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월례 모임의 테마 중 하나는 '무상의 정복자' 리뷰였습니다.
마지막 차례로 김영도 고문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
후까다 규야의 "나의 산들(わが山山 1934 改造社)"를 소개하였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2AA54D5762786308)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후까다 규야라고 하면
곧장 '일본 백명산'을 떠올리고는 다 아는 양 치부하고 말기 쉽상입니다.
일고를 졸업하고 동경제대를 입학한 수재의 또다른 산서를 소개함으로서 이런 우리의 게으름을 부끄럽게도 질타하십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검색을 해보았더니,
후까다 규야(1903년)는 1929년부터 5년동안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산행에세이들의 모음집이네요.
그러니까 이십대 중반의 젊어도 한참 젊은,
그러니까 앞뒤없이 산에 빠진 일본의 수재의 뛰어난 글일듯 싶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24404A576279130B)
고문님의 자리 한가운데 A4 용지 위에 놓여진 작은 문고본이 바로 그 책입니다.
고문님이 다시한번 후까다 규야를 새삼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후까다 규야가 일본의 어느 산간지방의 한 풍경을 맞닥뜨리고,
곧바로 에드가 앨런 포의 한 구절을 '영어'로 암기해 냈다는 것에도 기인할 겁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9914A5762791605)
바로 이 구절입니다.
고문님은 이 구절을, 이 쉬운(?) 영어로 씌여진 이 구절을 어떻게 번역해야 옳을지 난감해 하셨죠.
회원님들께서는 어떠한지요?
한번 번역을 청해 봅니다.
참고로 이 구절이 궁금해서 사진에 담기를 바라신 분은 이규성 교수님이십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26EE4A5762791508)
후까다 규야가 에드가 앨런 포의 구절을 떠올린 앞뒤 문장들을 이해하시면 더 번역하기가 쉬울 듯 합니다.
후까다 규야가 야쿠시다케(약사악 藥師岳)자락의 깊은 산골에 폐허로 된 마을을 보면서,
애드가 앨런 포의 구절을 떠올린 거죠.
이 구절의 초역은 -> 그때의 산, 우리들의 산 <- 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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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스) 가미까제 특공대원들은 대부분이 동경제대 등의 명문대생 출신들이었습니다.
일본이 그 뛰어난 수재들을 단 한번의 기회로 소진한 까닭은,
물론 항공기라는 고급기종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좋아야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과잉의 양심, 가족과 지역의 눈길 등 때문에 '쪽팔려'서라도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아서입니다.
그들을 조사해본 학자들에 의하면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들은 일년에 대체로 100여권 이상의 고급 양서들을 읽은 엄청난 다독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논의를 철학적으로(?) 더 진행하지 않고 말을 끝맺는다면,
1900년대 일본의 학부 대학생들은 지금의 박사급보다 더 깊고 다양한 지식을 섭수했다는 겁니다.
후까다 규야는 특이한 존재가 아니라 이런 일본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거라고 해야 할 겁니다.
아마 패전 전후 일본 등산가들의 에세이집에서,
우에무라 나오미와 다른 분위기를 발견한다면,
한국과 격이 다른 지성과 정신성을 발견한다면 그건 이런 배경이 놓여 있을 겁니다.
피에스2) 영어 구절은 애셔 가문의 몰락(the Fall of House of Usher)의 한 구절이라고,
검색은 알려 주네요. 대략 처음 도입부인 것 같습니다.
피에스3) 일본 100명산의 저자 후카다 규야(深田久弥)는 "후지산과 야리가타케는 일본산을 대표하는 2개의 타입이다, 일생에 한번은 후지산을 올라가고 싶어하는 것이 일반사람들의 소원이듯이 적어도 등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사람으로 우선 야리가타케 정상에 서고 싶다고 희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일본을 대표하는 산은 후지산이지만 등산을 애호하는 사람으로서는 야리가타케가 있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렇듯 야리가타케는 북알프스 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츠루기다케 보다 일본 사람들의 동경의 산이라 할 수 있다.. - 펌글 -
첫댓글 김진덕 씨! 일부 중복된 표현(예 까닭, 때문 및 그 구별)은 좀 다듬어 줄 것을 권합니다. 뜻과 동떨어진 미사여구, 지나친 기교, 동의어의 반복사용(詩文에서는 강조법으로 간혹 쓰기도 하지만, 윈칙은 금기), 첩자(글자가 겹침), 부적격한 외래어(예 피에스; ps 편지의 추신)등은 오히려, 품격을 떨어트립니다. 후배를 아끼는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고언(苦言)이니, 고깝게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쪽팔리다'(체면 깎임)는 속어라, 말로 할 수는 있어도, 글로 나타내기는 뭣 합니다. 위 글은 세계인이 다 볼 수 있습니다.
"글이란 남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좋지만, 바르게 쓰는 것이 먼저다!"-우리말 바루기에서.
산서회의 모든 글에 대해 항상 애정어린 댓글에 대해 모든 회원들이 생각이 남다를 것입니다.
이번에 제게 주신 원포인트 레슨에도 역시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한번더 다듬고 글을 끝냈다면,말씀하신 부분이 조금은 줄어들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글쓰기에 대한 기초가 부족함이 원인이겠지만 말이죠..
말씀 전적으로 잘 새기고, 앞으로 더 명징한 글쓰기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원 글은 댓글의 의의를 살리기 위해 그대로 놓아 두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피치못해 피에스)라고 했는데..이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혹 '덧붙여'라는 건 어떨까요.
@등산박물관(김진덕) 잘 새겨들으니, 다행입니다. 질의한 내용은, * 부호 표시, 혹은, 부기, 참고, 주, 주해, 주석, 각주, 첨언, 첨기, 추가, 첨가, 아니면, 그냥 1 2 3, 가나다 등. 제안대로 '덧붙여','덧붙임' 등으로 표기해도 무난합니다. 위 피에스 제1번 제9행 끝부분 '섭수'는, 용어자체가 어렵고, 잘 쓰지 않습니다. 자주 쓰는 '섭렵', '독파','탐독' 중 하나를 골라 마무리 하십시오! '섭수'는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일부지방은 '수단'의 방언으로도 씀. 때로는 불교용어가 됨)
* 문장(시, 선어 제외)은 짧게 끊어, 평범한 글자로, 쉽게 풀어, 말 하듯 쓰는 게, 가장 좋습니다.^^
@등산박물관(김진덕) 산서회 글 전부에 댓글 다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달지 않으려 합니다. 나의 직계제자도 아닌, 남의 글을 이렇쿵 저렇쿵 하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우선 남발하는 외래어가 싫고(범용하거나, 순화불능 어휘, 고유명사, 전문용어, 詩語 도입 등 특수한 경우 예외 인정), 또한 시간이 많이 뺏겨, 피곤합니다. 내가 안다 한들, 얼마나 더 알겠습니까? 보잘 데 없는, 한 山人으로서의 글에 대한 원칙과 소신을 지키려는 것이, 거꾸로 내 자신을 얽어매는 오라로 다가옵니다. 쓰는 자는, 자기 내키는 대로, 읽는 이도, 그 마음대로 내버려 두려 합니다...어차피 각자 나름대로의 지식과 사유(思惟)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안녕!
@半山 韓相哲 1. 순한글식인 '덧붙여'로 하겠습니다..~
2. 섭수는..글을 시간에 쫓겨 쓰다보니, 섭,섭,섭 '섭렵'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났습니다.~~
3. 말씀대로 문장은 짧게 끊고, 쉬운 표현으로, 누구나 읽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듯
쓰는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半山 韓相哲 이제 기다리게 해놓고^^....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예; 1. 일본이 그 뛰어난 수재 -그 뛰어난 '인재', 혹은 그냥 '수재들'로도 좋음. '秀'자 자체가 뛰어남을 뜻합니다. 2. 단 한번의 '기회로 소진'-위기로(때, 에) (아깝게도) 대부분 잃어버렸다(기회와 위기의 구별). 사람은 쓰고 버리는 물건이나, 소비대상의 관념과 사물이 아닙니다. * 사전을 늘 곁에 두십시오!
책 줄친 부분 졸역; 고원은 이미 가을이었다. 가을 풀은 흐드러지게 꽃이 펴, 끊임없이 벌레가 울고 있다...
조마조마했습니다.
글에대한 평가는 형식과 내용으로 가는 듯한데...형식에 대해 그리고 '공표'에 대해 한 이사님 글 참 감명 깊습니다.
우문愚文에 현답인듯..
.
김진덕 이사님의 질의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이신지?
"위 글은 세계인이 다 볼 수 있습니다." 가 참 가슴에 와닿습니다.
하하! 좋습니다. 김진덕 씨가 뭘 물었나요? 답글 제3번으로 모두 답해주었는데요?^^아! 영문시 풀이 말인가요? 솔직히 영어는 자신이 없어 해독하기 힘듭니다. 그건 김동수 씨가 더 잘 할 것입니다. 김진덕 씨가 준 실마리대로, 앞 뒤 문장을 훑어봐도(약사악 풍광), 유추해낼 길이 없습니다...
@半山 韓相哲 제목이 '김영도 고문님의 숙제...후까다 규야의 책에서 애드가 알란 포우의 한 구절을 번역해 보시오.|'입니다.
너무 후배 사랑에만 빠지신듯...^^
@半山 韓相哲 이규성 교수님도 번역을 하셔야 할텐데요...~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등산박물관(김진덕) 알겠습니다. 거의 돼 갑니다.
또 다른 우문 현답...
'그댄 산엔 가고있고....
글을 쓰고 있는가?"
산에 가는 가...
산책을 읽는 가
산에 간 글을 쓰는 가...
참 어려윤 주제지요,
오우! 선문답이군요? 산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산에 가게 되고, 산책도 자연히 읽게 되지 않나요? ㅋㅋ
산에 가는 가...
산책을 읽는 가
산에 간(관한) 글을 쓰는 가...
여기다가 '함께'라는 단어를 넣으면,
한국산서회의 아이덴티티를 잘 표현해 내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차디차게 얼어붙고 가라앉은 동시에 아픔에 젖고, 또한 생각은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해져, 아무리 억지로 상상력을 자극하더라도 다시는 (마음과 생각을) 숭고한 그 무엇으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에드가 알란 포우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에서 주인공이 괴이한 기운이 서리는 친구 집을 보고서 느낀 심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후쿠다 규야는 산속에 버려진 집들을 보고 소설 속의 묘사를 즉각 원어로 생각해 낸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
덕분에 잘 감상합니다. 규야가 시 인용 직전 " 아주 황폐해진 하나의 집 앞에 섰을 때, 바로 나는 이 알란 포우의 최걸작으로 유명한 최초의 묘사가 떠올랐다(생각났다)" ...
"순간 오싹할 정도로 서늘하게 침잠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르기 어려운 감미로운 심상의 향연."
앞뒤 맥락도 모르지만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시기에 끼어들었습니다.
댓글이 너무 많아...그때그때 따로 댓글을 안 달았는데요..
이규성 교수님의 번역 감사드립니다. 오싹^^해지네요.
아마 앨런포우가 그렇게 표현하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후카다 선생의 글은 1963년경 수락산우회에서 펴낸 '산'에도 일편이 실려 있더군요.
지금까지 그를 포함해 일본 등산가들의 책이 별 없어 아쉽습니다.
영훈씨도 여기에 함께 해서 반갑네요.
앞으로 많은 산서들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