다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느냐고요.
아마도 그렇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겠죠.
그냥.. 할 말이 없습니다.. ㅠㅠ
[정의]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번영할 것인가 라는
먹고살 [비젼] 까지 제시한 명문 입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추진했던 '한미 FTA' 구상이 이때에 이미 본글에 다 들어가 있어요
내수규모가 1억은 되야한다 = '북한' 을 한민족 번영의 공동체로써 필수적인 사항으로 이미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미FTA - 이거 결코 '즉흥적' 이거나 '우쭐한' 생각으로 추진 했던게 아닌 겁니다
노무현 집권 당시에 노무현 변했다고 무수하게 지지 철회한다고 했던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 보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이 노무현의 처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어서 그런 망발을 그리도 쉽게 내뱉나' 하고요.
사실 2001년도 안동시민학교 강연은 어지간한 노빠들도 잘 모르는 강연입니다.
끽해봐야 아는 게 아마도 대선 후보 당시의 딴지일보 인터뷰와
유시민 인터뷰 정도부터 기억할 것이 고작일 겁니다.
그러면 묻노니 딴지일보의 노무현 인터뷰 내용을 찬찬히 복기했을 때
과연 당시 노무현이 했던 말 중에서 집권 당시에 약속을 어겼고 말을 뒤집었던 사례가
무엇이었는지 지목할 수 있습니까?
안동 시민학교 강연 ▶ 딴지일보 인터뷰 ▶ 유시민 인터뷰
▶ 대통령 당시의 연설문들 ▶ 원광대, 참평포럼 강연 ▶ 퇴임 후의 저작, 구상들
노무현이 공식적으로 했던 발언의 큰 흐름을 죽 따라가보면
단 한번도 안동시민학교에서 강연했던 내용의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역사란 노무현의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노하우업은
그 신앙을 물려받겠다 나섰습니다.
"개인과 집단", "기록과 역사"라는 두가지의 테마가 노하무업의 심장입니다!
"마지막 특권에 매달려서 과거의 영화를 그대로 유지해보려는 그런 특권 세력이
역사를 역류시키고 있고, 그래서 민주주의는 지금도 뒤뚱거리고 있다"
보고 있나? 민주당!!! 새누리당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너희가 과연 노무현의 이 일성에 떳떳하다 말할 수 있는가??
아마도 당신들은 우리가 과거에 받은 특권이 무엇이 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노니 당신들이 과거에 감수해야 했던 희생과 고통에
대해 이제는 그 댓가를 받고 싶다고 할 참인가?
그래서 지역주의에 기대서 못 이겨도 나는 좋아 나는 내 나와바리만
간수 잘하면 돼~ 이렇게 나가겠다는 건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개인과 집단", " 기록과 역사 "라는 두가지의 테마가 노하우업의 심장입니다! = 땅~땅~땅~!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 <= 비록 의견이 달라도 분란없이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비결'
기록과 역사' <= 그 의견이 [왜곡 내지 교란] 되지 않습니다, 이 역시 분란없이 소통할 수 있는 신뢰의 '터전'
공론장을 표방한 노하우업의 '핵심' 테제 입니다.
[노무현 비망록 2001년 11월 8일]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이 자발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인간의 자존심입니다. 인간의 존엄,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 만이 자발적으로 사회에서 선량한 일을 하고 약속을 준수하고 규범을 준수하고 신뢰를 받기 위해서 ,나아가서는 존경받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자존심을 가진 인간을 길러내야 합니다."
-. 안동시민학교, 21세기 시대정신과 지도자 강연 중에서..
▶ 제가 요즘 현 정치시국에 대한 언급을 줄이고, 안철수에 대한 필요 이상의 비난을 경계하는 이유, 노하우업의 대문이 정치가 아닌 철학, 종교, 사회 현상 위주의 글로 채워진 이유가 이 한 문장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논할 때 분명히 해둬야 할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노무현이 말했던 자존심이라는 단어는 요즘의 말로 풀어 쓰면 자존감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것과는 다르게 부정적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자존심이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의 차이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한계와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어야 남의 한계와 잘못에도 관대해지는 법이죠.
왜 이것이 중요하냐? 자기 연민에 지나치게 빠져들게 되면 서로가 상대편의 부족함을 힐책하고 공격하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자기가 가진 고독과 희생과 상처가 더 크다고 어필하곤 하죠.
그리고 이런 식의 흐름은 자기 혐오에 빠진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관찰이 됩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무의식 중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공격이 들어올 경우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반응하게 되는 것이죠.
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이라는 두 극단의 감정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릇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김난도와 김미경이라는 전혀 상반된 스타일의 멘토(?)에게 환호하게 되는 겁니다. 한쪽은 자기 연민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한쪽은 자기 혐오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죠.
이렇게 스스로를 잘못 바라보게 만드는 왜곡된 시선과 관점을 벗어버릴 수 있어야 자기 안에서 용서가 싹트고 변화가 싹트며 남의 입장과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립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 용서의 힘은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게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 사람의 잘못, 그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견해는 사정없이 비판할 수 있으되, 그렇다 하여 그 사람까지 미워하고 배척하고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이 될 때 바로 공론장의 <신뢰>가 정착이 되는 것이죠.
극한 대립 만의 관성이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는 이걸 기대한다는 것이 무척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개인 위주의 사고방식>과 <논공행상>이라는 강력한 <보상체계>를 갖고 있는 수구 보수 세력의 튼튼한 연대의식과 달리 범야권 진보 세력들은 툭하면 판판이 깨지고 분열합니다.
이런 악순환을 과감히 깨버리지 못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이라는 두 극단의 함정이 만드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스로 바로서지 못하면 절대로 공동체도 바로서지 않습니다. 집단의 연원은 결국 개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