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절기속에 들어있는 주님의 러브스토리
레23:1-16 고전5:7, 15:20-23, 행2:1-4
사람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보통날과는 다른 특별한 날이 있다. 우선은 내가 태어난 날이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므로 누구에게나 생일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다음은 내가 성장하여 이성을 만나 가정을 갖는 결혼을 한다는 결혼식이야 말로 특별한 날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하는 날이 또한 특별한 날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이들이야 이런 특별한 날들을 기념하지만 국가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개인과 비슷하게 잊을 수 없는 날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태어난 것처럼 국가가 태어난 건국절이 있으며 우리나라 같으면 건국을 위해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이 있고 이런 절기 말고도 수천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당연히 지키는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들이 있다. 이런 명절에는 일상과는 다르게 형제나 친지들을 방문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날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축제하면 나라마다 민족마다 다 사연과 전통이 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날이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택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특별히 어떤 날들을 명절로 정해주셨고 그날을 잊지 말고 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명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예배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아가 감사를 드리는 날이기도 하다.
1. 나라마다 민족마다 명절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을 지낸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다. AD 651년 진덕 여왕이 정월 아침에 백관들에게 하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것이 설에 대한 최초 기록이니까 약 1370년 동안 지켜온 명절인 셈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명절이 어느 명절인지는 알고 계시는지요? 그 명절은 성경에 나오는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적어도 3500년전부터 지켜온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월절이 모든 나라 명절의 기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여행자유화가 오기 이전에 김찬삼씨가 무전으로 세계 여행을 하면서 한 말이 있다. “어느 곳에 도착하여 첫 날 보면 사람 사는 것이 다 달랐으나 3일 같이 살다 보면 사람 사는 것은 다 같았다.” 그런데 김찬삼씨 말처럼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어쩌면 닮은 것이 그렇게 많은지 그저 놀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은 성경적으로 보면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다같이 셈족입니다. 셈의 3대손(셈-아르박삿-살라-에벨)인 에벨이 벨렉과 욕단을 낳았는데 벨렉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로 뻗어갔고 욕단은 메사를 지나 스발을 지나 동쪽 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합니다(창10:30). 메사가 모스크바이고 스발이 시베리아고 그 동쪽은 한국입니다. 한국을 KOREA라고 하는데 이것을 히브리어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부르는 자라는 말인데 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래서 이스라엘과 한국은 많이 닮았기 때문에 형제나라입니다. 정말 이것이 사실일까요? 6년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와 합동 세미나가 있었을 때 참석한 회원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은 형제라고 했더니 그들도 성경적으로 동의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고 코레아를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부르는 자라고 해석을 해보면 두 나라간 비슷한 문화가 나오는데 민족명절인 설입니다. 새해는 양력 1월1인데도 우리나라의 진짜 명절은 음력 1월 1일 설입니다. 이스라엘 도 마찬가지 유대력 1월 15일 유월절은 종교력으로 새해라고 하니 실질적인 새해는 이스라엘에서는 유월절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음력설날이라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각 민족마다 나라마다 명절이들이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명절은 세상사람들이 지키는 명절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명절은 하나님께서 직접 정해 주셨고 그 날은 노동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라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명절은 보통 이스라엘의 7대 절기라고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알려주신 절기는 출애굽기에도 레위기에도 신명기에도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키야 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절기를 주시면서 그 날은 주님의 명절이라고 하셨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초청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레23:2-3)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거룩한 집회로 선포할 주의 명절들에 관하여는 이것들이 곧 나의 명절들이니라. 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로되 오직 일곱째 날은 안식하는 안식일이니 곧 거룩한 집회 날이니라. 너희는 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 그것은 너의 모든 처소에서 주의 안식일이니라. 주의 명절은 히브리어로 모에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명절인 모에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서 정하신 시간’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시간하면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라는 시간과 오늘 내가 있는 이 자리가 곧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라는 것이다. 모든 절기는 안식하는 날로 카이로스에 해당된다는 시간입니다.
(살전5:1-2) 1형제들아 그 때(크로노스)와 그 시기(카이로스)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 주의 날이 도둑같이 이르는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
안식일을 사바트라고 하는데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 질 때 까지입니다. 유대인의 하루 시작은 해가 지는 6시부터 새날의 시작까지입니다. 유대인들의 새해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 티쉬리월(7월 1일)인 나팔절을 새해로 하는 날과 두 번째는 니산월 (1월15일)인 유월절을 새해로 하는 종교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절기는 봄절기인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마지막 오순절로 이 모든 봄절기는 예수님의 초림을 상징하는 절기이며 가을절기인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장막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하는 절기입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각 절기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사랑의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봄절기에 대해 살펴보겠다.
2. 주님이 주신 봄 절기
(1) 유월절 (레23:4-5)
유월절은 유대 종교력의 첫째 달인 니산월(아빕월)14일 해질 때부터 15일 저녁까지로 14일 밤은 양을 잡는데 그 양에 대해서는 출12장의 흠없고 일년된 숫양을 잡았으며 기원은 출12:41을 보면 3500년전 이스라엘이 430년간 애굽의 노예가 끝나는 때에 유월절이 시작되었다.
유월절의 의미는 죽음의 천사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집을 넘어가는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을 제외하고는 애굽의 모든 집에서는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짐승의 첫 새끼가 죽임을 당했던 날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파라오는 무조건 이스라엘백성으로 하여금 애굽을 떠나도록 명했던 사건이 바로 유월절이다. 모세를 통하여 유월절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노예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장차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죄악세상에서 해방시킬 것에 대한 그림자였습니다. 즉 구약시대는 양을 잡아 죄사함을 받던 유월절은 신약시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주신 것을 믿으면 죄값으로 죽게 되는 것을 면죄받는 유월절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 어린양으로써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설주에 피뿌림을 발랐으므로 죄로 인한 사망이 넘어간다는 것이 유월절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다시한번 상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장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1:29) 이튼 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벧전1:19-20) 예수님은 19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이셨고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우리가 믿어야 사망으로부터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유월절 준비는 유월절 4일 전에 양을 잘 보관하였다가 잡듯이 예수님도 십자가 처형 4일 전에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전날 제 삼시 즉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6시간 후 오후 3시경에 죽으셨던 그날 저녁 6시부터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희생양으로 죽으신 것을 기념하듯이 말입니다. 이 유월절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가나안에서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갱신되었다.
(수5:10-12)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다음날에 그 땅의 묵은 곡식(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누룩없는 빵(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묵은 곡식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그치므로 이스라엘 이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으나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이 외에도 유월절에 대해 나옵니다. 유월절의 신약의 의미는 죄용서 받음, 부활의 생명을 얻는다. 유월절의 중요한 의미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 죄용서를 받는 날이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한 것이므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며 또 다른 의미로는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고전5:7)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사53:7)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것은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하는 것인데 요한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6:53-54)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유월절 양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영생을 얻는다는 교리를 제시하고 유월절의 또 다른 의미는 한 해의 새 달이 되는 것이며 또 유월절은 일곱 절기의 기초가 된다. 유월절은 봄에 맞는 첫 번째 절기로 하루만 지켜지는 날이고 이어서 무교절로 7일 동안 지켜지는 날이기도 하다.
(2) 무교절 (레23:6-8)
무교절은 유대 종교력 1월 15-21일 7일동안 지켜지는데 첫날과 마지막 일곱째 날은 거룩한 집회로 모이고 노동을 금한 날인데 이 한주간 동안은 애굽에서 급히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었던 지난 고난을 되새기는 날이다. 유월절날 애굽의 각 집마다 죽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죽임을 당하자 그 날 밤 애굽의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즉시 애굽을 떠나라는 명령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체할 시간이 없으므로 누룩없이 반죽한 무교병과 양념치지 않은 쓴 나물을 가지고 출발하였는데 이처럼 무교절은 출애굽 당시의 고난을 잊지 않기 위해 고난의 떡인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면서 당시의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가 무교절이다. 출애굽 여정에 누룩없는 발효되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먹었다는 것은 구원받은 이후 거룩한 삶, 누룩없는 삶을 의미하는 뜻도 있다.
(고전5:7-8) 7 그러므로 너희는 누룩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8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오직 순수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빵으로 하자.
예수님도 십자가 지시기 전 성전을 정화하셨듯이(마21:12) 지금도 유대인들은 무교절 전에 집안에서 모든 누룩을 찾아 제거합니다. 당시 무교절의 고난을 살펴보면 얼마나 극심했던가를 알 수 있는데 모세를 통하여 15일 라암셋을 출발하여 숙곳에 이르러서 인원파악을 하니 남자만 육십만명이었더라(출12:37). 계속 진행하다가 에담에 진을 치고 그 다음날은 바알스본 맞은 편에 진을 친 다음 비로소 홍해바다를 건너기까지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었고 뒤에는 애굽군대가 추격해오는 진퇴양난의 고통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사 홍해를 건너기까지의 고난의 여정을 기억하고자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었던 절기가 무교절입니다. 신약시대는 이 무교절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다음날 십자가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까지 6시간 동안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무교절의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다시한번 무교절에 대해 정리해 보면 구약시대는 애굽을 출발 할 때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음으로 고행을 되새겼다면 신약시대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 예를 들면 금식같은 것도 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도 무교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마5장 10절에는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천국이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절의 의미는 예수님 믿어 죄사함 받은 후 성도의 삶 속에서의 거룩한 삶이 무교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유월절이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였다면, 무교절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갖게 하는 거룩함에 바탕을 둔다고 볼 수 있다.
(3) 초실절 (레23:10-14)
초실절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유월절 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날)로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봉헌하는 절기로 이 때부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첫 열매들을 먹었다.
(레23:10-11)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너희 수확물의 첫 열매 한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한 것으로 내가 그 단을 받도록 주 앞에서 흔들되 안식일 다음날에 그것을 흔들지니라.
(수5:10-12)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다음날에 그 땅의 묵은 곡식(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누룩없는 빵(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묵은 곡식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그치므로 이스라엘 이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으나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1) 제사장이 그 해의 첫 곡식단을 들고 성소로 들어가 주 앞에 그것들을 흔드는 날이 초실절이다.
2) 유월절과 무교절은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옮겨가는 동안 지켜 질 수 있었던 반면에 초실절과 그 외의 다른 절기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지킬 수 있었다(레23:10).
3) 초실절은 레23:10-14 무교절 다음날로 니산월 1월 16일 입니다.
4) 구약에는 무교절 기간 중 첫 안식일 다음날에 첫 곡식1단을 봉헌하는 초실절이 그리스도께서 무교절 기간 중 초실절에 부활하신 것을 의미한다. 부활절은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음을 기념하는 절기인데 초실절을 출애굽과 연관시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에 들어간 것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들어가신 것을 뜻하는 것이고 홍해바다를 통과해 육지에 상륙한 것은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을 뜻합니다. 안식일 이튼날 즉 지금의 주일날에 처음 익은 곡식 한 단을 요제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는 부할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그 해 첫 추수한 보릿단을 흔들어 드리는 초실절은 부활하신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언으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Resurrection)은 성도의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인데 절기를 통해 계시해 주신 것은 유월절에서의 어린양(그리스도)의 죽음이 으로 시작되었다가 3일 째 되는 초실절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여주신 것이 절기에 의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이시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 즉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부활이 뒤따를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고전15:20-23, 살전4:13-18).
(고전15:20-23)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을 통해 임한 것 같이 죽은 자들의 부활도 사람을 통해 임하였나니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 23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초실절에 곡식의 첫 이삭을 드리는 것은 수확의 나머지도 뒤를 잇는다는 징표(보증)로 드려졌듯이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4) 오순절 (칠칠절, 맥추절) (레23:15-22)
오순절은 아빕(니산)월 1월 15일 후 50일째 행해지는 절기다.
여름추수가 끝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초실절)부터 50일째 되는 날은 곧 7주 + 다음 날이다.
오순절은 밀 추수의 첫 열매를 봉헌하는 날로 일명 "칠칠절" 이라고도 한다. 오순절(칠칠절 맥추절)은 초실절로부터 50번째 날로 그날에는 거룩한 집회로 모이는 날이며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또 다른 의미에서는 유대 랍비들은 유대인 통계연감에 근거해서 주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가 율법을 받아 선포한 날을 오순절날로 기념한다(출19:1, 14-20). 신약에선 오순절날은 성령하나님이 불의 혀같이 임하셔서 제자들의 마음판에 율법을 새겨주신 날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 부활하셔서 50일 째 되는 날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초실절부터 승천하시기 까지 40일 동안 제자들을 만나 주셨고 승천하시면서 이 성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행전 1- 2장은 그 때의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 120명이 함께 10일 동안 기도와 간구에 힘쓰더니
(행2:1-4) 1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였을 때에 그들이 다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 2 마침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 같은 소리가 나고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에 그것이 가득하며 3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들이 그들 각 사람위에 앉더라. 4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시면서 삼천명이 추수가 이루어지고 이 거대한 추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추수가 올 것입니다. 지금 인류는 오순절부터 초막절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순절에 룻기를 읽습니다. 룻기는 이방여인이 유대인에게 접붙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즉 우리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접붙여져서 영적 이스라엘인들이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의미
오순절날에 성령님께서 (The coming of the Holy Spirit)오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부활 후 정확하게(행2:1) 50일 째 날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구별 없이 한 유기체인 성도들로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인 봄의 절기들은 예수님의 초림 때에 철저하게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위대한 유월절 어린 양이십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저의 구원자요 메시야이십니다. 그게 바로 유월절 절기죠. 그리고 그 분은 부활의 첫 열매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바로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부활하셨다가 40일 지나 하늘로 올라가신지 10일이 되는 바로 그날에 성령님으로 이 땅에 강림하셨는데 그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그날 성령을 보내사 이 땅에 교회가 생기도록 역사하셨고 그날 임하신 성령이 제 마음에도 오셨으며 지금도 믿는 자들의 영혼속에 거하신다. 오순절은 무교절 안식일부터 일곱 안식일지난 이튼날까지 합하여 오십일째 되는 날을 말하는 것인데 이땅에 성령님이 임하신 날이 오순절입니다. 그 성령님이 저의 마음속에 내주하셔서 아버지를 향한 마음을 주셨고 주님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봄 절기에 주신 주님의 절기들은 알게 될수록 아름다운 주님의 러브스토리에 싸여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봄 절기들은 반드시 지키라고 출애굽에도 레위기에도 신명기에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 절기를 통하여 주의 백성들에게 들려주시는 아름다운 주님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3. 절기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시간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절기를 통해서 주님의 시간표를 알 수 있다면 그 절기를 지켜야 되는지 아니면 어떻게 바라봐야 되는지 절기를 연구해 보면 어느 절기에 주님께서 어떻게 임하셨는지 그리고 어느 절기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준비를 하고 계신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절기는 매우 중요한 모에드입니다. 그 분은 유대인이시고 이 절기는 주님의 절기들이고 대대로 영원한 규례이기 때문입니다(레23:14,31).
레23:2, 4에서 주께서 절기는 나의 명절이고 주의 명절들이라고 하셨다는 것은 주님의 절기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면 이방인도 지켜야 할것인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임을 이해한다면 주님께서도 이 땅에 계셨을 때 절기들을 지키셨는데 이 절기들이 예언적인 약속을 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역사하셔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히브리적 뿌리에 관심을 갖게 하신다고 믿는다면 지켜서 손해볼 일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적 뿌리란 나오미와 보아스와 룻과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룻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 시어미 나오미를 통해 유대인 관습을 배우지 않았다면 보아스가 이삭을 남겨두었을 때 룻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룻은 히브리풍습을 배우려는 의지가 있었고 그녀의 유산과 하나님을 존중하고 높이면서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스에 대해 그가 기업무를 자인 것을 가르쳐주었고 보아스는 이방인인 우리들이 기업 무를 자 되신 예수님의 예표이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의 유산 히브리적 뿌리의 중요성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적인 많은 관습과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아버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을 겁니다. 저는 절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만나기를 원했던 절기를 하나님과 데이트하는 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절기는 주님의 시간이며 주님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주님을 더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룻기의 상징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은 보아스가 단지 기업 무를 자였다는 것만이 아니라 룻이 누구밭에 이삭을 주울 것인가부터 또 타작마당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을 것인데 히브리적 관습대로 했을 때 기업 무를 보아스와 이방인 신부의 아름다운 결혼이 성사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이방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하나되는 새 사람을 상징하기도 하죠. 메시야되신 예수님안에서 그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의 절기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를 원하는 것은 주님께서 돌아오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조차도 절기의 중요성을 이해하므로 절기 때에 맞춰서 공격합니다. 그렇다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과의 데이트를 왜 놓치고 싶겠습니까? 그것은 신성한 약속이고 드레스 리허설입니다. 절기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려면 히브리 관용어구들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열정적이신 유대적 뿌리에 연결되지 않으면 이방인 신부인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게 유대적 이해이고 히브리적 이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무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절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나 세상잠에 깨어 있을까요? 안나라는 여인은 주님오시는 시대에 깨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메시야를 바라보며 기다렸기 때문에 성령께서 메시야의 탄생을 살아서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시므온도 봤고 안나도 봤습니다. 그들이 기쁨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되세요? 오늘도 제게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자신이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깨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재림에 관련된 뉴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드레스 리허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죠. 준비된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마음속에 사랑의 갈망이 불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절기가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속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우릴 구속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은 인류의 러브스토리입니다. 우리의 구속이야기예요. 제가 절기를 좋아하는 것은 신랑되신 예수님의 마음에 합한 신부라고 불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전부 행하려는 사람이란 우리가 깨어있을 때 사용하기 좋은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룻이 그랬고 예슈아도 그랬습니다. 영광의 왕이신 그분께서 유월절에 하나님의 고난 받는 어린 양이 되신 거죠.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말했던 그 어린양이 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정말 어느 때인지 모르지만 코로나를 포함한 모든 표징들이 예수님 재림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동성결혼이라는 불법을 쏟아놓고 있죠. 어떻게 동성결혼이 합법화가 된다는 것인지 너무나 많은 이들이 불법 때문에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 토라없이 성경의 가르침 없이 말이죠. 이 모든 걸 볼 때 저는 속으로 신이 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의 오심을 뜻하니까요. 성경을 쓰신 분께서 무대의 중앙에 오르신다는 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신나는 일이죠. 제가 절기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절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일들을 예언적으로 성취하시었지요. 초림때 그러셨던 것처럼 아주 세밀하게 절기 때에 성취하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우리 문앞에 와 계신 이 때에 우리는 감사드려야 합니다. 제가 절기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유대전통이 아닌 내 아버지의 절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유월절 절기에 이루신 것을 아버지께서는 가장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신자들에게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명하지 않으셨지만 이것이 영영한 내 규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방인 신부된 우리도 하나님께 영원히 의미있는 것을 갈망해야 한다고 봅니다. 절기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가르쳐주니깐 저에겐 사랑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는 유대식 결혼식을 할 것입니다. 모든 사역이 고대 유대식 결혼식의 패턴을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유대인 신랑과 결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유대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으로 바뀌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유대인 신랑이시고 유대인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절기들에 대해 더 알고자 갈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유대 관습들을 배웠던 것들이 기업무를 자인 보아스와의 결혼에 이르게 했던 것처럼 그것이 제 마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도교인들은 유월절이나 다른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지키고 있는데 언제부터 이런 것들이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313년 로마 콘스탄틴황제 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되면서 기독교가 당시의 태양신과 합쳐지며서 로마카톨릭으로 되었을 때부터 절기가 변해 오늘날처럼 성경에도 없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만들어 져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전략이 적중한 것입니다. 유대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던 때가 있었지요. 반유대주의가 창궐하기 시작했죠. 유대인들에게 가서 때와 시간을 구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겁니다. 마귀가 끼어들면서 하나님의 때와 시간을 바꾼 영적 전쟁이라고 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 달력이 그레고리력으로 바꿔지면서 상당수의 이교절기들이 교회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부활절은 이스터라는 여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로 유대 절기가 아니라 이교절기인 동지때 태양신 탄생축제인 거였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교회사들을 모릅니다. 반유대주의 때문에 유대적 사고가 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반유대주의가 원인이었고 유대인들의 달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탄은 때와 시간을 바꿉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죠 그리고 달력을 바꿨을 때 사탄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절기와 유월절을 벗어나 쓸데없는 계란, 루들포사슴, 산타할아버지 트리 등을 쫓게 했습니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지키는 나팔절에 나팔을 불고 초막절에는 초막을 치는데 우리 이방 교회는 그런거 할 의무는 없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으로 이방인들 가운데 절기를 지키고자 하는 갈망이 일어나는 것을 저는 봅니다. 성령께서는 메시야의 몸을 절기와 히브리적 이해로 이끌고 계십니다. 나팔 부는 곳에 드레스 리허설에 가고 싶은 갈망을 주시는거죠. 장막을 만들도록요. 주님과 함께 할 미래에 대해 신이 나는 겁니다. 이 절기들이 주님의 절기고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요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더 알고 싶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기고 있어요. 이방인들에게 의무가 있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지만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는 지킬 의무가 없는데도 지킨다는 것이죠. 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부활절을 지키라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기 때문에 지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방인 신부로서 제가 절기를 지키고자 하는 이유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된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모두를 절기에 대한 인식과 사랑 가운데로 인도하고 계신데 그것은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히브리 뿌리 운동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신부를 깨우는 성령운동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때와 계절 시간을 알 수 있도록 절기는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사의 가장 신나는 시점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슈아의 피로 들려주시는 위대한 러브스도리 정점에 와 있습니다. 하늘로 들려 올려져 결혼식으로 향할 수 있는 휴거 때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신랑은 유대인이니깐 이방인에게 전혀 의무가 없지만 하나님께선 로맨틱하게 구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저는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고 계시다고 봅니다. 기독교인들이 유월절이나 나팔절을 지키는 것은 다시 율법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절기를 지키는 것이 율법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와 골로새서를 보면 초대교회도 주의 절기를 지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는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행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고 믿는 것인데 우리는 모두 죄인이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구원받습니다. 그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써 의로와지겠다고 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제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순종의 삶을 살고 그 분의 뜻을 행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뜻대로 하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살아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섬김의 은사죠. 그것이 율법주의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631개의 계명을 세며 헉! 오늘 율법을 어긴 게 있나? 하는 속박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왜곡이 있고 순종을 율법주의라 부르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요14:15에서 나를 사랑하면 나의 명령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게 된다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사랑의 행위입니다. 언약이죠 우리에겐 하나님과의 언약이 있습니다. 언약에는 양측이 요구되죠. 우리의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승인되었고 완전히 보증된 것입니다. 우리는 언약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을 변경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몫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어딜 가시든 따라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요구하시든 순종하는 것이 종의 삶이죠.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믿어 고통 받았지만 그것을 부담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고통당하며 순종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죠. 은혜에 대해 가장 잘 가르쳐주신 그 분은 은혜를 가지고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주셨을까 생각해 보세요. 성령은 성결을 부어주시는데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쳐 제 뜻대로 살고 있을 때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사람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고 스스로 능력을 얻을 수도 없고 성령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결을 부어주시는 성령이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 정말 순종할 힘을 주심을 알게 됩니다. 정말 성령이 제 위에 계셔서 제게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신뢰할 때 주님이 전부 주십니다. 율법주의 아래 있지 않는다면 할례는 육체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우리는 계명에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성령께서 순종할 능력을 주시니 계명은 부담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자들은 계시록 말씀대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된다면 순종은 미래로 가는 길에 절대로 중요합니다. 말씀안에서 자유함이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러브스토리 안에서 신랑을 맞이할 신부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