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이제 남은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늙고 병든 몸을 이끄시고 먼 길을 걸으셔서
사랑에서 글을 쓰셨습니다.
1911년 연동에서 태어나 79년을 가족과 나라와 세상사람들을 위해 하루도 쉬지않고 어리석음을 깨우치시고, 가전충효 세수인경을 실천하시며, 온갖 삶의 지혜를 알려주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2023년을 보내고 경진년 새해가 시작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기일이 옵니다.
진주정 씨는 신라 지백호 육촌의 지도자로 이 땅에 나투시어, 고려시대에는 외세침략을 물리치고 중량장 벼슬을 하사 받으신 자우께서 진주에 정착하시고, 중조 신열의 18 손으로, 신라 고려의 불교문화, 조선의 유교문화, 서양문화의 변화 속에, 진주민란, 동학혁명, 일제강점, 625 사변을 겪으며, 십 대에 김악이 할머니와 혼인하시어, 어려운 산림을 이르케 세우시며, 연동가문을 찾는 수많은 손님들을 정성으로 맞으시며, 집을 짓고, 논을 사고, 밭을 사고, 산을 사서, 유택을 정리하시고, 향교 전교를 하시며, 충효를 가르치시고, 학교를 세워, 지식과 지혜을 가르치시고, 진주성 안에 진주정 씨 봉남서당 재실을 여시고, 연동 연상재를 지으시므로, 할머니 어머니께서는 새벽참, 아침식사, 아즉질참, 점심식사, 오후참, 저녁식사, 밤참을 준비하시느라 눈코뜰날이 없었다 들었습니다.
진주 현동 부유한집 가사를 익힌 할머니께서는, 싱가재봉틀로 옷 만드시고, 바느질을 잘하셨으며, 강밥 유가 두부 엿 김장등을 손수 만드시어, 봉제사접빈객이 제일인 시대에 끝없는 손님을 정성과 웃음으로 모셨다 들었습니다.
지혜와 자비와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시니 한번 보고는 잊히지 않는 존경과 고마움을 사람들은 회자하고 있습니다.
연동과 영남유림과 성균관의 중심이 되어 일제치하 조국 독립을 위해 프랑스 파리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주선한 서울 장충단 공원 파리장서비 건립 시 축사를 하시는 모습을 뿌듯하게 기억합니다.
이른 아침 느르들로 행차하시면 사람들은 신농시가 나오신다 하시며, 뭐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았습니다.
올해 97세이신 큰딸 영창고모님도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아이가 그것도 모르나 ”하시며 참 신통하게 잘 알려주셨다 합니다 .
수많은 서적과 유품을 경상대 도서관에 기증하여 춘포문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공덕으로 우리들이 이렇게 풍요롭게 살게 되었으니,
자제 칠 남매 중 이제 남은 오 남매, 손자 23명, 증손 44명,
물끄러미 보는 동건이 동유 송이의 모습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찾아내곤 깜짝 놀라 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저회들이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무한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할아버지께 이 일을 해달라 저 일을 해달라 하지 않고
세상에 모든 일들은 저희가 앞장 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할아버지 할머니 이곳에 안온히 머무소서.
저희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걸으신 길들을 하나하나 따라 걸으며 이루고자 하신 일들을 저희들이 이룰 것을 발원합니다.
칠 남매의 막내인 새미실숙모 내외분께서 할아버님과 인년이 많아 마지막 위암으로 고통받으시며, 뼈를 깎는 아픔을 참으며, 사랑에서 글을 쓰시는 모습을 보며, 숙모님께서 삼 년을 간호하시더니, 이제 제사까지 맡아 올리십니다.
할아버지께서 서울 올라오실 때, 관동숙부님 홍은동 이사 때, 새미실숙부님 오류동 이사 때, 우리는 넉넉하지 못하지만 수십 명이 같이 했습니다.
할아버지 제사가 이런 마중물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정성 들여 제사상을 올리오니, 편안히 흠향하시옵고,
가문의 번성을 하늘에서 보아주시옵소서!
2024년 1월 4일 손자 성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