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여행 클릭☆─━ 20. 사랑의 애환
근소소가 물었다. [그 애는 혹시 묘강 천수문의 제자인가요?] 혈도인마는 웃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소? 검남 그 애는 전연 무공 을 모를 뿐만 아니라 두 다리가 불구란 말이오.] [두 다리가 불구라구요?] 근소소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말하는 애는 바로 조금 전에 불렀던 그 아이인가요?] 혈도인마 기백은 대답했다. [맞았소. 조금도 틀림이 없소...] 그는 의아한 듯이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와 같은 질문을 하는 거요?] 근소소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조금 전에 내가 본 그 아이는 비단 두 다리가 멀쩡할 뿐만 아니라 몸에 신기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어요...]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혈도인마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 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근소소는 두 눈썹을 찌푸렸다. [설마하니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혈도인마는 그녀의 뾰로통해진 음성을 듣고 보니 마음이 떨리는 것 을 느끼고 약간 말을 더듬었다.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오. 나는 다만 그 애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오.] 근소소는 대답했다. [나 역시도 이상하게 생각해요.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는 정무심의 금음을 듣고도 죽지 않았어요.] [정무심이라고?] 기백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당신이 말하는 자는, 옛날 칠차 남북 녹림회맹때 금음으로 흑산십삼 요와 구루삼괴를 일시에 충격을 받아 죽게 한 그 녀석을 말하는 것이 오?] 그는 근소소와 십여 년 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이 골짜기 에 은거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금성 정무심이 그녀를 사모해서 단장 벽 밖에다 초막을 짓고 십삼 년 동안 그곳에서 그녀를 지켜보며 살아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다만 오래 전부터 금성이라는 이름을 들어왔지만, 그의 사람을 죽게 만드는 금음을 들어본 적이 없소.] 그 말뜻은 금성 정무심이 천하칠대 고인에 한사람으로서 손꼽히게 되었지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요행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 었다. 근소소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양반은 자부하는 습성을 여전히 고치지 못했구나. 아직도 안하무 인격으로 천하의인사들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군...)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과거 흑산 십삼괴가 힘을 모았는데도 그의 한 수 잔금지조를 당해 내지 못했으니 당신들은 그의 금기(琴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상상할 수 있을 거예요... 더군다나 십여 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 그의 금예 는 이미 천하무쌍의 경지에 도달해 있어요. 그런데 고검남이라는 애는 비단 그 금음을 듣고도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격을 했어요...] 그렇게 운을 뗀 그녀는 조금 전 고검남이 돌멩이를 쳐서 절정의 내 력을 쿵! 쿵! 하는 소리에 쏟아부어 금성 정무심의 금음을 헝클어 놓 은 일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물론 그녀는 정무심이 그곳에서 십여 년 동안 살면서 자기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귀찮게 군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젊었을 적 의 연인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 기백은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불가능하오!] 근소소는 무겁게 반문했다.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나요?] 기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결코 당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너무나 불가 능하다는 것이오!] 단주활불은 얼른 그의 말을 이었다. [천하에 불가능한 일은 너무나 많지요. 설마하니 기적이라는 것도 있 을 수 있지 않습니까?] 기백은 속으로 생각을 해보았으나 고검남이 호수 속에 빠졌으나 죽 지 않고 오히려 몸에 절예를 지닌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으나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검남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오. 따라서 노부는 맹세코 그를 찾아내겠 소...] 그가 거기까지 말하게되었을 적에 얼굴에 붉은 빛이 피어올랐다. 이 무렵 아침해가 막 동녘 하늘에 솟아오를 무렵이었고 깊이 잠들었 던 온 누리가 이미 깨어나는 판이라 골짜기는 더욱 더 밝아졌다. 그리 하여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근소소는 놀라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떻게 된 거예요?] 기백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일장을 갑자기 후려치면서 매섭게 외 쳤다. [노부는 고검남을 사로잡아 간 사람을 생각하면, 그의 염통을 꺼내 씹 어먹고 그의 뼈를 부러뜨려 놓았으면 하는 심정이오!] 그가 뻗쳐 낸 일장은 허공에서 귀에 따가운 뾰족하고도 매서운 휘파 람 소리를 일으켰고 일장 밖의 두 석순이 쓰러졌다. 근소소는 기백이 조금 전에 상처를 입은 때문이 아닌가 하고 여겼던 것인데 이 때 그의 일장이 침맹하기 이를데 없는 것을 보고 그가 그 저 갑자기 나타나 고검남을 사로 잡아간 사람을 통한스럽게 여겼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더군다나 그녀 역시도 천영상인의 보물이 있는 곳이 표시되어 있는 장보도를 떠올리면 역시 은연중에 가슴이 쓰라렸다. (천하에 단장곡에서 사람을 잡아갈 사람이 있다니, 더군다나 네 명의 고수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의 소행인 지 발견하지 못했으니, 이거야말로 진정 맹랑하기 그지없는 일이구나.) 이와 같은 생각을 굴리게 되었을 때에 그녀는 흘깃 단주활불의 시선 이 기백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고는 자기에게 옮기는 것을 볼 수 있었 다. 그녀는 두 눈에 차가운 번갯불 같은 안광을 빛내며 시선을 옮겨서 역시 단주활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단주활불은 두 눈에 한 가닥 지극히 야릇한 빛을 띄웠다가거두어 드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승은 결코 고검남이 뜻밖의 일을 당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그는 어린애이니 무림의 고인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더 라도 도망쳐 나올 기회가 없을 것이오. 따라서 소승은 달려나가 한 번 추심을 해보고 싶은 심정이오.] 기백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붉은 빛이 어느덧 흐트러졌다. 그는 종선 생을 슬쩍 쳐다보고는 그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 갑시다.] 그는 눈길을 돌려서 근소소를 바라보았다. [소소, 당신은 나와 함께 가실 테지요?] 근소소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백이 자기를 그렇게 부르는 소 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마음속으로 잔잔한 파문이 이는 것을 느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활불은 빙그레 웃고 종선생을 불렀다. [종도, 우리 갑시다.] 종선생은 기백에게 포권을 했다. [기백 시주께서 아무리 노부를 오해한다 하더라도 시일이 오래 지나 면 진상이 필연코 밝혀질 것이오. 혈수천마의 자제분이 실종된 일에 대해서는 노부가 절대 끌려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 이만 작별을 고할 까 하나이다!] 기백은 냉소를 띄웠다. [이 기모라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해서 무척 잘 알고 있소. 본인이 여가 만 있으면 훗날 반드시 다시 옥청궁으로 찾아가서 종선생에게 가르침 을 받도록 하겠으며, 고검남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당신의 곤륜파 에서 다시 액난을 받는 날이 될 것이니 아무쪼록 당신은 다른 그 염 치없는 녀석들에게 말을 잘 전하도록 하시구려.] 그는 이와 같은 말을 한다면 중원 구대문파에서는 공통으로 고검남 을 추살하려 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평생 지극 히 자부해 온 사람이었고 고검남을 지켜주어 고검남이 상해를 입지 않도록 할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후부터는 근소소가 자기를 도와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종선생은 기백의 말에 대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단주활불은 한마디 했다. [시주의 호기는 구름을 뚫을 듯하여 정말 소승으로서는 탄복하는 마 음이외다. 그러나 소승은 시주에게 우리 천룡파가 하루라도 망하지 않 는다면 고검남은 틀림없이 어떠한 흉악한 위험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증하겠소.] 그는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소승은 이만 작별을 고하겠소!]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일단 소맷자락을 한번 휘두르며 종선생과 함 께 몸을 돌려 나는 듯이 달려갔다. 기백은 그들 두 사람이 이십여 장이나 되는 절벽 위로 올라 멀리 사 라지자 그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떠났군!] 근소소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 하게 되고 전신을 흠칫하더니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내는 것을 보았 다. [기백... 당신은... 당신은 어찌된 거예요?] 기백은 쓸쓸히 웃었다. [나는 조금 전 초혼대법을 펼쳐 내게 되었을 적에 단주활불의 암산을 받아 이미 몸에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죽을 때가 이제 얼마 남지 않 은 것 같소.] 근소소는 아! 하고 탄성을 발했다. [당신... 내가 쫓아가서 그를 불러오겠어요.] 그가 그 말을 내뱉게 되었을 적에 기백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리 고 잇달아 다시 두 모금의 선혈을 토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몸을 휘 청하는 것이 거의 쓰러질 것 같았다. 이렇게 되자 그녀는 이것저것 돌볼 사이 없이 급히 몸을 옮겨 기백 의 그 비쩍 마르고 키가 큰 몸을 부축했다. 그리고 왼손을 그의 등에 갖다 대고 진력을 주입했다. 기백은 그녀에게 의지하며 중얼거렸다. [이십 년 동안 당신이나 나나 이토록 가까워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 구려. 아! 생각하면 정말 고통스러운 과거사...] 근소소의 마음 역시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야말로 지금의 심정 이 어떤 느낌인지 꼬집어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 ㅅ혔다. 그녀의 음성도 떨렸다. [당신은... 당신은 더 말하지 마세요.] 기백은 비쩍 마른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백옥 같은 흰 손을 만지며 천 천히 말했다. [나는 다만 한평생 다시는 당신을 만날 기회가 없으리라 생각했소. 그 러나 뜻밖에도 죽기 전에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되는구려. 나는... 이제 설사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있겠소.] 근소소는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당신... 당신은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기백은 빙그레 웃었다. [왜 우는 것이오? 아 소소! 당신은 아직 옛날처럼 감정이 너무 취약하 구려...] 그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쳐 주며 웃었다.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나는 이미 쉰 살을 넘기까지 살았으 니 유감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소. 다만...] 그는 안색이 변했다. [다만 있다면 고검남 그 애 때문이오!] 근소소는 그가 고검남에 대한 짙은 정을 느낄 수 있어 얼른 그 말을 받았다. [그 애를 위해서도 당신은 마땅히 살아 남아야지요. 더군다나 조금 전 당신이 그와 같은 말을 했으니 아마 구대문파에서는 그를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당신이 그를 해치는 결과가 되는 것이 아 니겠어요?] 기백은 쓸쓸히 웃었다. [내가 조금 전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소. 왜냐하면 내가 꿋꿋하 게 버텨 나가지 못하고 그들이 내가 이미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 아차리게 된다면 나는...] 근소소는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내가 이곳에 있는 한 감히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기백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단주활불은 심지가 깊은 사람인데다가 무풍지라는 절예를 연마했 소. 거기다가 종선생까지 합치게 된다면 당신 혼자서 그들의 적수가 될 수 없으며 나도 당신에게 누를 끼치는 것을...] 근소소는 한숨을 쉬며 그 말을 가로챘다. [아! 당신은 아직도 전과 다름없는 성격이군요. 생각해 봐요.] 그녀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사 당신이 나를 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어린애를 위해서 굳건 하게 살아남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조금 전 당신이 한 그를 해치게 되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녀의 이와 같은 말은 무척 심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기백은 안색이 일변해서는 성이 나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노부는 그를 내 친자식처럼 여기고 있는데 내가 어찌 그를 해치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는 시종 고검남이 호수 속에 떨어져 죽게 된 것은 자기가 전력을 다 기울이지 않은 때문이라고 무척 속으로 고통스러워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의 흉악한 위험을 무릅쓰는 한이 있더라도 초 혼대법을 펼쳤던 것인데 그것은 다만 고검남의 음혼을 불러 자기의 미안한 뜻을 전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제 그는 고검남에 대해서 그토록 사랑하고 지켜 주려고 하는 마당 에 고검남이 죽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이미 부친을 잃은 고아 가 다른 사람에게 해침을 받는 것을 놔둘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이와 같은 죄책감은 살아 생전에 그로서는 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근소소가 바로 그와 같은 점을 예리하게 파고들면서 말로서 그가 다시 살아 나갈 용기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다그친 것이었다. 과연 기백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벽력같은 노여움을 터뜨렸다. 근소소는 싸늘히 코웃음치며 한 술 더 떴다. [당신이 그를 그토록 사랑한다면 어째서 이대로 죽으려 하는 거예요. 어쨌든 당신은 살아날 방법을 강구해야지요. 그렇지 않을 때 당신의 말은 모두 빈 말이 되고 말 것 아니겠어요?] 기백은 맥없이 말했다. [나도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 근소소는 재빨리 그 말을 가로챘다. [설마하니 정말 어떤 방법도 없단 말이에요?] 그녀는 이와 같이 무공으로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닌 상황을 숫제이 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경솔하게 치료 방법을 쓸 수가 없는 것이 었다. 기백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나를 먼저 부축해서 땅바닥에 앉혀 주시오.] 근소소는 왼손으로 여전히 그의 등에서 손을 떼어 내지 못하고 그를 부축한 채 땅바닥에 앉게 한 후 진력을 여전히 기백의 체내로 들여보 내서는 그의 심맥을 지켰다. 기백은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숙연히 말했다. [당신은 먼저 손을 떼어 내시오. 우선 나는 천독공(天毒功)을 한번 펼 쳐 보겠소. 그리하여 내 자신의 혼백을 몰아 내보낼 터이니 잠시 후 당신은 나의 백회혈(百匯穴) 위로 한 가닥 푸른 연기 같은 것이 왈칵 솟아오르면 즉시 태음(太陰), 천돌(天突), 혈저(血저), 명문(命門), 영태 (靈台), 용천(湧泉) 등의 혈도를 집도록 하시오.] 그가 말한 일곱 곳의 혈도는 모두가 사람의 사혈이라 할 수 있으며 한곳만 집히게 된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근소소는 작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건... 괜찮겠어요?] 기백은 담담히 말했다. [내가 살아남고자 한 이상, 어찌 당신에게 농담을 하겠소. 내 당신에 게 말해 주는데 일곱 혈도를 봉쇄할 때 반드시 가장 빠른 수법을 사 용해야지 만약 조금이라도 늦어지게 된다면 나의 혼백은 다시 내몸으 로 되돌아 올 수 없게 되는 것이오.] 근소소는 한평생 그와 같이 혼백을 몸밖으로 몰아낸 후 그 자신이 시술(施術)하는 일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마구 흔 들리게 되고 퍽 긴장되었다. 그러나 그는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좋아요! 내가 그르치도록 하지 않을께요.] 기백은 그윽한 눈길로 근소소를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리고 두 손을 수평으로 무릎 위에 놓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근소소는 안색이 긴장되어서는 기백을 주시했다. 눈 한번 깜박이지 못했는데 잠시 후 기백은 바깥쪽으로 숨을 쉬던 것을 멈추고 숙였던 머리가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밝은 햇살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쳐주고 있었는데 그 얼굴은 점점 갈수록 남색으로 변하더니 나중에는 차차 자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에 그의 머리 위에서 한 엷은 푸른 연기 같은 것이 솟아 오르더니 안개처럼 피어올랐다가 흩어지는 것이었다. 근소소는 재빨리 손을 움직여 잽싸게 기백의 일곱 사혈을 모조리 짚 어버렸다. 그녀가 기백의 용천혈을 짚게 되었을 적에 자기도 모르게 길게 한숨 을 내쉬고서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녀의 심현은 여전히 팽팽하게 긴장되어 가부좌를 틀고 고개를 떨 구고 앉아 있는 기백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이 그 일곱 곳의 사혈을 집히고서도 죽지 않는 사실에 정 말 믿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기적과 같은 광경이 갑작 나타났다. 기백의 온몸이 마치 갑자기 그 어떤 기운으로 충만해진 듯 아래로 떨 구었던 머리통도 뻣뻣하게 세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의 짙은 남색을 띄고 있는 얼굴빛은 대뜸생기를 되찾았다. 마치 시 들어 버린 화초가 다시 싱그러운 푸른 빛을 되찾는 것과 같았다. 근소소는 눈길에 경악해 하는 빛을 띄우고 기백을 바라보니, 기백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을 뜨는 것이 아닌가? [당신!] 그녀는 놀랍고 의아해서 말을 건네 보았다. [이제 나아졌어요.] 기백은 웃었다. [아마 잠시는 문제가 없을 것이오.] 근소소는 의아해 하며 말했다. [설마하니 당신은 또...] 기백은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먼저 내 목숨을 미리 좀 쓰게 된 것이오. 그리고 만약에 육개월 안에 그 약물을 찾을 수 없다면 나로서도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는 것이오.] 근소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약물이 있어 치료를 할 수 있다면 되는 거예요? 나의 생각으로는 반 드시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약물은 어떤 것인 가요?] 기백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모를 거요. 그것은 찾을 수가 없는 것이오. 다만 스승이신 천 고노인(天孤老人)께서 나에게 말한 바가 있지만, 이 짧은 몇 달 안으로 찾아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이오...] 근소소는 그 말을 다 듣지 않고 불쑥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떤 물건이에요. 이야기나 해보세요. 어쩌면 우리가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잖아요.] 기백은 물었다. [당신은 천년화귀(千年火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소? 이와 같은 화 귀는 천지간의 가장 뜨거운 기운이 여물어서 생기게 되지만 아주 추 운 고장에 사는 생물이라 하더구려... 이와 같은 화귀는 오백 년마다 한 번씩 등에 껍데기를 벗기는데 내가 바로 그와 같은 귀교(龜膠)를 먹기만 한다면 내상을 치유시킬 수 있는 것이오. 그러나 또 어디 가서 그와 같은 귀교를 찾는 단 말이오?] 근소소는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기회가 있기만 하다면 별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녀는 속으로 그와 같은 약물은 어떤 인연으로 손에 넣을 수 있어 야지 억지로 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며, 자기가 말한 것처럼 쉬운 일 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그와 같은 한마디를 하 고는 말을 슬쩍 돌렸다. [당신은 우선 나에게 단주활불이 당신을 암산했다는 사실을 조금 전 에 알아차렸으면서 오히려 종선생의 소행이라고 지적해서 말했는지 말해 주실 수 없나요?] 기백은 고소를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말위험했소. 그가 일각이라도 빨리 암산했다면 나의 영혼은 되돌아오지 못해 나의 몸은 불에 타서 반드시 죽고 말았 을 것이오. 다행히도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라 그저 심신에 상 처를 입었을 뿐이오. 그 때 나는 부득이 잠시 내 자신의 심규(心窺)를 폐쇄하고 부혈(浮血)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소. 원래는 갑작스럽게 암습을 가하려고 했으나 나중에 그 암습을 하는 사람의 무공이 고강 하기 때문에 무공이 비교적 약한 사람을 골라잡은 것이라오...] 근소소는 되물었다. [원래 당신은 나도 그들과 한패라고 생각했나요?] 기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들은 헤어진지 십 년이란 세월이 지났소. 내 어찌 당신이 이곳에 갑자기 나타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소? 나는...] 그는 시선을 들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근소소는 물론 그의 그 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그는 입을 열었다. [십오 년간 나는 바로 이곳에서 살고 있었어요. 당신... 당신은 나의 처소로 가서 구경하고 싶지 않으세요?] [좋소!] 기백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검남을 찾아가는 것도지금 급히 서둔다고 될 것이 아니오. 내가 볼 때 단주활불도 고검남에 대해서는 참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 같소. 그 사람의 힘으로 틀림없이 검남을 아무 일 없도록 보호할 수 있을 것이 오.] 근소소는 슬쩍 그를 바라보았다. [나의 생각으로 아마도 그것은 천영보도와 관계 있는 것 같군요.] 기백은 의아한 얼굴 표정이 되었다.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소?] 근소소는 대답했다. [나는 직접 보았는데 왜 모르겠어요. 당신은 내 처소로 가서 좀 쉬도 록 해요. 그리고 자세히 이야기 해보도록 해요.] [그럽시다.] 기백은 다시 말을 이었다. [또 많은 일들을 우리들은 반드시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거요.] 근소소는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십 년 동안 나는 언제나 기회를 찾아서 그대를 만나 보려고 했어 요. 그러나 자꾸만...] 기백은 천천히 손을 뻗쳐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소...] 아침의 해가 솟아오르고 뭇 봉우리들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단장곡은 환하기만 했다. 몇 대의 동강이 난 석순 외에는 어젯밤에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흔적을 남겨 놓았는지 알 수 없었 다. 골짜기 안은 조용했으며 다만 산바람이 나직하게 불어와 흐느끼듯 소 리를 내고 있었다. 절벽 옆에 있는 땅의 한 조각의 커다란 바위가 한 옆으로 옮겨졌다. 머리카락이 잡초처럼 헝클어진 사람이 불쑥 바위 앞쪽에서 머리를 내 밀었다가 곧 다시 머리를 움츠렸다. 잠시 후에야 헝클어지고 더러워진 머리카락을 가졌을 뿐 아니라 온 몸에 기름때가 묻고 해어졌으며 이 곳 저곳을 기운 옷을 입은 늙은 거지가 바위 아래에 있는 구멍 속에 서 기어 나왔다. 아침 햇살 아래 그의 옷은 기름때가 잔뜩 묻고 두 소맷자락이 번들 거리도록 윤이 나는 정도였는데 그 안에서 손을 불쑥 내밀더니 아무 렇게나 얼굴을 몇번 문질렀다. 그리고 난 후 허리를 구부리고 동굴 안 에 곤히 잠들어 있는 어린애를 끌어냈다. 그는 왼손으로 그 어린애를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손에는 한 자루의 푸르스름한 죽장을 쥐고 아침해를 향해 나직이 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어두운 밤은 지나가고 말았다. 제기랄. 이 궁신(窮 神) 소무(蕭無)는 이만저만한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오줌 쌀 곳 도 없었으니 말이다.) 궁신 소무는 강호 제일 개방의 개방방주라고 하지만, 어제 골짜기에 네 명의 고수가 자기의 손에 안겨 있는 아이 때문에 나타난 것을 보 고는 감히 동굴 안에서 기어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혹시나 그들 네 사람에게 발견될까봐 좀더 깊이 숨었다. 왜냐하면 그는 고검남이라는 아이가 천영보도(天靈寶圖)과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무림의 구대문파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가 그들 네 사람에게 발견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네 사람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고해난리인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단주활불의 적 이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동굴 속에 숨어서 두 눈으로 바위틈 사이로 정신을 가다듬고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골짜기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똑똑 히 볼 수 있었다. 그건 겨우 한 시진 안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서로 알 게 모르게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각기 기지 를 사용하는 우격다짐과 슬프고도 아기자기한 정의 이별과 만남의 부 드러운 장면도 있었다. 그야말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와 같은 광경 을 본 그는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해지게 되고 혼백이 오락가락할 정 도였다. 그는 줄곧 숨을 죽이고 두 눈으로 골짜기의 형세가 어떻게 되나 지 켜 보느라고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있다가 혈도인마가 천독공을 펼 쳐 죽음에서 삶을 건지게 된 후 그의 바짝 긴장되었던 심현이 가까스 로 약간 이완될 수 있었다. 고해이란인과 혈도인마가 눈물의 희열 속에서 나란히 단장곡에서 떠 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바위를 밀어젖히고 땅굴에서 기어 나온 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어젯밤 개꼬리 감추는 듯한행동을 한데 대해서 못마땅하게 여기는듯 죽장을 허리에 푹 꽂더니 오른손으로 바지 자락 을 거머쥐고 그 동굴 안에다가 오줌을 누며 소리쳤다. [치사하게 됐군!]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이곳에 일각이라도 더 머물 용기 가 없었다. 신형을 흔들 하더니 석순 옆에 있는 한 빈틈으로 기어 들 어갔다. 그 바위의 틈바구니 바깥쪽에는 짙고 촘촘한 등나무 줄기가 걸려 있 어서 대낮이라도 그 뒤쪽에 또 다른 세상이 있으리라고는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새벽녘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네 명의 고수들은 이 이상야릇하고 은밀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고, 근소소마저도 이 골짜기에서 십여 년 간 살 아왔으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궁신 소무는 그 등나무 줄기들을 헤치며 몸을 옆으로 세워 그 틈바 구니 안으로 들어갔으며 횃불을 켜서는 앞을 살폈다. 그의 앞에 하나의 비스듬히 위쪽으로 뻗쳐 있는 동굴이 나타났다. 동 굴 안에는 종류석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이곳은 바로 산허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동굴인데 석회암(石灰岩)이 녹고 침식되어 이루어진 동굴이라 바깥쪽은 협소했지만 동굴 안쪽으 로는 무척 넓은 편이었다. 궁신 소무는 반도막의 횃불을 든 채 고검남을 겨드랑이에 끼고 이리 저리 울퉁불퉁한 동굴을 따라 종류석이 사이로 나아갔다. 동굴 안의 통로는 비스듬하게 위로 뻗쳐 있었기 때문에 줄곧 차 한잔 마실 시각이 되었을 때에야 눈앞에 겨우 한 가닥의 햇살이 새어 들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개울물이 졸졸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 다. 그는 재빨리 횃불을 밟아 끄고 몸을 옆으로 해서 그 협소한 바위의 틈바구니 사이로기어 나갔다. 눈앞이 훤해지면서 한 칸의 산벽을 의지하고 있는 조그마한 집이 나 타났다. 이 조그마한 집은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 칸의 조그마한 집 에는 대나무 대롱으로 끌어온 산 개울물이 독 속으로 흘러들고 있었 다. 아마도 욕실로 사용하는 곳이고 한 쪽은 헛간인 것 같았다. 소무는 헛간에서 걸어나가 집 옆으로 돌아가더니 다시 머리를 내어 밀더니 그 산개울 옆으로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그 잡초 투성이 같은 머리카락을 한번 대충 씻는 것이었다. 물방울이 그의 머리 위에서 앞섶 자락까지 흐르자 그는 고개를 쳐들 고는 기름 때로 반짝거리는 소맷자락으로 얼굴에 뭍은 물방울을 살짝 훔쳤다. 그와 같이 그는 축 쳐진 몰골로 집 옆에 있는 소로를 따라 걸 어갔다. 이 소로는 자갈을 깔아 놓았는데 그 길의 일장쯤 되는 곳에 한 줄의 거대한 반석(磐石)을 쌓아서 만든 석옥(石屋)이 있었다. 그리고 자갈을 깔아 놓은 소로 길과 석옥 사이에는 또 하나의 산개울 위로 가로질러 진 조그마한 다리가 있었으며 다리 위의 난간은 주홍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것은 바로 강남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격식(格式)의 다리였 다. 석옥 뒤켠으로 멀리 저쪽에는 구름 위로 솟아오를 듯 우뚝 버티고 서 있었으며 구름들이 넘실거리는 설봉(雪峰)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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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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