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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는 불편하고도 흥미로운 영화다. 영화를 보는 우리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을 몇 가지 고정관념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는 어떤가. 사실 『아동의 탄생』을 쓴 필립 아리에스에 따르면 아동이란 개념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아이가 보호와 교육을 받아야 할 순진무구한 존재로 인식된 건 근대 이후 가족 개념이 강화되면서다. 특히 성인 남자와 여자 아이라는 ‘가해자-희생자 패러다임’이 뚜렷한 경우라면 이런 낭만주의적 접근법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애가 왜 지금 와서 거짓말을 하겠어?” 클라라의 부모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테오가 친구의 해명을 들어보지도 않고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겠다”고 길길이 뛰는 것도, 마을 수퍼 주인이 루카스를 출입금지시키고 반항하는 그를 폭행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벌어진 일은 어떤가. 클라라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평소 자신에게 친절했던 루카스에 대한 감정이 오빠가 장난으로 보여준 포르노 사진과 뒤섞이면서 의도하지 않은 허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면 ‘상식’처럼 알고 있는 정신분석학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유치원 원장은 클라라가 횡설수설하자 “무의식이 끔찍한 기억을 차단했다”고 감싼다. 문제는 무의식이 아니라 아이의 상상력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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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섭게 느껴지는 대목은 따로 있다. 인간은 두 가지 가능성 중 믿기 쉬운 걸 얼른 택해 믿어 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경향은 집단 발현되기 쉽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영화 제목과 영화 속 사슴 사냥이 은유하는 것처럼 현대판 마녀사냥인 셈이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21세기 스칸디나비아의 조용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마녀사냥이 다른 건 의도의 유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악의의 유무다. 마을 사람들 중 악의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아동 성추행범에 대해 보통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선과 악의 명확한 구도가 없는 이 영화는 그래서 시종일관 갑갑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억울한 사람은 있지만 억울하게 만든 사람은 따지고 보면 딱히 없다. 아이는 그저 사소한 거짓말을 했을 뿐이고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했을 뿐이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상식에 따라, 고정관념에 따라 믿었을 뿐이다. 그런데 고정관념이 만들어내는 구조는 너무나 견고하다. 영화 막바지 루카스가 테오를 뒤돌아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런 불가항력적 구조를 웅변한다. 누명을 벗고 1년 후 사슴 사냥에 나선 루카스가 불시에 총알을 맞을 뻔하는 결말도 마찬가지다.
루카스 역을 연기한 매즈 미켈슨은 지난해 이 영화로 제65회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국내엔 ‘삼총사 3D’의 로슈포르 백작,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스트라빈스키, ‘로얄 어페어’의 혁명가 요한 등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얘기하고 싶어지는 배우는 매즈 미켈슨 말고 더 있다. 나이가 너무 어려(?) 상을 못 받았나 싶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긴 클라라 역의 아니카 베데르코프다. 미간을 찡긋거리는 식의 미묘한 표정 연기 등 대부분의 연기를 별다른 지도 없이 혼자 해냈다. 1995년 라스 폰 트리에 등과 함께 순수예술영화 운동인 ‘도그마95’ 선언문을 발표한 후 ‘셀레브레이션’(1998)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연출했다.
첫댓글 순수한 아이의 상상력이 한 인간을 궁지로 내모는군요.
생각을 많이하며 봐야될 영화네요 ㅎ
7번방의 선물도 의도하지 않게 진실이 묻혀져
결국은 사형을 당해야 하는 맘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결백을 아무리 외쳐도 믿어주지 않고 힘의권력에 무참히 깨지는 상황이 매우 안타가웠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